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 8:1-8
1. 그 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아뢰었으므로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오니
2.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
3.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
4. 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 규를 내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 앞에 서서
5. 이르되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나를 좋게 보실진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지방에 있는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철회하소서
6. 내가 어찌 내 민족이 화 당함을 차마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차마 보리이까 하니
7.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8.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우리는 주변에 종종 0에스더 라는 이름을 듣거나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에스더 8장은 단순히 한 민족이 위기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수천 년을 이어온 영적 전쟁 결산의 일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000여 년 전,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둡니다. 그 불순종의 씨앗이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에서 ‘하만’이라는 괴물로 자라납니다. 하만은 '아각 후손'입니다. 반면 그를 대적하는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 기스의 증손', 즉 사울 왕의 가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조상 사울이 끝내지 못했던 영적 전쟁이 이제 페르시아의 심장부 수사궁에서 다시 불붙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만은 자신의 권세를 이용해 유다인을 진멸하려 모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라는 한 여인의 결단을 통해 이 해묵은 전쟁의 종지부를 찍으십니다. 오늘날의 믿음을 가진 우리의 삶도 우연이 전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어둠의 권세와 우리 안에 흐르는 부활의 생명이 충돌하는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는 이런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1. 죽으면 죽으리라의 결기로 인한 권세의 이동(1-2절)
1. 그 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아뢰었으므로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오니
2.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
1절과 2절은 장엄한 통치권 이양의 선포입니다. "그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이런 선포가 있기 바로 얼마 전 이와는 반대로 모르드개는 하만이 미리 장만한 23m장대에 매달려 죽을 운명에 처합니다. 모르드개는 물론 바사에 사는 유다인들을 다 도룩하라는 왕의 조서를 이미 하만이 127개 지방에 다 보낸 후입니다. 왕의 조서를 거역하는 것은 반역이므로 유다인들은 전원 멸절의 위기에 처합니다.
이에 모르드개는 왕비 에스더에게 아하수에로 왕에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가라고 강권합니다. 왕이 먼저 왕비에게 들어오라고 하지 않는데 왕비가 사전 예고없이 왕에게 나아가면 왕의 칙령을 위반한 죄로 죽임을 당합니다. 이를 잘 알지만 모르드개는 왕비 에스더에게 “너 혼자 살려고 하지 말라. 네가 왕비가 된 것을 이 때를 위한 것이지 않느냐? 네가 왕에게 나아가 직언하지 않으면 우리 유다인들은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우리 유다 인들을 살려 주실 것이지만 너와 우리 가문은 멸문을 당할 것이다.”라고 일침합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4촌 여동생으로 어린 에스더를 모르드개가 양육하여 왕비로 만든 것입니다. 이에 에스더는 유다인들을 다 모으게 하고 3일간 금식기도를 한 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의 사전 허가없이 왕에게 나아갑니다. 그런데 왕이 에스더의 우려와는 달리 매우 사랑스렇게 에스더를 맞아 줍니다. 뿐만 아닙니다. 소원을 다 말하라고 합니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4촌 오라버니 모르드개는 당시 막강한 권력자인 총리대신 하만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하수에로 왕의 2인자인 정적 하만을 과감하게 무시하면서 상대합니다. 모르드개는 선민 유다 민족이 비록 바사에 흩어져 살지만 이방 민족에게 굽히지 않는다는 결기와 신앙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만에게 절대로 굴종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르드개는 하만의 눈에 가시 그 자체입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기 시작합니다. '하만의 몰락'이 시작되는 그 하룻밤의 사건들입니다. 마치 정교하게 짜인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역전의 과정'을 살펴보면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에스더 6장에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 23m 높이의 기둥을 세우고 기세 등등하게 왕궁으로 향하던 그날 밤, 세 가지 '우연'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우연 1, 그날 밤, 아하스에로 왕은 이유 없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우연 2, 왕은 심심풀이로 평소 보지도 않던 '역대 일기'를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우연 3, 수많은 기록 중 하필 5년 전 모르드개가 반란을 막았던 대목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 하만의 착각은 자기 꾀에 빠지게 합니다. 왕이 모르드개가 막아낸 반역에 대해 보상이나 보답을 했는지 묻고 있을 때, 마침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일 허락을 받으러 왕의 뜰에 들어섭니다. 왕은 "왕이 존귀하게 하길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묻고, 하만은 그것이 당연히 자기인 줄 착각합니다. 결국 하만은 자기 입으로 '자신이 원했던 영광' 즉 왕의 옷과 말을 타고 성내를 도는 것을 원수 모르드개에게 입혀주게 됩니다.
