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성전이신 성자 하나님
요한복음 2:13-25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18년전 모 기업에 근무할 때, 한번은 전략회의를 마치고 저녁 회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참석자 중 가장 직위가 높은 분이 소주병을 상대 측을 향해 획하고 던져 버립니다. 저는 당시 회의 주관 간사로서 매월 회의를 진행하고 중식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모두 다 화들짝 놀라 어안이 벙벙하여 이 광경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봅니다. 다행이 소주병이 던져진 벽에서 박살이 나지는 않았지만, 모두 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면서 왜? 무슨 일이야 하면서 상황을 파악합니다. 직책이 가장 높은 분이 함께 한 참석자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인정하여 주지 않는다고 화를 불같이 내면서 이에 폭발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으로 임마누엘하셔서 갈릴리 지방을 다니십니다. 갈릴리 지역은 소외된 변방으로 유대인들이 아주 멸시하는 지역입니다. 이곳 가나에서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회초리를 만들어 매매하는 가축들을 다 내 쫓습니다. 주님은 돌아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자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성전에서 왜 그러실까요? 거룩한 성전에서 말입니다. 이는 거룩할 성전이 장사하는 곳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거룩한 분노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우리 심령에 조작해보는 은혜가 임하길 바랍니다.
1. 유월절과 성전, 예수님의 격노(2:13-17)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오늘 말씀은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격적인 사건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2장 13-17절은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짐승들을 내쫓으시고 상을 엎으신 일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3 공관복음은 유월절이 한번만 등장하는 반면, 요한복음에는 유월절이 요한복음에 세 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만큼 사도 요한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부각하여 알려주는 데 집중합니다. 멀리서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 드리려고 오는 것은 정상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연하게 여기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나 제물을 예루살렘 성전까지 가져오는 길이 너무 멀거나 힘들 때, 그것을 돈(현금)으로 바꾸어 성전이 있는 곳에 가서 그 돈으로 원하는 제물을 다시 사서 드리도록 허용한 규정이 있습니다. 관련 신명기 14장 24절부터 26절입니다.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이 신명기 규정은 예수님 시대의 성전 내 환전상과 제물 매매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율법은 실제로 먼 곳에서 온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 제물을 현금으로 대체하고 성전 근처에서 다시 제물을 구입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문제는 이 합법적인 과정이 예수님 시대에는 종교 지도자들과 결탁한 상인들의 탐욕적인 폭리와 착취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환전상들은 로마 화폐를 성전에서 통용되는 돈으로 바꾸어 주면서 과도한 수수료를 받고, 제물을 매매하는 상인들은 비싼 값으로 흠 없는 제물을 매매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장에서 분노하신 것은 이 규정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인 성전이 '장사하는 집'과 '강도의 굴혈'로 변질되어 순례자들의 예배를 방해하고 착취하는 장소가 된 것에 대한 성자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 때문입니다. 이 신명기 말씀은 성전 장사의 시작은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으나, 결과는 부패로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분노의 이유 (16절)는 예수님은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단호하게 선언하십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사야 56: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와 같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종교 지도자들과 상인들의 탐욕으로 인해 희생 제사라는 종교 행위를 빌미로 폭리를 취하는 '강도의 굴혈'(렘 7:4,11, 마 21:13)이 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7장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반복하여 선지자 예례미야는 당시의 위선적인 성전 봉헌을 핵심을 찔러 지적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성전 헌신은 드리지 않음이 더 낫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헌신, 기도, 예배도 동일합니다.
마태복음 21장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이는 성자 하나님의 열심 (17절)으로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는 시편 69편 9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 열심은 단순한 정의감이 아닌,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과 영광을 향한 성자 하나님의 불타는 진노의 질타인 것입니다.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공간을 모독할 때,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분만이 이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임을 유월절 기간에 드러내어 강조하는 것입니다. 당시 성전 장사치들은 예수님의 성전 정화에 왜 잠잠하였을까요? 이들은 예수님의 권세에 눌려버린 것입니다.
2.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2:18-22)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의 권위 있는 행동에 유대인들은 당연히 표적(표징)을 요구합니다. (18절)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은 이 엄청난 행동을 정당화할만한 기적이나 권위를 요구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요구한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네가 뭔데 그들이 장사를 하던, 말던 간섭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네가 그렇게 무례하게 성전 앞을 난장판으로 만드는데 어떤 권위나 있는가 표적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는 이들은 대부분 바리새인들일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놀라운 성전 파괴와 부활 예언(19절)으로 말씀 하십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절) 유대인들은 헤롯(헤롯대왕)이 46년 동안 지은 성전을 두고 물리적인 건축물을 생각합니다.(20절) 실제 당시 이스라엘 통치자 헤롯 대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예루살렘 성전을 화려하게 건축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헤롯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 에돔(이두매)인입니다.
