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세상 권세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계획
사도행전 23장 12-35절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였다가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선거 부정 규명 국정조사위의 실사로 인해 국회의원의 권력이 이렇게 막강할 줄 처음 알았다고 놀라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막강한 경찰력을 동원하여 일사불란하게 국정조사 맞이 준비를 위해 국회의원들이 들어갈 길을 열어주고 시민들을 강제로 끌어냅니다. 일반 국민들은 범접할 수 없는 특권입니다. 권력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살다 보면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절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는 거대한 위기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나를 무너뜨리려는 세상의 위협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 기도해도 환경이 더 나아지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왜 나를 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홀로 버려두시는가?”라며 탄식합니다. 나의 기도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고, 원수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는 듯하고 밀려오는 압박과 분노와 슬픔은 깊고 어둡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그런 연약한 시선을 열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신실한 백성을 위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손길’을 보게 합니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심지어 원수들이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 가장 치밀하고 은밀한 음모를 꾸미는 바로 그 위기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오차 없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묵상할 사도행전 23장의 말씀이 바로 그 위대하고 정교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본문 바로 앞부분인 사도행전 23장 11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공회의 극심한 소동 속에서 영육 간에 지쳐있던 사도 바울에게 밤에 찾아오셔서 위로와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로마’라는 명확한 비전과 사명을 선포하시며 그의 생명을 보존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의 이 위대한 약속이 선포되자마자, 세상은 바울을 죽이기 위해 사탄의 가장 악랄하고 치밀한 음모를 발동시킵니다. 주님의 약속과 현실의 위기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치열한 영적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결사적인 간계와, 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이름 없는 한 청년과 이방인 로마 천부장, 그리고 470명의 로마 군대라는 세상의 권세까지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바울을 향한 유대인들의 살해 음모(12~15절)
본문의 시작인 12절과 13절을 보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제거하기 위해 얼마나 독이 바짝 올랐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날이 밝자마자 유대인 40여 명이 비밀 암살 결사대를 조직합니다. 그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겠다”며 목숨을 걸고 단식 맹세를 합니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 이러한 결사적 맹세는 만약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어도 좋다는 종교적 결단입니다.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릅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을 죽이는 살인 모의를 종교적 정의로 둔갑시킵니다. 이들의 계획은 매우 구체적이고 치밀합니다. 14절과 15절에 보면, 이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가 음모를 공모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종교 지도자들에게 산헤드린 공회의 공식적인 이름으로 로마 천부장에게 “바울에 대해 더 조사할 법적 절차가 있으니 공회로 다시 데려와 달라”고 거짓 청원을 하라는 바울을 흔적도 없이 살해하겠다는 음모입니다.
이 음모는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완벽해 보입니다. 합법적인 권력을 쥔 대제사장들이 전적으로 동조했고, 목숨을 건 40명의 정예 암살단이 무기를 쥐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로마 군대조차 예상하지 못한 기습 매복입니다. 바울은 영문도 모른 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은 절대 위기에 처합니다. 영내에서 공회로 이동하는 좁은 길목에 매복해 있다가 바울을 기습한다는 순간입니다. 세상의 악은 이처럼 조직적이고, 치밀하며, 집요하게 하나님의 사람을 무너뜨리려 다가옵니다.
2. 바울 생질의 발견과 천부장의 움직임(16~22절)
세상의 음모가 아무리 밤낮으로 치밀할지라도, 모든 것을 불꽃 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과 손길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은밀한 암살 음모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무대 위에 등장시키십니다. 바로 바울의 누이의 아들, 즉 바울의 ‘생질(조카)’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성경은 이 청년이 어떻게 그 대제사장들의 방에서 오간 극비의 살해 음모를 듣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길을 가다 들었을 수도 있고, 유대인들의 밀담을 포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세상에 우연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십 명의 암살단이 숨죽여 모의했던 그 은밀한 대화가, 예루살렘 성안에서 아무런 힘도 권력도 없는 이름 없는 한 청년의 귀에 정확히 들어가게 하신 분은 바로 역사와 환경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소식을 들은 바울은 즉시 백부장 하나를 불러 이 청년을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에게 인도하게 합니다. 청년의 생생한 보고를 받은 천부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합니다.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이 자신의 수비 관할 구역에서 이토록 비참하게 암살당한다면, 소요 사태 책임을 물어 자신의 정치적 생명과 목숨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천부장은 청년에게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엄히 경계하며 보안을 유지한 채, 바울을 구출하기 위한 전격적인 군사 작전을 수립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번개를 내려 암살단 40명을 그 자리에서 벼락 맞아 죽게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유대 사회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던 평범한 청년의 '귀'와 '발걸음'을 사용하시고, 이방인 군대 수장인 천부장의 '정치적 계산'과 '위기감'을 역이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권세자들과 그들의 심리까지도 움직여 그 뜻을 이루어가시는 주권자이십니다.