하만의 몰락은 가장 안전하다고 믿은 왕과의 잔치, 즉 하만은 에스더 왕비가 주관한 잔치에서 모든 권력을 잃습니다. 에스더의 폭로로 왕이 분노하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하만은 살려달라며 에스더가 앉은 걸상에 엎어집니다. 마침 그때 돌아온 왕은 이를 '왕비를 겁탈하려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이 짧은 오해의 순간이 하만의 운명을 완전히 끝내버립니다. 결국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준비했던 바로 그 23m 장대 나무에 자신이 매달리게 됩니다.
에스더서의 핵심 교훈은 '이때를 위함'에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람이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에스더서의 가장 유명한 구절인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4)라는 모르드개의 말처럼, 하나님은 수년 전부터 에스더를 왕비로 세워두시고 조용히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소부재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식입니다. 에스더서에 하나님 이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 곁에 상주하고 계시면 그들의 보호자로 역사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바사(페르시아)의 왕으로 크세르크세스(BC 486-465년)왕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페르시아를 통치할 때의 사건으로 본문은 아하수에로 왕 제3년경으로 봅니다. 본문의 배경은 당시 페르시아의 수도이자 겨울궁이 있던 수산입니다. 바사에 흩어진 유다 백성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 배경을 살펴보아야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지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유다는 BC 586년 완전 멸망하여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끌려 갑니다. BC605년부터 1차로 바벨론으로 끌러가는데 이 때 선지자 다니엘도 같이 잡혀 갑니다. 그럼에도 유다는 당시 시대를 읽지 못하고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다가 BC597년 2차 포로가 되어 여고냐(여호아긴)왕도 같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이때 제사장 겸 선지자 에스겔이 같이 잡혀 갑니다. 그럼에도 회개하지 못하는 유다를 하나님은 BC586년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두 아들을 왕이 보는 앞에서 척살하고 이후 왕의 두 눈을 뽑은 후 포로로 끌고 갑니다.
그런 후 시간이 흘러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1차 BC605년 포로로 잡혀간 후 70년이 지난 후 BC 536년경 1차로 잡혀갔던 백성들이 유다로 다시 돌아옵니다. 70년 기간은 다른 이론도 있습니다. BC586년부터 BC516의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되기까지 등 달리 해석하기도 합니다. 1차 포로들이 유다로 돌아온 시기는 BC516년입니다. 잡혀간 후손들 중 일부 5만명, 5% 정도가 본국 유다로 돌아온 것입니다.
많은 유다 백성들이 여전히 바벨론이 망하고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페르시아)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은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왕 때에 걸쳐 유다를 침공합니다. 그는 BC 586년 예루살렘을 멸망시켜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갑니다(바빌론 유수). 이후 느부갓네살왕 사후 왕권이 급격히 약화되었고, 바사(페르시아)에 의해 BC 539년, 메대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 수도 바벨론이 함락되면서 바벨론 제국은 완전히 멸망합니다. 바벨론은 BC626년 발흥하여 BC539년까지 약 87년 만에 사라집니다. 미리 경고하신대로 하나님께서 자행자지하는 유다를 바벨론을 통해 징계하신 것입니다.
이후 등장한 나라가 바사(페르시아)이고 여기에 유다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바사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바사에 다른 민족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민족이 다르다 보니 갈등과 살상이 발생합니다.
에스더 당시 바사(페르시아)는 127개 지방(국가)을 거느린 인도에서부터 아프리카 애굽(에집트)까지 걸친 대제국입니다. 바벨론 포로는 3차에 걸쳐서 유다로 귀환합니다. 1차는 BC536, 2차는 약 78년이 지난 BC458년, 3차는 14년후인 BC444년으로 2,3차는 기간이 14년 밖에 나지 않습니다. 1차 때 5만명 정도 본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2.3차는 아주 소수로 2000명 미만 정도 소수 인원이 귀환합니다. 다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바사 현지에 그대로 남아 살아가는 유다인들이 95%, 90만명 정도로 추정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것이 주류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보호를 받아야 함이 당연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연하므로 하나님 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하나님 백성이 많아진 것을 의미합니다.
