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유라굴로 광풍의 바다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 [사도행전 27장 9-26]

유라굴로 광풍의 바다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
사도행전 27:9-26 (개역개정)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새벽 5시 넘어 출근할 때 차를 몰고 가는 길은 어두워도 익숙하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물론 고속으로 주행하므로 도착하기까지 늘 긴장을 유지합니다. 바다의 항해는 육로 이동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특히 2000여년전 폭풍우 속에서 사람의 감각으로만 이동하는 암흑의 항해는 목숨을 건 여정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7장은 사도 바울이 마침내 그토록 열망하던 제국의 심장부, 로마를 향해 출발하는 해상 이동의 대장정을 보여줍니다. 본문 앞선 1절부터 8절을 보면, 바울은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의 호송 아래 로마행 배에 오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손길을 먼저 발견합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에게 남다른 호의를 베풀어, 시돈(현 레바논)에 이르렀을 때 바울이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고 돌봄을 받는 것을 허락해 줍니다(3절).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모함과 억울한 사슬 속에서도 바울의 곁에 친절한 사람들을 배치하시고, 로마로 향하는 모든 과정에 백부장의 군사적 호위를 받게 하십니다. 세상은 바울을 죄수로 끌고 가지만, 하나님은 로마 정부의 비용과 호위 아래 전도 대사 바울을 로마로 입성시키십니다.

친절한 백부장의 호의와 출발의 순조로움도 잠시, 바울이 탄 배는 무라 항구를 지나 그레데 해변의 '아름다운 항구(미항, Fair Havens)'에 이르렀을 때 거친 불리한 바람을 만나게 됩니다(7-8절). 절기가 지나 항해하기가 매우 위태로운 계절이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의 사명을 붙잡고 나아갈 때, 때로는 백부장 율리오의 호의처럼 순풍이 불고 일터의 문이 잘 열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사나운 풍랑을 만나 사방이 막히는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오늘 바울이 겪은 해상 이동의 고난과 그 한복판에서 베풀어진 하나님의 정교한 보호하심을 통해, 인생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우리를 결코 놓지 않으시는 주님의 손길을 깨닫고 새로운 힘을 얻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유라굴로 광풍이 몰고 온 절망 (9-15)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금식하는 절기는 ‘대속죄일’을 말합니다. 일년에 한번 백성들이 모여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므로 자신을 처참하게 돌아보는 회개의 절기를 말합니다. 당시 유대력으로 7월 10일입니다. 현재 양력으로 9-10월경입니다. 이 때 지중해의 겨울 항해가 매우 위험해지는 시기입니다. 바울은 선장은 아니지만 1-3차까지 바다 길로 전도여행을 하여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분별력이 있던 바울은 항해를 멈추고 이곳에서 겨울을 나자고 권면합니다. 10절입니다.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그러나 백부장 율리오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11-12절을 보십시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백부장은 오랜 항해 경험을 가진 전문가인 '선장과 선주'의 말을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영적 권면보다 더 신뢰합니다. 게다가 다수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항구는 겨울을 지내기에 너무 좁고 불편하니 조금 더 큰 항구인 뵈닉스로 가자"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출발하자마자 남풍이 순하게 불어왔습니다(13절).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다수의 선택, 그리고 당장 눈앞에 불어오는 순풍을 보며 "우리가 뜻을 이루었다. 바울의 말은 틀렸고 우리 판단이 맞았다"라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경험과 순풍에 너무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풍이 불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맹렬하게 크게 일어납다(14절). 유라굴로는 동풍과 북풍이 합쳐져 회오리처럼 몰아치는 지중해의 광풍입니다. 매년 10월경에는 유라굴로가 기승을 부린다고 합니다. 바울이 탄 배는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제어력을 잃고 그저 바람이 이끄는 대로 쫓겨가기 시작합니다(15절). 지금 바울이 탄 배는 동에서 서로 가는 방향인 서풍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광풍은 그 반대 방향에서 불어오고 있습니다. 그 시절 오로지 바람의 방향에 맞춰 이동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낭패인 상황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제외한 인간의 경험과 다수의 편리함만을 좇아간 결과입니다. 오늘날 텐트 메이커로서 일터와 경영 현장을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자주 이러한 시험에 빠집니다. 말씀의 기준보다 전문가의 조언이나 눈앞의 작은 이익(남풍)을 따라가다가, 뜻밖의 거대한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삶의 모든 제어권을 상실하고 표류할 때가 있습니다.

남풍이 불어온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유라굴로 광풍이 몰아친다고 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교만과 인간적 계산을 깨뜨리시기 위해 광풍의 바다 한복판으로 우리를 지나가게 하십니다.

