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복음의 진리 [요한일서 1:5-2:2]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복음의 진리 요한일서 1:5 ~ 2:2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5This is the message which we have heard from Him and declare to you, that God is light and in Him is no darkness at all. 6If we say that we have fellowship with Him, and walk in darkness, we lie and do not practice the truth. 7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nd the blood of Jesus Christ His Son cleanses us from all sin. 8If we say that we have no sin, we deceive ourselves, and the truth is not in us. 9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just to forgive us our sins and to cleanse us from all unrighteousness. 10If we say that we have not sinned, we make Him a liar, and His word is not in us.

1My little children, these things I write to you, so that you may not sin. And if anyone sins, we have an Advocate with the Father, Jesus Christ the righteous. 2And He Himself is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and not for ours only but also for the whole world.

제가 어릴 때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손 두부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손 두부를 만드는 집이 있었습니다. 도시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아닌 산골이었지만 자급자족 형태로 요즘으로 치면 두부공장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제가 두부 집에서 두부를 손에 들고 아버지와 일꾼 작업자들이 일하는 산 기슭 작업장으로 가는데, 산 길에 미끄러져 두부를 못 먹을 정도로 흙이 두부 담은 통에 들어가 버립니다. 먹을 것이 별로 없던 그 시대에 이 손 두부는 아버지와 같이 일하시는 일꾼들이 드실 참(중간 식사)인데 생각하니 아찔하여 벌컥 겁이 난 저는 아버지께 거짓말을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저를 밀쳐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린 제가 왜 그랬을까? 하고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50년이 지난 시점에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에베소는 예루살렘에서 먼 거리에 있습니다. 요한은 유다를 멀리 떠나 에베소에서 예수님의 산 증인으로 살아 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의 말을 잘 믿지를 않습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그 진실을 전하고자 손수 편지를 씁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시 편지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요즘과는 달리 종이(지류)가 없는 시대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빛인 진리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사도 요한이 빛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하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빛이시라 (요일1:5-7)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도 요한이 전하는 메시지의 출발점은 성자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1:5)

빛은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어둠과 빛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영적 지식을 가졌기에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자랑했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방종과 죄악 가운데 있습니다.

이는 마치 곰팡이와 햇빛이 공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하실 구석에 핀 곰팡이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독한 약을 뿌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창문을 열어 환한 '햇빛'을 들이 쬐는 것입니다. 햇빛이 비치는 곳에는 곰팡이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미움, 시기, 음란이라는 어둠 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빛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보폭'에 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사귐이 일어나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우리 이 시대 20세기 빛과 같이 선교를 감당한 부르스 올슨(Bruse Olson)이라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부르스 올슨은 1941년 미국 미네소타 주, 루터교 집안에서 태어나 14세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합니다. 16세에 뉴기니어(호주 인근 큰 섬나라)에서 온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그는 선교사가 되기로 결단합니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하며 선교의 열정으로 19세에 베네수엘라를 거쳐서, 400년 동안 외부 사람이 들어가지 못했던 남미 콜롬비아 정글의 모틸던 부족에게로 들어가 복음을 전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기적, 잔인한 모틸던 부족은 접근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이 죽으면 표범에게 시체를 던져 주고, 나이 많은 노인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정글을 헤치고 들어간 부르스 올슨 선교사는 화살을 맞고도 탈출하여 치료를 받고 다시 정글로 들어갑니다. 붙잡혀서 매를 맞고 창에 찔리며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는 빛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의 권세를 믿습니다. 모틸던 부족들은 그의 얼굴에 늘 기쁨이 있는 것을 신기하게 여깁니다. “이 사람이 이 밀림에 왜 왔는가?” 호기심이 생긴 원주민들은 부르스 올슨 선교사와 교제를 하면서 하나 둘씩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후 원주민들은 고아들을 스스로 돌보며, 노인들까지 돌보는 역사로 변화를 받습니다. 원주민 부족 마을에 최초로 보건소와 학교가 세워집니다. 자기 부족만 아니라 이웃 부족까지 돌보게 됩니다. 포악했던 부족 마을이 복음의 센터가 되어 인근 지역을 변화시킵니다. 한번은 부르스 올슨 선교사가 반군의 총을 맞고 붙잡힙니다. 4개월 동안 묶여 지냈지만 웃음을 잃지 않자 반군들이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요? 왜 이 정글에 들어와 있소?” 라고 묻자 그들에게도 웃으며 복음을 전합니다. 요리법도 가르쳐주고, 글도 가르쳐주고, 치과 진료도 해줍니다. 그러자 얼마 후 게릴라 같은 악한 요원 120명이 변화되어 전원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부르스 올슨 선교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그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매일 “하나님 오늘 저는 살아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당신에게 잘 쓰임 받겠습니까? 저는 밀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것은 하나님 이십니다. 혼자서는 결코 이곳에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 혼자서는 온갖 문제들, 끝없는 괴로움, 위험과 싸워 이겨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한 임재를 체험하지 못했더라면 집을 떠나는 일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저를 위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함께 했기에 잔인한 부족을 변화시키고 복음의 타운으로 만든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라고 고백합니다.

