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장 8-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장 8-17절 (개역개정)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 우리는 로마서 전체의 핵심 주제이자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신칭의 (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의 위대한 선언 앞에 서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의 막바지, A.D. 57년경 겨울 그리스 고린도의 가이오 집에서 펜을 들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시 로마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전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심장부입니다. 세계를 제패한 대제국의 수도 로마에 세워진 교회를 영적으로 든든히 세우는 것은, 곧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도로망과 인프라를 통해 복음이 온 천하 만방으로 뻗어나가게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교두보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아 무엇을 밝힙니까?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바울이 로마 성도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다는 직접적인 고백은 로마서 1장 9절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어떻게 하든지 이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간구하노라" 기도로 맺어진 교류보다 더 깊고 견고한 영적 교제는 없습니다. 기도는 성령을 통한 거룩한 영적 교통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편지를 쓴 A.D. 57년으로부터 약 4년이 지난 A.D. 61년, 바울은 마침내 로마 땅을 밟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길은 세상이 말하는 화려하고 안락한 비단길, 형통의 길이 아닙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뚫고, 배가 파선되고, 쇠사슬에 묶인 '초라한 죄수의 몸으로 걷는 좁은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좁은 길, 죄수의 쇠사슬을 통해 로마 황실의 심장부로 복음이 침투하게 만드십니다.

오늘 본문 8절부터 17절 말씀을 통해, 바울이 품었던 복음의 빚진 자의 심정을 우리가 회복하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신칭의의 절대적 진리 위에 굳게 서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1. 성령 안에서 누리는 피차의 안위 (1:8-13)

8절부터 10절을 보면, 바울은 이 로마 교회를 향한 자신의 간절한 열망을 밝히면서 참으로 놀라운 신앙의 고백을 쏟아놓습니다. 8-10절 말씀입니다.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특히 9절이 우리의 폐부를 찌릅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바울은 누구를 증인으로 세우고 있습니까?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자신의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2절은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하셨고, 예레미야 17장 10절은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한다"고 선언하십니다. 인간의 겉모습이 아니라 가장 깊은 내면의 동기와 심장, 폐부까지 꿰뚫어 보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증인으로 채택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추호의 거짓이나 가식이 없는 진실한 영혼이 아니면 결코 입에 담을 수 없는 엄중한 선언입니다.

11-13절입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 이는 곧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바울이 로마 성도들을 그토록 간절히 만나고자 했던 목적은 세상적인 유익이나 관광이 아닙니다.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그들을 견고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신령한 은사'란 신비주의적 능력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말씀의 은혜와 복음의 깊은 비밀을 전달하는 '은사 수여의 청지기, 중개인이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로 로마 성도들의 기초를 반석 위에 올려놓아, 세상의 어떤 세파와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을 세워주고자 했습니다.

12절에서 바울의 목회적 겸손을 보십시오.

"이는 곧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바울은 일방적인 영적 우월감으로 성도들을 훈계하려 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내게서 신령한 은혜를 받아 견고케 됨과 동시에, 너희의 순결한 믿음을 통해 나 또한 큰 격려와 위로, 피차 안위를 얻기를 원한다"는 영적 동역자의 마음입니다. 참된 교회 공동체의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서로가 한 성령 안에서 믿음의 간증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눈물로 중보할 때입니다. 주는 자도 살아나고 받는 자도 견고해지는 영적 시너지와 위로가 일어납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교회 공동체의 모습니다.

바울은 여러 번 로마로 가려 했으나 길이 막혔다고 고백합니다(13절). 사탄의 방해도 있었고 복음 전파의 시급한 일정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길이 막혔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막으심을 통해 바울로 하여금 로마서를 기록하게 하시고, 마침내 정하신 때에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바울을 로마의 심장부에 입성시키십니다.

