SERMON TEXT로마서 6:15-23

의의 지배를 받는 거룩한 종의 권세 [로마서 6:15-23]

의의 지배를 받는 거룩한 종의 권세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해 갑니다. 그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 다니며 피곤과 불안 속에 갇혀 살지는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흔히 "내 인생은 내 것인데 내가 왜 누군가의 간섭을 받아야 하는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진짜 자유가 아닌가?"라며 큰소리 칠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돈의 노예가 되고, 사람의 시선에 묶이고,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는 탐욕과 불안의 채찍질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삶의 목적을 모르고 살아가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지난 주에는 로마서 6장 1절부터 14절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 자’의 4차원의 영적 신비와 권세를 살펴보았습니다. 3차원의 눈과 감각으로는 여전히 초라하고 연약해 보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된 우리는 십자가에서 옛 사람이 완전히 장사 지낸 바 되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광풍을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부활 생명이 우리 안에 약동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지 않고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당당히 믿음의 선언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5절에 이르면, 사도 바울은 또 한 번 우리 영혼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어떤 사람들은 은혜를 오해합니다. "이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완전한 은혜 아래 들어왔으니, 죄를 조금 지어도 괜찮지 않은가? 하나님의 용서가 보장되어 있으니 내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도 상관없지 않은가?"

바울은 15절 끝에서 다시 한번 단호하게 외칩니다."그럴 수 없느니라. 메 게노이토(천만에)"라고 잘라 말합니다.

바울은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길에 '완전한 중립 지대'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종'의 실존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죄의 지배를 받는 '죄의 종'으로 살아가므로 결국 사망과 멸망의 열매를 거둘 것인가, 아니면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받는 '의의 종'으로 순종하여 영생과 영광의 열매를 맺을 것인가, 오직 두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터와 비즈니스의 현장, 가정과 사회 속에서 모진 풍파와 고난이 몰아칠 때, 내 힘과 수단으로 이를 모면하려 하면 우리는 또다시 세상과 죄의 종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도 바울이 왜 우리가 은혜 아래 들어왔기 때문에 결코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는지, 흉악했던 죄의 사슬을 끊고 '의의 종'이 되는 신분의 전환이 무엇인지, 그리고 풍랑 속에서도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마침내 거룩함의 열매와 영생을 누리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깨닫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절부터 23절 말씀을 통해, 내 안의 헛된 방종과 거짓된 자유를 십자가 밑에 벗어 던져버려야 합니다. 오직 나를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의의 지배를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생명과 승리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강권합니다.

1. 중립 지대는 없는 인생 (15-18절)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5절과 16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신앙의 가장 치열한 현실을 '종(둘로스, δοῦλος)'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완벽한 자유인이라고 착각하지만, 성경은 명백히 선언합니다.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내가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누구의 뜻에 내 몸과 마음을 내어주느냐에 따라 나의 진짜 주인이 결정됩니다. 죄의 유혹에 순종하여 내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면 죄의 종이 됩니다. 아무리 겉으로 고상한 지식인 흉내를 내고 높은 사회적 지위에 앉아 있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실상 '죄의 종'이며 그 결말은 끔찍한 '영원한 사망'입니다. 반면에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 자신을 내어드리면, 하나님께 '순종의 종'이 되어 참된 '의와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요한복음 8장 34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34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사람들은 "내가 술을 마시고, 내가 도박을 하고, 내가 탐욕을 부리는 것은 내 자유 의지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지 못하고, 도박 중독자가 패가망신하면서도 도박판을 떠나지 못하는 것들을 보십시오. 처음에는 사람이 죄를 짓는 것 같지만, 조금만 지나면 그 죄의 권세가 사람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무서운 독재자 주인이 되어 끌고 다닙니다. 죄의 종이 된 인간의 비참함은 스스로 그 쇠사슬을 끊어낼 힘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나 현 우리시대나 지구촌 권력 정치판을 한번 살펴 보세요.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만행을 자행한 자들은 이를 잘 알지만 죄의 전형적인 노예가 되어 이를 은폐하고자 온갖 만행을 자행하지 않습니까? 초등학생만 되어도 판단할 수 있는 기본마저 무시합니다. 부패한 권력은 이 거대한 세력에 아부합니다. 양심이 사라짐의 모든 근본은 죄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17절과 18절에서 바울은 가슴 벅찬 감사의 찬송을 터뜨립니다.

