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경배 받으실 주님 [요한계시록 5:8-14]

경배 받으실 주님 [요한계시록 5:8-14]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원종수 박사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암 전문의입니다. 미국 볼티모아 감리교회 권사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수석 졸업, 전국 의사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수재입니다. 미국 오쿠우드병원 암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신학대학원 석사, 목회학 박사까지 취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충남 연기군 1951년 생입니다. 당시 6.25 전쟁 중이라 어릴 때 먹을 것이 없어서 그 어머니가 밭에서 주워 온 시래기 등으로 죽을 쑤어서 4자녀를 양육합니다.

그는 대전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 하지 못하여 고등학교 2학년때 전체 488명중 410등을 합니다. 이에 담임 선생님이 그를 불러 너의 홀 어머니가 힘들게 생계를 이어가시는데 네가 이렇게 공부를 못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질책을 받습니다. 원종수는 16세 때 방언을 받고, 어머니를 따라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합니다. 이후 성령체험을 한 후 다음 달 시험에서 488명중 5등으로 성적이 급상승합니다. 그리고 나서 대전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이 극도로 고조될 때, 사도 요한은 하나님 말씀을 받습니다. 어떻게 요한은 그 어려운 시기에 이런 비밀의 말씀을 받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Part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드디어 두루마리를 예수님께서 취하십니다. 그러자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네 생물은 생물 전체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즉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을 말합니다. 로마서 8:19-24에서 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3.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4.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인간의 원죄로 말미맘아 고통을 받아온 다른 피조물들도 인간과 같이 고통을 받아온 것을 말합니다. 심판 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피조물이 인간과 함께 회복될 것을 말합니다.
이사야 11장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와 같이 온 만물이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때에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이새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지는데 금 대접에 담긴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합니다. 거문고는 주를 찬양하는 악기를, 금 대접은 성도들의 기도를 담은 귀한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는 너무 귀한 것이라 아주 고귀한 금 대접에 담아 주님께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얼마나 귀한지를 말해줍니다. 성도는 기도로 하나님과 호흡합니다. 호흡이 없는 자는 죽은 성도로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보고 또 보고’ 이는 사도 요한은 그 시대가 어려울수록 주님을 찾는 것을 말해줍니다. 어릴 때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다가 엄마가 오면 놀던 것 다 내려놓고 엄마만 따라갑니다. 왜 그럴까요? 말할 수 없는 안정감과 포근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도 중 가장 오래 살면서 숱한 믿음을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어떤 체험을 헸을까요? 주님이 공생애 3년 6개월동안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제자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 군병들에게 끌려가자 11제자 모두 도망을 갑니다.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부터 당시 하대를 받던 여종 앞에서까지 극구 예수님을 모른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으면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이럴 것을 주님을 미리 아셨기에 베드로에게 너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믿는 것은 본인의 자아이므로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극구 부인합니다. 이런 일들을 다 체험한 요한은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을 神으로 부르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을 심히 탄압합니다. 이렇게 잔학 무도한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요한을 맛모섬으로 유배하고 철권통치를 이어갑니다. 하지만 그의 총 15년 통치 후 AD 96년 신처럼 숭배되길 원했던 그는 궁정 관리들에게 살해를 당해 불태워져 버림을 받습니다.

도미티아누스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때, 사도 요한의 메시지가 믿은 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었을까요? 사도 요한은 앞 장인 계시록 2-3장에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두루마리를 보냅니다. 왜 두루마리인 성경을 보낼까요? 당시 두루마리를 보낸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그렇게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당시 요즘처럼 종이가 없는 시대이므로 편지를 두루마리에 써서 봉하여 한 권씩 교회에 전달하여 탄압을 받을 때, 낙담하거나, 좌절하거나, 주님을 부인하거나, 믿음을 잃지 말라는 질책과 권면의 편지입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명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무슨 사도인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릇만큼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영적인 욕심을 많이 부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그릇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다시 8-10절 읽어 보겠습니다.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취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세를 가지신 것을 말합니다. 두루마리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네 생물은 단지 4개 생물이 아닙니다. 네 생물은 사람, 사자, 송아지, 독수리로 강력한 생물 4개를 통해 생물 전체를 상징합니다. 1.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 2. 사자는 사자 다윗의 뿌리 예수님을 지칭하듯이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3. 송아지는 풍성한 부를 제공하는 근면하고 든든한 생물로, 4. 독수리는 하늘을 대표하는 위용의 생물로 비유하여, 전체 생물을 4개로 압축하여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그 시대가 극히 어두운 만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직설적으로 드러내면 바로 탄압을 받을 수 있기에 이렇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를 들어라’는 것입니다.

