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으로 임한 임마누엘
누가복음 2:1~7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1And it came to pass in those days that a decree went out from Caesar Augustus that all the world should be registered. 2This census first took place while Quirinius was governing Syria. 3So all went to be registered, everyone to his own city. 4Joseph also went up from Galilee, out of the city of Nazareth, into Judea, to the city of David, which is called Bethlehem, because he was of the house and lineage of David, 5to be registered with Mary, his betrothed wife, who was with child. 6So it was, that while they were there, the days were completed for her to be delivered. 7And she brought forth her firstborn Son, and wrapped Him in swaddling cloths, and lai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room for them in the inn.
은행은 비가 오면 우산을 빼앗고, 날씨가 쾌청하면 우산을 빌려 주려고 온갖 호의로 달려드는 기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금융권은 권력자이거나 부유한 자들에게는 과도하게 호의를 베풉니다. 반면 도움이 절실한 경우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냉정합니다. 어릴 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점 중의 하나가 왜 병원은 돈이 없으면 사람을 고쳐주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이 세상이 왜 이런 곳인가 돌아보면 과연 이런 흐름이 정상인가 하고 반문하게 됩니다. 예수님 임마누엘 하실 때, 당시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식민지로부터 인두세를 받기 위해 인구조사를 강행합니다. 이에 주님(예수님)의 육적으로 어머니 될 마리아도 인구조사, 호적조사를 위해 고향 베들레헴에 만삭의 몸으로 들리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여관 하나 산모를 위해 방 하나를 내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당시 베들레헴 민심입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2장 1절에서 7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임마누엘'하신 성자 하나님이 어떻게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셨으며 그 과정에 담긴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이 무엇인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1. 임마누엘의 성취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1-5)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오늘 본문 4절과 5절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마리아는 이미 만삭의 몸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산달이 다 된 임산부가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 가정을 이토록 힘들게 베들레헴으로 보내실까요? 그 이유는 수백 년 전 선지자 미가를 통해 하신 약속 때문입니다.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입으로 손수 하신 말씀은 단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권력자인 당대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호적 명령을 내린 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입니다. 실상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베들레헴에서 탄생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로마 황제의 권위까지도 이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의 시작입니다. 임마누엘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를 뚫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구약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가장 정확한 때에, 가장 정확한 장소로 성자 그 아들을 보내십니다.
2. 우리 수준으로 내려오신 사랑(6-7)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7절은 큰 충격을 던져줍니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는데, 그 하나님이 누우실 곳은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입니다. 이것은 빌립보서 2장에서 말하는 '비움(κένωσις, kénōsis)'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누가복음 2장의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수백 년 전, 이스라엘이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주셨던 '설계도'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1. 이사야의 예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임마누엘의 선포입니다. 본문 5절에서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다'는 기록은 약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셨던 말씀의 성취입니다.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당시 유다 왕 아하스는 강대국의 위협 앞에 두려워 떨며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군사력을 의지하려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인간의 위협보다 더 큰 징조, 즉 하나님이 우리 곁에 오시는 징조"를 약속하십니다. 누가복음의 마리아는 바로 그 '처녀'의 몸으로 성령에 의해 잉태됨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 하시겠다는 이사야의 예언이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성취되었음을 온 세상에 입증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단순한 위로의 구호가 아닙니다. 인간의 불신앙과 위기 속에서도 기어코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의 약속 이행'**입니다.
2. 미가의 예언, "가장 작은 곳에서 시작되는 통치"로 다가 옵니다. 장소를 특정하여 구체적으로 다가 옵니다. 본문 4절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을 떠나 굳이 베들레헴으로 향한 것은 미가 선지자의 구체적인 예언 때문입니다.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가 선지자는 이사야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이사야가 '임마누엘'이라는 방법을 예언했다면, 미가는 '베들레헴'이라는 장소를 지목합니다. 베들레헴, 베트레헴(לֶחֶםבֵּית)으로 떡의 집' 또는 '빵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루살렘 왕궁이나 로마의 대도시를 주목했지만, 하나님은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 베들레헴을 선택하십니다. 주님은 낮아져 섬기러 오신 분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토록 낮은 곳으로 오셨을까요? 만약 예수님이 왕궁에서 태어나셨다면, 가난하고 병든 자들은 감히 그분 곁에 다가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인 구유에 누우심으로, 이 세상 그 누구라도 가장 소외되고 버림받은 자라도 주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여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세밀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위로 끌어올리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친히 '우리 아래로 내려오십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본질입니다. 우리의 아픔, 우리의 배고픔, 우리의 소외감을 직접 겪으심으로 우리를 완벽하게 이해하시겠다는 사랑의 의지입니다.
