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흩으시는 폭풍과 모으시는 나팔 [이사야 27:7-13]

흩으시는 폭풍과 모으시는 나팔

이사야 27:7-13

7. 주께서 그의 백성을 치셨던들 그의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던들 백성을 죽인 자가 죽임을 당함과 같았겠느냐
8.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
9.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숴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10. 대저 견고한 성읍은 적막하고 거처가 황무하며 버림 받아 광야와 같은즉 송아지가 거기에서 먹고 거기에 누우며 그 나무 가지를 먹어 없이하리라
11.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들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이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
12.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
13.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최근 미국은 각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알아서 협상하여 자국의 원유를 수송하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지켜주었는데 이제부터는 원유가 필요한 각국이 알아서 하라는 지침을 전달한 것입니다. 이사야 27장의 후반부는 징계와 심판, 그리고 궁극적인 회복의 대서사시를 보여줍니다. 4월 5일 부활절을 향해 나아가는 이 시점에서, 오늘 본문은 '죽음 같은 포로 생활에서 생명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부활의 예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을 2주 앞두고 사순절의 막바지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셨던 것처럼,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현재 우리들 역시 전쟁과 에너지 수급 문제라는 거친 고난의 광야에 서 있습니다. 이런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하기에 치시는 손(7-8절)

7. 주께서 그의 백성을 치셨던들 그의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던들 백성을 죽인 자가 죽임을 당함과 같았겠느냐

8.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

7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주께서 그의 백성을 치셨던들 그의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느냐." 세상을 보십시오. 리워야단(불법과 부정과 선동) 세력들이 승승장구하는 것 같고, 진실을 말하는 성도들만 매를 맞는 것 같아 억울하십니까? 하지만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드는 '매'와 악인에게 내리시는 '심판의 칼'은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말입니다. 악인을 향한 칼은 멸절을 위한 형벌이지만, 우리를 향한 매는 생명을 위한 견책입니다. 8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적당하게 견책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적당하게'란 원어로 '치수(measure)에 맞게'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만큼만 정확히 계산해서 허용하십니다.

동풍 부는 날은 동쪽에서 바람이 오는 날 그 백성을 옮기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할 세력이 동쪽에서부터 온다는 비유입니다. 동쪽은 앗수르 제국이나 바벨론 제국 등이 위치한 곳입니다. 이 동풍은 초목과 샘을 말리는 열기가 동반된 것으로 큰 고통과 치명적인 해를 가할 수 있는 성질의 바람을 말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동풍이 올 때 동풍보다 더 강력한 폭풍으로 그 백성을 미리 옮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대한민국이 6.25 전쟁으로 전국이 거의 대부분 공산당에 점령을 당할 시, 고향 땅을 다 버리고 국민들이 김해 평야 지대로 피난을 가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했던 까레이스키(고려인)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까?

1937년 소련 독재자 공산주의자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한인들이 있습니다. 강제 이주를 당했던 한인들은 까레이스키(고려인)들로 이들의 역사 속에는 눈물겨운 광야의 신앙이 깊게 뿌리 박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환난 속에서도 신앙의 등불을 끄지 않았던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들은 연해주 시절부터 시작된 복음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1937년)를 당하기 前, 연해주 지역은 이미 한국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거점이 됩니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연해주에서 활동하며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입니다. 1910년대 이미 연해주에는 수십 개의 한인 교회가 세워졌고, 성경 공부와 예배가 활발합니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 명령으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황무지에 버려졌을 때, 그들은 생존을 위해 땅을 파서 토굴을 만듭니다. 공산주의 치하의 삼엄한 감시와 생존의 위협 속에서도, 성도들은 그 좁고 어두운 토굴을 '밀실'로 삼아 믿음으로 견뎌냅니다. 성경책은 빼앗기고 불태워졌지만,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외우고 있던 성경 구절과 찬송가를 자녀들에게 귓속말로 전하며 신앙을 계승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이사야가 말한 "밤낮으로 간수하시는 하나님의 포도원"의 실사 판입니다.