브루스 윌슨이 위대한 것은 외부 세계와 전혀 접촉이 없었을 뿐 아니라 철저하게 배타적인 모틸론 종족에게 그들의 문화유산을 인정해 주면서 복음을 전하여 주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빛으로 영접한 장본인 입니다. 그도 그 빛에 반사되어 광명의 천사로 밀림에 들어가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자기 힘이 아닌 주님의 빛이 그를 빛나게 하신 것입니다.

2. 정직이 거룩의 시작이다 (요일1:8-10)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1:8)

당시 이단인 영지주의자들의 치명적인 오류는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므로 죄가 없다" 혹은 "죄를 지어도 영혼은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요한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1:8) 영지주의 이단은 인간의 죄악을 부정하고 그들은 죄와 무관하다고 주장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어느 정도 되면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본성과 죄를 짓지 않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죄성은 성경 말씀이 증거이듯이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롬3:10). 그러므로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은 이러한 성경의 모든 교훈을 부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의와 공의로 진실한 분이시기 때문에(시89:14)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히6:18).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롬3:23). 시편에서도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53:2,3)라고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대저 우리는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64:6),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렘17:9-10)라고 하여 인간의 죄의 보편성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거짓말쟁이며(요8:44), 사람은 모두 거짓된 존재이나 하나님은 참되시다(롬3:4). 사단과 인간은 진실을 가장하나 그 내면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10.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에 해당하는 ‘로고스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로고스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요1:14). 죄가 없다는 이단들의 주장은 선포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 전체를 부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그 안에 없는 자들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죄를 안 짓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가장 정직하게 대면하는 사람입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선명하게 보이듯,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자신의 추함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복음의 소망이 있습니다. 9절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약속 중 하나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9)

한 아이가 거울을 깨뜨리고는 아이는 부모님께 혼날까 봐 깨진 조각을 침대 밑에 숨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조각에 발이 찔릴까 봐 두려워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결국 아이는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합니다. 아버지는 화를 내는 대신 아이의 발을 살피고, 위험한 유리 조각을 치워줍니다. 우리의 죄를 숨기는 것은 침대 밑에 유리 조각을 두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백'하는 것은 항복이 아니라 '치유의 시작'입니다. 미쁘신(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고백을 멸시치 않으시고 우리를 깨끗케 하십니다.