17-18절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여기서 '해방되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엘레우테로오(ἐλευθερόω)’입니다. 단순히 죄의 감옥 문이 열린 정도가 아닙니다. 이전 주인의 법적 소유권이 완전히 박탈당하고 영원히 무효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역사적 실화가 이를 너무나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 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공포합니다. 법적으로 남부의 모든 흑인 노예는 완전한 자유인이 됩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도 남부의 깊은 시골 벽지 농장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미 법적으로 노예 해방이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을 잘 모르거나 옛 주인의 호통에 세뇌되어 있던 나이 든 흑인 노예들은 여전히 옛 백인 주인의 가혹한 채찍과 고함 앞에 사시나무 떨듯 떨며 목화밭에서 무임금으로 노동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워싱턴에서 파견된 연방군 장교들이 말을 타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농장으로 들이닥칩니다.
장교는 흑인 노예들의 어깨를 붙잡고 외칩니다.

"여러분, 똑똑히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더 이상 이 악독한 농장주의 노예가 아닙니다. 링컨 대통령의 선언으로 여러분은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저 옛 주인의 호통에 더 이상 복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결박하던 쇠사슬은 법적으로 완전히 깨졌습니다"

이것이 오늘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라는 18절의 선언입니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래 마귀의 목화밭에서 채찍을 맞으며 탄식하던 비참한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우리의 해방 문서를 승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피로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이제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거룩한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귀한 것은 공짜로 거저 주십니다. 누구나 마음껏 누리라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마귀가 옛 주인의 권세를 부리며 우리를 흔들 때, 두려워하지 말고 외쳐야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더 이상 네 노예가 아니다. 내 새 주인은 나를 피 값으로 사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2. 육신의 연약함과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훈련 (19-20절)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19절에서 사도 바울은 목회자적인 깊은 긍휼과 사랑으로 권면합니다.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비록 영적으로는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죄에서 단번에 해방되었지만, 3차원의 시공간 속에서 여전히 연약한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매일 죄의 습관과 싸우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바울은 깊이 공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난날의 부끄러운 삶과 오늘의 변화된 삶을 정면으로 대조시킵니다.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우리가 예수를 알지 못하던 옛 시절을 정직하게 돌아보시면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겠습니까?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지금, 우리는 거룩함과 의를 향해 과연 어떤 열정과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예배는 드리되 온 마음으로 드리는지? 기도하는 시간에는 왜 그리 바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는 왜 그리 계산적이고 인색한지? 이에 바울은 질타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옛날에 마귀 밑에서 불법을 저지를 때 바쳤던 그 지독한 열정의 십분의 일이라도, 이제는 너희를 살려내신 의의 주인을 향해 내어드려 보아라. 너희의 손과 발을 의의 종으로 내어주어, 날마다 성화의 거룩함(하기아스모스, ἁγιασμός)에 이르는 영적 훈련을 감당하라"

20절의 뼈아픈 역설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20절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이 말씀은 죄의 종으로 살 때는 하나님의 뜻이나 거룩한 삶 따위에는 손톱만큼도 얽매이지 않고 제멋대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회심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1900년대 평양 시내 시장판을 뒤집어 엎은 김익두 목사가 다 그런 분들입니다.

탈선한 기차를 상상해 보십시오. 정해진 철로(선로)를 벗어나 제멋대로 달리는 기차는 언뜻 보기에 철길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가장 자유로워 보입니다. "나는 내 마음대로 초원을 달린다" 그러나 철로를 벗어난 기차의 종착역이 어디입니까? 가파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쳐 불타오르는 끔찍한 탈선 사고와 파멸뿐입니다.

