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에서 증인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손길
사도행전 26:1-23
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지난 1월 12일(월) 00구청에 접수한 상담원 서류에 하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고 담당 공무원과 소통하면서 심령이 매우 답답해집니다. 내용을 파악하고는 제가 관련 법령을 전혀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매도되어 곤혹을 치루게 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1개월 사업정지를 당할 수 있는 과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2000여년전 결박된 채 한 왕 앞에 서 있는 한 사람, 사도 바울을 만납니다. 바울이 서 있는 곳은 당시 로마 제국의 유대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총독 사령부 위치)의 당대 권력자 총독의 접견실입니다. 그의 앞에는 유대인의 전통과 율법에 능통하며, 헤롯 가문의 후손으로서 유대인의 피가 50% 흐르는 아그립바 왕이 앉아 있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고발한 유대인들과, 그 모든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그립바 왕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증언하고자 열변을 토합니다. 바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배어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당신은 유대인의 풍속과 문제를 아시는 분이기에 제가 다행히 여기나이다." 이 인사는 단순한 예우가 아닙니다. 복음의 진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준비된 청중', ‘들을 귀 있는 자’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뜨거운 열망입니다. 이 바울의 열정이 무엇을 말해 주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바울의 종교적 열심 인식 부족(1-11)
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그립바 왕은 헤롯 대왕의 증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2세(AD44-55?)입니다. 그 증조부 헤롯대왕은 예수님이 임마누엘로 구유에 오실 때, 메시야가 오는 것이 두려워 당시 베들레헴 지역 2세 아이들을 다 죽이는 매우 악독한 왕입니다. 자신의 왕권 유지를 위해 그 아들도, 그 아내도 살해하는 자입니다. 헤롯 대왕은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에돔’인으로 그 아내(왕비)는 유대인으로 맞이합니다.
바울은 지금 단순히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을 고발한 유대인들과, 그 모든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그립바 왕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증언하고자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배어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당신은 유대인의 풍속과 문제를 아시는 분이기에 제가 다행히 여기나이다." 바울은 먼저 자신의 철없던 시절의 부끄러운 과거를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4절부터 11절까지의 고백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입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9절)
바울은 솔직하게 시인합니다. 그는 예수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라고 '착각'했다고 고백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을 옥에 가두고, 그들을 죽일 때 찬성 투표를 던졌으며, 심지어 외국 성에까지 쫓아가 박해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바울이 그토록 잔인했던 이유는 그가 악해서가 아니라,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메시아가 고난받고 부활해야 한다는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을 향한 바울의 논조는 이렇습니다. "왕이여, 저 유대인들이 지금 나를 고발하듯, 저 또한 과거에는 무지함 속에서 예수를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 무지했던 제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2. 다메섹 도상에서의 빛과 부름(12-18)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바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일어납니다. 정오의 햇살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둘러쌉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늘에서 들리는 이 음성은 바울의 세계관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믿었으나,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이는 진리를 거스르는 삶이 얼마나 헛되고 고통스러운지를 단적으로 지적하는 것입니다. 가시채는 요즘 같은 농기구가 나오기 전에 농부가 밭을 갈 때 소 코에 코를 끼어 통제하는 철 채찍 같은 소의 뒷발 공격에 대비한 철제 도구입니다. 힘이 센 소가 밭을 갈 때 소도 성질이 나면 발로 자신을 부리는 농부를 향해 뒷발길질을 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밭을 가는 농부는 자신 앞에 쇠 조각이나 단단한 동물 뼈 등을 붙여 입힌 ‘가시채’로 방어하면서 소를 부립니다. 성질이 난 소가 뒷발질길 하면 할수록 소 자신의 발만 가시채에 차여 고통이 가중됩니다. 바울 자신이 딱 그 소에 해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무지한 열심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말해 줍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바울은 이 극적인 회심을 통해 자신이 '죄인'에서 '증인'으로 부름 받았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바울을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보내어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바울에게 주십니다. 바울의 변화는 인간의 결단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개입입니다. 왜 바울에게 주님께서는 이런 개입을 하셨을까요? 주님께서 바울의 열정을 선하게 turning하셔서 일꾼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이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도 바울의 회심 사건은 사도행전에서 9장, 22장, 26장에서 세 번(3회) 등장합니다. 이는 이 사건이 갖는 엄중한 비중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9장은 누가가 기록한 객관적 서술로 바울의 회심과 즉각적인 변화, 역사적 사실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22장은 바울이 유대인 군중에게 변론하는 것으로 유대교적 배경과 율법의 관점에서 본 정당성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26장에서는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으로 이방인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소명과 확신으로 설득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울 한 개인 한 사람의 변화가 어떻게 복음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전환점이 되었는지를 확증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임을 증명합니다. 결론은 천지를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여서 바울 같은 악동을 변화시키시고 복음 전파를 위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매우 중요한 사건은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남 유다가 멸망할 때,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을 당할 때, 동일한 사건이 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망치는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바벨론 군대가 잡아 시드기야 앞에서 그 아들들은 쳐 죽이고,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을 뽑고는 끌고 가며, 닥치는대로 제사장, 고관, 유다인들을 도륙합니다. 이 참상을 열왕기하 25장, 역대하 36장, 예레미야 52장에서 이 사건을 반복하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뼈아픈 교훈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열왕기하 25장은 유다가 왜 망했는가에 대한 신명기적 관점인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에서의 역사적 기록입니다. 역대하 36장은 멸망을 기록하면서도 마지막에 '고레스 칙령'을 배치하여, 심판 너머의 회복과 소망에 방점을 둡니다. 예레미야 52장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실함을 증거합니다. 이는 무서운 예언입니다.