앞 절인 5장 1, 2, 6절에서 요한은 뭔가를 보고 또 봅니다.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래서 요한은 응답을 받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는 성부 하나님을 말하며, 오른손은 공의의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이 하나님 공의의 손 안에 두루마리인 하나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함부로 볼 수 없도록 철저하게 봉인을 하여 막아 두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또 보고 보니 힘이 있는 천사가 큰 소리로 누가 그 두루마리 봉인을 떼기에 합당한가? 하고 외치는 것을 봅니다. 아무도 그 봉인을 뗄 수 없는데, 오직 모든 권세를 위임 받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봉인을 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것 같은데 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진 이로서 이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합니다. 일곱은 완전 수로 무궁무진함을 말합니다. 그 어린 양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두루마리를 취합니다. 이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그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승천 하신 후 심판 주로 오실 것을 말해 줍니다.

Part2, 엎드려 경배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11절 보좌는 예수님을, 생물들은 모든 피조물을, 장로들은 대표적인 장로들을 상징합니다. 이 모두를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는 것은 무한대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늘의, 즉 천상의 예배가 얼마나 웅장하고 화려한가를 말해 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우리는 존재하지만, 우리의 예배는 하늘에, 천상에 상달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셔서 계시는 이 땅이 아닌 천상으로 말입니다.

요한은 ‘보고 또 보니’에서 ‘보고 또 보고 들으매’로 까지 확장하게 됩니다. ‘보고 그리고 듣고’ 함으로써 온 신경을 집중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왜 그럴까요? 답답하고, 불안하고, 응답이 기대한 만큼 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청각을 총동원하여 주님을 찾는 요한으로부터 어떤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됩니까?

원종수 박사는 어릴 때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자랍니다. 6.25 전쟁시 장교였던 부친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누나 셋과 본인을 양육하게 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어머니가 동네에서 시래기 등을 주어와 보리와 함께 삶아 물을 많이 넣어 양을 많이 부풀려 배를 채우며 성장합니다.

어머니는 대전에서 대구 등으로 가서 소매 행상을 하면서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갑니다. 그 혹독한 어려움에도 어머니가 믿음이 아주 신실한 분으로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신실하게 출석합니다.

방언은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다가 전도사님의 권유로 방언을 하게 됩니다. 교회 전도사님이 방언을 못 받으면 안 된다고 하여 간절히 원하므로 방언을 받습니다. 방언을 받고, 안 받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방언을 받지 않아도 구원과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어린 그에게는 간절함, 순수함, 열정이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을 가지고 별 생각 없이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먹고, 마시고, 자기 생활을 영위하고, 목표를 가지고 매진하며, 운동도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프로선수라도 top class 가 있고 그렇지 못한 선수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열정일 것입니다. 믿음도 동일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지만, 원종수 박사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과의 특별한 약속을 하며 하나님과 교제한 것입니다. 새벽 4시, 4시 30분 기도시간을 정하여 매일 기도합니다. 그 시간이 그렇게 기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에스겔, 다니엘서의 계시와 많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3인 모두 자신들의 조국이 멸망을 당하여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힘들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보다 간절함이 그들의 심령에 임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기도에 모든 것을 건 선진들입니다.

에스겔 1장, 3, 5, 10, 18-20

  1.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2.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3.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4. 그 둘레는 높고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5. 그 생물들이 갈 때에 바퀴들도 그 곁에서 가고 그 생물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들도 들려서
  6.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생물들도 영이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에스겔은 BC 600년경 제사장겸, 선지자로 활동합니다. 그는 BC597년 2차 바벨론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잡혀 갑니다. 바벨론에서 에스겔은 잡혀온 유다 백성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징계로 그들이 바벨론 그발 강가에 잡혀왔음을 알리고, 회개하도록 사명을 부여 받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중에 여호와의 환상이 그에게 특별히 임하는 것을 목도합니다. 생물은 그룹으로 천사를 말합니다. 천사는 하나님이 보내신 권능으로 나타내 보이신 천사들을 말합니다. 이 천사들은 네 가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의 얼굴로 각 사면에 4 종류의 얼굴 모양으로 네 주위에는 눈이 가득하도록 하여 천사들이 지켜주고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생물들, 즉, 천사들이 나아갈 때 바퀴는 하나로 연결하여 동일한 방향으로 이동하도록 연결시켜 줍니다. 네 방향은 하나님의 무소부재 하심을 의미합니다. 영은 성령 하나님을 말합니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께서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성전의 지성소는 높이 X 가로 X 세로가 동일한 사이즈로 규격화 된 것이 무소부재의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한편 다니엘은 BC 605년 바벨론 1차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잡혀와 주로 왕실에서 활동하면서 바벨론 왕들과 교체를 합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숱한 환상을 목도하고 기록으로 남깁니다. 관련 다니엘9:24-26입니다.

