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의 고백
유다서 1:1-4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1Jude, a bondservant of Jesus Christ, and brother of James,To those who are called, sanctified by God the Father, and preserved in Jesus Christ:2Mercy, peace, and love be multiplied to you. 3Beloved, while I was very diligent to write to you concerning our common salvation, I found it necessary to write to you exhorting you to contend earnestly for the faith which was once for all delivered to the saints. 4For certain men have crept in unnoticed, who long ago were marked out for this condemnation, ungodly men, who turn the grace of our God into lewdness and deny the only Lord God and our Lord Jesus Christ.
여러분 우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함께 먹고 자며 자라온 가족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유다서의 저자 유다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친동생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어린 시절 함께 장난을 치고, 한 솥밥을 먹으며 자란 형이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메시아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을 믿기가 쉬웠을까요? 실제로 복음서 기록을 보면 예수님의 동생들은 처음에는 형을 믿지 않았고, 때로는 미쳤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유다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직고합니다. 그는 '예수의 동생'이라는 혈연적 기득권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 낮추며, 형이었던 예수를 자신의 주님(Lord)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 안에는 엄청난 사건이 담겨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유다는 깨달은 것입니다. "아, 내 곁에 계셨던 그 형님이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곧 임마누엘(Immanuel)이셨구나!" 오늘 우리는 유다의 시선을 통해 우리 곁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영광을 발견하고, 그 영광을 가리는 시대의 어둠을 어떻게 대적해야 할지 나누고자 합니다.
1. 임마누엘의 신비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영광(1-2)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유다가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완전한 인간이셨으나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인성과 신성을 겸비한 분입니다. 인성을 덧입었기에 우리의 고통도 희로애락도 다 아십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가 됩니까?
윌리엄 캐리 선교사의 일화가 있습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한 힌두교 학자가 그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신은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단 말이오? 거룩한 신이 더러운 인간의 몸을 입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오." 그때 캐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왕이 감옥에 갇힌 백성을 구하기 위해 화려한 왕복을 벗고 죄수의 옷을 입고 감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왕의 수치입니까, 아니면 사랑의 극치입니까?"
유다는 형 예수의 삶 속에서 이 '사랑의 극치'를 보게 됩니다.
- 배고파 눈물 흘리는 자 곁에서 함께 우시는 모습 (공감하시는 하나님)
-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멸시를 견디시는 모습 (비우시는 하나님)
-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신 모습 (승리하시는 하나님)
유다서 1절 후반부에 언급된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표현은 임마누엘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우리 삶의 현장에 들어와 계신 분입니다. 유다는 이 임마누엘의 영광을 체험했기에, 목숨을 걸고 이 편지를 씁니다. 유다가 이 편지를 쓸 때가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이 기승을 부릴 때입니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영적인 지식(Gnosis)'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육체와 물질은 악하고 영혼은 선하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우리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이단입니다. 영지주의 이단이 아무리 설쳐도 예수님의 부활은 fact이며 이fact가 당시 사도들과 믿음을 가진 지체들을 흔들림 없이 지켜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은 허다합니다. 주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므로 못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동생 유다를 포함한 예수님의 형제들이 처음부터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오해하거나, 인간적인 잣대로 비판하며 거부합니다.
첫째, 가족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마가복음 3:21)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사역하시며 무리가 몰려들자, 친속(가족)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나오는 장면입니다.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여기서 '친속'은 헬라어로 가족을 의미하며, 이들은 예수님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하여 집으로 강제로 데려가려 합니다.
둘째, 형제들까지도 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7:3-5)
초막절이 가까워졌을 때, 형제들이 예수님께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라"며 냉소적으로 말하는 대목입니다.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성경은 아주 명확하게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라고 기록하며 예수님을 면박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생들의 제안이 신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형이 정말 왕이라면 당당하게 왕처럼 나가서 맞서라는 인간적인 야망이나 비아냥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구세주 왕으로 오셨으면 그에 맞게 위풍당당하게 행동하라는 냉소가 내포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셋째, 가족들이 밖에 서서 예수님을 부릅니다. (마태복음 12:46-50)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오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 선포 현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예수님을 따로 불러내려 합니다. 창피하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예수님이 자신들의 가족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는 의미입니다.
