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로마서 5:1-21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는 은혜의 권세 [로마서 5:1-21]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는 은혜의 권세

로마서 5장 1-21 (개역개정)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때가 있습니다. 때론 알 수 없는 환난이 우리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흔들리지 않는 평안과 기쁨을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까? 견디기 힘든 시련 앞에서도 "하나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시는가? 왜 우리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오는가?"라며 깊은 회의와 절망에 빠져보지는 않습니까?

지난 주에는 로마서 4장 1절부터 25절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이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시고, 우리를 온전히 의롭다 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5장에 들어서면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는, 이제 매일 부딪히는 거친 세상 속에서 과연 어떤 존재로 서 있으며 무엇을 누리며 살아가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오늘 1절에서 위대한 신앙의 깃발을 꽂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는 더 이상 죄책감에 쫓겨 다니는 영적 노예가 아닙니다. 사망의 그늘 밑에서 벌벌 떠는 가련한 인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하게 되었으며, 거친 환난 속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영원한 소망을 품고, 마침내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는 거룩한 권세자'로 거듭났습니다. 이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왜 우리가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지, 아담 한 사람으로 들어온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능력이 얼마나 광대한지, 그리고 율법이 폭로한 죄의 절망 속에서 어떻게 은혜가 더욱 넘쳐 왕 노릇 하게 되는지를 밝히 깨닫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부터 21절 말씀을 통해, 내 안의 패배 의식과 두려움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십자가의 확증된 사랑을 힘입어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는 승리의 삶으로 전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화평과 환난 속에서 성령으로 부어주신 사랑의 확증 (1-11절)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열매는 ‘하나님과의 화평(Peace with God)’입니다. 이 화평은 내 기분이나 감정이 일시적으로 편안해지는 심리적 안정이 아닙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철천지원수(10절)가 되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아래 놓여 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모든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완전한 평화 조약을 맺게 되었다는 신분적 선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전에는 죄인으로서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지성소,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안으로 당당히 들어가는 특권을 얻었습니다(2절, 히 4:16). 그리고 장차 누릴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3절에서 상식을 깨뜨리는 역설을 터뜨립니다.

3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어떻게 눈물이 쏟아지고 뼈가 떨리는 '환난' 속에서 기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여기서 '환난'은 헬라어로 ‘들립시스(θλῖψις)’입니다. 이것은 거대한 맷돌이나 무거운 바위로 곡식을 짓이겨 쥐어짜는 듯한 극심한 압박과 고통을 뜻합니다. 그런데 성도는 그 짓눌림 속에서 절망하거나 비명을 지르지 않고 도리어 즐거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3절과 4절이 그 거룩한 영적 연쇄반응의 비밀을 밝힙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마침내 소망을 이루어내기 때문입니다"

광부가 땅속 깊은 곳에서 캐낸 거친 원석(금광석)을 보십시오. 원석에는 온갖 불순물과 흙탕물이 더럽게 뒤섞여 있습니다. 그 원석을 그대로 장신구로 쓸 수는 없습니다. 금 제련사는 그 원석을 천 도가 넘는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 불 속에 집어 던집니다. 겉으로 보면 불 속에서 녹아 내리는 원석이 고통당하며 파괴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불길 속에서 원석에 붙어 있던 모든 추악한 찌꺼기와 불순물이 다 타서 날아가고, 마침내 순도 99.9%의 영롱하고 찬란한 '순금'이 빚어져 나옵니다.

여기서 4절의 '연단'이라는 단어가 바로 '불 속에서 제련되어 검증된 순금'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성도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환난은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의 저주가 아닙니다.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탐욕과 교만, 세상의 불순물을 태워버리시고, 주님만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진짜 믿음의 순금을 빚어내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용광로인 것입니다.

그리고 5절은 선언합니다. 이 소망은 결코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6절부터 8절에 나옵니다. 세상에서는 의인을 위해 대신 죽는 자도 드물고, 성품이 좋은 선인을 위해 용감하게 대신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혹 어쩌다가 한둘 있을지 모릅니다(7절). 6-8절을 보십시오.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예쁜 짓을 하고 선행을 베풀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할 때에', 하나님을 거역하던 '경건하지 않은 자였을 때에', 심지어 하나님과 칼을 겨누고 대적하던 '원수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심장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면서 온 우주를 향해 공인 인증을 해 주신 것입니다.

"보아라.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크기다. 이것이 내가 너를 향해 쏟아 붓는 타오르는 사랑의 확증이다."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이 십자가의 용서와 화목의 능력을 온몸으로 증명해 낸 성자가 있습니다. 손양원(1902~1950) 목사님입니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여수 애양원에서 나환자들을 돌보시던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 형제가 좌익 학생들에게 붙잡힙니다. 공산당 반란군이었던 ‘안재선’이라는 청년은 총구를 겨누며 예수 믿는 것을 부인하라고 협박합니다. 두 형제는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굽히지 않았고, 결국 안재선의 무자비한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순교의 제물이 됩니다. 반란이 진압된 후, 국군과 경찰은 두 형제를 잔인하게 쏴 죽인 살인범 안재선을 체포하여 총살형을 집행하려 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피눈물을 흘리며 국군 사령관에게 달려가 눈물로 탄원했다고 합니다.

