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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공간

이렇게 힘든데, 하나님은 어디 계실까요?

grace · 2026년 10월 25일

christ_in_gethsemane_1943.3.927.jpgChrist in Gethsemane
Ernst Barlach
Artist, German, 1870 - 1938

07. 이렇게 힘든데, 하나님은 어디 계실까요?

삶이 너무 힘들 때 가장 듣기 어려운 말이 있습니다.
“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
말하는 사람은 위로하려 했겠지만, 고통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더 외롭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 이유가 무슨 소용일까요.
오랫동안 아픈 사람에게 “뜻이 있을 것”이라는 말만으로 고통이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기도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때 우리는 묻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성경도 인간의 모든 고통에 간단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왜 선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나는지,
왜 어떤 기도는 우리가 바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지,
왜 어떤 상처는 너무 오래 계속되는지 모두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는 조금 독특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멀리 떨어져 인간의 고통을 바라보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인간의 삶 가운데 들어오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배고픔을 아셨고,
친구의 죽음 앞에서 우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배신당하셨으며,
십자가를 앞둔 겟세마네에서는 깊은 괴로움 속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말을 전혀 모르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멀리서 “견뎌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아픈 자리까지 내려오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모든 질문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바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병이 즉시 낫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다르게 바라보게 합니다.
내가 고통 속에 있을 때 완전히 혼자인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신앙은 고통의 이유를 모두 알아내는 일이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는 시간에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작은 가능성을 붙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너무 힘들다면 좋은 말을 만들어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 어디 계세요?”
라고 물어도 됩니다.
“저는 지금 하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해도 됩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 그냥 잠시 머물러도 좋습니다.
눈물도 기도가 될 수 있으니까요.
우리도 누군가가 아플 때 너무 빨리 답을 주려고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때로는 설명보다 곁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는 사람 곁에서 함께 우셨던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고통 앞에 잠시 같이 앉아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함께 읽어보면 좋은 말씀
요한복음 11장 32~36절 · 마태복음 26장 36~39절 · 시편 23편 · 로마서 8장 35~3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