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는 역사
사도행전 19장 8-20
요절: 사도행전 19:20(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무엇일까요? ‘열정’입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던지는 열정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역사를 바꿉니다. 세상의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 식어버리거나 때로는 개인의 야망으로 끝나 주변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반면 하나님 나라를 향한 '거룩한 열정'은 시대를 바꿉니다. 그 열정은 사람을 살리고, 시대를 깨우며, 마침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여 하늘의 권능을 이 땅에 임하게 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19장의 말씀은 바로 그 거룩한 영적 열정이 어떻게 한 도시를 뒤흔들고, 나아가 아시아(튀르기예) 전역을 복음으로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의 말씀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3차 전도여행의 이정표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울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복음의 빚'에 대한 열정입니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말기 에베소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에게 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간곡히 청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눈물을 머금고 떠나야만 합니다. 바울의 마음 속에는 늘 에베소가 밟힙니다. 우상의 도시, 어둠과 마술이 지배하는 그 거대한 도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선포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그의 심장을 요동치고 있습니다. 마침내 3차 전도여행이 시작되자, 바울은 지체하지 않고 에베소로 향합니다. 2차 여행 때 다 전하지 못했던 그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이 그를 움직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열정이 마침내 폭발하여 결실을 맺는 영적 대부흥의 현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향해 생명을 건 바울의 열정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 사역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늘의 크고 놀라운 권능을 바울에게 부어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도 바울이 품었던 그 거룩한 열정이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Tent maker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있어 우리들에게 어떻게 임할는지 체험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두란노 서원의 기적(8-10절)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사도 바울 선교의 중심에는 회당(Synagogue)이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자 마자 회당에 들어갑니다. 회당은 남유다가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 사방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 10명 이상 모이는 디아스포라 공동체입니다. 당시 회당에는 이방인들도 참석이 가능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세계선교를 위한 원대한 장기 비전이 들어 있습니다. 바벨론은 바사(페르시아)에 의해, 바사는 이후 헬라에 의해, 헬라는 다시 로마에 의해 정복을 당하고 당시 세계 공용어는 헬라어가 됩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로 헬라어 및 히브리어에 능통하고 유대인이므로 이 회당 역사를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8절을 보면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자마자 늘 하던 대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무려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합니다. 석 달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바울은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며, 구약의 그리스도가 어떻게 메시아가 되셨는지,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도래했는지를 간절히 설명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합니까? 9절 상반절은 안타까운 현실을 말해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사탄의 방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언제나 마음이 완악해지는 자들이 생겨납니다. 그들은 단순히 믿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예수의 '도'를 비방하고 깎아 내립니다. 우리가 믿는 자로서 재직중인 회사 식당에서 식사 기도할 때 일반인들이 우리를 보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재수없다고 식사 자리를 이동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바울은 낙심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제가 2차 여행 때부터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에베소인데, 왜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닫혀 있습니까? 왜 저를 비방합니까?" 하고 주저앉았을지도 모릅니다. 바울의 거룩한 열정은 방해물 앞에서 위축되기는커녕 바울은 새로운 문을 엽니다.
9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회당에서 나와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으로 장소를 옮깁니다. 그리고 거기서 '날마다' 말씀을 강론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그리스, 로마 문화권에서 서원(Lecture Hall)은 대개 상인들과 시민들이 낮잠을 자는 휴식처 같은 시설입니다. 이 서원은 쉬는 시간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비어 있다고 합니다. 에베소의 한여름 낮 기온은 서 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뜨겁습니다. 모두가 지쳐 잠드는 그 지독한 폭염의 시간에, 바울은 텐트를 깁는 노동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두란노 서원에 나와 말씀을 전합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10절 말씀처럼 "두 해 동안" 이같이 밀어붙입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 경과를 예루살렘과 안디옥 교회에 보고하고, 유월절이나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동시에 이는 유대인 신자들도 얻기 위해 2차 전도 여정 중에 급히 예루살렘을 거쳐 안디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에베소로 귀환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시작입니다. 당시 아시아 에베소에서 출발해 예루살렘과 안디옥을 거쳐 다시 에베소로 돌아온 그 여정은 최소 2,500km에서 3,000km에 달하는 거대한 대장정입니다. 당시 50대 중반인 사도 바울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입니다. 그는 유대이지만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유대인에게는 낮아져 유대인으로, 이방인들에게는 이방인의 입장에서 낮아져 최선을 다합니다. 그는 구원을 위해 자신을 낮춥니다.
