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에서 빛나는 지혜와 사명
사도행전 23장 1-11
주제: 위기 속에서 로마 시민권과 영적 지혜를 활용하여 사명을 사수하는 바울과 그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3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5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6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벌써 2026년 상반기가 다 지나 갑니다.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쏜 화살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분통이 터지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본 적은 없는지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도저히 우리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면초가의 위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를 돕는 사람은 없고, 나를 무너뜨리려는 원수들과 차가운 현실만 가득할 때,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느낄 때, 우리들에게는 어떤 마음이 듭니까?
사도행전 22장 후반부의 상황을 보면 바울은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집단 폭행을 당합니다. 바울은 로마 천부장의 군대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집니다. 그리고 층대 위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 군중을 향해 피를 토하듯 자신의 회심 간증과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사도행전 22장 21절에서 바울이 “주께서 나더러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고 선포하는 순간, 유대인들은 폭발합니다.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다”라며 옷을 벗어 던지고 공중에 티끌을 날리며 광란을 일으킵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로마 천부장은 도대체 유대인들이 왜 이토록 분노하는지 그 내막을 알기 위해 바울을 영내로 끌고 가 채찍질하며 심문하라고 명령합니다. 당시 로마의 채찍은 단순한 매질이 아닙니다. 채찍 끝에 날카로운 뼛조각과 납덩이가 달려 있습니다. 채찍 몇 대만 맞아도 살점이 찢겨 나가고 내장이 터져 목숨을 잃거나 평생 불구자가 되는 끔찍한 형벌입니다. 그 무시무시한 채찍질이 시작되려는 찰나, 바울은 벼랑 끝에서 아주 냉철하고 지혜로운 신분적 권리를 꺼내 듭니다. 22장 25절입니다.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이 한마디에 현장은 얼어붙습니다. 당시 로마법상 로마 시민권자를 정식 재판도 없이 결박하거나 채찍질하는 것은 그 지휘관까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죄입니다. 천부장은 두려움에 떨며 바울의 결박을 풀었고, 도대체 무슨 죄목인지를 명확히 가려내기 위해 이튿날 유대인의 최고 의회이자 재판인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합니다. 오늘 본문 23장은 바로 이 서슬 퍼런 산헤드린 공회 재판석에 선 바울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1. 불의한 심판대 앞에서의 당당함과 위기(1-3)
주후 58년경,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공회장은 살기와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울 앞에는 그를 배교자요 반역자로 규정해 반드시 사형에 처하겠다고 눈을 부릅뜬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이 앉아 있습니다. 이들은 당시 유대 사회 실권자들로 우리 시대로 보면 ‘국회의원+대법원판사’ 정도의 공권력을 가진 기관으로 보면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눅 들지 않습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바울은 도망치거나 구걸하지 않고, 공회원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 떳떳했음을 선포합니다. 그러자 당시 악명 높고 탐욕스러웠던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명령합니다. “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법적인 결론이 나기도 전에 피고인의 입을 치라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자 폭력입니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라고 외친 것은, 구약의 레위기 19:15, 신명기 1:16-17, 25:1-2 법정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한 불법입니다. 율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바울이 말씀을 근거로 직격한 것입니다. 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신체에 물리적 행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시 대제사장 수준이 로마와 결탁하여 정치꾼 수준으로 전락을 것을 이를 통해 분간할 수 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이나 유대 왕이 되기 위해서는 로마제국 정부에 엄청난 로비를 한다고 합니다. 이는 마치 현 우리 시대 타락한 대형교회 목회자 수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때 바울은 단호하게 맞섭니다. 3절입니다.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회칠한 담”은 겉은 하얗게 아름답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진 담벼락 같은 썩고 부패한 자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런 네게 임할 것이라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마23장 전체, 마23:27, 예수님께서는 회칠한 무덤으로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십니다. 이 예언대로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몇 년 후 유대 전쟁 당시 유대 동족인 열심당원들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합니다.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친로마파 성향의 권력자입니다. AD 66년, 로마의 압제에 반대하여 제1차 유대 대 로마 전쟁이 일어납니다. 당시 유대 민족주의자들과 열심당원은 로마에 협력하던 유대인 지도층을 먼저 공격할 때,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비참하게 암살당합니다. 이는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 있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때리라고 명한 아나니아를 향해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라고 선포한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의 이 선포는 단순한 감정적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대한 예언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네가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욕하느냐”고 힐난하자, 바울은 즉시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고 시인합니다. 출 22:28,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을 인용해 자신의 태도를 지혜롭게 수정합니다. 이는 율법을 무시한다는 유대인들의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으면서도, 대제사장의 불법성을 교묘하게 폭로한 고도의 영적 대처입니다.
