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요한계시록 5:1-7]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 요한계시록 5:1-7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어릴 때 시골 우리 집에 우리 가족이 아끼는 개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개 이름은 루비입니다. 저는 좀 생각을 하여 그 개 이름을 보석이란 의미에서 루비로 명명한 것인데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 모두 ‘루비’라고 잘 불러 주었습니다. 수캐 루비는 생각보다 매우 영특합니다. 한번은 루비가 저에게 다가와 안타깝게 치근댑니다. 루비가 말을 못하므로 계속 나에게 다가와 몸을 부비면서, 징징거리면서 어떻게 좀 해봐 하는 눈치입니다. 앙앙, 징징대면서 주인아 나 죽을 것 같애? 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래? 루비야 하는데? 계속 내 눈을 바라보면서 하소연 하는 눈치입니다. 루비가 나에게 어떻게 좀 해 보라고? 주인아 넌 그렇게 눈치가 없어? 하는 것 같은데 저는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때 갑자기 루비 보다 덩치가 큰 동네 수캐 한 마리가 50m쯤 지근으로부터 달려옵니다. 그러자 루비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그냥 달려 나가서 서로 물어뜯고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밑에 깔려 넘어질 때까지 싸웁니다. 아프리카 사바나 공원에서 사자나 하이애나가 약한 동물들을 잡아 먹을 때처럼 살벌하게 살을 찢기듯이 말입니다. 제가 몽둥이를 들고 달려가자 그 큰 개는 황급히 도망갑니다. 루비는 그 큰 개에게 많이 물어 뜯겨 살이 많이 찢겨져 상처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루비는 고통이 매우 심했지만 우리들 사람처럼 표현하진 못합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닮은 점도 많이 있습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사자는 동물의 왕을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만 왕의 왕임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사도 요한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Part1,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내가 보며’에서 내는 사도 요한을 지칭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천사를 통해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천사를 통해 말하고 보여 주시는 것을 요한으로 하여금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11제자중 가장 오래 살아 남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각자 역할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에게도 이후 주님을 증거하는 특별한 은사를 허락하셔서 그를 복음 전파의 일꾼으로 크게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기로 유명한 사도 바울은 주님을 핍박한 것만큼 주를 위해 헌신합니다. 바울은 신약성경 27권중 절반인 13권을 남깁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는 성부 하나님을 말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오른손은 공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손에 두루마리가 있고 그 두루마리를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한 것을 사도 요한은 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요한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또 봅니다.

  1.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2.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3.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1절에 이어 2절에서도 사도 요한은 또 봅니다. 그만큼 요한은 간절하다는 것입니다. 본다기 보다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보게 됩니다. 시대가 너무 악하므로 주님께서 간섭하셔서 그 고통을, 환난을 해결해 주시길 요한은 얼마나 바라고 기대했겠습니까? 요한은 천사가 힘차게 외치는 것을 봅니다. ‘누가 그 두루마기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한가? 물어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만한 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두루마기는 양피지로 기록한 성경을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당시 성경인 하나님 말씀을 양을 가죽을 벗겨 만든 양가죽, 즉 양피지 위에 하나, 하나 수기로 기록하고 다수의 검증 인들이 교차 검증을 하여 히브리어로 된 성경이 말씀과 열과 행이 맞는지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이후 서기관외는 성경을 변조하지 못하도록 봉인을 합니다.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쳐도 하나님 말씀인 성경, 두루마기 봉인(seal)을 뗄 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봉인을 뗄 자가 없다는 것은 봉인을 열 권한을 가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심판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최종 심판은 우리 주님에게만 그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그래서 사도 요한은 크게 웁니다. 앞 장인 계시록 4:1, 아모스 3:7절을 보겠습니다.

계4:1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암3:7
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사도 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누구보다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생애 3년 6개월 동고동락하셨던 주님은 십자가에서 수난을 받으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시면 언제 재림할지는 그 시기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 권한에 속한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동료 사도들은 핍박을 받아 처형을 당합니다. 12사도 중 혼자 살아 남아 핍박이 가장 극심한 로마 황제 치하에서 믿음을 가진 많은 형제 자매들이 수난을 당하는 것을 목도합니다. 요한 자신도 소아시아 지금은 튀르기예에서 핍박을 받아 현재 그리이스와 튀르기예 중간에 있는 밧모섬에서 귀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밧모섬은 작은 돌산입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그런 섬이 아닙니다.

