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첫 글러브는 가죽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마련해 준 700엔짜리 비닐 장난감이었다. 소년은 그것을 무척 아껴 밤마다 품에 안고 잠들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글러브를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가죽 글러브를 따뜻하게 하면 부드러워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하지만 그 글러브는 비닐이었다.
글러브는 녹아 버렸다.
소년은 울었다. 아버지는 훗날 그때가 가장 마음 아팠다고 회상했다.
그 소년은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의 투수, **미야기 히로야(宮城大弥)**다.
그의 어린 시절에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유니폼은 여러 번 기워 입었고, 야구 장비를 마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때로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만큼 가난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가난의 정도가 아니었다.
그 집에 남아 있던 웃음이었다.
2019년 일본의 한 방송에서 미야기의 어린 시절이 재연되었다. 친구가 집이 가난하지 않느냐고 놀리자 소년은 자신의 형편을 부인하지 않는다. 먹을 것이 없을 때도 있고 목욕하지 못할 때도 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웃음이 있어.”
방송에서는 아버지도 당시를 회상하며 가족에게는 웃음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문장은 재연 장면의 대사이므로 미야기가 어린 시절 정확히 같은 말로 답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방송이 본인과 부모의 취재를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점에서 가족이 지켜 온 마음을 보여 주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다.
나는 이 짧은 대사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소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있는 것까지 잊지는 않았다.
가난은 그 집의 경제적 형편을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 집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아들의 재능을 믿어 주는 아버지가 있었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가족을 돌보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서로를 향해 웃을 수 있는 마음이 있었다.
물론 웃음만으로 가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야기가 야구를 계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부모의 희생뿐 아니라 비용을 대신 내주거나 납부를 기다려 준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있었다. 미야기는 성장한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실감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내게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소년이 훌륭했던 것은 한 번도 상처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상처받을 때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았고, 자신을 믿어 주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이 흘렀다.
2019년, 미야기는 오릭스 버펄로스의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입단 당시 추정 계약금은 8,000만 엔. 그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야구를 계속하게 해 준 부모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계약금 중 일부를 출신 학교와 야구팀 등 고향 오키나와의 지역사회에 기부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여기까지라면 가난했던 소년의 성공담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내가 뒤늦게 알게 된 뒷장이 있었다.
2022년, 미야기는 아버지와 함께 ‘미야기 히로야 기금’을 설립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운동을 포기해야 하는 오키나와의 아이들에게 야구 장비와 원정 비용 등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의 활약을 통해 기금이 알려지면 더 많은 아이를 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5년 6월, 기금은 1기부터 3기까지 모두 11명의 아이를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처음의 비닐 글러브가 다시 떠올랐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제대로 된 가죽 글러브 하나 사주지 못했다. 그토록 아끼던 비닐 글러브마저 녹여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 그 아들과 아버지는 다른 아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장비를 마련하고, 먼 곳의 경기에 참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들이 건네는 것은 글러브나 원정비만이 아닐 것이다.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네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능성.
나는 이 이야기를 가난을 이겨 낸 성공담으로만 남겨 두고 싶지 않다.
모든 가난한 아이가 유명한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만으로 누구나 같은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미야기 부자의 선택은 더욱 깊게 다가온다.
어려움을 겪는 아이에게 단지 꿈을 믿으라고 말하는 대신, 그 아이가 꿈을 계속 품을 수 있도록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인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은혜를 생각한다.
미야기가 어떤 종교적 신념으로 이 일을 시작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기억하고, 그것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모습에서 내가 믿는 은혜의 한 모습을 발견한다.
받은 것을 자기 안에 가두지 않는 사람.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는 대신, 비슷한 자리에 있는 누군가를 돌아보는 사람.
그렇게 한 사람의 삶에서 시작된 작은 선의가 다른 사람의 미래에 닿는다.
나는 다시 방송 속 소년의 얼굴을 떠올린다.
가난하다는 놀림 앞에서도 자기 집에는 웃음이 있다고 대답하던 소년.
그는 자신의 가난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가난이 자기 삶의 전부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다른 아이들이 자기 삶의 가능성을 잃지 않도록 손을 내밀고 있다.
오래전 아버지가 사주었던 비닐 글러브는 녹아 없어졌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겼던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다른 소년의 손에 새로운 글러브가 되어 쥐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