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4]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4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2.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3. 내가 내 아내를 가까이 하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4. 이는 이 아기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

1Moreover the Lord said to me, “Take a large scroll, and write on it with a man’s pen concerning Maher-Shalal-Hash-Baz. 2And I will take for Myself faithful witnesses to record, Uriah the priest and Zechariah the son of Jeberechiah.” 3Then I went to the prophetess, and she conceived and bore a son. Then the Lord said to me, “Call his name Maher-Shalal-Hash-Baz; 4for before the child shall have knowledge to cry ‘My father’ and ‘My mother,’ the riches of Damascus and the spoil of Samaria will be taken away before the king of Assyria.”

대학 시절, 당시 6세 정도되는 조카가 한번은 두개골 한 부분이 함몰되어 쏙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길에서 넘어져 두부가 충격으로 손상을 입은 것입니다.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게 보일 정도로 함몰된 외상이 충격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간혹 이 조카가 성질이 나면 나는 졸병을 하지 대장도 싫다고 반발합니다. 합리성을 떠나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본능적 감정이나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치욕 중의 하나는 앗수르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이방민족인 개보다 못한 이방인들에게 멸망을 당할 수가 있는가 하는 치욕적 평가입니다.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이 앗수르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하자 극렬하게 반발합니다. 요나는 극도로 성질이 나서 하나님을 피하고 말을 듣지 않고 도망갑니다. 그리고 앗수르 수도에 사실상 끌려가서 할 수 없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하나님께 대듭니다.

중동 지역은 낮에는 매우 덥고 밤에는 매우 춥습니다. 더운 낮에 하나님이 박 넝쿨을 드리워 요나에게 그늘을 제공하다가, 벌레를 보내 박 넝쿨을 말려 죽이자, 요나는 성깔을 부립니다. ‘하나님 더워서 죽을 지경입니다.’ ‘하나님 난 정말 앗수르가 멸망하기만을 바라는데 하나님은 왜 앗수르 니느웨 백성들을 구원하십니까?’ 요나는 하나님께 대듭니다.

본문에 있는 ‘마헬살랄하스바스’를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1. 흔들리는 유다와 인간적인 계산(1)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 이는 전 국민이 다 볼 수 있도록 큰 전광판 위에 누구든지 알아볼 수 있는 통용어로 기록하라는 말씀입니다. 긴박한 것이므로 전국민이 다 알아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길고도 생소한 이름 중 하나인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이름을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큰 서판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이 이름을 쓰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그리고 그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 이름을 실제로 부여하게 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자신의 아들 이름을 그렇게 불러야 해야 하듯이 시국이 너무나 엄중하다는 말입니다.

'마헬살랄하스바스' 이 이름의 뜻은 "노략이 속히 임함(Swift is the booty, speedy is the prey)"입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패망할 것이 훤히 보인다는 뜻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아빠, 엄마'라고 부르기도 전에, 즉 1~2년의 짧은 시간 안에 유다를 위협하던 북이스라엘 (사마리아)과 아람(다메섹)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할 것이라는 엄중한 예언입니다. 우리는 이 기묘한 이름 속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를 통해,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정한 '동맹'과 '지혜'가 무엇인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당시 남유다의 상황은 풍전등화 그 자체입니다.

아람(현재 시리아)의 르신 왕과 북 이스라엘의 베가(18대왕으로 20년간 통치) 왕이 연합하여 유다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이른바 '에브라임+아람 연합군과의 전쟁'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 형제국 북한이 1950.6.25 전쟁 때 중국 공산당을 끌여들여 남한을 침공하는 것과 유사한 패턴입니다. 이때 유다의 아하스 왕은 극한 두려움에 빠집니다. 성경은 그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다"고 기록합니다(이사야7:2).

이 위기 속에서 아하스가 선택한 길은 '하나님'이 아닌 당대 최강국 '앗수르'입니다. 그는 성전과 왕궁의 금을 내어주며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며 굴욕적인 외교를 자처합니다(열왕기하16:7).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이방 권력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가치가 큰 것은 금입니다. 강대국에 약소국이 환심을 사거나 굴욕적일 때 제공하는 첫째 것이 금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네가 두려워하는 그 연합군(아람+북이스라엘)은 곧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의지하는 앗수르가 결국 너까지 삼키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사야 7장의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예언과 짝을 이룹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하지만, 세상을 의지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마헬살랄하스바스'의 심판이 속히 임한다는 이중적 메시지입니다. 당시 유다가 처한 현실만을 바라보면 700년 이후 오실 임마누엘의 예수님을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선지자 이사야는 심판과 동시에 회복을 병행하여 보여 주십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이 아닌 회복에 있기 때문입니다.

2. 마헬살랄하스바스와 현대적 통찰(2-3)

2.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3. 내가 내 아내를 가까이 하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선지자 이사야는 진실한 증인으로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합니다. 마치 자유 민주주의 국가 국회에서 청문회를 통해 검증하듯이 말입니다. 진실한 제사장의 증언으로 인증하듯이 진실을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십시오. 미국발 25% 고관세 압박과 통상 압력은 마치 앗수르의 강력한 군대가 유다 국경을 압박하는 것과 같은 긴장감을 줍니다. 최근 거론되는 '쿠팡 사태'와 같은 기업 규제 이슈는 단순한 국내 문제를 넘어, 동맹국인 미국과의 신뢰 관계를 흔드는 뇌관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유다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합니다.

