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부활과 사랑의 주님 [요한복음 20:19-29]

부활과 사랑의 주님
요한복음 20:19~29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영국은 1815~1914년까지 근 100년간 지구촌에서 가장 강력한 패권국가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으로 불렸습니다. 1947년 거대한 식민지 인도가 독립되고, 1956년 수에즈 운하 관리권이 미국과 소련의 압력으로 영국에서 이집트로 넘어가면서 영국은 패권국가 지위를 상실합니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패권국은 기독교와 관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때 2800여년전 앗수르는 당대 최강국입니다. 강국 앗수르, 바벨론 등이 등장하지만 잠깐 쓰임을 받고 영욕의 역사를 마감합니다.

2000여년전 임마누엘 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이적과 표적을 보여 주십니다. 수많은 각색의 병자를 고치시고, 오병이어로 먹이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병든 자, 없는 자, 소외 받은 자, 부유한 자, 지식층까지 전방위로 헤아릴 수 없는 이적을 베푸십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도발하는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을 향해 주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질책하십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의 권능으로 온 마음으로 진실로, 진정으로 설득하고,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어도 이들은 막무가내로 기적이나 이적을 계속 요구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종교지도자 그들은 왜 그랬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이를 살펴보겠습니다.

1. 성령 시대를 여시는 주님의 숨결(19-23절)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19절은 제자들에게는 얼마나 공포스러운 장면이겠습니까?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자신들이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는데도, 예수님께서 들어오사 가운데 서서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이 상상이 됩니까? 충격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은 정확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공을 초월한 창조주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17: 1-5(막9장, 눅9장)을 같이 보겠습니다.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상기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이미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생사를 주관하여 역사하시는 영육간에 변형이 자유로우신 창조주 성자 하나님 이십니다.

19절의 이날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 아침입니다. 주일 아침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과 만나 잠깐 교제합니다. 11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여전히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 마리아는 어떻게 먼저 알았을까요? 간절한 마리아는 주일 새벽에 무덤에 가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11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이 문 안으로 들어오셔서 방 가운데 서서 제자들을 마주하십니다. 이 순간 제자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문을 엽니다. 제자들이 놀랄 것을 아시고 평강을 주시는 이런 분이 주님입니다. 우릴 가장 잘 아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21절에서 ‘평강이 있을지어다’를 반복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장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반전의 아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과 이틀 전, 유월절 전 날인 준비일 오후 3시,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외침과 함께 대속의 제물로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무덤에 머무셨던 시간은 일수로는 3일에 걸치지만 약 36시간 가량됩니다. 이 고난은 성자 하나님께는 우주의 무게보다 무거운 시간입니다. 창조 이래 단 한 번도 끊어진 적 없던 성부 하나님과의 교제가 인류의 죄짐으로 인해 완전히 차단된 시간입니다. '영적 지옥'의 고통을 주님은 홀로 견뎌내셔야 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가 무서워서 괴로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과 약 36시간 정도 단절되는 고통이 커서 피땀 흘려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 시간 죄로 인한 성부 하나님과 완전한 단절이 필요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그 수많은 이적과 기적에도 계속 표적을 요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는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나는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심해에서도 견딥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바다 깊이 내려간 그 심해는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뭍에 이르면서 요나를 토해 내자 요나가 앗수르 백성들에게 마지못해 다가갑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을 폭압하는 극악 무도한 앗수르가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이 죽도록 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앗수르 회개 메시지 명령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을 가다가 강권적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손길 앞에 할 수 없이 잡혀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앗수르 니느웨는 전국민이 철저히 회개하므로 재앙을 피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유비(parable)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조주 성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시고 이 땅에 임마누엘 하신 분입니다. 이 사실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요나의 표적 밖에’라는 이 비유에는 주님의 모든 희생과 기적의 결정판이 다 들어있는 함의가 들어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적인 사고로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 19절은 그 고통의 빗장을 부수고 부활하사 나타나신 주님을 친히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이 무서워 문을 걸어 잠그고 숨죽여 울고 있던 제자들 한가운데, 부활하신 예수께서 문 안으로 들어와 서 계십니다. 영으로 들어오셔서 육으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첫마디를 던지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인사는 두려움의 장막을 걷어내고 어둠의 안개를 흩어버리는 '창조주의 평강을 알리는 선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눈에 보이는 기적이 아닙니다. 22절에 주님은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이 장면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던 창조의 순간을 재현합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부활의 권능으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사명과 권능을 부어 주십니다.

1. 사명의 전수를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절)
2. 새로운 권능을 부어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내 힘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숨결로 세상의 불법과 죄를 이기고 화평을 전하는 '부활의 기동력'을 갖게 해 주십니다.

삶의 현장에서 악과 불의와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본 말씀은 생명 줄이 됩니다. 현재 불의가 판을 치는 현 우리 시대는 창일하는 하수처럼 우리를 덮쳐옵니다. 불의가 우리를 위협합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내쉬신 그 성령의 숨이 우리 안에 온전히 머물 때, 우리는 그 거친 파고를 견디고 물결 위를 걸어갈 수 있습니다.