2. 공회의 모순을 꿰뚫어 본 바울의 탁월한 지혜(4-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헤드린 공회의 분위기는 바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자신을 죽이려 하는 불의한 재판 석입니다. 이때 바울은 인간적인 절망에 빠지지 않고, 공회를 구성하고 있는 세력들의 치명적인 약점과 모순을 간파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종교적 앙숙 관계인 두 파벌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첫째, 대제사장 계열인 사두개인들은 기득권층으로, 당시 유대인 전체의 0.1% 정도로서 현실 안주, 물질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적 세계도 없다고 믿는 지극히 세속적인 자들입니다(8절). 반면 바리새인들은 철저한 율법주의자들로 부활과 천사와 영의 존재를 확고히 믿는 영적 보수주의자들 입니다. 이들은 평소에는 철저히 겉돌다가 오직 ‘바울을 죽이자’는 목적 하나로 임시 동맹을 맺고 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위선적인 결탁을 ‘부활’이라는 핵심 진리로 흔들어 버립니다. “내가 지금 여기 서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조상들이 그토록 바라던 죽은 자의 부활,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이 한마디는 공회장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킵니다.
7절과 9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격렬한 다툼이 일어나 무리가 쪼개집니다. 심지어 바리새인 편의 서기관들이 일어나 바울을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울을 한 목소리로 정죄하던 공회가 순식간에 자기들끼리 물고 뜯는 아수라장으로 변합니다. 분쟁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로마 천부장은 바울이 그 수만 명의 군중 사이에서 찢겨 죽을까 봐 군인들을 내려 보내 바울을 강제로 빼앗아 영내로 대피시킵니다(10절). 사도 바울이 보여준 이 지혜는 비겁한 꼼수가 아닙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악한 자들의 불의한 연대를 깨뜨리고, 위기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주님이 주신 영적 통찰과 환경적 조건인 출신 성분과 지식을 극대화하여 활용한 ‘거룩한 사역적 지혜’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으면 무조건 무기력하게 당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다 포기해야 한다고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았지만, 복음 전파의 통로를 넓히고 사명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로마 시민권’이라는 세상적 신분과 법적 권리를 아주 당당하고 지혜롭게 활용합니다.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복음과 사명을 위해 세상의 법과 신분을 지혜롭게 활용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게 하십니다.
1991년 아프리카의 한 독재 국가에서 내전이 일어나 현지에 있던 한국인 선교사 가족들과 주재원들이 반군들에게 붙잡혀 집단 학살을 당할 위기에 처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1995년 선교단체에 있을 때 당시 현지에 있었던 한 선교사로부터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1991년 1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반군이 진격하면서 치안이 완전히 붕괴되고 무법천지가 됩니다. 소말리야 내전이 벌어진 것입니다. 북한 대사관 외교관들은 무장 강도들에게 모든 것을 약탈당하고 공항 바닥에서 떨고 있습니다. 이때 강신성(1937-) 대한민국 대사는 이념과 체제를 떠나 "우리 관저로 가서 함께 지내고 같이 탈출하자"며 북한 공관원 14명을 기꺼이 품습니다. 탈출을 위해서는 구조기를 띄울 수 있는 주 소말리야 이탈리아 대사관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강신성 대사는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그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합니다. 주 소말리야 이탈리아 대사관 문이 굳게 닫혀있을 때, 강신성 대사는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공식 '외교관 대사 신분과 국제법적 권리를 내세워 문을 열도록 압박하고 설득, 협상합니다. 협상 덕분에 현지 이탈리아 대사관 측은 구조기를 주선해 주었고, 남한 교민 7명과 북한 주민 14명 등 남북한 공관원 20여 명 전원이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강신성 대사 역시 대한민국 대사라는 신분과 외교적 권리를 지혜롭게 활용하여 남북한 주민들의 소중한 생명을 구원해 냅니다.