2. 복음에 빚진 자의 거룩한 채무 의식 (1:14~15)

14-15절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14절에서 자신을 향해 충격적인 고백을 던집니다. "나는 빚진 자(Debtor)"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돈을 빌렸습니까? 헬라인이나 야만인들에게 물질적 채무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빚은 바로 '십자가 복음의 빚'입니다. 자신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 가던 포악자요 핍박자요 괴수였습니다. 지옥 불에 떨어져 마땅한 대역죄인이었으나, 주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거저 용서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유가 생기면 베푸는 호의나 취미'가 아닙니다. 아직도 이 은혜를 알지 못하고 죄의 사슬 아래 매여 신음하는 세상의 영혼들에게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절대적인 영적 채무(빚)'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며 제자들과 오늘 우리에게 지상 대명령을 위임하셨습니다.

1. 마태복음 28장 19-20절: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2. 마가복음 16장 15절: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위임 명령은 성도의 삶에서 다른 어떤 세상적 목표보다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거룩한 의무이자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나 혼자 천국 가라고 주신 티켓이 아니라, 내 곁에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이 생명의 빚을 갚으라고 주신 사명입니다.

아우슈비츠의 절망 속에서 복음의 빚을 갚은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폴란드인)는 이 '복음의 빚진 자'의 심정으로 절망의 벼랑 끝에서 생명을 살려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 높았던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막시밀리아노 콜베 (Maximilian Kolbe, 1894~1941) 신부 이야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콜베 신부는 수도원에 수천 명의 폴란드인 난민과 2,000여 명의 유대인을 숨겨주고 돌보아 줍니다. 이로 인해 1941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폴란드 오시비엥침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이송됩니다.

1941년 7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한 수감자가 탈옥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분노한 나치 수용소장은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무작위로 10명의 수감자를 지목하여,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굶겨 죽이는 '지하 아사 감방(Starvation Bunker)'에 집어넣겠다고 위협합니다. 지목을 당한 수감자 중 '프란치셰크 가요브니체크'라는 청년이 앞으로 끌려나오며 울부짖습니다. "내 가엾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은 어떻게 합니까? 나는 이렇게 죽을 수 없습니다." 수용소 전체가 살얼음판 같은 공포와 침묵에 휩싸였을 때, 누더기 죄수복을 입은 한 사람이 안경을 고쳐 쓰며 뚜벅뚜벅 소장 앞으로 걸어 나옵니다. 바로 콜베 신부입니다.

소장이 권총을 겨누며 위협적으로 묻습니다. "너는 뭐냐? 폴란드의 돼지 같은 놈아, 왜 튀어나오느냐?" 콜베 신부는 평온하고 담대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나는 가톨릭 사제입니다. 저 사람에게는 부양해야 할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나는 늙었고 병들었으며 가족이 없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대신하여 아사 감방에 들어가겠습니다."
나치 장교는 감방에 충격을 받아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청년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지하 캄캄한 아사 방에 갇힌 10명의 죄수들은 원래 공포 속에서 저주와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미쳐 죽어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콜베 신부가 들어간 그 굶주림의 감방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뒤바뀌어 버립니다. 콜베 신부는 14일 동안 고통에 떠는 수감자들의 손을 잡고 기도해 줍니다. 성경 말씀을 암송하고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지하 감옥 전체에 저주 대신 거룩한 찬송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간수들이 문을 열 때마다 콜베 신부는 무릎을 꿇고 평온한 미소로 그들을 맞이합니다. 마침내 1941년 8월 14일, 모든 수감자가 숨을 거두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기도하던 콜베 신부는 독극물 주사를 맞고 거룩하게 순교합니다.

후에 살아남은 청년 가요브니체크는 평생 전 유럽을 다니며 눈물로 증언합니다. "콜베 신부는 저 같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 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빚진 자로서, 그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내 대신 죽음의 골짜기로 걸어 들어가신 분입니다." 바울이 가졌던 복음의 빚진 자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세상의 흑암과 죽음의 공포가 우리를 짓누를지라도, 십자가의 은혜에 빚진 사명자가 서 있는 그 자리는 절망을 뚫고 생명의 찬송이 터져 나오는 거룩한 구원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당장 우리 기도에 응답이 없고, 세상사람들이 우릴 손가락질하더라도 우리는 주님의 자녀라는 Identity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 가족을 위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우리 공동체 조국 대한민국과 전세계 평화를 위해, 복음이 필요한 곳에 나아가는 심정으로 우리는 기도하고 응답 받도록 투쟁해야 합니다

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1:16~17)

16-17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드디어 16절과 17절에서, 로마서 전체를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이자 온 우주를 진동시키는 영적 마그마가 폭발합니다.