3. 압도적인 호위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23~24절)
천부장 루시아가 바울 한 사람을 이송하기 위해 동원한 로마의 군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본문 23절과 24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밤 제 삼 시’는 오늘날의 시간으로 밤 9시입니다. 유대인들의 눈을 피해 어둠을 틈타 신속하고 은밀하게 움직이겠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동원된 병력의 규모입니다. 보병 200명, 기병 70명, 창병 200명으로 총 470명에 달하는 대군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안토니아 요새를 수비하던 로마 총병력이 약 1,000명 수준이었음을 감안할 때, 천부장은 자기가 가진 전체 군사력의 거의 절반을 오직 무명의 죄수 한 명을 지키고 호송하는 일에 전격적으로 쏟아 부은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바울을 죽이겠다고 단식하며 결사 항전하던 유대인 암살단은 고작 40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천부장의 마음을 격동시키셔서 그 40명을 압도하고도 남을 470명의 최정예 로마 군대를 바울의 '철통 호위대'로 붙여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을 태울 특별한 짐승인 말(horse)까지 준비하여 상전처럼 모시게 합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결박되어 예루살렘을 떠나지만, 실상은 로마 제국의 가장 삼엄하고 안전한 공적 호위를 받으며 당당히 빠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 암살단 40명은 밤새도록 좁은 길목에 숨어 밥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한 채 피로와 굶주림 속에서 바울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매복한 그 시각, 바울은 이미 로마 군대의 철통 같은 비호 속에서 총독부가 있는 가이사랴를 향해 대로로 당당히 행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악한 간계가 하나님의 정교한 지혜와 주권 앞에서 얼마나 허망하고 부끄럽게 무너지는가를 보여주는 영적 반전입니다. 이처럼 사방이 원수들로 둘러싸여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절대위기의 순간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완벽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세계 교회사에도 있습니다.
1571년 당시 존 녹스(John Knox) 목사는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가톨릭 왕당파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살해 위협을 받습니다. 실제로 암살자가 창 밖에서 그를 겨누고 총을 쐈으나, 바로 직전에 자리를 옮겨 총알이 의자 등받이(혹은 촛대나 벽)를 관통하는 기적적인 보호를 경험합니다. ‘존 녹스’는 장로교 창시자입니다.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던 1571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는 개혁파와 가톨릭 왕당파 간의 치열한 정치적, 영적 전쟁터입니다. 가톨릭 세력은 스코틀랜드의 영적 중추인 존 녹스 목사를 제거하기 위해 은밀히 암살단을 조직합니다.
그들은 존 녹스가 매일 밤 정해진 시간에 서재의 특정 창가 자리에 앉아 성경을 연구하고 설교문을 작성한다는 사실을 파악합니다. 1571년 어느 날 밤, 어둠이 짙게 깔린 창문 밖 마당에 총을 든 저격수를 매복시킵니다. 존 녹스는 밖에 자신을 겨눈 총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평소처럼 서재로 들어섭니다. 그대로 자리에 앉으면 암살당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바로 그 순간, 기도를 시작하려던 존 녹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강력하고 알 수 없는 감동을 주십니다. "오늘은 평소에 앉던 그 창가 자리가 아니라, 방 반대편 구석으로 책상과 의자를 옮겨서 공부하라"는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이끌림이 있게 합니다. 존 녹스는 의아해하면서도 그 내면의 세미한 음성에 순종하여 무거운 책상과 의자를 창가에서 멀리 떨어진 방구석으로 옮겨 앉습니다. 그가 자리를 옮겨 앉자마자, 어둠을 뚫고 ‘탕’ 하는 굉음과 함께 창문 유리가 산산조각 나며 암살자의 총알이 서재 안으로 날아듭니다. 그 총알은 정확히 존 녹스가 불과 몇 분 전까지 앉아있어야 했던 의자의 등받이를 정중앙으로 관통했다고 합니다.