"사령관님, 제 아들들을 죽인 안재선 청년을 죽이지 말고 제게 넘겨주십시오. 그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그 아이를 양아들로 삼겠습니다."

사람들은 손 목사님이 미쳤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어떻게 그 가슴에 대못을 박고 두 아들을 난도질한 원수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양아들로 입적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하나님을 향해 드린 아홉 가지 감사 기도 중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두 아들을 죽인 원수 같은 죄인을 회개시켜 내 친아들로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원수 되었던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사랑하셨거늘, 내가 어찌 그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겠습니까?"

사형 집행 직전 풀려난 살인범 안재선은 손양원 목사님의 품에 안겨 대성통곡하며 무릎을 꿇습니다. 그는 목사님의 양아들이 되었고, 훗날 회개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신실한 전도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로마서 5장 10절이 말하는 화목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는 안재선과 같은 패역한 원수입니다. 우리는 난 아닌데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독생자의 피를 쏟으신 하나님이신데, 하물며 구원받은 자녀가 된 지금 우리를 고난 속에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환난 속에서도 이 확증된 십자가 사랑을 굳게 붙들고, 인내와 연단을 거쳐 영광스러운 소망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2. 사망의 지배를 깨뜨리고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라 (12-19절)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12절부터 바울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심오한 '대표성의 원리'를 펼쳐 보입니다.
인류 역사는 단 두 사람, 곧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도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인류의 조상인 첫 사람 아담 한 사람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불순종하여 죄를 범합니다. 그 결과 그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온 세상에 바이러스처럼 침투했고, 죄의 삯인 '사망'이 인류 전체를 집어삼킵니다.

상수원 수원지에 치명적인 맹독 한 바가지를 쏟아 부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수원지로부터 수도관을 연결해 물을 공급받는 도시의 모든 가정은, 그 물을 마시는 갓난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온몸에 독이 퍼져 죽어가게 됩니다. 아담이 바로 그 오염된 수원지였습니다. 아담의 혈통을 타고 태어난 모든 인류는 예외 없이 죄의 유전 인자를 물려받았고, 14절 말씀처럼 '사망이 그들 위에서 왕 노릇'하는 비참한 노예가 됩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무기력한 벌벌 떠는 종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15절부터 19절까지 바울은 가슴 벅찬 탄성을 내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아담의 범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광대하다는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이 불순종함으로 인류 전체가 정죄와 죽음에 이르렀다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18-19절).

그리고 17절은 오늘 설교의 가장 영광스러운 황금 요절입니다. 다 함께 17절 말씀을 큰 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17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이전에는 죄와 사망이 내 위에서 잔인한 독재자처럼 채찍을 휘두르며 왕 노릇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분이 180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끌려 다니는 노예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생명을 가지고 죄와 사망과 세상을 발아래 짓밟으며 영적으로 다스리는 왕(King)'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천민으로 태어나 날마다 양반들의 발길질에 채이고 짐승 취급을 받던 노비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실의 어명이 내려왔는데, 알고 보니 이 소년이 왕이 잃어버렸던 친아들, 즉 이 나라의 정통 왕세자였던 것입니다. 임금의 신하들이 화려한 비단옷을 들고 와서 흙탕물 묻은 노비의 거적때기를 벗기고 세자의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대궐로 모셔 가 왕좌의 우편에 앉혔습니다. 그렇다면 그 소년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전히 옛날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양반들 앞에서 무릎 꿇고 밥 찌꺼기나 구걸하며 눈치를 보아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이제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왕의 권세를 가지고 백성을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노예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거룩한 왕자요 공주입니다. 죄책감 앞에서, 세상의 가난과 질병 앞에서 더 이상 고개 숙이지 말아야 합니다. "사망아, 정죄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게서 떠나갈지어다. 나는 예수 안에서 생명으로 왕 노릇 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당당하게 선포하며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죄가 더한 곳에 더욱 넘친 은혜 (20-21절)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20절을 보면 사람들이 또다시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로 다 끝난 일이라면, 하나님은 중간에 왜 모세를 통해 그 번거롭고 엄격한 율법을 끼워 넣으셨습니까?" 바울은 대답합니다.

20절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더 많이 지으라고 부추기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 안에 숨어 있던 죄의 독버섯과 반역의 실체를 백일하에 낱낱이 들추어내어, 인간이 얼마나 철저한 죄인인지를 깨닫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캄캄한 방 안을 상상해 보십시오. 불을 켜지 않았을 때는 방바닥에 먼지와 오물이 가득 쌓여 있어도 방이 깨끗한 줄 압니다. 그러나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환하게 비쳐 들어오는 순간, 공기 중에 부유하는 수억 개의 먼지와 구석구석 널브러진 더러운 쓰레기들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햇빛이 먼지를 만들어낸 것입니까? 아닙니다. 원래 가득 차 있던 더러움을 햇빛이 비추어 폭로한 것뿐입니다.