유대인이 아닌 자가 민족성으로 똘똘 뭉친 유대를 통치하려고하니 유대인들에게 잘 보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성전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건축합니다. 성전을 멋지게 잘 지어려고 하니 46년간이나 걸려서 정말 금을 넣어 화려하게 건축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이 걸어 가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얼마나 성전이 화려하고 웅장합니까?라고 자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성전을 가리키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는다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실제 AD70년 로마 장군 디도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파괴되어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로마 군인들이 성전에 입힌 금을 벗겨내어 가져 가느라 돌 사이에 돌 하나, 하나를 전부 분해하여 금을 찾는 과정에서 성전은 완전히 해체됩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 줍니까? 임마누엘하신 주님은 앞날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후 3일에 부활하신 것을 3일만에 성전을 다시 일으키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제자들도 전혀 이 말을 못 알아 듣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 그 때에서야 비로소 그 말씀의 의미를 알았다고 사도 요한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의미를 분명히 밝혀줍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21절)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참된 성전이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는 참된 성전이시며, (골 2:9, 히 9:11-12)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골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히9: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 부활에 대한 예언과 성취는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심을 명백히 증거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4절에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니라"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스스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5)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의 파괴와 재건을 말씀하실 권세, 곧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다시 일으킬 권능은 오직 성자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한 회사의 창업주이자 설계자가 자신이 지은 건물의 명패를 떼어내고, "이 건물을 허물면 내가 사흘 안에 더 완벽한 건물을 지으리라"고 선언한다면, 사람들은 그가 건축에 대한 절대적인 전적인 권위와 설계 능력이 완벽한 사람임을 인정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의 거룩함을 바로잡고, 더 나아가 자신의 육체라는 참된 성전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롭고 영원한 길을 제시하실 성자 하나님의 권세를 보이신 것입니다.
3. 우리 속을 다 아시는 예수님(2:23-25)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유월절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십니다. (24절) 주님은 사람의 속을 아시는 이(24-25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4절),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25절)에 근거가 있습니다.
사람의 중심과 마음을 꿰뚫어 아시는 능력은 하나님만이 가지신 고유한 속성이라고 사도 요한은 증언합니다. 예레미야 17장 10절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39편에서도 다윗은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속과 생각을 아는 것은 전지하신 하나님의 신적인 속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증언이 필요없이 그 속을 아셨다는 것은, 그가 바로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지식과 능력을 가진 성자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겉과 속’ 이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믿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일시적이고 감정적이며, 진정한 회개와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이는 마치 의사가 환자의 겉모습만 보고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CT나 MRI를 통해 몸속의 모든 병을 꿰뚫어 보듯이,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우리의 겉모습과 행위는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벌거벗은 듯 드러납니다.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단지 능력 있는 선지자나 훌륭한 종교 지도자가 아님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의 거룩함을 수호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신 분, 죽음을 이기고 성전을 재건하실 부활의 권능을 가지신 분, 그리고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고성으로, 힘으로, 완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섬김으로써, 낮아지심으로써, 우리가 절대로 넘을 수 없는 권세로, 우리 속 마음을 다 아심으로, 겸손하게 친히 보여주심으로써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음을 매일 심령에 아로새겨야 합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 모두는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격의 소지자인지 우리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지는 않는지요?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허물지고, 유약하고, 넘어질지라도 우리 안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는 거룩한 지체임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를 인정하고 늘 사랑 고백하므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지체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부족한 모습 그대로 들고 나아가 외쳐야 합니다. 주님 제가 힘듭니다. 외롭습니다. 왜 제 기도에는 아직 응답이 없습니까?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더 이상 장사하는 집이나 강도의 굴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 거짓, 세속적인 욕심을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으로 내쫓아내야 합니다. 사사로운 감정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의 중심에 모시고, 주님의 거룩함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당장 닥친 현실 앞에 우리는 낙담할 수 있습니다. 응답 없는 기도에 힘이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언제가 우리들의 눈물을 닦아 주실 성령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지지교회 여러분,
당장 응답이 없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현실만을 바라보면 우리는 참담하고 우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주님의 음성을 가슴에 다시 조각하므로 비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3일안에 그 성전을 다시 세우리라 하신 그 말씀을 우리 심령에 조각해야 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알아 들지 않을 때에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우리는 온전히 영접해야 합니다. 주님을 신뢰하므로 성전으로서 우리는 그 기능을 다해야 합니다. 온 마음으로 외치고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로 투쟁하므로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한주간 되길 강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