2. 도마의 의심을 녹인 만져주시는 사랑(24-29절)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의심 많은 도마를 대하시는 주님의 세밀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만져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는 도마를 꾸짖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8일 뒤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27절)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과 의심까지도 직접 어루만져주시는 분입니다. 이후 디베랴 바닷가에서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게 하시고, 손수 숯불을 피워 생선을 구워주신 '조반 서비스'를 제공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에게 밥을 차려주십니다. "내가 진짜 살아났다. 내가 여전히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증명해 보여 주십니다.

3. 성령의 불길

영국은 4개 국가로 구성된 연합국가입니다. 공식적으로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이라고 부릅니다. 잉글랜드(England), 스코틀랜드(Scotland), 웨일스(Wales),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4개 국가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작은 나라인데 뭘 거창하게 대영제국이라고 하나 할 정도로 크지 않은 나라입니다. 4개지역 다 합친 대영제국 인구도 7,000만명에 못 미칩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대영제국이라 할까요? 알아주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이름으로라도 한때 선교를 주도한 강국이라는 자존심의 명맥을 유지하려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쉬신 이 '성령의 숨결'을 마신 사람들은 역사를 바꿉니다. 리워야단 같은 혼돈이 유럽을 덮쳤던 5~6세기, 부활의 기동력으로 일어선 두 거인이 있습니다.
성 패트릭(387-461)은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당시 로마 시민권자로 성직자의 자제입니다. 그는 우연히 아일랜드 야만인 켈트족인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노예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는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꿈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적적으로 탈출합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노예로 삼았던 원수의 땅인 아일랜드로 다시 들어갑니다. 당시 우상인 '태양상'이 지배하던 그 땅에서, 패트릭은 부활절 전야에 왕의 명령을 어기고 언덕 위에 거대한 '부활의 불'을 피웠습니다. 그 불은 아일랜드 전역을 복음화하는 성령의 불길이 됩니다.

성 콜럼바(521-597)는 아일랜드의 왕족이었으나 기득권을 버리고 12명의 제자와 함께 가죽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스코틀랜드로 건너 갑니다. 그는 직접 농사를 짓고 수도원을 세우는 '텐트 메이커'로서 야만적인 땅에 복음을 심습니다. 이후 스코틀랜드는 기독교 강국이 됩니다.

이들은 어떻게 칼 든 원수들과 창일하는 하수 같은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았겠습니까? 도마의 손을 잡아주시고 생선을 구워주신 예수님의 그 세밀한 사랑이 그들 안에 '성령'으로 살아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패트릭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미개한 아일랜드로, 개종된 콜럼바는 고향 아일랜드에서 다시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이후 스코틀랜드와 영국은 기독교 강국이 됩니다. 동시에 대영제국으로 발돋움합니다.

로마가 제국으로 군림할 시, 초기에는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때로는 극에 달합니다. 이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한 믿음의 선진들로 인해 로마는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하게 됩니다. 로마 제국은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믿어도 된다"라고 공인하고,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만 믿어야 한다"라고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합니다.

한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초 강대 패권국이었습니다. 영국의 패권을 이어받은 나라가 미국입니다. 영국 국교회의 탄압을 피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건국한 미국이 세계 선교 역사를 주도합니다. 기독교 강국이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패권국으로 등장합니다. 한때 영국은 인도를 선교한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1834)를 위시한 선교사를 파송하는 세계 선교 강국이었습니다. 이후 미국이 바톤을 이어받아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선교 강국이 됩니다. 조선에 이어 대한민국도 기독교 원리 위에 건국되어 70년간 성장과 번영을 구가해 왔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선교 강국의 반열에 위치합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은 전세계 선교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삶의 터전에서 tent maker사역자로서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도록 이를 위해 성령 충만함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활절을 맞아 우리 가정에 역사하실 주님의 손길이 뭔지? 현재의 고난이 주는 의미는 뭔지? 나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세계 선교 역사가 주는 교훈은 뭔지? 우리 심령에 새롭게 조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절은 단순히 2,000여년 전의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2026년 부활절을 맞아 우리는 부활이 주는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1. 우리 심령에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이 제 마음에 온전히 임하시도록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는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세상의 환난과 정치적 어둠 속에서도 우리들에게 찾아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선포하시는 음성을 듣게 하시고 우리 마음의 빗장을 열고 부활의 주님을 심령에 온전히 모셔 들여야 합니다.

2. 성령 충만한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활의 숨결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온전히 임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내쉬신 성령의 숨결이 우리 삶터에 가득한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불의한 시대에 불안해하기보다는 성령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므로 평강이 우리 지배하도록 간구하고 영적으로 투쟁해야 합니다.

3. 도마에게 옆구리를 내어주신 그 따뜻한 사랑이 오늘 우리들의 삶과 비즈니스 현장에도, 우리 삶에도 동일하게 임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부활하셔서 우리를 위해 숯불을 친히 피워주시는 주님의 세밀한 사랑을 체험하는 우리들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당장 응답이 없어도 응답하실 주님을 신뢰하며 기도로 확신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 도마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와 성령 충만함이 늘 함께하시기를 강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