2년 동안 매일같이 폭염 속에서 말씀을 전한 이 무모해 보이는 영적 열정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10절은 위대한 승리를 선언합니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여기에서 말하는 아시아는 현재 아시아가 아닙니다. 현재 튀르기예 서중부 전역을 말합니다.
제가 중고 시절 미얀마는 한때 아시아 축구 강국으로 명성을 날립니다. 한국의 최대 축구 적수가 일본이 아닌 당시에는 버마(미얀마)였습니다. 이 미얀마 국민들은 200여년전 전통적으로 거의 100% 불교도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 아시아 미얀마(버마)에 복음화의 불을 지핀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1788~1850) 선교사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와 아시아 사람들에게 '다 주의 말씀을 듣게' 하려고 자신을 갈아 넣었던 것처럼, 역사 속에는 한 민족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던진 제자들이 있습니다. 미국 최초의 해외 선교사인 ‘아도니람 저드슨’ 침례교 선교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1813년 미얀마(당시 버마) 땅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거대한 불교 왕국입니다. 조정과 승려들은 복음을 철저히 비방하고 방해합니다. 저드슨 선교사는 사형수들이 갇히는 악명 높은 감옥에 갇혀 목과 발에 이중 사슬이 매인 채 21개월 동안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지독한 풍토병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먼저 천국으로 떠나 보내는 피눈물 나는 고통을 겪습니다.
미얀마는 사역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겨우 첫 기독교 개종자 1명이 나올 정도로 척박한 땅입니다. 미얀마에 주어진 불모지 환경과 핍박은 그의 입을 막으려 하지만, 저드슨 선교사는 감옥에서조차 베개 속에 감추어 둔 성경 원고를 품고 날마다 버마어(미얀마어) 성경 번역에 매달립니다. 석방된 후에도 지독한 더위 속에서 날마다 강가로 나가 배를 타고 마을들을 찾아 다닙니다. 번역된 말씀을 눈물로 가르칩니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이웃 나라인 태국은 식민지 경험도 없고 평화로웠지만 철저한 불교의 장벽에 막혀 지금도 기독교 인구가 1%(0.8%)가 되지 않습니다. 반면, 수많은 전쟁과 독재, 핍박을 겪은 미얀마는 기독교 비율이 무려 7%가 넘는 놀라운 복음의 부흥을 이루어 냅니다. 그 원동력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아도니람 저드슨이 목숨 걸고 번역하여 뿌려놓았던 '하나님의 말씀'이 싹이 나서 미얀마 민족들의 심장을 강타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두 해 동안 쏟아 부은 두란노 서원의 열정이 바로 선교사 저드슨이 미얀마 땅에 쏟아 부은 눈물의 열정입니다. 한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심은 말씀의 열정은 수백 년 뒤 한 나라를 뒤흔드는 결실로 나타납니다. 교회사적으로 저드슨 선교사는 미국 교회가 자국 내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 선교를 향해 눈을 뜨게 만든 '미국 해외 선교의 개척자'라는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선교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삶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들이 선교에 마음을 쏟습니다. 전통적으로 선교 강국이 전 세계를 Leading해 갑니다. 선교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저도 하나님께 쓰임받는 0000와 지지교회와 저희 가족 모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Tent maker 사역자로 전세계에 진출하는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은 기독교 중에서 침례교가 거의 85% 수준이라고 합니다. 침례교는 회중교회로 신학대학원 등 신대원 출신이 목회자가 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열정과 소명이 있는 지체들이 리더로 활동하는 자발적 구조입니다. 이런 정신 구조가 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것입니다. 선교에는 우리 모두 동역자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그를 비방하는 자들이 길을 막아서자, 그는 두란노 서원으로 들어가 매일같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시도합니다. 그 결과, 에베소라는 한 도시를 넘어 소아시아 전역, 오늘날의 튀르기예 서부 전체에 있는 모든 유대인과 헬라인이 복음을 듣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쪽 문을 닫으면, 하나님께서는 더 큰 부흥의 문, 두란노 서원의 문을 열어두십니다. 환경을 보지 말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하도록 도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하기 보다 날마다 말씀 위에 서서 기도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지경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를 통해 복음이 흘러가게 하실 것입니다.
