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의 영광과 사명 [로마서 1장 1-7]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의 영광과 사명
로마서 1장 1-7 (개역개정)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오늘 예배는 신약 성경의 ‘다이아몬드 반지’이자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뒤흔든 위대한 복음의 정수, 로마서의 장엄한 항해를 해보고자 합니다. 로마서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를 변화시켰고, 어거스틴을 탕자에서 성자로 거듭나게 했으며,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존 웨슬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영적 혁명의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계의 심장부이자 거대한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띄우면서, 가장 먼저 자신을 소개하는 첫 단어를 보십시오. 1절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여기서 바울이 자신을 칭한 ‘종’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둘로스(δοῦλος)’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노예입니다. 그 시대의 법과 사회적 통념 속에서 ‘둘로스(노예/종)’는 인간이 아니라 ‘주인의 소유물’이자 ‘말하는 도구(instrument)’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권리나 자유, 법적 인격이 전혀 없으며, 오직 주인의 뜻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가장 비천하고 수치스러운 신분입니다. 그런데 당대 최고의 학문을 자랑하던 로마 시민권자 바울이, 로마 제국의 황제와 귀족들이 읽게 될 편지의 첫머리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둘로스(종)"라고 당당하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은 서신서마다 자신을 노예를 뜻하는 ‘둘로스’라고 규정했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자신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온 천하에 선포하는 신앙고백이자 최고의 영적 자부심의 발로인 것입니다. "내 인생의 소유권은 나에게 있지 않고, 나를 피 값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나는 그분의 주권 아래 있는 거룩한 소유물이다."라는 절대적 복종과 은혜의 선언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세상의 가치관과 거대한 물질문명 한복판을 살아갑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네 인생의 주인은 너 자신이다. 네 권리와 욕망을 주장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우리를 향해 우리가 세상의 헛된 정욕과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1절부터 7절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의 은혜가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지 깨닫고, 이 험한 세상을 어떤 자세와 기개로 살아가야 할지 다시 새겨보는 은혜의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1. 그리스도의 종으로 택정함을 입은 거룩한 소명 (1:1~2)

1-2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이 자신의 결단이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부르심(소명, Klētos)’과 ‘택정함(Aphorismenos)’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1절의 ‘택정함을 입었으니’라는 단어는 ‘경계를 짓다’, ‘따로 구별하여 떼어놓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서도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라고 고백합니다.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다(렘 1:5)"고 말씀하신 것처럼, 바울은 자신의 인생이 다메섹 도상에서 우연히 바뀐 것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정교한 계획 속에 구별되었음을 영접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 말씀처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입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은 선포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내가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주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내 지혜나 도덕적 열심 때문이 아닙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죄악의 진흙탕 속에 뒹굴던 나를 지목하여 부르시고, 주님의 거룩한 피로 값 주고 사셔서 주님의 '둘로스'이자 '자녀'로 택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부르심의 시작 자체가 우리 인생 최대의 기적이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는 간혹 무슨 근거로 어떤 논리로 그런 주장을 하는가 의아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6:44에서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우리 삶이 고단하고 우리 기도가 당장 또는 장시간 기도 응답이 없어도 실망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이런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이 불가항력적인 부르심의 은혜를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을 작사한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 목사입니다. 젊은 시절 존 뉴턴은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와 같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짐승처럼 사냥하여 쇠사슬에 묶고, 배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아 대서양을 건너 내다 파는 극악무도한 노예무역선의 선장입니다. 그는 입만 열면 저주와 육두문자를 쏟아내고, 하나님도 인간도 두려워하지 않는 방탕과 패역의 상징인 악마였습니다.

그러던 1748년 5월, 대서양 한복판에서 배가 침몰하기 직전의 맹렬한 폭풍우를 만났을 때, 그는 생전 처음으로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며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나운 폭풍 속에서 악독한 노예 상인 존 뉴턴을 꼬꾸라뜨리시고 거룩한 종으로 불러내십니다. 회심한 후 목사가 된 존 뉴턴은 자신의 서재 책상 머리에 신명기 15장 15절 말씀을 큼지막하게 써 붙여놓고 평생 매일 아침마다 묵상했다고 합니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과거에 가련한 흑인들을 쇠사슬로 묶어 파는 잔인한 죄의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나를 사서 '주님의 사랑받는 노예(둘로스)'로 삼아주셨습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요" 그는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 마지막으로 이런 유언을 남깁니다. "내 기억력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과거에 지독한 대역죄인이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구원하시고 종으로 삼아주신 위대한 구주라는 사실입니다."