기차의 진정한 자유는 쇳덩어리 레일 위를 힘차게 달릴 때만 보장됩니다. 물고기의 진정한 자유는 물속에서 헤엄칠 때 주어지는 것이지, 물이 답답하다고 마른 모래사장 위로 튀어 오르는 순간 아가미가 말라붙어 비참하게 질식해 죽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참된 자유는, 죄의 진흙탕에서 방종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궤도 안에 머물며 '의의 지배'를 받을 때만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일터와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우리는 매일 수많은 유혹과 타협의 기로에 섭니다. "남들도 다 적당히 눈가림하고 거짓말하는데, 혼자 정직하게 살다가 손해 보면 어쩌나?"라는 불안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철로를 이탈하지 않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믿고, 내 지체를 의의 도구로 내어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한 순종을 통해 우리들의 삶과 기업과 가정을 가장 견고하고 영광스럽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3. 삯과 은사 (21-23절)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21절부터 23절까지는 인류 역사의 모든 갈림길을 완벽하게 정리하는 성령의 최종 결산 보고서입니다. 바울은 두 가지 대조적인 '열매'와 두 가지 결정적인 '마지막'을 눈앞에 펼쳐 보입니다.

첫 번째 길은 죄의 종이 맺는 열매 (21절)입니다.

그 과정는 죄의 유혹에 이끌려 살아갈 때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영적인 눈이 열리고 나면 그 과거의 행실이 뼈저리게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 결과는,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육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영원한 지옥 형벌인 둘째 사망입니다.

두 번째 길은 하나님의 종이 맺는 열매 (22절)입니다.

그 과정은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종이 되면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 곧 인격과 삶이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함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힙니다.

그 결과는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하나님의 영원한 보좌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다스리는 영광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23절은 성경 66권 중 가장 장엄한 한 절의 복음 요약으로 울려 퍼집니다. 다 함께 23절 말씀을 심령에 새기듯 큰 소리로 합독하겠습니다.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한 구절 속에 얼마나 날카로운 영적 통찰이 담겨 있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두 단어를 날카롭게 대비시킵니다.

‘삯(오프소니온, ὀψώνιον)’ vs ‘은사(카리스마, χάρισμα)’입니다.

'삯'은 당시 로마 군인들이 목숨 걸고 전투를 치른 대가로 국가로부터 받아 쥐던 '급여와 품삯'을 뜻합니다. 삯은 우리 시대 대부분 직장인들이 평생 동안 땀 흘려 애쓴 대가인 것입니다. 평생 일한 대가로 회사로부터 정산 받아 손에 쥐게 되는 물질적인 재산입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으면 바로 ‘영원한 사망’입니다. 죄는 저절로 부과되는 공짜 괴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반드시 가장 참혹한 파멸의 삯을 지불합니다. 물질은 보이는 3차원 세계관에 거칩니다.

그 반대로 '은사(선물)'는 무엇입니까? 헬라어로 ‘카리스마(χάρισμα)’, 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무조건적 호의인 '카리스(은혜)'에서 흘러나온 ‘값없는 선물’이 카리스마 입니다. 카리스마(Charisma)의 어원은 그리스어 카리스(charis, 은혜, 선물)에서 유래한 카리스마(χάρισμα, 신이 주신 은성, 은혜)입니다. 이 카리스마 의미가 오늘날에는 '대중을 휘어잡고 압도하는 강력한 개인적 능력이나 힘'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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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이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엄청난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대가로 주신 보수가 아닙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어 마땅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아낌없이 내어주시고, 그 예수를 믿는 자에게 거저 안겨주시는 '영원한 생명(영생)'이라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시편 107편 23절부터 30절 말씀을 보면, 성도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진 풍파를 어떻게 이겨내는지가 거대한 바다의 항해 비유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시는도다 /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혜가 혼돈에 빠지는도다" (시 107:23~27)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사업의 풍랑이 일고, 질병의 쓰나미가 덮쳐오며, 가정의 환난이 몰아칠 때, 인간의 경험과 지혜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위험 속에서 사람의 영혼은 물 녹듯이 녹아 내립니다.