첫째, 신뢰의 근본을 점검해야 합니다. 아하스 왕은 앗수르를 '아버지'라 부르며 매달렸지만, 훗날 앗수르는 유다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유다를 아주 고통스럽게 압박합니다(역대하28:20). 국가 간의 동맹은 중요합니다. 특히 한미 동맹은 우리 안보와 경제의 근간입니다. 그러나 그 동맹의 핵심은 '서로의 약속과 가치'를 존중하는 신뢰에 있습니다. 신뢰를 잃은 외교, 동맹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태도는 결국 우리시대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경제적 노략과 심판을 자초하는 길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 내부의 분열과 불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이름을 '큰 서판'에 쓰라고 하신 이유는 온 백성이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유다 지도층은 하나님보다 강대국 눈치를 보기에 바빴고, 내적으로는 공의를 잃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외교적 위기가 혹시 우리 내부의 교만이나, 글로벌 표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규제, 혹은 동맹을 경시하는 안일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아님 다른 사상이나 불손한 의도로 동맹을 파괴하지는 않는지 우리는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3. 임마누엘인가, 마헬살랄하스바스인가?(4)

4. 이는 이 아기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

다메섹의 재물은 ‘아람’을 사마리아의 노략물은 ‘북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이 두 나라는 비슷한 시기인 아람은 BC732, 북이스라엘은 BC 722 앗수르에 의거 멸망을 당합니다.

이사야는 아들의 이름을 통해 심판을 예언했지만, 동시에 소망을 선포합니다. 이사야 8장 8절은 앗수르의 침략을 묘사하면서도 그 땅을 ‘임마누엘의 땅’이라고 부릅니다. 당대 최강국이면서 악랄한 앗수르가 침공하면 상대국은 초토화되던 시대입니다.

앗수르는 침공하여 정복하는 나라마다 인(사람)가죽을 벗겨 마을 어귀에 기둥을 만들어 극심한 공포로 적국을 지배하는 악한 시대입니다. 이는 마치 6.25때 부산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이 전부 북한 침략군의 손아귀에 넘을 갔을 때에도 대한민국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비전입니다. 비록, 심판의 물결이 목까지 차오를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들은 반드시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비하고 준비해야 할 것을 명확히 보여 주십니다.

  1. 정직한 증인의 자세: 하나님은 그 위기의 순간에 '진실한 증인' 우리야와 스가랴를 세우십니다(2절).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국제 사회에서 진실한 파트너로서의 미국과의 혈맹이란 동맹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기업에 대한 과도한 압박이나 불투명한 정책은 동맹의 분노를 사기 마련입니다.
  2. 두려움이 아닌 분별력: 아하스는 두려움 때문에 잘못된 선택합니다. 우리는 관세 폭탄과 외교적 압박 앞에서 비굴해지거나 반대로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됩니다. 냉철하게 국익을 살피되, 도덕적이고 정당한 가치를 세워야 합니다.
  3. 하나님께로의 귀환: 가장 중요한 대안입니다. 나라의 명운은 강대국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유다가 앗수르를 의지했을 때 도리어 앗수르에게 먹혔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7장에서 선지자 이사야 장남 ‘스알야숩’을 통해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비전을 주십니다. 동시에 8장에서 차남 ‘마헬살랄하스바스’를 통해 ‘노략이 속함, 약탈이 급함’ 이라는 경고를 하십니다. 이 두 아들의 이름은 결국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대 주제 안에서 완성이 됩니다.

어제는 예상치 못한 일로 심령에 평강이 사라져 힘들었습니다. 종종 다음에는 어떤 풍파가 밀려올지 염려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엄습해 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임마누엘하신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확신으로 평강의 지배를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시대의 서판에는 우리가 무엇을 쓸 것인가? 새겨보아야 합니다.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이름은 오늘날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세상의 힘에 눈이 멀어 창조주를 잊는 자들에게는 노략이 속히 임할 것이다."라는 경고를 우리를 계속 보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부족함을,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치열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겪는 위기는 단순한 경제적 풍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진정 무엇을 의지하며,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아왔는지를 묻는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위정자들은 동맹의 소중함을 깨닫고 신뢰를 회복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며, 우리 믿는 자들은 이 나라가 '마헬살랄하스바스'의 심판이 아닌 '임마누엘'의 보호를 받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얕은 꾀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말고, 우방과의 동맹을 더 견고히 하며 공의와 진실이라는 큰 서판 위에 하나님의 통치를 기록하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심판의 속도보다 하나님의 자비가 더 속히 임하기를, 그리하여 이 땅의 위기가 도리어 거룩한 회복의 기회가 되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해 요나에게 기쁨을 주셨다가, 벌레를 보내 그것을 거두어 가십니다. 요나는 박넝쿨 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희일비 하는 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도 하나, 하나 사건에 일희일비하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가장 큰 주제로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참 평강을 평안을 주시기 위해 고난도, 시험도 주시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께 대들듯이 하나님께 친밀하게 아뢰고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이시므로 우리의 모든 것을 들고 나아가 아뢰어야 합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는 일상이 되도록 늘 깨어 기도함으로써 투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