고려인들은 이사야 27장 8절 말씀처럼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옮겨진" 백성들입니다. 죽을 줄로만 여겨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더욱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고난의 폭풍은 그들 안의 인본주의와 안일함을 씻어냈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순금 같은 신앙을 빚어내게 합니다. 소련 붕괴 후 중앙아시아 지역에 선교사들이 들어갔을 때, 놀랍게도 곳곳에서 숨어있던 고려인 신자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선교사들을 보며 "하나님이 우리를 잊지 않으셨다"고 울며 고백합니다.

리워야단 같은 독재 권력에 의해 짐차에 실려 척박한 땅으로 흩어졌던 그들은 이사야 27장의 '폭풍으로 옮겨진 백성'과 같았습니다. 그들이 살아남을 것이라고는 그들을 보내는 자들도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남부 지방은 상대적으로 겨울에도 연해주 지역보다는 겨울에 훨씬 덜 춥습니다. 이럼에도 남부지방에서 조차도 겨울이 오면 동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시베리아 연해주에 버려진 우리 고려인들이 살아 생존하리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스탈린 조차도 고려인들이 생존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리워야단 같은 스탈린 공산 권력이 그들을 흩었으나, 그들은 그 척박한 토굴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주파수를 놓지 않습니다. 성경책 한 권 마음 놓고 펼칠 수 없는 감시 속에서도, 그들은 이사야 26장의 말씀처럼 '밀실의 문을 닫고' 주님의 분노가 지나가기까지 기도하며 견뎠습니다. 그 폭풍이 그들을 명품 나무로 빚어냈고, 오늘날 중앙아시아 복음화의 귀한 밑거름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지금 한창 시련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고려인들의 그 끈질긴 신앙이 우리에게도 흐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나하나 기억하시며, 반드시 예루살렘 성산의 예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까레이스키(고려인)들의 역사는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백성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표징입니다.

지금 지구촌 전세계를 덮친 부정과 법치의 붕괴라는 어둠의 폭풍은 우리를 죽이려는 바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폭풍을 이용해 우리를 "옮기셨느니라(8절)"고 선포하십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이 이스라엘을 정화의 땅으로 옮겼듯, 지금의 시련은 우리를 안일함에서 깨워 '진실의 자리'로 옮기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주권입니다.

2. 우상이 파괴되어야 움이 돋는다(9-11절)

9.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숴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10. 대저 견고한 성읍은 적막하고 거처가 황무하며 버림 받아 광야와 같은즉 송아지가 거기에서 먹고 거기에 누우며 그 나무 가지를 먹어 없이하리라

11.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들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이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이 폭풍 속에 두셨을까요?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숴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징계의 목적은 '정화'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견고하게 서 있던 현대판 우상들, 권력에 대한 탐욕, 물질 만능주의, 거짓과 야합하는 타협의 정신, 이런 것들이 부숴진 횟돌처럼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9절 야곱의 불의는, 즉 야곱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로 그 백성들의 죄악을 말합니다. 그들의 죄를 씻는 결과가 '제단의 돌을 부숴진 횟돌 같게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우상뿐 아니라 그 체제를 지탱하던 거짓된 이데올로기의 철저한 파괴를 뜻합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무너진 동독의 우상이라는 실화가 있습니다. 냉전 시대, 동독은 철저한 유물론과 감시 체제로 견고한 성읍을 쌓습니다. 하나님 대신 국가와 이념을 '태양상'처럼 숭배하게 합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수십 년간 권세를 부리던 사회주의 통일당의 거대한 동상들이 시민들에 의해 부서져 '횟돌'처럼 가루가 됩니다. 인간이 쌓은 견고한 성읍인 이념체제가 하나님을 대적할 때, 10절 말씀처럼 그 거처는 적막해지고 황무하게 됩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권력의 중심지에 잡초가 자라고 짐승이 드나드는 폐허가 되는 것은 역사의 필연입니다