2. 인간의 무기력함과 비워냄의 시간 (16-20)

광풍에 밀려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를 지날 때, 사공들은 살기 위해 모든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합니다(16-19절).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끌려오던 작은 거루떼(구명보트)를 간신히 잡아 올립니다. 밧줄로 선체를 둘러 감아 배가 깨지지 않도록 고정합니다. 스르디스(북아프리카의 모래톱 사구)에 걸려 좌초될까 두려워 닻을 내리고 쫓겨갑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의 소중한 짐들과 배의 필수 기구들마저 자신들의 손으로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자신들이 목숨처럼 아끼던 화물도, 배를 움직이던 장비도 살기 위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절은 그들이 도달한 영적, 육체적 절망의 끝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고대 항해사들에게 낮의 '해'와 밤의 '별'은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이정표입니다. 그러나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다 가려지고 거친 풍랑만 몰아치자, 276명의 승선자들은 방향 감각을 완전히 상실합니다. 자신들의 기술도, 물질도, 경험도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는 상태, 즉 "구원의 여망마저 사라진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온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사랑하는 종 바울이 탄 배에 이토록 가혹한 '구원의 여망이 사라진 밤'을 허락하십니까?

그것은 배에 탄 276명의 자랑과 우상을 완전히 비워내기 위함입니다. 그들이 의지했던 선장의 기술, 선주의 재물, 쾌적한 뵈닉스 항구에 대한 욕망이 바다 밑으로 다 수장되고,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는 절대적 빈손이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깊은 고난의 밤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와 별이 가려진 것처럼 사업의 길이 막히고, 인간적인 대책이 다 소용없어져 "이제는 끝이구나", “이제 더 이상은 안 되는 구나” 하는 구원의 여망이 사라지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그 자리가 나의 힘이 끝나고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이 시작되는 거룩한 현장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구원의 여망이 사라진 해상의 유라굴로 광풍 한복판에서, 주님이 주시는 영적 평안으로 세상을 깨운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1736년 1월, 영국에서 미국 조지아주로 향하던 시몬드호(Simmonds호) 배 위에서 일어난 존 웨슬리(John Wesley)와 모라비안(Moravian) 교도들의 사건입니다.

당시 청년 목사였던 존 웨슬리는 미국 선교에 대한 거룩한 야망을 품고 배에 올랐으나, 대서양 한복판에서 참혹한 대형 폭풍우를 만나게 됩니다. 파도가 배의 주 돛대를 찢어버리고 선실 안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자, 영국인 승객들과 사공들은 비명을 지르며 공포와 절망 속에서 통곡합니다. 존 웨슬리 자신도 죽음의 두려움에 덜덜 떨며 자신의 무기력한 신앙에 큰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 참혹한 비명 소리 사이로, 배 한구석에서 놀랍게도 아름다운 찬송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곳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라비안 성도들이 모여 조용히 시편을 찬송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갑판이 부서지고 폭풍이 배를 삼킬 듯 들이쳐도 그들의 얼굴에는 죽음의 공포 대신 하늘의 평강과 안식이 가득합니다. 폭풍이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을 때, 충격을 받은 존 웨슬리가 모라비안의 리더에게 달려가 묻습니다. "당신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 미친 듯한 폭풍 속에서 찬송할 수 있습니까?"

모라비안 리더는 온유하게 웃으며 대답합니다. "목사님,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은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이들과 여성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사라진 대서양의 유라굴로 한복판에서, 이 모라비안들이 보여준 평강은 존 웨슬리의 영혼을 깊이 찔렀습니다.

존 웨슬리는 2년간 미국 선교에서 단 한 사람의 개종자로 얻지 못하고 처절하게 실패하고 깊은 절망감에 빠져 1738년에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존 웨슬리는 미국으로 갈 때 폭풍우 속에서 보았던 모라비안 교도들의 평강을 잊지 못해 그들의 지도자인 '피터 뵐러(Peter Böhler)'를 찾아가 자문을 구합니다. 그는 그들과 교제하던 중 마침내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진정한 회심, 성령 체험을 경험하고, 18세기 영국과 세계를 깨우는 대부흥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세상이 자랑하던 배와 돛대는 폭풍 앞에 무너졌으나, 모라비안 성도들이 소유한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평강은 그 거친 바다를 영적 부흥의 산실로 뒤바꿔 놓은 것입니다.

3. 풍랑을 이기는 소망의 선포 (21-26)

모두가 절망하여 오랫동안 먹지도 못하고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사슬에 묶인 죄수 바울이 배 한가운데 일어서서 담대히 외칩니다. 22~25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해와 별이 가려진 캄캄한 유라굴로의 밤이었지만, 바울의 영혼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와 계셨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바울에게는 아직 이루어야 할 사명, 로마 선교가 있습니다. 사명자는 그 사명을 다하기까지 결코 풍랑 속에서 죽지 않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이 아무리 거세도, 바울을 가이사 황제 앞에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계획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나님은 바울 한 사람을 살리실 뿐만 아니라, 그 배에 탄 276명 전체의 생명을 바울의 기도와 사명 때문에 그에게 선물로 베풀어 주십니다. 바울 한 사람의 영적 존재감이 배 전체를 절망에서 구원하는 소망의 항구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5절), 바울은 눈앞의 날씨나 파도를 믿지 않습니다. 오직 밤에 찾아와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만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한 섬, 멜리데 섬에 걸려 살게 될 것"이라며 사공들과 군사들에게 안심하라고 소망을 선포합니다.

