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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공간

하나님께 서운하고 화가 나도 될까요?

grace · 2026년 10월 25일

job_s_despair_1943.3.1810.jpg윌리엄 블레이크의 《욥의 절망(Job’s Despair)》, 1825
William Blake, Job’s Despair, 1825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 Public Domain

03. 하나님께 서운하고 화가 나도 될까요?

기도했는데 아무 일도 달라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꼭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일이 무너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고,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 한쪽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하나님, 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나요?”
“정말 제 기도를 듣고 계셨나요?”
“왜 하필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가요?”
그러다가 문득 겁이 납니다.
하나님께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 걸까.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나님께 서운하고 화가 난다는 것은 내가 믿음이 없다는 뜻일까.
그런데 성경을 천천히 읽어보면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 묻고, 울고, 때로는 따지듯 이야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시편에는 “어느 때까지입니까?”라고 묻는 기도가 있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닥친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 끊임없이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하박국도 세상의 불의와 고통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왜 가만히 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마음을 지워버리지 않았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답게 말하도록 고쳐놓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물과 질문을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알려주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마음까지 좋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서운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기대하지 않았을 일을, 믿었던 사람이 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더 아픕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서운하다는 마음 뒤에는 때때로 이런 바람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를 그냥 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이라면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듣기 좋은 말을 골라 드리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아프다면 아프다고,
화가 난다면 화가 난다고,
아무것도 믿어지지 않는 날에는 그것조차 그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많이 서운합니다.”
그 한 문장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침묵만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
고통을 모르는 분이 우리에게 참으라고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 장면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도 아픔을 아셨고,
외로움을 아셨으며,
버림받은 것 같은 순간의 절규가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눈물을 가지고 갈 때, 그 마음을 전혀 모르는 분 앞에 서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모든 질문에 곧바로 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기도한다고 아픈 사람이 반드시 바로 낫는 것도 아니고, 무너진 관계가 하루아침에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너무 빨리
“다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예요.”
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아픔마저 설명해야 하는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보다
그 사람 곁에 앉아주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모든 답을 얻은 뒤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답을 얻지 못한 마음 그대로 하나님 곁에 머물러 보는 것.
그것도 믿음의 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하나님께 서운한 일이 있습니까?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달라지지 않은 일이 있나요?
왜 그런 일이 허락되었는지 이해되지 않아 마음 한구석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품고 있지는 않나요?
그 마음을 억지로 없애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은 아주 솔직하게 말해보셔도 좋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많이 서운합니다.”
“그래도 제 이야기를 듣고 계신다면, 오늘은 그냥 제 곁에 있어주세요.”
기도는 언제나 아름다운 말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울음으로 시작하고,
때로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때로는 하나님께 대한 서운함으로 시작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보다, 서운함이라도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편이 어쩌면 관계의 시작일 수 있으니까요.
오늘 모든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질문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이 아직 풀리지 않아도,
조금 천천히 걸어가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돈된 마음만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하는 마음까지 가지고 나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좋은 신앙인이 되려고 애쓰기보다,
있는 마음 그대로 문을 두드려보세요.
“하나님, 저 지금 많이 서운합니다.”
어쩌면 그 솔직한 한마디에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함께 읽어보면 좋은 말씀
시편 13편 · 시편 22편 · 욥기 3장 · 하박국 1장 · 마태복음 27장 4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