2. 사역을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11-12절)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바울이 이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뒷짐만 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이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지치지 않도록, 그리고 그 사역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도록 상상을 초월하는 권능을 부여하십니다. 11절과 1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행하셨다는 점입니다. 능력의 원천은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바울이 천막을 만들 때 이마의 땀을 닦던 '손수건'이나 작업할 때 두르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이나 귀신 들린 사람에게 얹기만 해도 병이 낫고 악귀가 떠나갑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하필 에베소에서 이런 희한하고 독특한 기적을 행하셨을까요? 당시 에베소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다이아나) 신전'이 있던 곳입니다. 아르테미스(Artemis)와 다이아나(Diana)는 같은 신을 지칭하는 이름입니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다이아나는 로마 신화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성경(행19:24)에서는 이를 한자어로 음역하여 ‘아데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영국 찰스 국왕의 전 부인인 다이아나 왕세자비의 이름도 본문에 나오는 로마 신화의 여신 다이아나(아데미)에서 유래합니다. 다이아나는 라틴어로 '빛나는 자', '신성한 여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 로마 본토와 바울이 사역했던 에베소에서의 다이아나(아데미)는 그 성격과 의미가 크게 다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의 의미는 '달의 여신', '사냥의 여신'이자 '순결(처녀)의 신'입니다. 그러나 에베소에서의 ‘아데미’ 의미는 풍요와 다산의 지배자로 바알과 같은 사악한 의미로 변질됩니다. 도시 전체가 음란과 우상숭배, 그리고 '에베소의 글자(Ephesia Grammata)'라고 불리는 마술 주문과 부적들로 가득 찬 영적 어둠의 심장부로 변질됩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신비한 부적이나 주문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신비주의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역사하십니다. "너희가 고작 가짜 우상의 부적을 붙잡고 사느냐? 그렇다면 내 종, 사도 바울이 쓰던 땀수건 하나에 담긴 나의 권능이 어떻게 너희의 우상과 귀신들을 짓밟는지 똑똑히 보아라" 하시며 영적으로 기선을 제압하시는 것입니다. 우상의 부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압도적인 권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평범하고 이성적인 한국 땅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기적들이, 영적 어둠이 짙은 아프리카나 오지의 선교지에 가면 지금도 시퍼렇게 일어납니다.