율법의 역할이 바로 이 햇빛이요, 병원의 'MRI 검사기'와 같습니다. 온몸에 암세포가 뼈 속까지 전이되어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나는 건강하다"고 헛소리하는 환자에게, 의사는 정밀 MRI 영상을 눈앞에 들이대며 보여줍니다. "환자분, 보십시오. 당신의 온몸이 지금 암 덩어리로 뒤덮여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스스로의 힘으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말기 암 환자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절망시켜 지옥에 보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적 무능력을 깨닫고 오직 예수의 십자가 은혜만을 붙들게 만드는 하나님의 자비의 진단 도구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20-21절에서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눈부신 복음의 클라이맥스를 노래합니다.

20-21절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더욱 넘쳤다'는 헬라어는 ‘휘페르페릿세우오(ὑπερπερισσεύω)’입니다. 영어의 'Hyper(초월하다)'와 'Abound(풍성하다)'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악이 아무리 태산처럼 높게 쌓여 있어도,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는 그 죄의 태산을 완전히 뒤덮고도 남는 거대한 쓰나미와 같이 차고 넘친다는 뜻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를 기억하십니까?

인간의 패역과 죄악이 온 세상을 덮었을 때, 하늘의 창들이 열리고 깊음의 샘들이 터져 거대한 물결이 지구상의 가장 높은 산꼭대기까지 15규빗(7.5m정도)이나 완전히 덮어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나의 어떤 추악한 과거도, 어떤 지독한 실패와 허물도, 하나님의 바다 같은 은혜의 파도 앞에서는 흔적도 없이 잠겨버리게 만듭니다. 이제 우리 인생의 보좌에는 죄와 사망이 앉아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왕관을 쓰고 앉아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인도해 가십니다. 극렬하게 반항하던 요나를 하나님께서는 바다 심해 속으로 3일간 잠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의 권세를 회복하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로마서 5장 1절부터 21절은 환난 많은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로 부름받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1) 하나님과 맺은 화평을 매일의 삶 속에서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는 원수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피로 맺은 영원한 평화의 자녀들입니다. 어떤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은 영원히 내 편이시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2) 환난을 만났을 때, 불평하지 말고 연단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 맷돌로 짓이기는 것 같은 아픔과 고난이 있습니까?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순도 99.9%의 믿음의 순금으로 빚어내시는 중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십자가의 확증된 사랑을 붙들고, 인내로써 마침내 영광스러운 소망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3) 패배자의 탄식을 멈추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담의 저주 아래 묶여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존귀한 자들입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 감정과 환경에 끌려 다니지 말고, 왕의 권세를 가지고 죄악을 밟아 이기며 거룩한 승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살다 보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연약함과 한계에 부딪혀 눈물 흘릴 때가 있습니다. 율법의 거울 앞에서 내 부끄러운 전력에 절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넘쳤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헛된 걱정을 털어버리고, 나를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깊이 묵상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텐트 메이커로서 묵묵히 땀 흘릴 때, 마귀에게 눌려 한숨짓지 말고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는 당당한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참된 화목의 복음이 온 세상 만방에 증거되고, 넘치는 은혜의 영광이 찬란하게 드러나도록 기도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후 로마 네로 황제시기 순교하기까지 약 30년에서 35년 동안 사역합니다. 30대 초중반에서 60중후반까지로 추정합니다. 바울은 초인적으로 그 시대를 선도한 열정의 사도입니다. 바울은 지병이 있는 사도임에도 그가 항해하거나 사역으로 여행한 거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도 바울이 경험한 성부, 성자 하나님께서는 성령 하나님을 통해 엄청난 능력을 그에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능력이나 그의 힘으로 이런 권면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그가 만난, 그가 체험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삶이나 현재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므로 이루어주실 하나님께 먼저 감사 드리며, 응답하실 하나님을 확신하면서 기도로 투쟁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고 투쟁하는 자들만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아직 연약하고, 경건하지 않으며, 죄인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화목제물로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영원히 확증해 주신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사오니, 이제는 두려움과 정죄감의 노예로 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과 맺은 거룩한 화평을 누리며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에 닥쳐오는 모진 환난 앞에서도 낙심하여 주저앉지 않게 하옵소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결코 부끄럽지 않은 하늘의 소망을 빚어내는 하나님의 거룩한 용광로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망이 왕 노릇 하던 옛사람의 옷을 완전히 벗어버리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거룩하게 왕 노릇 하는 존귀한 성도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 하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허물을 주의 보혈로 덮으시고, 이번 한 주간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치열한 일터와 가정 속에서 은혜의 왕 노릇 하심을 체험하며 찬양하는 승리의 한 주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