리워야단(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를 부정하는 세력)의 안개 속에 세워진 거짓의 성읍들은 영원할 것처럼 보입니다. 저들이 아무리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전산망으로, 해킹으로 성벽을 쌓고 법치라는 족쇄로 문빗장을 걸어도, 하나님이 흔드시면 그 견고한 성읍은 송아지가 눕는 광야가 될 뿐입니다. 언젠가 조작과 공작과 선동은 드러나 불에 타 사라지고 진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11절은 '지각없는 백성'을 마른 가지에 비유하며, 창조주조차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신다고 경고합니다. 아주 무서운 경고입니다. 농부가 포도원을 가꾸는데, 어떤 가지들은 뿌리로부터 오는 수액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뽐내며 뻗어나갑니다. 결국 그 가지들은 잎은 무성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라 죽습니다. 농부는 그 마른 가지들을 가차 없이 꺾어 땔감으로 쓰도록 내줍니다. 가지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농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그 가지들은 농부의 수고와 목적을 깨닫지 못하는 '지각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지각(Understanding)'이란 피조물이 창조주의 위치를 아는 것입니다.

위정자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망각하고 '지각없는 백성'처럼 행동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은혜를 베풀지 않는 마른 가지'로 취급하실 것입니다. 지각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영적 무지입니다. 리워야단이 아무리 똑똑한 척 야합(연합)해도, 하나님의 지각이 없으면 그들은 결국 불사름을 당할 마른 가지에 불과할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종교개혁과 느후스단"(9절) 9절의 '제단 돌을 부수는 것'을 가장 잘 실천한 역사적 사례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유다를 통치하면서 산당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립니다. 특히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이 어느덧 우상이 되어 백성들이 분향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부수어 '느후스단(놋조각)이라 부릅니다(열왕기하18:4)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귀한 '제단 돌을 부수는 행위'를 한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은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치는 기적을 베푸시게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살길은 '느후스단'을 부수는 것입니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거나, 거짓된 시스템을 우상처럼 섬기는 마음을 부숴진 횟돌처럼 가루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움(싹)이 새로 돋게 하십니다.

부활절이 2주 앞으로 다가옵니다. 이사야 53장과 시편 22편에서 묘사된 예수님의 고난은 많은 부분 overlap됩니다. 시편22편은 다윗의 고백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1000여전 다윗은 어떻게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찔림과 상함은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한 '필연적인 견책'입니다. 나아가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면서 전적으로 지켜주심을 마음껏 찬양합니다. 주님이 그 고난의 폭풍을 통과하셨기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안의 불신과 우상이 파괴될 때 비로소 6절 말씀처럼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꽃이 피는" 부활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비유로 하는 말입니다. 5병2어는 기적이지만 기적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창조주의 능력이 있음을 알리시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므로 믿고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믿고 그대로 선포하면 반드시 주님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3. 큰 나팔 소리와 하나하나 모으시는 부활의 소망(12-13절)

12.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

13.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12-13절은 웅장한 승전보를 울립니다.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덩어리로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포로지에 흩어진 백성들을 마치 귀한 열매를 하나씩 정성껏 줍는 농부처럼, 각자의 눈물을 아시는 주님께서 개별적으로 부르십니다.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 귀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완성될 부활의 사건을 예표합니다.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13절)." 마태복음 24장 31절에서 약속하신 그 나팔 소리입니다.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죽음과 절망(앗수르와 애굽)의 땅에 흩어졌던 영적 이스라엘인들이 부활의 권능으로 다시 모여 함께 예배하는 날이 옵니다. 리워야단(부정과 암흑)의 모든 거짓은 무너지고, 진실을 파수한 성도들이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는 그 영광의 아침이 온다는 것입니다.