존 녹스는 자신을 죽이려 매복한 원수가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를 지켜줄 경호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께서 그의 행동을 강권적으로 움직이셔서 암살자의 총구로부터 그의 생명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완벽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40명의 매복을 피하게 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1571년 에든버러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구원하시기 위해 로마의 '공권력과 군대'를 동원하신 것처럼, 세상의 법과 공권력을 전격적으로 사용하셔서 당신의 종을 호위하신 실화가 또 있습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목사의 생애에 일어난 일입니다. 1743년 10월 20일, 존 웨슬리 목사는 영국 스태퍼드셔의 웬즈베리 (Wednesbury)라는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복음에 적대감을 품고 선동된 난폭한 폭도 군중 수백 명이 몽둥이와 돌을 들고 웨슬리가 머물던 집을 에워싸고 그를 집단 폭행하여 죽이려고 몰려듭니다. 사방이 분노한 군중으로 가득 찬, 마치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울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위기 상황입니다. 폭도들은 웨슬리를 끌어내어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타격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폭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평소 웨슬리의 야외 설교를 단속하고 그를 체포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해 대기하고 있던 영국의 사법 경찰관들이 갑자기 행동을 개시한 것입니다. 그들은 웨슬리의 신학은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법한 폭도들이 영국 법을 유린하며 로마 시민과 같은 영국 시민을 살해하려는 폭동을 용납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 순간 치안관들은 폭도들을 향해 채찍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웨슬리의 사방을 둥글게 둘러싸고 철통 같은 '인간 바리케이드 경호대'를 형성합니다. 그들은 분노한 군중을 밀쳐내며, 웨슬리를 중심에 보호한 채 수 마일 떨어진 안전지대까지 호위하여 행진합니다. 웨슬리를 핍박하고 가두려 했던 세상의 공권력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격동시키시자 순식간에 웨슬리의 생명을 지키는 최정예 호위대로 바뀐 것입니다. 웨슬리는 그날 밤 자신의 일기에 “나를 치려던 자들의 손이 묶였고, 주님은 법의 장치를 통해 나를 무사히 건지셨다”라고 자신의 일기에 기록합니다.
이때 웨슬리를 죽이려고 폭도들의 맨 앞줄에 섰던 링리더(주동자) 중 조지 클리프턴 (George Clifton)이라는 권투 선수 출신의 난폭한 사내가 있습니다. 그는 폭력 속에서도 평온하게 기도하는 웨슬리의 모습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압도되어, 현장에서 마음을 바꾸어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라고 외치며 폭도들을 밀치고 웨슬리를 구출해 냅니다. 이 주동자는 훗날 회개하고 감리교의 신실한 성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이 천부장에게 470명의 군대를 요청했습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그저 감옥 영문 안에서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유대인들의 매복 장소를 보고 계셨고, 하나님의 손은 1743년 웬즈베리의 치안관들을 움직이셨듯, 로마 천부장의 펜을 움직여 군사 470명의 호송 명령서를 작성하게 하십니다.
4. 세상 권세의 증언과 사명의 자리 가이사랴(25~35절)
바울을 안전하게 보낸 천부장 루시아는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공식 서한을 보냅니다(25~30절). 이 편지의 내용은 세상의 법과 권세가 바울의 무죄함을 역사 앞에 공식적으로 증언하는 결정적인 서류가 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이방인 군 지휘관의 객관적인 눈으로 볼 때, 바울은 로마법을 어긴 죄인이 결코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소동을 피우는 이유는 오직 자신들의 종교적 교리인 ‘율법 문제’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죽이거나 가둘 사법적 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총독에게 명확히 문서로 보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이방인의 입과 펜을 통해서도 그의 종 바울의 순전함을 증명해 가십니다.
이 바울의 거대한 호송 작전은 성공적으로 완수됩니다. 보병들은 밤새도록 험한 길을 달려 안전지대인 ‘안디바드리(Tel Afek)’까지 바울을 신속히 이송합니다. 안디바드리(Tel Afek)는 유대 산악지대와 평야가 만나는 경계선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바울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이곳까지 약 60km의 험한 밤길을 쉬지 않고 내달립니다. 유대인들의 매복권인 위험지역을 완전히 벗어나는 이 안디바드리에 도착했을 때에야 비로소 보병들은 안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위험 지역에서 안전지대로 밤새도록 옮기게 하신 것입니다. 이튿날부터는 기동력이 뛰어난 기병 70명이 바울을 밀착 호위하여 마침내 로마 총독부가 있는 관저 도시 가이사랴에 무사히 입성합니다(31~33절).