  1.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3.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77 이레는 77X7=539년으로 BC 538년 코레스 칙령으로부터 유다는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예수님이 오시는 BC원년으로 상징수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석은 다양하지만 주님이 오신다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에스겔, 다니엘은 바벨론으로 잡혀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으로,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보고자 하고 듣고자 하는 열정으로 환상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본국이 아닌 상황이 여의치 못한 이국에서 간절히 원하고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거나 예언하는 것입니다.

원종수 박사가 미국으로 처음 가기 위해 영어로 연설을 하게 됩니다. 미국에 살아보지 않은 한국인이 영어로 연설하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그는 고백하기로 자신은 할 수 없는데 영어가 저절로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데 전날 학습한 페이지가 영화의 필름처럼 착착 넘어 가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말레이시아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 교회 새벽기도에 자주 참석하게 됩니다. 한번은 목사님께 어떤 권사님은 새벽 기도하는 데,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니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본인이 체험하지 않아 그런 것을 단정적으로 잘라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비주의에 매몰될 필요는 없습니다. 믿음은 체험에서 나오는 믿음은 당사자 본인을 강하게 세워줄 것입니다.

원종수 권사는 어릴 때 새벽기도를 하려 교회에 들어 가는데 ‘종수야’, ‘종수야’ 크게 지구를 울리듯이 부르는 소리를 두 번 듣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이는 조용기 목사가 젊은 청년 시절 다리를 못쓰는 절은 앉은뱅이를 낫게 할 때 기도하고 돌아서는데 자신이 엄지 손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어 그 손으로 밀면 지구가 밀릴 것 같은 느낌 같은 웅장함 같은 힘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마태복음 27:51-53에 보면 무덤들이 열리면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 거룩한 성 안으로 들어갑니다.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 성을 말할 것입니다.

  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그럼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들도 부활하여 예수님의 부활에 증인이 된 것이고 다시 죽어 천상에 주님과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 이를 기록한 목적은 뭔가 할 것입니다.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계시는 언제가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원종수는 어릴 때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합니다. 어머니가 한번은 새벽기도를 다녀오면서 노숙자 할아버지를 모시고 들어옵니다. 어린 자신이 보아도 노숙자 할아버지인데 왜 어머니는 이런 할아버지를 데리고 와서 목욕을 시키라고 하는지, 그리고 자신들도 먹을 것이 없어 시래기 죽으로 연명하는데 어머니가 원망스럽습니다. 할아버지는 노숙자로 오래 생활한 탓에 피부에 딱지가 앉아 씻어도, 벗겨도 딱지가 잘 사라지지 않아 딱지를 떼는 나무막대기로 딱지를 떼어 냅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 힘들게 씻겨서 앉힌 후 할아버지는 입을 옷이 없자, 어머니가 원종수 아들이 입을 옷을 할아버지에게 입혀 줍니다. 그 옷은 친척으로부터 받은 성인용 털옷으로 아들 종수가 입을 옷입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와 함께 종수 가족은 한겨울을 같이 지내게 됩니다.

저도 어릴 때 종종 먼 친척으로부터 성인 옷을 받아 큰 채로 입고 다니며 살았습니다. 그 큰 옷이 겨울철 내내 외투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법에 외투를 전당 잡히면 당일 반드시 돌려 주라는 법이 있습니다.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옷이 넘쳐 납니다만, 우리 어린 시대에도 그 이전에 겉옷은 이불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는 그 순간에 로마 병사들은 누가 그 속옷을 취할 것인가로 경쟁합니다. 이 말이 무엇을 말해줍니까? 우리 시대처럼 이런 속옷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옷은 매우 귀한 것인 시대를 말합니다.