3. 우리의 대언자 화목제물 예수 그리스도 (요일2:1-2)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이제 요한은 이 편지를 쓰는 궁극적인 목적을 밝힙니다.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복음은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면죄부가 아닙니다. 복음은 죄를 이길 힘을 주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하여 다시 넘어질 때, 사단은 우리를 참소합니다. "네가 그러고도 목사냐? 네가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냐?" 그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1)
'대언자'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 즉, 곁에서 돕기 위해 부름 받은 분(변호사)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법정에서 우리의 죄를 변호하십니다. 그런데 그 변호 방법이 세상적인 것과는 판이합니다. "얘가 사실은 착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라고 변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손과 발의 못 자국을 보여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이 사람의 죄값은 제가 십자가에서 이미 다 치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자신의 몸을 깨뜨려 허무신 것입니다. 이 은혜는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함입니다. 너무 쉽게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인지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한 것은 공짜로 공급하십니다. 만인에게 빛과 물과 공기를 공급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했던 '우리 곁에 오신 빛'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한 화가가 있습니다. 윌리엄 홀먼 헌트(1827–1910**)**는 요한계시록과 요한일서의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이 문밖에 서서 두드리는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그림을 보고 지적합니다. "이보게, 문고리가 빠졌네 문고리가 없어서 문을 열 수가 없지 않은가?" 그때 헌트가 대답합니다. "이 문은 마음의 문이라네. 문고리는 안쪽에만 달려 있지. 밖에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강제로 열고 들어오지 않으시네. 우리가 안에서 빗장을 열 때 비로소 그 빛이 우리 삶 전체를 비추게 된다네."
오늘 우리는 사도 요한이 노년에 간절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편지, 요한일서를 통해 복음의 핵심을 마주합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외부의 박해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바로 '영지주의(Gnosticism)'라는 이단 사상이 침투해 있습니다. 그들은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주장하며, 예수님의 인성(인간 되심)을 부인합니다. 또한 "영적인 지식만 있으면 충분하니, 몸으로 짓는 죄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극단적인 도덕 폐기론에 빠져 있습니다. 왜 그들은 그런 사상을 가졌을까요? 본인들의 세상적인 자기들만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당시 그런 세태를 바라보는 사도 요한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요한은 3년 6개월 동안 예수님과 공생애를 같이한 증인입니다. 이런 요한의 증언을 영지주의자들은 듣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떠합니까?

"믿기만 하면 됐지, 적당히 하면서 삶은 대충 살아도 구원받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대충의 삶이란 것이 행복할까요? 요한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히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 빛을 아는 자는 결코 어둠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둠의 옷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는 등불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사도 요한, 부르스 올슨(Bruse Olson)같은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달란트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이 각자 받은 달란트대로 각자 위치에서 예수님의 포도나무 가지로서 우리는 주님께서 제공하시는 말씀으로 최선을 다해 힘써 헌신함으로써 주님과 하나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크리스챤의 삶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인하여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사도 베드로와 사도들과 모인 제자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맛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장은 가장으로서 아내는 그 동역자로서 그 자녀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서 각자 위치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 시대를 섬기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영지주의라는 거대한 이단의 물결 속에서 끝까지 지키려 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성'과 '성도의 거룩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으로 참 빛으로 임마누엘 하신 구세주입니다. 우리는 매일 삶 속에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허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기심이 발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결단이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늦어지는 기도 응답에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도 들 수 있습니다. 이럴수록 다니엘처럼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고백하고 더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대한민국과 전세계를 돌아볼 때 이처럼 공의가 무너진 시대를 처음 겪습니다. 물이 너무 탁하면 물고기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됩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1:1로 고백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 주님께 고하고 싶은 것이 우리 자신들에게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1. 정직해야 합니다. 죄를 숨기지 말고 빛 되신 주님 앞에 매일 고백해야 합니다.
2. 소통해야 합니다.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므로 진실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3.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언자 되신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과 사귄다 하면서 여전히 미움과 탐욕의 어둠 속에 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를 위해 화목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날마다 대언자 되신 주님을 의지하며, 죄를 멀리하고 빛 가운데 행하는 참된 자녀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 응답이 늦더라도 하나님 때를 기다리면서 더욱 간절하게 울부짖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