가이사랴는 어떤 곳입니까? 팔레스타인 전체 지역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는 곳입니다. 로마 제국의 지중해 권력과 문화가 집중된 핵심 거점 도시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 앞마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맞아 죽을 뻔한 처절한 위기를 겪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정교하고 거대한 인도하심을 통해 이제 로마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 나아가는 가장 위대한 사명의 교두보인 가이사랴의 헤롯 궁에 안착하게 됩니다(35절).
유대인들의 간계는 바울의 생명을 어떻게든 끊어놓으려 발악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는 오히려 그들의 악한 간계를 디딤돌 삼아 바울을 더 넓은 세상, 더 안전한 왕궁, 더 위대한 사명의 자리로 이동시키는 최고의 도구로 역이용하십니다. 세상은 방해하나 하나님은 그것을 디딤돌 삼아 전진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사도행전 23장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방향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가 전혀 모르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밤낮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 40명이 굶어가며 바울을 죽이려 길목에 매복한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청년의 귀를 열어 그 음모를 폭로하게 하십니다. 1571년 장로교 창시자 존 녹스는 창밖에 저격수가 숨어있는지 몰랐으나 성령님은 자리를 옮기게 하십니다. 세상의 위협과 영적 공격이 아무리 은밀할지라도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환경과 공권력까지도 그 백성을 위해 주권적으로 움직이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로마 제국의 군사력 470명을 일방적으로 징발하십니다. 1743년 웬즈베리에서 폭도들에게 둘러싸인 웨슬리를 구하기 위해 영국의 치안관들을 호위대로 쓰셨던 것처럼, 이방인 천부장의 정치적 계산과 군대의 힘까지도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의 소품으로 사용하십니다. 우리 삶을 둘러싼 정국과 환경, 세상의 권세와 변화가 거대해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세상 권세의 고삐를 쥐고 흔드시는 분이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인생의 위기는 사명의 지경이 넓어지는 역전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예루살렘에 묶어두고 죽이려 하지 않았다면, 바울이 로마 군대의 최고급 호위를 받으며 가이사랴의 헤롯 궁으로 갈 기회는 영영 없었을 것입니다. 원수들의 악독한 핍박 때문에 바울은 도리어 로마로 가는 안전하고 공인된 고속도로에 올라타게 됩니다. 우리 삶에 찾아온 위기와 고난은 우리를 아주 망하게 하려는 패악과 유혹과, 무시무시한 악재 같습니다. 이럴수록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붙들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에 간섭하시는 일들이 당장은 너무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 손길을 바라보며 힘을 얻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 것 같고 하나님께서는 왜 아직 응답이 없으신지 낙담되고 실망스럽고 한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릴 위해 만사를 준비하시는 영적인 최정예 천사 군대를 예비하시고, 대로를 여시는 전능하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시 산헤드린 공회(국회+대법원)에 호출되어 그를 죽이려고 잠복해 있는 암살조 40명의 유대인들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천부장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 약 100km의 길을 안전하게 호송하게 합니다. 당시 로마 정예 병사 470명과 바울이 탈 말을 준비하여 다시 로마 유대 총독부가 있는 가이사랴까지 당당하게 이동하게 하십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원 권력과는 비교 안될 정도로 바울에게 부여된 이 권력은 막강합니다. 모든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형편을 돌아볼 때 우리는 실망할 수도, 어떤 때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심령이 피폐할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간절히 울부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의 악한 음모와 위기 속에서도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그 백성을 지키시고 호위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손길을 마주하게 하십니다. 당장 우리 현실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하시며 존 녹스를 암살자의 총구에서 건지시고, 존 웨슬리를 세상의 공권력으로 호위하셨던 그 주권적인 하나님이 바로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바라봅니다. 하나님,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매복 구덩이 앞에서 낙심하고 두려워하기 보다 이 시간 찾아오셔서 "담대하라"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바울의 걸음을 470명의 로마 군대로 철통같이 비호하셨던 그 성령의 손길이 오늘 우리가정과 일터와 자녀들의 삶 위에 그대로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고난을 넘어 주님의 은혜를 맛보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