오신다는 주님은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그리고 천사를 통해 말씀하시고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시던 주님은 갑자기 미리 약속한 것을 보여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크게 우는 것입니다. 마치 젖먹이 아이가 엄마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그냥 목 놓아 크게 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Part2, 어린 양이 그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1.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장로 중의 한 사람’은 계4:4,10, 7:13에 등장하는 ‘이십사 장로’ 중의 한 사람을 말합니다. 장로가 24명이 전부인가? 라고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12지파이므로 지파당 2인의 장로를 지파를 대표하는 장로로 상징적으로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시대 교회 장로, 집사가 아닌 장로란 남자 연장자로 경험이 많은 시대를 분간하는 분별력이 있는 남자 연장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아는 신실한 자를 대변하는 연장자로 중간에서 전달을 하는 해설자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신약에서 베드로도, 요한도 본인을 장로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본분에서 이 장로는 요한에게 울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요한이 눈물을 거두어야 할 이유를 설명하여 줍니다. 진정한 장로란 연장자답게 진정한 적절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자가 장로임을 동시에 말해 줍니다.

관련 계4:4.10, 7:13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7: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요한이 울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그 장로가 설명합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여 줍니다.

창49:9에 언급된 야곱의 축복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1.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야곱은 유다를 향해 이같이 축복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왕이 유다 지파에서 탄생할 것을 예언한 것으로 에스겔 19:2.3,5,6은 유다의 왕실을 사자로 표현합니다.

  1. 부르라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에 엎드려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2.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3.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골라 젊은 사자로 키웠더니
  4.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에 왕래하며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뿐만 아닙니다. 이사야11:1,10, 마1:1, 롬1:3, 히7:14 계:22:16 에는 예수님이 유다 지파로부터 나온 것을 확인하여 줍니다.

사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사11: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롬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히7: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분으로 하나님의 비밀한 목적을 따라 세상에 그분의 통치를 세우는 것과 관련된 그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본 장은 구속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경배에 이어,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를 묘사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경배 받으실 분이신 것과 마찬가지로,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 역시 동일하게 경배 받으실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경배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책이 하나님의 펼쳐진 손 바닥 위에 놓여 있던 것이나, 하나님의 펼쳐진 손바닥이나 하나님의 오른손이란 표현 모두 하나님에 대한 비유나 은유적 표현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책이 필요 없으십니다. 우리가 알아듣도록 그렇게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이는 우리 현 시대로 생각하면 책을 펴서 보면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우리 시대의 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 시대에는 양피지 두루마리가 책입니다. 이는 마치 현재 우리가 보고 읽는 책이 전자 책으로 머지 않아 전환될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주는 이미지를 감안할 때 쉽게 우리가 그 의미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안팎으로 쓰여졌다는 것은 그 내용에 어떤 것을 더하거나 뺄 수 없게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이 책은 일곱 인으로 봉해졌다는 것 또한 일곱은 완전수로 계시의 완전성과 비밀성을 상징합니다. 그 내용이 하나님이 보여주시기 전에는 인간으로서는 절대 알 수 없도록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음을 나타냅니다. 요한의 계속된 진술에 따르면 그러한 자격을 충족하는 자가 바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1.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요한은 보좌와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 사이에 서 있는 ‘어린 양’을 목격합니다. 본절에 언급된 ‘보좌’와 ‘네 생물’,그리고 ‘장로’에 대해서는 계4:2,4,5,6에 이미 언급됩니다.

  1.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2.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3.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4.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보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를 말합니다.

  1.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적 묘사에 이어 그가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인봉된 책, 두루마리를 취하십니다. 실제 모습으로 우리가 이해하도록 묘사를 해주는 해설입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 책을 잡지 않아도 다 아십니다. 이해를 위해 가까이 나아간 예수 그리스도의 면모를 잘 드러내 주는 것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책을 잡고 계시는 행위를 눈에 보이듯 회화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에 대한 권세를 부여받았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도래가 이미 하늘 보좌에서부터 실현되고 있음을 예시하여 그려주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쉽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계시라는 용어 자체가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왜 성경 마지막 장에 요한 계시록을 배치하였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늘 깨어 있어라’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불법과 변칙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왜 악을 제거하지 않으시는가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불법을 자행하는 자들을 왜 심판하지 않는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왜?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그 해답을 찾는 길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께 고백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므로 평강이 우릴 지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 집에서 기르던 개도 어려움이 있을 때 온갖 표정으로 주인에게 나와와 어떻게 좀 해 보라고 하듯이, 약속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 자녀인 것으로 인하여 주님께 모든 것을 들고 나아가 사랑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어릴적 눈치가 없어서 우리 집 개 루비가 하는 울부짖음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 후에 그것을 알고는 마음이 많이 아렸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 이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손길이 뭔지? 왜 이런 환난을 주시는지? 왜 조국 대한민국에 이런 혼란을 주시는지? 사랑하는 자매에게는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더 울부짖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지지교회 여러분

우리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분별력을 달라고 울부짖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우리 심령을 지배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손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시각을, 시선을 주님께 맞춰야 합니다. 더욱 울부짖어야 합니다. 주님께 사랑 고백해야 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고해야 합니다. 도와 달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