존 뉴턴을 부르신 그 거룩한 손길이 오늘날 우리들을 죄와 사망의 노예 시장에서 건져내셨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헛된 주인을 섬기던 그가, 우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소유가 된 이 부르심의 은혜 앞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시련과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고 우리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2.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은혜의 직분 (1:3~5)

3-5절을 보십시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바울은 자신을 부르신 그 부르심의 내용이자 복음의 심장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힙니다. 복음은 어떤 사상이나 종교적 규칙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인격 그 자체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두 가지 차원으로 완벽하게 설명합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습니다(3절).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선지자들의 모든 언약을 성취하시고, 우리와 같은 연약한 육신을 입고 역사 속에 찾아오신 '참 인간으로 성육신하신 분이십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4절).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사,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참 하나님 (신성)'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여기서 놀라운 영적 결합이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의 직분’ 앞에 반드시 ‘은혜’를 먼저 둡니다. 직분은 내 자랑이나 권세의 완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선물,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분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이름, 내 기업, 내 체면을 높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직 나를 피 값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일터와 가정과 사역의 직분을 맡겨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선포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고 직분을 받은 것은, 세상에서 남들보다 더 떵떵거리고 성공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어둠 속에 방황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과 그분의 탁월하신 은혜를 선포하는 '복음의 전령사'로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말이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들립니까? 부담으로 들리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왕이십니다. 왕은 그의 백성들을 많이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많은 백성을 원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3.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 (1:6~7)

6-7절을 보십시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이제 편지의 수신자인 로마의 성도들과 오늘 우리를 향해 우리의 영적 정체성을 확실하게 규정합니다. 6절을 우리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우리는 누구의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것(Belonging to Jesus Christ)’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 말씀처럼,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 절대적인 영적 진리를 의미합니다.

첫째, 세상 그 무엇도 우리를 빼앗을 수 없는 '절대적 안전'입니다. 우리가 내 힘으로 내 인생을 붙잡고 살 때는 사소한 경제적 위기나 질병, 세상의 풍랑 앞에서도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그러나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었을 때,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를 목숨 걸고 지키십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약속하셨습니다. 주인의 소유를 건드릴 수 있는 원수는 온 우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둘째,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성도(Hagios)의 책임'입니다. 7절에서 바울은 우리를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부릅니다. '**성도'란 완벽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을 뜻합니다. 오늘날 텐트 메이커로서 비즈니스와 일터의 현장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 불의와 타협하고 거짓을 일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종'이자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 일터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공의와 정직을 지켜내는 사람,
√ 사람들의 인기와 여론에 영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인이신 주님의 결재를 바라는 사람,
√ 내가 맺는 모든 계약과 사업의 열매를 통해 주 예수의 이름이 증거되기를 갈망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참된 성도"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축복, 곧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7절)"이 넘쳐날 것을 축원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삶의 뿌리라면, 평강은 그 은혜가 맺는 풍성한 열매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장엄한 첫 고백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바울 당시 로마 제국은 황제를 ‘주(Kyrios)’라 부르며 칼과 군사력으로 세상을 호령합니다. 그러나 쇠사슬에 묶여 있던 사도 바울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 인류의 유일하신 주님이자 참된 왕이심을 선포합니다. 기꺼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노예(둘로스)"라 선포하며 당당하게 로마를 향해 걸어갑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부르심의 확신과 순종을 통해, 마침내 철옹성 같던 로마 제국 전체가 무릎을 꿇고 복음 앞에 정복되는 위대한 구속사의 역전이 일어납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들을 향해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건져내신 부르심의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였던 우리를 창세 전에 택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그 은혜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영적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재력이나 권세자들 앞에서 기죽지 않아야 합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를 소유 삼으셨고, 그분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어떤 풍랑과 시련 속에서도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속한 일터와 가정에서 우리는 ‘성도로서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직장, 우리 기업, 우리 가정이 바로 로마 제국 한복판에 세워진 '복음의 전초기지' 임을 조각해야 합니다. 내 욕망을 내려놓고 주인의 뜻에 순종하는 신실한 둘로스(종)가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삶을 통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거룩한 역사를 이루실 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로마서를 로마에 한번도 가보지 않고 고린도에서 기록합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 말기(A.D. 56~58년경 겨울), 그리스 아가야 지방의 중심 도시인 고린도에 약 3개월간 체류(행 20:2~3)할 때 로마서를 기록하여 발송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로마서 기록 시점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직전입니다. 당시 세상의 서쪽 끝으로 여겨지던 서바나(Spain) 선교를 지원하기 위해, 로마 교회를 서바나 선교의 새로운 전초기지이자 영적 후원 본부로 삼기 위해, 아직 바울 자신이 직접 방문하지 못한 로마 성도들에게 복음의 완전한 정수를 미리 글로 정리해 보낸 복음서신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에 대한 열정이 로마서를 기록하게 한 것입니다. 로마서에는 복음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그 열정으로 엄청난 일을 수행합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는 세상에서 자신의 자존심이나 자랑거리나 세상 유혹과 잡음에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당장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므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둘로스(종)요, 거룩한 성도다"라는 IDENTITY를, 그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된 은혜와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현실을 바라보면 아직 기도 응답이 없고, 우리 나라 정국은 숨이 막힐 것 같이 답답하고, 시황은 거의 최악이고,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이럴수록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능력의 사명자로 이 시대의 당찬 텐트 메이커로 거듭나도록, 우리는 기도에 응답하실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열정으로 모든 선한 것에, 한계처럼 보이는 것에 적극 도전해야 합니다. 기도에 대한 간절함, 선교와 전도, 사업에 대한 우리의 비전과 열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릴 통해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창세 전에 택정하여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값 주고 사서 주님의 거룩한 소유이자 자녀로 삼아주신 그 크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 바울처럼 기꺼이 주님의 '둘로스'가 되어, 내 뜻과 고집을 내려놓고 주인의 말씀에 온전히 믿음으로 순종하는 거룩한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텐트 메이커로서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비즈니스와 삶의 현장에서 세상과 구별된 성도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어둠 속에서 타협하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복음의 통로로 쓰임 받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