과거 조선, 대한민국에 복음이 처음 들어오던 1900년대 초반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양대부흥 운동을 전후하여 길선주 목사나 김익두 목사의 집회 현장에서는 수많은 병인과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무수히 일어납니다. 당시 유교와 무속 신앙, 온갖 미신에 사로잡혀 있던 조선 백성들에게 백 마디 말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권능 한 번이 그들의 영적 세계관을 깨부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 반드시 책임과 권능을 부여하십니다. 사명을 주신 분이 이를 감당할 힘도 함께 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려 할 때 "내가 가진 자원이 부족해서, 내 능력이 연약해서 이 거친 세상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까" 염려가 밀려올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대단한 능력을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말씀에 순종하여 땀 흘려 노동하고 복음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손과 발을 내어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 소품조차도 기적의 도구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3. 가짜 종교의 폭로와 복음의 유일성(13-17절)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나타나자, 늘 그렇듯 겉모습만 흉내 내는 가짜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13절에 보면 돌아다니며 마술을 부리던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유대인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세계를 하나의 마술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바울이 "예수의 이름"을 외치며 기적을 행하니까, 그 이름이 마치 영험한 주문이나 마술 부적이라도 되는 줄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귀신 들린 사람에게 가서 소리쳤습니다.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13절)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기가 막힌 고백입니까? 그들은 예수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구주로 영접한 적도 없습니다. 그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라는 껍데기 이름만 주문처럼 도용한 것입니다. 인격적인 관계가 없는 종교적 모방입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영물인 악귀가 단번에 그 가짜를 알아차립니다. 15절과 16절의 말씀은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거대한 영적 떨림을 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귀신이 말합니다. "내가 예수도 알고, 그 예수의 권능을 덧입은 진짜 종 바울도 안다. 그런데 너희는 누구냐? 너희 안에는 예수의 피가 없지 않느냐? 너희 안에는 성령의 인치심이 없지 않느냐?" 그리고는 귀신 들린 사람이 괴력을 발휘하여 스게와의 아들들을 짓눌러 버립니다. 결국 그들은 옷이 찢긴 채 피를 흘리며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부끄러운 사건을 통해 아주 중요한 영적 진리를 에베소 전역에 선포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유대교라는 종교적 배경, 제사장 가문이라는 혈통적 껍데기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인격적으로 예수를 만나고, 그 예수의 통치 아래 들어간 진짜 제자만이 영적 권세를 가질 수 있다는 복음의 유일성을 드러내신 사건입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의 실화입니다. 배가 빙하에 부딪혀 가라앉기 시작하자 수많은 사람이 구명정에 타기 위해 울부짖습니다. 그때 배의 1등실에 타고 있던 한 부유한 귀부인이 황급히 자신의 방으로 달려갑니다. 방 안에는 그녀가 평생 모은 값비싼 다이아몬드, 루비, 황금 보석들이 가득 담긴 보석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보석함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선반 위에 있던 평범한 '오렌지 세 개'를 품에 안고 뛰어나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배가 가라앉고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생사의 기로에서는, 아무리 번쩍이는 다이아몬드라도 목숨을 살릴 수 없으며, 차라리 한 조각의 오렌지가 생명을 연장하는 데 진짜 가치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스게와의 아들들이 가짜 종교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고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 높아졌던 것처럼, 진짜 복음이 들어가면 그 땅을 지배하던 어둠의 문화가 완전히 무너집니다.
19세기 중반, 남태평양의 피지(Fiji) 섬은 잔인한 식인종들이 살던 영적 암흑지대입니다. 그곳의 대 추장 '타콤바우'는 전쟁에서 잡은 포로를 삶아 먹고, 주술과 우상을 숭배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잔인한 자입니다. 주변의 무당들과 주술사들은 그 추장의 권력 뒤에서 온갖 가짜 기적을 행하며 백성들을 공포로 지배합니다. 그러나 영국의 존 헌트(John Hunt, 1812-1848) 선교사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목숨을 걸고 들어가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주술사들이 저주를 퍼부었지만 선교사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의 말씀이 피지 전역에 흥왕하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1854년, 그 잔인하던 대추장 타콤바우가 복음 앞에 완전히 거꾸러집니다. 그는 자신이 의지하던 우상과 주술의 도구들을 다 깨부수고, 백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합니다. 에베소에서 50억 원어치의 마술 책이 불탔던 것처럼, 피지 섬 전체의 식인 문화와 우상 숭배가 복음의 능력 앞에 완전히 불타버린 것입니다.
스게와의 아들들이 붙잡았던 '제사장 가문'이라는 배경, 종교적 형식은 영적 전쟁이라는 생사의 기로에서 아무런 힘도 없는, 빛 좋은 개살구요 가짜 다이아몬드에 불과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모태신앙이다. 내가 직분이 집사다. 권사다. 장로다. 목사다, 내가 교회를 몇 년 다녔다" 하는 외적인 종교적 스펙은 아무런 무기가 되지 못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바라볼 때,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라고 비웃지 않겠습니까, 이 사건의 결과로 17절을 보면 에베소의 모든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가짜 종교의 허상을 깨닫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 온전히 연합하는 것이 진정한 힘입니다.