3. 신실하게 전개되는 사랑과 기다림의 열매
하나님의 사랑은 서두르지 않지만 한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창세기3:15)의 약속부터, 아브라함에게 하신 복의 근원(창세기12:1-3)에 대한 약속, 다윗에게 하신 영원한 왕위에 대한 약속(사무엘하 7:1~16 )까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인간은 수없이 배신하고 돌아서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전도자 조지 뮬러는 평생 5명의 친구를 위해 기도합니다. 1년 뒤에 한 명이 믿었고, 10년 뒤에 또 한 명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25년 뒤에 세 번째 친구가 주님을 믿습니다. 뮬러는 죽기 직전까지 나머지 두 친구를 위해 기도하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뮬러가 죽고 난 뒤, 그 장례식에서 한 친구가 회심하고, 나머지 한 친구도 몇 년 뒤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인간의 신실함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신실함은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마리아가 차가운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을 때, 마리아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상황은 이 모양입니까?"라고 묻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비루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 상황이 '여관 방 하나 얻지 못한 마구간' 같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릴 보고 뭐라고 할 것 같습니까? 소망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계속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도에 응답이 없습니다. 하나님 이것은 해도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런 볼멘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신실하게 우릴 향한 사랑의 약속을 성취해 가십니다. 그 때는 우리의 시간표에 있지 않을 뿐입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힘들지만 하나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는 슬픈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자신의 세상에 오셨을 때 쉴 곳이 없습니다. 이를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피조물인 인간이 꾸며낸다고 완성되는 퍼즐이 아닙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고 계시록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으로 마무리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시공을 초월하여 운행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모든 것에 믿음으로써 나아오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크리스마스의 화려한 불빛과 선물, 연말의 분주함 속에 정작 '임마누엘'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계실 공간이 비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구약의 약속을 따라 ‘마구간’이라는 낮은 곳까지 신실하게 내려오십니다. 우리는 화려한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을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내 삶의 가장 비천하고 부끄러운 부분(구유)에 예수님이 임하시기를 간구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거대한 로마 제국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전 세계를 호령하는 절대 권력자입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천하가 움직이고, 수많은 사람이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의 권력자가 역사를 주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경은 그 거대한 역사의 이면에서, 아주 작은 마을 베들레헴을 향해 한 가정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주목하게 합니다.
신실하게 전개되는 하나님의 사랑은 이사야가 예언한 '임마누엘의 신비'와 미가가 예언한 '낮은 곳의 통치'가 오늘 누가복음 2장에서 만납니다.
1. 약속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신실함) 하나님은 7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침묵 속에 갇혀 있을 때도 이사야와 미가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삶에도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침묵기'가 있습니다. 이사야와 미가의 예언을 이루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약속 하나도 결코 잊지 않으시는 신실한 분임을 조각해야 합니다.
2. 낮은 곳을 선택하시는 하나님 (겸손) 미가가 예언한 베들레헴, 그리고 누가복음이 기록한 구유, 이것은 일관된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높이는 자의 왕궁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자의 심령, ‘베들레헴’에 임하십니다. 이사야 9장 6절은 이 아기(예수님)를 가리켜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부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작은 마을의 말 먹이통에 누우신 것은, 우리의 가장 비천한 자리까지도 주님의 거룩한 임재의 장소로 바꾸시겠다는 온전한 사랑의 의지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과 영광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당대 공회원(현 우리시대 국회의원급)이면서 권세자인 니고데모는 세상의 이목이 두려워 예수님을 밤에 몰래 찾아옵니다. 그의 심적 상태를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네가 결단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핵심을 찌르십니다. 모세는 출애굽시 40주 40야를 물도, 먹을 것도 들지 않고 하나님과 두 번이나 대면합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실제 벌어진 것입니다. 이후 니고데모는 거듭납니다. 모세는 이후 얼굴에 광채가 나고 회막에서 하나님을 독대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보물이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도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겠습니까? 처녀가 잉태를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 진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여기에서 보혜사는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여 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물로 씻어야 할 찌꺼기가 많을 것입니다. 자신만의 자존심, 이기심, 앙심, 고쳐지지 않는 습관, 유혹, 나태함 등 셀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으시는 하나님이나 주님에 대한 원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속에 남아 있는 불신을 물로 씻어내는 세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는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도에 응답되지 않는 현실이 지금 당장은 조금도 이해되지 않고 원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지속됨에 울분이 끓어 오릅니다. 이런 쓴 뿌리도 물로 씻음으로써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시도록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저를 돌아볼 때 이 비움의 자세나 마음이 얼마나 크게 필요한가를 실감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과 기력이 떨어집니다. 특히 기억력 저하가 저를 힘들게 합니다. 자주 짜증이 납니다. 어떨 때는 이제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사업장에서 접하는 여러 사람들, 대한민국이란 조국에서 현재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도덕 불감증의 팽배, 무질서, 불법과 선동, 공작과 모략, 창조질서 파괴 현상 등을 목도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지구촌 공동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망가질까 하는 불의한 생각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이럴수록 낮아져 섬기려 오신 주님을 묵상함으로써, 말씀을 붙듦으로써 심령에 평강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지켜주시도록, 우리 공동체를 지켜주시도록, 하나님 나라가 각자 심령에 임하도록 더욱 깨어 기도하고 울부짖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거두어 들이기보다 빌려 주어야 하는 마음이 진심이어야 합니다. 시대가 각박할수록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들은 진정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지체들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자신에게 어떤 점이 부족한지?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담아야 할 것은 또한 무엇인지? 영육간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 행동이 수반되어야 하는지? 돌아 보는 우리 인생이 되길 강권합니다. 만인은 그 사람이 품는 생각과 실천이 그 당사자 본인의 인격을 형성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으로 겸손한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의 호적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사야의 '임마누엘'과 미가의 '베들레헴'이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킨 미리 약속하신 역사의 대 서사시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처럼 우리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약속하시고, ‘미가’처럼 우리의 '베들레헴' 같은 초라한 현실 속으로 친히 들어오십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체험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심령에 조각하고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주님의 낮아지심이 우리에게 온전히 임하는 겸손한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