그때 성도는 어떻게 합니까? 시편 107:28절입니다.

시편 107:28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자신의 힘을 다 빼고, 파도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부르짖어 엎드릴 때, 하나님은 바다의 광풍을 고요하게 하시고 물결을 잔잔하게 하십니다(시 107:29).

그리고 30절의 위대한 결말을 보십시오.

시편 107: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거센 풍파가 몰아칠 때 배의 키를 죄와 두려움에 내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파도를 밟으시며 바람을 꾸짖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인생의 키를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의의 지배 아래 내 영혼을 맡겨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그 어떤 풍파도 뚫고 지나가 마침내 우리를 가장 안전하고 영광스러운 '소원의 항구', 영생의 항구로 반드시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물질 넘어 역사하시는 4차원의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확신하므로 평강이 임하도록 외쳐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며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 로마서 6장 15절부터 23절은 은혜 아래 있는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한 결단을 촉구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치고 백성들 앞에서 생애 마지막 설교를 남기며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수아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오늘 성령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똑같이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부끄러움과 사망의 삯만을 지불하는 옛 주인 죄에게 순종하겠느냐, 아니면 거룩함의 열매와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순종하겠느냐?"

은혜를 방종의 핑계로 삼지 말고, 단호하게 죄의 유혹을 거절해야 합니다. "은혜 아래 있으니 괜찮다"는 사탄의 간교한 속삭임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혈로 사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을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의의 지배' 아래 내어드려야 합니다.

우리 가정, 우리들이 땀 흘려 경영하는 비즈니스 현장과 직장의 모든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내주지 않아야 합니다. 정직과 공의, 사랑과 긍휼과 의의 종이 되어 거룩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고난과 환난의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풍랑이 아무리 사나워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바다를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내 얄팍한 지혜와 수단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바람을 잠잠케 하시고, 우리를 가장 복된 소원의 항구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환경이 우리에게 닥쳐와도 4차원의 시각으로 우리를 향해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우리의 환경을, 지체를 온전하게 해 달라고 믿고, 감사하며 확신하면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겪고, 일터에서 지치고, 기도 응답이 늦으므로 상처받아 지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는 엄연히 존재하며, 우리 주님은 우리의 중심과 눈물의 기도를 다 알고 계십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거짓된 속박을 다 털어버리고, 오직 나를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신실한 '의의 종'이 되어 힘을 내야 합니다. 거친 풍파 속에서도 전능하신 창조주를 온전히 신뢰함으로 마침내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신 영광이 온 세상 만방에 찬란하게 증거되도록 투쟁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본래 죄의 사슬에 묶여 영원한 사망의 삯을 받을 수밖에 없던 비참한 종들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의의 종으로 삼아 주신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은혜 아래 있다는 핑계로 죄와 타협하고 방종의 길을 걷지 않게 하옵소서. 전에 우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었던 그 어리석은 열정을 십자가 밑에 다 묻어버리게 하시고, 이제는 우리의 생각과 언어, 손과 발을 오직 하나님의 의에게 종으로 내어주어 날마다 거룩함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게 하옵소서.
우리가 살아가는 치열한 일터와 가정 속에서 예기치 못한 인생의 풍파와 고난을 만날 때라도 낙심하여 주저앉지 않게 하옵소서. 바다의 광풍을 잠잠케 하시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을 굳게 신뢰하게 하옵소서.
죄의 삯은 영원한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 하셨사오니, 사망의 그늘에 짓눌려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생명 안에서 거룩하게 왕 노릇 하는 승리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일터와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정직과 사랑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된 소원의 항구에 도달하는 은혜의 한 주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