에스더 사건 당시 이 때가 BC483-475년 경으로 추측합니다. 아직 본국 유다로의 2-3차 귀환이 일어나기 전의 일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포로로 끌려간 유다 후손들은 바사(페르시아)가 고향이 된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서울에 살다 보면 자녀들은 고향이 서울이 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이 특별한 동인이 없으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을 듣지 않는 유다를 징계하여 바벨론으로 포로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다시 바사 국민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바사에는 이방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하만은 이스라엘의 앙숙인 아말렉 족속인 아각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이 아각 후손들도 강국 바벨론에 끌려온 것입니다.
아하수에로는 그의 재위 제3년에 제국내의 심복들을 수산으로 불러 6개월에 걸쳐 연회를 베풀며 제국의 위엄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연회를 마무리할 때에는 7일 동안 수산성 사람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풉니다. 이때 왕은 왕후 와스디로 왕후의 용모를 과시하기 위해 잔치에 참석하게 합니다. 그런데 와스디는 왕명을 거절합니다. 수많은 첩을 거느린 왕을 와스디 왕후가 좋아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이에 왕은 진노하여 와스디를 폐위합니다. 이에 처녀들 가운데서 유다인 출신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이 됩니다. 우리가 얼핏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런 것이 하나님 역사입니다.
에스더서는 표면적으로 “아말렉의 아각 자손 하만”과 “유다 베냐민 자손 모르드개+에스더’의 내전입니다. 당시 바사(페르시아)에는 수많은 이방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마치 현재 인구 9000만명인 이란에도 수많은 이방민족이 살고 있듯이 말입니다. 바벨론→바사(페르시아)→이란 이렇게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1차 BC605년 포로로 끌려갈 때 이때는 주로 왕족 및 고위직 위주로 끌려갑니다.
이에 하나님은 왕족 출신 다니엘을 선지자로 같이 보냅니다. 2차로 끌려갈 때에는 왕과 수많은 백성들이 끌려갑니다. 이에 하나님은 선지자겸 제사장인 에스겔을 그들과 함께 보냅니다. 이후 약 100년이 지난 에스더 시대에는 BC536 1차로 포로들이 5만명 정도 돌아옵니다. 이후 본국 유다로 돌아오지 못한 100만 정도의 유다 백성들은 바사(페르시아)에 그대로 살아갑니다.
에스더서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성경에 하나님 이라는 말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성경이 2권이 있습니다. 에스더서와 아가서입니다. 하나님 이라 용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이 가득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유다인을 죽일 장대를 세우며 기세 등등하던 하만의 모든 집과 재산이 에스더에게 넘어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왕이 하만에게서 거두었던 인장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줍니다. 모르드개에게 왕 다음으로 전권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왕의 반지의 의미, 이는 당시 왕의 반지는 제국 전체를 다스리는 전권(全權)의 상징입니다. 역전의 원리, 이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결단 때문입니다. 에스더가 자신의 생명과 왕후라는 기득권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왕 앞에 나아갔을 때, 하늘의 보좌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리더들은 자기 것을 지키려다 권세를 잃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고 죽고자 할 때 세상을 다스리는 반지와 마음을 얻는 지혜를 맛보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죽어짐에 있습니다. 완전한 낮아짐, 침묵, 배려, 경청, 깊은 사랑에 있습니다. 수류탄이 떨어질 때 지휘관이 자신의 몸을 던져 막으면 그 주변은 살아납니다. 냉정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텐트 메이커로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참 지혜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무엇이, 어떤 것이 지혜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2. 죽음의 조서를 덮는 생명의 법(3-6절)
3.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
4. 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 규를 내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 앞에 서서
5. 이르되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나를 좋게 보실진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지방에 있는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철회하소서
6. 내가 어찌 내 민족이 화 당함을 차마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차마 보리이까 하니
하만은 처형되었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만이 이미 왕의 인장을 찍어 전국에 반포한 '유다인 진멸 조서'는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의 법은 한 번 공포되면 왕도 취소할 수 없습니다. 이때 에스더가 보여준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녀는 이미 안전해졌고 하만의 집까지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3절). 에스더는 자기 민족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깁니다. "내가 어찌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차마 보리이까(6절)."