지금도 동대문 지하철에 가면 일부 노숙인들은 입은 옷이 이불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는 원종수 가족들도 없어서 먹지 못하는 시래기 죽을 냉큼, 냉큼 다 먹어 치웁니다. 원종수 남은 가족들은 시래기 한 그릇 정도를 물과 함께 나누어서 허기를 채웁니다. 어린 원종수 마음에 어머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습니까?

원종수는 어렵게 자라 서울대 의대에 입학합니다. 입학하여 아르바이트로 3만원을 받아 대전에 계신 어머니에게 고기를 사 드리려고 찾아가다가 버스 안에서 아주 어려운 할아버지를 보게 됩니다. 그는 3만원을 다 드립니다. 1969년 3만원이면 현재 시가로 150만원은 족히 될 것입니다. 그는 마음이 심히 불편합니다. 왜 또 어려운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어머니에게 드릴 고기마저 못 드리게 하는지 원망이 됩니다. 3만원중 1000원이라도 남기고 드릴 것을 하고는 크게 아쉬워합니다.

이런 원종수는 서울대 의대에 입학하지 얼마 되지 않아 신체검사에서 폐결핵 판정을 받아 더 이상 학업을 못하게 됩니다. 폐가 썩어, 양쪽 폐가 썩어 기능을 못하게 됩니다. 폐에서 출혈이 심하게 됩니다. 사람은 죽을 때 대부분 호흡을 못하여 숨을 거둡니다. 그는 자살을 기도합니다. 서울대 건물 난간에서 지나가는 긴 머리 여학생이 지나가면 떨어져 같이 죽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총각귀신이 되기 싫어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다려도 긴머리 여학생은 나타나지 않고, 대신 어머니가 종수야 부르는 음성을 듣습니다.

기도하시는 어머니가 떠 올라 대전으로 내려가 새벽 4시에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따집니다. 제가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제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원종수 자신은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기도하는 중에 아직도 육이 살아 있는 것을 느낍니다. 그 때 갑자기 머리에서부터 시원한 얼음 같은 게, 목에까지 내려오더니 "종수야. 네 머리는 이제 새 것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머리에서 목까지 내려오니까 "종수야, 네 목은 이제 새 것이다. 가슴까지 내려오니까 "네 가슴은 새 것이다", "네 배는 새 것이다", "네 다리는 새 것이다" 그게 엄지 발가락 끝까지 오더니 엄지 발가락에서 무언가 탁 떨어져 나갔는데 그때 갑자기 내 몸이 오뚝이같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어디서 그런 새 힘이 솟아났는지 어디라도 갈 것 같아 새로운 기쁨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간증은 원종수 박사가 미국에서 많은 세월이 지나 할아버지를 잊은 지 오랜 뒤에 어느 간증 집회에서 하나님께서 “그 두 할아버지가 바로 나였어” 라고 환상 중에 말씀하신 고백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데 아무도 나에게 눈을 주지 않았어, 먹을 것을 주지 않았어, 그런데 네가 그것을 주었어, 예수님께서는 다른 모습으로 위장하여 우리 주변에 등장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새벽 4시 반에 찾아오셨을까요? 원종수 권사가 늘 새벽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약속된 그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고 합니다. 만약 그가 새벽마다 기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30분만 더 늦게 오셨더라면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하나님 만나는 새벽시간이 너무 떨려 하나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려고 그 시간을 꼭 지킨다고 합니다. 그 시간이 그렇게 기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 우리 심령에 부활의 주님을 새롭게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기도합니까? 우리들은 실망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 우리 가정에 이런 아픔을 주십니까?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는 이런 혼란을, 국가적 환난을 주십니까? 하나님 꼭 이렇게 하셔야 합니까? 실망할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 부활의 주님이 응답할 때까지 시간을 정하여 간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방언을 하는데 단순한 방언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특별한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달라고 하는 기도할까 합니다. 모는 지체들은 각자 달란트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달란트가 있지만 하나님께 열심인 달란트를 우리를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때를 써야 합니다.

부활절을 맞아 우리 심령이 부활의 날에 어떻게 변화를 받아야 하는지 반성하면서 자신은 어떤 상태인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간을 정하여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들고 나아가 오든 것을 터 놓고, 아뢰고, 구하고, 역사하시도록 간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