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새 생명으로 영생을 얻으라 [요한복음 3:1-18]

새 생명으로 영생을 얻으라
요한복음 3:1-18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5년전 기업에 근무할 때 한번은 세관 감사에서 지적이 되어 수입관세를 당시 금액으로 500만원 정도 추가 납세 부과를 받았습니다. 저는 해당부서 부서장으로 고민이 되어 잠을 설칩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에 수소문을 하여 그 해당 세관원 집을 찾아 갑니다. 직접 만나 읍소할 생각이었습니다. 얼마나 제 심령이 절박했으면 밤에 세관원 가정을 찾아 갔겠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제 성격으로 고민이 되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야밤에 찾아가는 이유는 사람들 눈을 피해가는 것입니다. 2000년전 주님 오셨을 때 당시 유대 국회의원이 니고데모도 이목이 두려워 밤에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니고데모는 궁금해서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가? 어떤 병자도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고칠까? 유대인들이 그렇게 숭배하는 성전 앞에서 어떻게 유월절 제물을 매매하는 자들을 내 쫓으시고 담대하게 행동하실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 당시 공회원인 니고데모는 밤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1. 야밤에 찾아온 지도자 니고데모 (1-13)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율법에 정통하고 당시 유대 공회원(71명)중의 한 사람입니다. 공회원은 요즘으로 치면 그 국가의 최고 의결기구인 국회의원 정도로 사회적 지위가 높았으며, 유대 종교적으로는 성경에 해박하며 경건한 아주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율법과 행위로는 채울 수 없는 영적인 갈망에 빠져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며,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임을 인정하고 밤에 체면과 두려움(혹시 고소당할까?) 때문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는 구원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직면해야 할 근원적인 질문을 예수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종교적, 사회적 엘리트였던 니고데모에게 핵심적인 메시지를 먼저 던지십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율법적 행위와 혈통적 우월감으로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당대 유대교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의 모든 배경을 무효화하는 충격적인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잘라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생명을 다루는 절대 명제이기 때문입니다. '거듭남(born again)'은 문자 그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니고데모는 이를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가는 것'으로 오해합니디.(요3:4), 예수님은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 곧 영적인 출생임을 가르치십니다(요3:6).

물은 일반적으로 세례와 회개를 상징하며, 옛 자아의 죽음과 죄 씻음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권세)**을 말합니다. 이는 율법을 지키는 인간의 노력이나 유대인의 혈통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오직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와 회개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는 경험, 이것이 니고데모를 포함한 모든 종교적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핵심 요지입니다. 니고데모는 율법 '선생'이었지만, 그는 영적인 원리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요3:10).

예수님은 거듭남의 신비함과 영적인 실체를 '바람'에 비유하십니다.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이 말씀을 하시므로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질책합니다. 왜 그렇게 질타합니까? 이 말씀은 에스겔 36:25-26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미리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여기에서 맑은 물은 물로 거듭남을, 즉 세례를, 새 영은 예수님께서 보내실 성령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선생으로서 이같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모르느냐고 질타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사야서를 즐겨 낭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중에서도 53장 예수님이 고난 받는 말씀 부분은 유대인들이 낭독하지 않고 건너 뛰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보고 싣고, 듣고 싶은 것만 선택하여 취한 것입니다.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는 어려운 일을 감당할 때, 적극 수행할 때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 예수님은 ‘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되어 성령의 역사를 깨달은 ‘우리’를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님이 확실한 것을 증거하심에도 불구하고 이를 믿지 않는 ‘너희’ 속에 포함된 사람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조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우리’라고 대조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쫓는 자들과의 교제, 즉, ‘코이노니아’를 대단히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를 말하는 기초가 됩니다. 참 믿음의 공동체 말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우리는 바람을 볼 수 없지만, 그 소리를 듣고 그 영향을 느낍니다. 성령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논리나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땅의 일(거듭남)"을 말해도 믿지 못하는데, "하늘의 일(삼위일체, 구원의 신비)"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요3:12).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인간의 지성과 율법적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접근할 수 없다. 오직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거듭남)와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고 영적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라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임마누엘 하신 목적(14-17)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모세가 놋뱀을 장대에 달아 높이 들었고, 그것을 보는 자마다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놋뱀처럼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죄의 독(毒)에 물려 죽어가는 모든 인류에게 '바라보기만 하면'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믿어지지 않지만, 불가능해 보이지만, 믿을 때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한계로만 바라보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관련 민수기 21: 4-9입니다.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니고데모를 설득하기 위해 예수님은 이와 같이 불뱀 사건을 들려 주십니다. 너는 유다 지도자로서 이 말씀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하는 질책 겸 훈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불뱀을 통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씀을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임마누엘은 이 땅에서의 단순한 동행이 아닙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신 대속의 은혜를 완성하시기 위한 여정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여정인지 우리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가장 잘 사는 재벌 자녀가 모든 것을 누리다가 갑자기 남미나 아프리카 오지에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간 것보다 훨씬 이상일 것입니다.

이는 마치 구한말 1880년대 이후, 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할 때처럼, 당시 조선은 먹을 것이 없는 극도로 가난한 나라입니다. 당시 사대부들은 양반행세하고 백성들은 헐벗음과 기아로 허덕이는 그런 땅에 오신 것 보다,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더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몸을 덧입고 오신 것입니다. 이는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역사적 사실입니다. 초기 조선에 입국한 미국 선교사들은 미국 ‘아이비리그’급 대학 출신들이 주류입니다. 왜 그들은 조선에 왔을까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그들을 감동시켰기에 볼 것 없는 조선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로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주님은 임마누엘 하신 그 목적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세상에서 구원을 베풀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임마누엘의 핵심은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함(요3:16-17)입니다**.** 이 본문의 핵심이자 복음의 정수인 말씀은 바로 16-17입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심판자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세상은 죄로 인해 이미 멸망의 길에 들어섰지만(요 3:18),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기보다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가장 큰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가시적으로 증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의 종국, 십자가 고난을 예고하십니다. 광야의 놋뱀처럼 들어 올려지기 위함(14-15)이라고 비유로 친근하게 다가오십니다.

3.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18)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니고데모의 질문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던져 줍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정말 거듭났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다시 돌아 보아야 합니다.

'거듭남'은 지금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하고, 교제하고, 이 모든 행동이나 행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 이전에 우리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거룩하다 해도, 내 속에 새 생명이 없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부유하고 탁월한 사람도 온전한 믿음으로 거듭남이 없으면 결국은 허무와 불안에 시달리게 됩니다. 자신의 지위와 부, 믿음까지도 거듭남이 없으면 우리는 그 공허를 채우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일을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동시에 모든 지적인 것들 내려놓고, 어린 아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하는 삶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매 순간 우리 삶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이 때 비로소 참된 평안과 기쁨이 우리 심령을 지배할 것입니다. 진정한 거듭남은 성령님의 주도로 인해 우리 죄를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는 내면의 혁명입니다.

요한복음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구원은 우리의 행위나 노력, 혹은 종교적 열심에만 달려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누립니다.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아 멸망의 길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이미 구원의 길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그 십자가의 사랑을 인정하고, 그분을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말씀을 받은 성전으로서 모든 것을 들고 주님께 나아가 교제하고 고백함으로써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3장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었음을 다시 확인합니다. 또한 당대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주셨던 '거듭남'의 메시지가 오늘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게 만드는 거울임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육으로 난 존재이기에, 반드시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성령으로 말미암은 새 생명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그대로 영접해야 합니다. 유대인의 지도자 바리새인 니고데모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밤중 대화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새 생명의 역사를 체험하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담대히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