금 규의 은혜는 요즘말로 전권을 말합니다. 왕이 다시 에스더를 향해 금 규(scepter, 봉, 지팡이)를 내밉니다. 당시 금 ‘규’라는 것은 왕의 全權을 말합니다. 요즘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보다 더 상위 칙령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는 중보의 능력으로 이미 내려진 죽음의 판결(하만의 조서)을 무력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실제 왕의 보좌를 움직이는 것은 기도와 눈물의 간구뿐입니다.
역사의 암흑기마다 에스더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갔던 이들이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었던 이는 얀 후스(Jan Hus, 1372-1415)입니다. 얀 후스는 약 15년(1400~1415) 동안 치열하게 종교 개혁 운동을 펼칩니다. 그는 프라하 대학 총장이라는 '기득권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그 자리를 버리고 화형대로 나아갑니다. 그의 삶은 에스더 8장이 말하는 '왕의 반지를 쥔 자의 거룩한 책임감'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교회의 부패에 맞서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외칩니다. 주변에서 화형당할 것이니 가지 말라고 말리지만, 그는 "내가 진리를 위해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성도들에게 진리를 전하겠는가?"라며 화형대로 걸어갑니다. 그가 불길 속에서 뿌린 '진리의 조서'는 100년 뒤 루터라는 거대한 불꽃으로 피어납니다.
또한, 나치의 광기 앞에서 미국이라는 안락한 왕궁을 버리고 독일로 돌아갔던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모르드개의 음성을 들은 에스더처럼 "지금 내 민족과 고난을 나누지 않는다면 나는 미래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며 수용소로 향합니다. 그가 남긴 '값비싼 은혜'의 조서는 오늘날 우리를 깨우는 하늘의 인장이 되었습니다.
3. 왕의 명의로 쓰는 새로운 조서(7-8절)
7.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8.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마지막 8절은 우리에게 전권을 위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왕은 이전 조서를 취소하는 대신, 유다인들에게 '적과 맞서 싸울 권리'를 주는 '새로운 조서'를 쓰게 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죄와 사망의 조서'를 내밀며 "너는 안돼, 죽어야 한다"고 참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는 인장이 찍힌 '생명과 성령의 조서'를 주셨습니다. 우리 손에 들린 예수의 이름(인장 반지)으로, 우리는 우리 삶의 현장에 "생명과 승리자로 일어설 것을 확신하며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아직 응답이 없더라도 하나님 때를 기다리면서 응답을 확신하면서 도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에스더 8장은 우리에게 결단을 촉구합니다.
1. 나의 자존심, 나의 교만, 나의 입장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의 아집과 자존심과 이기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2. 우리 공동체,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 지구촌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중보 기도의 단을 쌓아야 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3. 우리 모두는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자다"라고 새로운 조서를 선포해야 합니다. 믿음의 유산을 대대로 물려 주어야 합니다. 기도 응답이 늦더라도 실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 이라는 단어가 한마디 없어도 친히 역사하시는 무소부재의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통해 역사하셨듯이 우리 삶에 그대로 역사하여 주시도록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페르시아의 유다인들이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부림절'의 축제를 열었듯이,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에게도 패배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리워야단 같은 대적이 우리를 참소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만왕의 왕의 명의로 조서를 쓸 권세가 주어졌음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어떤 위협 앞에서도 당당히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을 선포하며, 우리의 일터와 가정에 생명의 조서를 써 내려가는 은혜가 충만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1. 하나님,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에스더와 얀 후스, 본회퍼의 믿음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내 안위보다 하나님 나라와 우리 공동체 대한민국과 지구촌의 정상화를 바라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2. 자신의 자존심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품고 배려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과 아직 회복되지 않은 우리 자매와 우리 나라를 돌아보며, 아직 응답이 없더라도 무소 부재하신 신실하신 주님을 신뢰하며, 왕이신 주님의 발아래 엎드려 눈물로 간구하는 중보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인장 반지가 우리 손에 있음을 조각하게 하옵소서. 낙심과 절망의 조서를 찢어버리고, 희망과 생명의 조서를 써 내려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