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고난을 승화한 영광의 왕 [마태복음 1:1, 17]

고난을 승화한 영광의 왕

마태복음 1:1, 17, 시편 22:1,14-18, 23편, 이사야 53:5-7

마태복음 1장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시편 22편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편 23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사야 53장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오늘은 주님께서 인류의 죄를 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복음서를 시작하며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족보'를 가장 먼저 꺼내 듭니다. 1절은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이 한 구절에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하나는 창세기 12장에서 '복의 근원'으로 부름받은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또 하나는 사무엘하 7장에서 '영원한 왕위'를 약속 받은 다윗의 언약입니다. 마태는 이 족보를 통해 예수님이 우연히 오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설계와 약속 아래 오신 '약속의 메시아'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CEO중에 000라는 분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반도체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드시킨 명문대 출신의 경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이 분은 자신의 방에 들어와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들을 다시는 들여보내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CEO들은 거의 100% 자신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비판하면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축에 들까요?

1. 숫자 14에 새겨진 다윗의 이름과 은혜의 혈통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마태복음 1장 17절을 보면 흥미로운 숫자가 반복됩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까지 14대, 그 후 그리스도까지 14대입니다. 실제 역사적인 대수는 이보다 많지만, 마태는 의도적으로 '14대'라는 숫자에 맞춥니다. 왜 이렇게 의도적으로 맟출까요?

히브리어는 철자마다 숫자가 배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이 점(.)으로 모음 역할을 하게 합니다. 다윗(David)의 히브리어 철자는 모음 없는 자음만의 DVD로 4+6+4의 합이 바로 '14'입니다. 마태는 족보의 마디 마디 마다 "보라, 이 분은 약속된 다윗의 자손, 진짜 왕이시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마태가 성경을 잘 몰라서 14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찬란한 왕의 족보에 충격적인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시아버지 유다를 속인 다말, 이방 여인이자 기생이었던 라합, 천시받는 모압 여인 룻,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이는 다윗의 아내로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인의 이름이 족보에 오르는 것도 매우 이례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부도덕하고 불의하거나 이방인이었던 이런 여인들을 부각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자격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임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권력자나 권세자처럼 자기 의를 자랑하는, 인간적으로 고결한 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들에게 왕의 대로가 열린다는 선포입니다. 인간은 자랑할 것이 없다는 대 선포이며 동시에 오직 우리 모두는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마태는 작정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 마태는 족보를 통해 진정한 왕의 혈통을 입증합니다. 반면 다윗은 시편을 통해 만왕의 왕께서 걸어가실 고난의 길을 예고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12 제자이므로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것임을 당연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주님 오시기 1000여년전 어떻게 그것을 알았을까요? 시대를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함으로 성령님께서 친히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으로 하여금 그렇게 고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태 복음 1장에 등장하는 4명의 여인이나 다윗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흠이나 실수나 과오가 많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이라도 오직 은혜로 사용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만방에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2. 시편 22편의 절규에서 23편의 찬양으로

시편 22편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편 22편의 고난,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1절). 이 고백은 다윗의 고통인 동시에 십자가 위에서 수난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절규입니다.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16,18절). 다윗은 성령의 감동으로 1,000여년 뒤에 오실 자기 후손의 수난을 미리 내다봅니다.

놀랍게도 22편의 처절한 고난은 23편의 벅찬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시편 23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시22편)를 통과한 자만이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시23편)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됩니다. 마치 저희 가정이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완전히 망가졌다가 회복되듯이 말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 역시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의 목자가 되실 것을 다윗은 미리 노래한 것입니다. 고난은 잠시지만, 그 뒤에 올 찬양은 영원함을 말해줍니다.

3. 이사야가 목격한 고난받는 왕

다윗의 예언은 다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구체화됩니다. 이사야 53장은 고난 당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사진 찍듯 묘사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왕의 족보를 가지고 오신 예수님께서 왜 찔리고 상하셔야 합니까? 족보에 기록된 다말과 라합, 그리고 오늘날 우리와 같은 죄인들의 허물을 덮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권세나 권력은 힘으로 우리들을 위협하고 억압합니다. 진정한 왕이신 우리 왕 예수님은 자기 몸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치유하시고 영생으로 구원하십니다. 이사야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가 '영광의 왕'이기 이전에 '고난의 종'으로 오실 것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그분의 오심이 우리에게 진정한 복음이 됨을 부각합니다.

