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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너머의 나

grace · 2026년 9월 16일

주일설교의 여운-그림 너머의 이야기

나는 누구의 시선으로 살아가는가

토머스 모어의 초상화 앞에서
Sir Thomas More by HOLBEIN, Hans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토머스 모어의 초상〉, 1527년, 목판에 유채, 74.2 × 59cm. 뉴욕 프릭 컬렉션 소장.

그림 속 남자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검은 모자, 짙은 갈색의 모피, 가슴을 가로지르는 금빛 목걸이.
초록색 휘장 앞에 앉은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다.
화가는 그의 부와 지위를 정교하게 그려냈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옷도 장신구도 아닌 눈빛이다.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얼굴.

이 남자는 16세기 영국의 인문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다.
그림을 그린 한스 홀바인은 모어와 가까이 지냈던 화가다.
초상화가 완성된 것은 1527년. 모어가 영국 대법관이라는 높은 자리에 오르기 2년 전이었다.


그림 속 금빛 목걸이는 왕을 섬기는 신하의 지위를 상징한다. 그러나 훗날 모어는 국왕 헨리 8세의 교회에 대한 최고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 처형된다.
그의 운명을 알고 나서 그림을 다시 바라보면 조금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이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모두 벗겨낸 뒤에도,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매일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다

500년 전에는 궁정화가가 사람의 초상화를 그렸다.
오늘날에는 우리가 직접 그린다.
SNS의 프로필 사진을 고르고, 마음에 드는 일상의 순간을 편집하고,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직함과 경력을 내세운다.
어떤 사람은 직업으로, 어떤 사람은 재산으로, 또 어떤 사람은 팔로워 숫자와 타인의 평가로 자신을 설명한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것을 예측하고, 알고리즘은 비슷한 생각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어느새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기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먼저 살피게 된다.
세상은 끊임없이 말한다.
더 근사해 보여야 한다고.
더 많이 인정받아야 한다고.
다른 사람보다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우리는 매일 조금씩 더 멋진 초상화를 완성해 간다.
하지만 그 그림 속 인물이 과연 나 자신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토머스 모어의 또 다른 얼굴

모어는 단순히 높은 자리에 오른 정치가만은 아니었다.
그는 1516년 《유토피아》를 출간하여 당시 유럽 사회의 모순을 풍자하고,
더 나은 사회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질문했다.

그가 상상한 섬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곳을 상상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물론 모어 역시 완전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종교개혁 사상을 탄압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그의 관용과 신앙에 대해서는 오늘날에도 역사적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삶을 흠 없는 영웅의 이야기로 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확신과 한계, 이상과 현실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으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하니까.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자신의 장점뿐 아니라 한계까지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거울을 잠시 내려놓으면

그리스도인에게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직업을 갖고, 성취를 이루고, 아름다운 것을 즐기는 일은 모두 삶의 소중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잃거나 더 이상 해낼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의 존재는 여전히 소중하다.
나이가 들어 이전처럼 일할 수 없어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기억하면 조금 다른 삶이 가능해진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며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고,
더 근사하게 보이기 위해 자신을 과장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를 밀어낼 필요도 없다.
나의 정체성이 타인의 평가에만 매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서 12장 2절은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권한다.
이 말씀을 오늘의 언어로 생각해 본다.
세상이 보여 주는 모습과 내가 진정으로 살아가고 싶은 모습 사이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초대처럼 느껴진다.
토머스 모어의 초상화로 다시 눈을 돌린다.

500년이 지났지만 그림 속 금빛 목걸이는 여전히 빛난다.
한때 그가 누렸던 지위와 권력은 사라졌고,
우리가 그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그러나 그림은 지금도 우리에게 질문을 건네는 듯하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보다, 나는 누구 앞에서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초상화를 그리며 살아간다.
그 그림이 조금 덜 화려해도 괜찮겠다.
하나님 앞에서의 나를 잃지 않는다면.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지운 뒤에도 남는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작품 및 인물 참고: 뉴욕 프릭 컬렉션,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스탠퍼드 철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