12절의 "하나하나 모으시리라"는 말씀은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생명의 명부에 기초한 구원입니다. 12절, 창일하는 하수는 유프라테스 즉 앗수르와 바벨론에서 애굽 시내, 나일강 지류 까지라는 표현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영토의 최대 범위를 상징합니다(15:18).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카 쉰들러(1908-1974)는 나치의 학살 위기 속에서 유대인들을 구해내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명단을 작성합니다. 그 유명한 '쉰들러 리스트'입니다. 그는 수천 명의 유대인을 '덩어리'로 구한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리스트에 적어 넣으며 그들의 생명 값을 지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리워야단의 압제 속에 흩어진 자기 백성들을 '쉰들러의 리스트'보다 훨씬 더 정교한 생명책을 따라 하나하나 찾아내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무더기로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과실을 떠는 농부가 땅에 떨어진 귀한 열매 하나를 정성껏 줍듯이, 앗수르와 애굽 같은 절망의 땅에 흩어진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시며 모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리스트에는 결코 누락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13절의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는 말씀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모여드는 양들의 본능과 연결됩니다.

중동의 한 목자가 광야에서 양을 칠 때, 저녁이 되면 특유의 나팔이나 종을 울립니다. 이때 신기한 광경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사방으로 흩어져 풀을 뜯던 양들이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목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옵니다. 다른 목자의 나팔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던 양들이 자기 목자의 '큰 소리'에는 즉각 반응하는 것입니다. 큰 나팔 소리는'소유권의 확인'입니다. 멸망해가던 자들, 쫓겨난 자들이 돌아오는 이유는 그 나팔 소리가 자기들을 살릴 목자의 음성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운 소음(거짓 언론, 선동)을 내뿜어도, 하나님의 백성은 마지막 날 불려질 '큰 나팔 소리'를 분별합니다. 그 나팔 소리는 우리를 심판대로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산의 예배로 초대하는 부활의 소식입니다."

리워야단(악)의 세력들은 조작과 선동으로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창일하는 하수(전 지구적 혼란)'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을 '하나하나(Individual counting)' 정확히 세고 계십니다. 인간의 알고리즘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생명의 카운팅은 단 한 명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 분이 나팔을 부시는 날, 조작된 숫자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주님이 직접 세신 진실한 자들만이 성산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정치적 혼란, 법치의 파괴, 선거 부정의 어둠은 어쩌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연단과 견책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고, 공의보다 이익을 쫓았던 죄를 씻어내기 위해 하나님은 잠시 폭풍을 허락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는 요동치고 있습니다. 2022년 발발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을 포함하면 현재 제 3차 세계 전쟁 중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전쟁의 양상 패턴이 hybrid로 바뀐 것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이 하는 임무는 “달러 결제(swift)만 지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통행하는 각국 선박의 안전과 해상 통로를 보호하는 군사 mission입니다. 실제로 중국, 인도, 일본, 한국이 최대 수요자인 것입니다. 반면 미국이 호르무즈를 통해 직접 들여온 물량은 미국 전체 석유화합물의 2% 정도에 불과합니다. 미국이 호르무즈를 지킨 이유는 미국, 그 동맹국, 세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함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가 처한 대내외적 현실이 비록 동풍 부는 날의 폭풍처럼 매서울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실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훈련을 받고 있으며, 더 좋은 곳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는 새롭게 결단해야 합니다.

1. 하나님 앞에 진솔하게 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진솔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결한 신부로 고백해야 합니다. 매일 무시로 매달려야 합니다.
2. 폭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시다. 리워야단(악)의 안개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다림줄이라는 나침반을 붙들어야 합니다. 폭풍은 우리를 더욱 빛나는 명품으로 빚을 것입니다.
3. 찬양과 회복의 나팔 소리를 미리 선포해야 합시다. 고난의 심연에서 부활을 노래했던 다윗처럼,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고 외치며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과실을 떨 듯 우리를 하나하나 세고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부정과 온갖 불법의 실체가 드러나는 광명의 그 날, 우리는 "주님이 역사하셨다"고 외치며 승리의 개가를 함께 부를 것입니다. 그 날이 곧 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자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을, 우리 공동체를 지켜 주시도록 믿음으로 투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촌 공동체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도록 하나님 공의가 물이 바다를 덮듯이 충만하도록 간구하고 진력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