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이 장면은 육신의 가족들이 아직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단순히 '가족의 일원'으로만 통제하려 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부활 이후 반전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동생들은 변화된 형제들로 거듭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완전히 달라집니다. 11사도들도 동생 이들과 동일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형을 받고 끌려가실 때, 절대로 배반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도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합니다. 주님은 부활 이후 40여일간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승천하십니다.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보내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도행전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예수님의 승천 이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전혀 기도에 힘쓰는 무리 중에 "예수의 아우들"이 함께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아우들이 완전히 변화된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변화됩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부활을 외치더니, 눈 앞에 부활하여 보여주시는 것을 직접 목도하고는 예수님의 동생들도 완전히 변화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4-7은 부활하신 주님이 야고보(동생)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셨음을 보여줍니다.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베드로)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11제자+맛디아) 제자(70인제자 등)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동생)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라
유다서 1:1, 결국 동생 유다는 자신을 예수님의 '형제'가 아닌 예수님의 '종'으로 고백하며 평생을 임마누엘의 주님을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유다의 변화 과정을 볼 때, "가장 가까이서 인간적인 예수님을 보았던 그가 결국 주님 앞에 무릎 꿇었다는 사실”이 예수님의 신성(Divinity)을 증명하는 fact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영광을 가리는 자들(3-4)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하지만 유다가 이 편지를 쓴 목적은 단순히 안부를 묻기 위함이 아닙니다. 3절을 보면 유다는 원래 '일반으로 얻은 구원'에 대해 쓰려 했으나, 교회의 위기 상황을 보고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권면으로 급하게 내용을 수정합니다.
당시 교회에는 임마누엘의 영광을 훼손하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 명'(4절)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초기 영지주의(Gnosticism) 사상에 물든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육체는 악하고 영만 선하다는 이원론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더러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실 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假現說(가현설)로 예수님의 성육신과 임마누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가현설(docetism)은 외견상으로 사람으로 보이는 것뿐이지, 실제로 육신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이론입니다. 유다는 이에 분노합니다. 자기가 직접 만지고, 함께 자랐던 그 형님이 진짜 인간이시며, 그분이야말로 참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4절에 보면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만 구원받으면 되지 육체로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다"며 도덕적 폐기론을 주장한 것입니다.
보석 감별사가 가짜 다이아몬드를 구별해내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진짜 다이아몬드의 빛깔과 성질을 완벽하게 숙지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가짜 복음이 판치는 세상을 향해 외칩니다. "내가 본 예수, 내가 경험한 임마누엘의 주님은 결코 너희의 방탕함을 정당화하는 분이 아니다!" 이는 마치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만취하지 않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니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이해해주실 거야"라는 생각은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현대판 이단 사상입니다. 임마누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그분의 거룩함이 우리 삶에 실재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의 행동 패턴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때론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짊으로 이를 감당해야 합니다. 하기 싫은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3.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3-4)
유다는 3절에서 "힘써 싸우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힘써 싸우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파고니조마이(ἐπαγωνίζομαι)'는 올림픽 경기장에서 운동선수가 근육이 터질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고, 임마누엘의 영광을 가리는 세속적 가치관과 타협하려는 우리 내면의 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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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캅(Polycarp)은 2세기 서머나 교회의 감독입니다. 폴리캅은 로마 총독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라는 압박을 받습니다. 그때 그는 유명한 일화를 남깁니다. "내가 86년 동안 그분을 섬겼으나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하신 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소?" 폴리캅은 유다가 말한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화형대에 던집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86년간 곁에서 동행해주신 임마누엘 주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자기 형이었던 예수를 위해 이 싸움을 지속하라고 독려합니다. 우리 주님은 '홀로 하나님이신 주재'이십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값싼 것으로 전락시키면 안 됩니다. 다른 것은 용서를 받더라도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결단코 용서를 받들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자 하나님,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임마누엘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기도에 당장 응답하지 않으셔도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유다서 1장 1절부터 4절까지의 짧은 구절 속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 역전을 봅니다. 형을 시기하고 믿지 못했던 동생 유다가, 이제는 그 형을 '나의 주님'이라 부르며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거는 전사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습니까? 함께 계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가만히 들어온' 세상의 가치관들이 많습니다. "적당히 믿어라", "종교는 다 똑같다", "성공이 축복이다"라는 말들이 복음의 본질을 흐립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어 거룩한 백성 삼으시려고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1. 정체성 확신: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지체임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1절).
2. 분별력 확보: 은혜를 방탕으로 바꾸는 세상의 유혹을 제거해야 합니다.(4절).
3. 영적 투쟁: 우리에게 단번에 주신 구원의 진리를 위해 힘써 싸워야 합니다(3절).
사랑하는 여러분,
유다가 친형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했듯이,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임마누엘 하시는 주님을 매일 만나야 합니다. 그 주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도록 간구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거짓 가르침도 우리를 흔들 수 없어야 합니다. 한 주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당장 기도에 응답이 없다고, 반응이 없다고 실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때는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장 좋은 때는 주님이 더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당장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때는 주님이 알려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의 아픔을, 고통을 가장 잘 아는 분은 누구일까요?
가족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해결사는 임마누엘 하셨던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육신의 동생 유다의 눈을 열어 임마누엘의 영광을 보게 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눈을 열어주옵소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경홀히 여기지 않게 하시고,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끝까지 지키게 하옵소서. 거짓된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유일한 주재로 고백하는 우리의 삶 되게 하옵소서. 아직도 우리 기도에 응답이 없다고, 기도 응답이 늦다고 실망하지 않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