4.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다(18-20절)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예수의 이름이 온 도시에 높아지자, 진정한 부흥의 최종 단계인 '회개와 청산'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18절에 보면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행한 일을 알립니다. 그리고 19절에는 숨겨진 놀라운 결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당시 에베소 사람들을 지배하던 마술 책들을 자발적으로 가져와 광장에서 불태워버립니다. 그 책값을 계산하면 당시 '은 오만'입니다. 그 시대의 은 한 닢은 드라크마, 데나리온으로 이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즉, 노동자 5만 명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오늘날 일당을 10만 원으로 계산하면 약 50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거액의 재산을 아낌없이 불태워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왜 이 아까운 책들을 중고로 팔지 않고 불태웠을까요? 아깝지만 사탄의 도구임을 깨달았기에 단호하게 끊어버린 것입니다. 아까워하지 않고, 미련을 두지 않고, 불태워 재로 만들어버립니다. 이것은 진짜 은혜를 받으면, 내 삶 속에서 하나님보다 사랑했던 우상들, 나를 쪼여가던 세상 정욕의 도구들을 단호하게 불태워버리는 '영적 청산'이 일어납니다. 이 단호한 결단 끝에 오늘 본문의 결론이자 위대한 영적 선포인 20절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흥왕하다'는 말은 살아서 역동적으로 자라난다는 뜻입니다. '세력을 얻다'라는 말은 당시 도시 전체의 문화와 가치관을 압도하여 이겼다는 뜻입니다. 에베소를 지배하던 50억 원짜리 마술 책과 아르테미스 우상의 문화가 하나님의 말씀 권세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바울의 작은 열정에서 시작된 복음의 씨앗이, 하나님의 권능과 성도들의 온전한 회개를 통과하면서 한 도시의 영적 지형도를 바꾸는 거대한 승리로 귀결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사도행전 19장 본문이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영적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1. 하나님 나라는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직 거룩한 열정을 품은 사람을 통해 전진합니다.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흘린 2년간의 땀방울이 소아시아 전체를 살리듯이 우리는 열정적으로 믿음으로 매사에 도전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사명자에게 반드시 감당할 권능을 주십니다. 내 능력을 보지 말고 내 손을 들어 쓰실 하나님의 권능을 신뢰해야 합니다. 힘들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3. 형식적인 외식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 위에 이 사도행전의 역사가 재현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가치관과 유혹도 우리를 흔들지 못하고, 오직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저의 가정을 돌아볼 때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왔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골에서 순진하게 자라, 없는 형편에 멘토 없이 힘들게 학업을 하고 직장 이동으로 수도권으로 이동하게 하신 주님의 뜻이 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제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면 얼마나 형편없는 삶이었는지 끔직할 정도입니다. 창조주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고 한걸음씩 전진하고 회복하게 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나아갑니다.
Tent maker 사역자로서 저의 가정이 세계 선교의 일익을 담당하는 비전을 바라봅니다. 외치는대로 이루어주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주의 말씀을 신뢰하면서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만인 앞에 낮아져서 섬김으로써, 경청함으로써, 자존심을 줄임으로써 동시에 지혜롭게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열정입니다. 믿음, 비전, 선교, 헌신, 미래에 대한 구체적 열정은 우리 자신들을 반드시 업그레이드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에베소의 척박하고 어두운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심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렸던 바울의 거룩한 열정을 우리에게도 부어 주옵소서. 환경이 우릴 힘들게 하고 사람들이 비방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두란노 서원을 세우는 믿음의 열정을 주옵소서. 모양과 외식을 벗어나 예수님의 생명이 꿈틀거리는 열정적인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오만이나 우상들을 단호히 불태우게 하시고, 주의 말씀이 우리 삶과 가정과 일터에서 흥왕하여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시간을 정하여 주님과 교제하는 지지교회 지체로 하나님 영광이 우릴 통해 만방에 드러나게 하옵소서. 간절히 구하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옵소서. 우리가 무엇을 하던 주님을 위해 매사에 열정으로 임하는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