오래 전 어느 나라에 정의로운 왕이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법을 어긴 죄인들이 너무 많아 감옥이 가득 찹니다. 왕은 고민 끝에 한 가지 결단을 내립니다. 죄인들을 사면해주는 대신, 그들의 죄 값을 대신 치를 자의 이름을 죄인 명부에 올리기로 한 것입니다. 왕의 아들 왕자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다말과 라합 같은 죄인들의 이름 옆에 적어 넣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어떻게 왕의 아들이 저런 추한 자들과 함께 족보에 적힐 수 있는가?" 그러나 왕자는 말합니다. "내가 그들의 족보 속으로 들어가야, 그들이 나의 왕가(王家)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자 하나님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들 세상에 이렇게 낮아지셔서 오신 것입니다.

19세기, 하와이의 몰로카이 섬은 한때 한센병(문둥병) 환자들이 격리되어 죽어가는 절망의 땅입니다. 당시 그곳은 리워야단이 지배하는 듯한 죽음의 수용소와 같습니다. 벨기에 출신의 다미안(1840-1849)신부는 그들을 돕기 위해 섬으로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환자들이 그를 경계합니다. 깨끗한 몸을 가진 그가 자신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미안 신부는 매일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저들과 진정으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러던 어느 날, 다미안 신부는 끓는 물을 발에 쏟았는데도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고 그 자신이 한센병에 걸렸음을 직감합니다. 그날 주일 예배에서 다미안 신부는 평소처럼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라고 하지 않고, 이렇게 외칩니다.

"나의 사랑하는 '동료 문둥이' 여러분(My fellow lepers)!"

그는 스스로 환자들의 족보(명부)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들과 같은 병을 몸에 새깁니다. 그제서야 환자들은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것 훨씬 이상이 예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입니다. 우리들을 향하신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단순한 이름의 나열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같은 죄인의 명부, 족보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오신 '낮아짐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족보에 들어오셨기에,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얻게 된 것입니다.

부활의 주간, 우리는 진정한 왕을 마음껏 맞이해야 합니다.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마태가 증거한 14대의 숫자 속에 담긴 다윗의 이름, 그리고 그 계보에 흐르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족보에 어떤 얼룩이 있더라도, 주님께서는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친히 그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이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우리들만의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 너머를 바라보고 힘을 내야 합니다. 시편 22편의 절규가 23편의 찬양으로 바뀌었듯, 지금 우리의 고난은 반드시 부활의 영광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14대 속에 새겨진 다윗의 자손 예수의 이름은 영원히 변치 않는 승리의 깃발입니다.

다윗은 허물이 누구보다 많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크게, 위대하게 쓰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실수하지 않거나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허물을 다 들고 하나님께 있는 모습 그대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돌아보아 달라고 간구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이런 다윗 왕에게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다윗아! 네(다윗) 아들 솔로몬은 내 이름을 위하여 집(성전)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고백과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린 모두 허물이 많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 울부짖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이사야 53장의 찔림을 묵상하며 시편 23편의 찬양을 준비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의 모든 고난을 뚫고 승리의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맘을 다해 영접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을 정하여 간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다짐으로, 무엇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분은 누구일까요?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어떤 분이실까요? 5만번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1805-1898)는 무엇을 하던 하나님께 성령님을 의지하므로 기도 응답을 확신하면서 기도로 나아갔다고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1. 다말과 라합 같은 죄인의 족보 속에 친히 이름을 올리신 주님의 낮아지심과 은혜에 감사합니다. 내 삶의 얼룩진 조각들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빚어 주옵소서. 매사에, 범사에 기도로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2. 현재 시편 22편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간절히 바라보는 우리들의 형편을 돌아보사, 우릴 붙들어 주시고, 시편 23편의 푸른 초장에서 목자 되신 주님을 찬양하는 기쁨으로 회복시켜 주옵소서. 이 나라를 하나님의 공의로 재건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우리 자매를 완벽하게 고쳐 주옵소서. 그날이 곧 도래하게 하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옵소서.

3. 고난주간을 지나며 우리를 위해 상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하옵소서. 다가올 부활절과 부활의 계절에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 글로벌 공동체 지구촌에 하나님 공의가 회복되는 승리의 나팔 소리를 듣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