성경에서 숫자 '3'은 하늘의 수이자 완전수로 통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사건의 3번 반복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확정성 (Certainty)으로 이 일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 아래 분명히 일어난 일임을 선포합니다. 증인 법적 원리로 성경은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라"고 합니다. 세 번의 기록은 그 사건이 반박할 수 없는 진실임을 법적으로 확증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철저한 교훈으로 "이 부분을 절대 놓치지 말라"는 강력한 주의와 환기(Attention)를 말하는 것입니다.
3. 모세와 선지자들이 증언한 소망(19-23)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의 설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22절과 23절입니다. 그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결코 유대교와 동떨어진 새로운 것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22절)
바울이 전하는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1.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
2.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실 것.
3.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파하실 것.
이것은 유대인들이 수천 년간 기다려온 조상들의 소망입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당신도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자로서 성경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심문을 받는 이유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앙모하던 그 약속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믿음의 완성임을 당당히 선포합니다.
바울은 결박된 사슬을 흔들며 아그립바 왕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19)” 바울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증인의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 무지함을 고백함으로써, 현재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깁니다. 그리고 동시에 아그립바 왕에게 묻습니다. "왕이여, 당신은 이 선지자들의 글을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사도행전 26:1-23은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이 끝난 후 벌어진 전도의 역사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가이사랴 감옥에 2년 동안 구금됩니다. 그 직후 로마로 압송되기 직전 아그립바 왕 앞에서 최후 변론을 하는 장면입니다. 26장의 배경은 유다 총독 벨릭스의 후임인 베스도 총독이 부임한 후, 아그립바 왕이 방문했을 때 가이사랴에서 바울이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들어가 복음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유대인들의 계략을 따 돌리고 보호를 받기 위해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재판해 달라고 항소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서는 이해가 안될 정도로 당시 로마는 공화정으로 민의를 반영하는 민주주의 법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를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잘 활용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황제(가이사)에게 상소한 이유는 단순한 신변 보호를 넘어선 전략적이고 사명적인 선택입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우리 역시 영적 무지함 속에 있지는 않는지요? 말씀을 보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아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가정에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나는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가족 모두 강건하고 편하게, 세상 사람들이 우릴 쳐다 보더라도 가족 모두 강건하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시면 안됩니까? 하나님을 믿으므로 주심을 신뢰하므로 우리가 하는 일이 무조건 잘되고 평강만이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바울의 간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가장 극심한 박해자도 가장 위대한 전도자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게 합니다. 사도 바울 그는 눈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증인'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 구원의 빛,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야 한다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역설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사도 바울처럼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도 아니고 바리새인도 아니고 미국 시민권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정신만은 본받아야 합니다. 어떤 삶을 살더라도 만나는 영혼을 긍휼히 여기며 믿음을 소유하도록 기도하고 전해야 합니다. 당장 기도 응답이 없더라도 우리 가정에 주시는 하나님 뜻을 구하면서 투쟁해야 합니다. 신실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계속 구해야 합니다.
관련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지금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우리는 실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반드시 다시 일어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남의 병은 기도로 잘 고쳤지만, 정작 본인의 몸에 있는 고통스러운 질병(가시)은 고치지 못합니다. 세 번이나 간절히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답하십니다. 그때 바울은 깨닫습니다. 자신이 약할 그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게 머문다는 비결을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12:9-10,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강한 능력이 우리 삶에 머무는 시간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바울은 감옥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도 처합니다. 그 안에서 동력자 실라와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오히려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그때 바울은 기도하고 찬송할 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감옥에서 석방됩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난 12일 밤에, 2년 전 2024년 00구청으로부터 받은 상담원 인증 날인 서류와 참고 자료를 SCAN하여 관련 자료와 함께 메일로 전송하고 13일 다시 확인을 하니, 문제가 된 4인은 등록된 것으로 확인이 된다고 합니다. 전산상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국가기관에 이런 일이 발행할까 생각하니 답답해 집니다. 해당된 관련 4인이 반응이 ‘2025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자료가 소실된 것 아닌가?’ 하고 저에게 반문합니다.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못한 일도 발생합니다.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는 일도 주님께서 계획하시면 전개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 일을 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주님께 맡기고 긍정적, 적극적으로 동행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이 풀리지 않아도 우리는 낙담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4:7-15에서 고백한 **'질그릇 안의 보배'**는 우리들에게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 중 매를 맞고, 굶주리고, 자지도 못하며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보잘것없는 '질그릇'에 비유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예수라는 보배' 때문에 결코 깨지지 않는다고 선포합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영 환경, 질고, 국제 정세, 무너지는 창조질서, 붕괴된 사회 정의, 당장 드러나지 않는 하나님의 공의 등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미래를 바라볼 때 우리의 염려는 끊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의 권세를 능히 이긴 주님을 신뢰하므로 천국 복음이 우리들의 심령을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강한 척 하지만 내면에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공포가 상존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들고 나아가 있는 그대로 고백해야 합니다. 저는 약합니다. 저는 걱정됩니다. 저에게 주님의 권능으로, 긍휼로 힘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평강이, 평안이 자신을 지배하여 달라고 외쳐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합니다. 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우리는 굳건함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함을 기도로써 간절하게 나아감으로써 주님께서 힘 주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약한 그때에 강함 되시는 주님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고, 이 시간이 영육간에 강건해지는 은혜와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바울이 가졌던 열정과 진심이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이 시기를 지나 정금같이 나아오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