비록 배는 파도에 부서져 손상을 입겠지만, 생명에는 단 하나도 손상이 없을 것이라는 이 선언 이것이 바로 절망의 바다 위에서 사명자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선언'입니다.

1853년, 21세의 청년 영국 출신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1832-1905)는 '덤프리스(Dumfries)'라는 배를 타고 중국으로 향합니다. 배가 뉴기니 인근 해협을 지날 때 끔찍한 위기를 만납니다. 바람이 완전히 멈춘 무풍지대에 배는 강력한 해류에 밀려 식인종들이 살고 있는 섬의 날카로운 산호초를 향해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암초에 부딪히면 배가 산산조각이 나고 모두가 죽게 되는 상황입니다. 선장은 창백한 얼굴로 노력을 다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선장은 허드슨 테일러에게 다가와 절망적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이제 끝입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사도행전 27:20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와 일치하는 장면입니다. 그때 허드슨 테일러가 선장에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선장님, 우리가 아직 하지 않은 일이 하나 있습니다. 저와 함께 배에 탄 그리스도인 3명이 선실로 들어가 주님께 기도하겠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선실로 내려가 하나님께 '바람을 보내주셔서 이 배를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잠시 후, 기도 중에 마음에 강력한 확신(응답)을 얻은 테일러는 즉시 갑판 위로 뛰어 올라가 일등 항해사에게 외칩니다. "항해사님, 당장 메인 돛을 올리십시오" 항해사는 어이없다는 듯 화를 냈다고 합니다. "바람 한 점 없는데 돛을 올려서 뭐 한단 말이오" 그러자 테일러가 바울처럼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방금 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당장 바람이 불어올 테니 어서 돛을 펴십시오" 항해사가 투덜거리며 돛을 펴기 위해 줄을 푸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어디선가 갑자기 강력한 바람이 돛을 향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돛이 팽팽하게 펴졌고, 배는 거짓말처럼 암초에서 뱃머리를 돌려 안전한 바다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사도행전 27장에서 바울이 선포한 기개입니다. 바울은 죄수였지만, 영적으로는 그 배의 '진정한 선장'이었습니다. 선장과 선주가 항복하고, 구원의 여망이 사라진 바로 그 순간, 사명자는 배 한가운데 우뚝 서서 '안심하라,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라고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유라굴로라는 뜻밖의 광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경험과 남풍의 착각을 따라가다가 배의 기구를 다 버려야 하고, 해와 별이 가려져 구원의 여망마저 사라진 것 같은 깊은 밤을 지나는 우리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시련과 암흑기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하는 불의한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거룩한 음성이 우리 심령을 새롭게 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선주나 선장의 말, 인간의 계산이나 다수의 편의를 하나님 말씀보다 높이지 말아야 합니다. 내 힘과 자랑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광풍은 그쳐갈 것입니다.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하신 소망의 사명을 붙잡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한 정교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터와 사명이 남아있는 한, 그 어떤 인생의 유라굴로 광풍도 우리를 해치거나 무너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사업장과 가정, 그리고 세상의 배가 풍랑으로 흔들릴 때, 25절의 바울처럼 선포해야 합니다.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우리 한 사람의 믿음과 기도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항해하는 가족들과 동행하는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어젯밤 바울의 곁에 서서 말씀하셨던 그 임마누엘의 주님께서, 오늘 피곤하고 지친 우리의 곁에 찾아와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안심하라" 말씀하시는 그 주님의 손을 꼭 잡고, 풍랑을 뚫고 마침내 목적지인 로마를 향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담대히 전진하시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승선한 276명은 죄수, 군인, 선원, 그리고 일반 승객들이 섞여 있는 복합적인 구성원으로 된 곡물 운반선입니다. 이들은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동승한 사람들에게 우릴 통해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항해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항로를 항해합니다. 바울은 로마 입성이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항해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기에 바울은 어떤 폭풍우 속에서도 요동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가정은 일반인들이 항해하는 여정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항해는 우리 가정을 통해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엄청난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당장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항해하는 데 폭풍우가 우릴 위협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크고 빛나게 쓰실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더욱 담대하게 도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확신하므로 외치고 선포하는 우리들, 도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눈앞의 달콤한 남풍과 세상의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신뢰했던 우리의 완악함을 회개하게 하옵소서. 인생의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을 때 내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말씀하셨던 주님,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는 한 어떤 풍랑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음을 믿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사라진 캄캄한 밤에도 내 곁에 서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흔들리는 일터와 불안한 시대 속에서 텐트 메이커인 우리가 먼저 "안심하라, 하나님 말씀대로 되리라" 담대히 선포하게 하사, 우리를 통해 함께 항해하는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항구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선포에 하나님 응답하셔서 선포한 것이 성취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힘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