강신성 대사의 회고록에 보면 그의 철저한 기독교 신앙과 기도가 있습니다. 사선 (死線)에서 간절한 기도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합니다. 강신성 대사는 소말리아 내전이 발발해 사방에서 총탄이 빗발치고 공항마저 폐쇄되어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절망적인 순간에 처합니다. 관저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 무고한 영혼들과 공관원들을 살려달라고 눈물로 백방 기도를 드렸다고 고백합니다. 당시 남북한 공관원 20여 명의 목숨을 짊어진 지도자로서 그가 의지할 곳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우리 관저로 가자. 우리 쌀을 나누어 먹자며 그들을 기꺼이 품습니다. 이탈리아 대사관을 거쳐 마지막 구조 비행기에 탑승해 소말리아를 탈출하는 순간까지, 강신성 대사는 이것이 인간의 지혜나 외교적 수완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강권적인 역사와 보호하심'이었다고 간증합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이 “나는 로마 시민권자다, 나는 바리새인이다”라고 외친 이유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의 복음이 로마라는 대제국의 심장부까지 안전하게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신분과 지혜를 도구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3. 사명의 밤에 찾아오신 주님의 위로(11)
공회에서의 격렬한 조사가 끝나고 찾아온 그날 밤, 바울은 로마 군대의 차가운 영내 안가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낮 동안의 그 치열한 싸움이 끝나고 홀로 남겨진 밤, 바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무리 위대한 사도라 할지라도 그는 한 인간입니다. 낮에는 담대하게 대제사장을 꾸짖고 공회를 흔들었지만, 사방이 적들로 둘러싸여 언제 암살당할지 모르는 예루살렘의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깊은 고독감과 두려움, 그리고 피로감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과연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내 사역은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 가장 어둡고 고독한 사명의 밤에, 주님께서 친히 바울을 찾아오십니다. 본문 11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저 멀리 하늘 보좌에서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낙심과 피로에 지쳐 있는 바울의 침상 ‘곁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바울의 영혼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담대하라”
주님의 이 위로는 단순히 “힘내라, 다 잘 될 거다”라는 세상적인 막연한 격려가 아닙니다. 사명을 재확인시켜 주시는 가장 확실한 보증입니다. “바울아, 네가 이 험악한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해 목숨 걸고 증언한 것을 내가 다 보았다. 너의 사역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너는 반드시 저 거대한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 걸어 들어가 거기서도 나의 일을 증언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로마에 가기 전까지는 그 어떤 원수도 너의 생명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이 한마디에 바울을 누르고 있던 모든 두려움과 절망의 사슬이 끊어집니다. 환경은 여전히 감옥이고, 밖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자지도 않겠다고 결사대를 조직한 유대인 40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12절). 주님의 사명의 약속을 붙잡은 바울은 그 밤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으로 임하게 됩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그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영적 진리를 주님께서 인쳐 주신 것입니다.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바울로 하여금 친히 이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에게 이 음성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위기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배웁니다.
첫째,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위기를 만나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합법적인 권리와 지혜를 당당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사용하고, 공회의 모순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발휘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주신 직업, 지식, 사회적 신분, 물질은 모두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도구들입니다. 세상의 악한 프레임에 갇혀 무기력하게 무너지지 말고,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마 10:16) 위기를 돌파해 나가는 영적 지혜의 소유자들이 우리여야 합니다.
둘째, 가장 외롭고 어둡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밤에 내 곁에 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현실의 벽이 너무 높고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아 낙심될 때, 주님께서는 바로 지금 우리들의 삶의 궤적 곁에 서서 말씀하고 계실지 모릅니다.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실망하지 말라. 계속 기도하라” 주님의 그 음성이 들릴 때, 우리는 감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기도 응답이 없을수록 하나님께 더 간절하게 울부짖으며 주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 사명이 있는 인생은 외롭지 않습니다. 할 일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한 계획과 사명을 가지고 계시는 한, 우리는 신실하게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위기가 오히려 로마로 가는 안전한 호위길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 눈앞의 고난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을 이루어가는 섭리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오직 사명을 향해 전진했던 바울처럼,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신실한 약속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어제가 2026년 연초 같았는데, 벌써 2026년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입니다.
우리 자신을 겸손한, 겸허한 심정으로, 자성하는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말로만, 구호로만 하나님하고 매달린 것은 아닌지, 얼마나 치열하게, 세심하게 하나님을 찾았는지, 우리 계획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자신은 어떤 상태인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각자의, 우리의 비전을 다시 조명함으로써 우리 심령이 더욱 강건하여지고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각자 중심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우리 모두를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2026년 상반기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억울하고, 분통터지고 참을 수 없는 일을 우리는 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이런 것에 하나님이 뜻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뭔지 돌아보고 반응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위기 속에서도 결코 비굴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신 신분과 지혜를 다해 사명을 지켜냈던 사도 바울의 발걸음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삶의 작은 위기 앞에서도 쉽게 낙심하고, 사방이 막힌 것 같은 현실 앞에서 두려워 떨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영적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직분과 신분과 삶의 도구들을 오직 주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지혜롭게 사용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가 겪는 인생의 어두운 밤마다 우리 침상 곁에 서서 "담대하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명이 완성되기까지 주께서 나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낙심치 않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에 대한 응답이 늦다고 실망하는 우리들이 아니라 더욱 가열차게 기도로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약속을 확신하며 나아가는 우리들에게 응답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