1.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Dynamite)입니다 (16절)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라"고 담대히 외칩니다. 당시 로마인들의 눈에 십자가의 복음은 유대 변방의 초라한 사형수가 나무에 매달려 죽은 수치스러운 이야기입니다. 헬라인들에게는 복음은 미련한 헛소리에 불과합니다(고전 1:23). 그러나 바울은 그 십자가를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이 복음이야말로 인종과 신분, 빈부격차를 뛰어넘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Dynamis, 다이너마이트)"이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군사력도, 황제의 철권통치도 해결하지 못한 인간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단번에 박살 내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폭발적 능력이 바로 복음 안에 있습니다.

2.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17절)
17절의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도덕적 행위나 율법의 공로로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스스로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값없이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선물로서의 의(전가된 의)'를 복음 안에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의 불변의 진리입니다
.
16세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피를 말리는 고통을 겪습니다. 그는 수도원에서 금식을 밥 먹듯 하고, 밤새 차가운 바닥에서 참회의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몸을 채찍질합니다. 그러나 내면의 죄책감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1510년, 루터는 거룩한 도시 로마를 방문합니다. 로마의 라테라노 대성당에는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받으실 때 오르셨다는 28개의 대리석 계단인 '스칼라 산타, 빌라도의 거룩한 계단'이 있습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이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며 각 계단마다 주기도문을 외우면, 연옥에 있는 조상의 죄가 사해지고 고해성사의 공로를 인정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루터는 찢어지는 무릎의 고통을 참으며 피를 흘리며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기어 올라갑니다. 계단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그의 영혼 속에는 평안이 임한 것이 아니라 깊은 허무와 회의가 밀려옵니다. "과연 이것이 참말인가? 내가 고행을 한다고 내 죄가 씻겨지는가?" 바로 그 순간, 성령의 거대한 천둥소리가 루터의 심장을 강타합니다. 본문 17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루터는 계단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아! 구원은 내 무릎의 피나 고행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구나! 십자가에서 모든 죄 값을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구나!" 이 진리의 빛을 발견한 루터는 중세 1천 년의 암흑을 깨부수고 종교개혁의 횃불을 높이 듭니다. 이 로마서 1장 17절의 '이신칭의'의 말씀 한 구절이 온 유럽을 뒤흔들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참된 구원의 자유를 선물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로마서 1장 8절부터 17절을 통해 복음의 세 가지 절대적인 영적 원리를 확인했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을 증인 삼는 진실한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심장과 폐부를 살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눈가림이 아니라 무릎으로 세상을 품고 우리 모두를 견고하게 세우는 중보기도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2. 세상을 향해 '복음의 빚진 자'의 거룩한 채무 의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깨닫는 자만이, 콜베 신부처럼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생명을 드려 죽어가는 이웃과 열방을 향해 복음의 빚을 갚아나갈 수 있습니다. 이는 당장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심정으로 주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수많은 무죄한 지체들이 억울하게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위해, 우리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빚진 자의 심령을 우리는 회복해야 합니다.

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칭의의 기개를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은 물질과 스펙, 인간의 공로와 힘을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 된 우리는 오직 십자가의 복음, 나를 의롭다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들임을 우리 심령에 조각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터전인 비즈니스 일터와, 가정의 현장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불의한 가치관 앞에 위축되지 마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다이너마이트 같은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이 시대의 신실한 텐트 메이커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십니다. 그리고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이를 우리가 제대로 인지하는 못하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믿음만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바울처럼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을 만큼 진실한 심령을 갖게 하시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기도를 쉬지 않으며 지체들을 든든히 세우는 중보의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거저 받은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사, 세상을 향해 거룩한 복음의 채무 의식을 갖게 하옵소서. 마태복음 28장의 위임 명령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빚을 갚아나가는 사명자가 되게 하옵소서. 내 행위나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음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선포하며 일터와 세상 속에서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