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29-33]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29-33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29The next day John saw Jesus coming toward him, and said, “Behol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30This is He of whom I said, ‘After me comes a Man who is preferred before me, for He was before me.’ 31I did not know Him; but that He should be revealed to Israel, therefore I came baptizing with water.”32And John bore witness, saying, “I saw the Spirit descending from heaven like a dove, and He remained upon Him. 33I did not know Him, but He who sent me to baptize with water said to me, ‘Upon whom you see the Spirit descending, and remaining on Him, this is He who baptizes with the Holy Spirit.’

기업을 운영하면서 제가 어떤 정체성(identity)를 가지고 행동하는지 잊어버리고 행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떨 때는 내가 하나님 자녀가 맞나 할 정도로,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민망할 때가 있습니다. 곧 바로 회개하지만 제가 얼마나 부족한 자인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께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를 붙들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이 땅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고 신앙 생활하는 우를 범할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가장 중요하게 붙들어야 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 하는데 있어서 분명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29:33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였던 세례 요한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던진 가장 강력하고도 명확한 증언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으며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분명히 카리스마와 권위가 있었지만, 요한은 그 모든 명성을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마치 달이 태양의 빛을 반사하듯이,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님을 끊임없이 부인하며 참 빛이신 예수님을 ‘보라’고 가리킵니다. 그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증언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 대속의 어린 양 (29)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언한 것은 구약 성경 전체를 압축한 대 선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린 양'은 단순한 양이 아니라, 구원과 대속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가집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출애굽기 12장)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될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장자의 생명을 취하려 지나갈 때, 이스라엘 백성의 문설주에 바른 어린 양의 피가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합니다. 이는 어린 양의 피는 곧 생명과 구원의 표징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시 바로 왕의 애굽 장자들이 다 죽어갑니다. 그런 와중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는 한 명도 피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대속을 받아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생명의 주관이 어린 양의 피가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 이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피를 예증(예표)하는 것입니다.

속죄일의 희생 제물(레위기 16장)은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여 피를 흘림으로써 죄의 용서를 받게 합니다. 이 모든 제사의 핵심은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히 9:22)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피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누군가 피 흘려 죽어야 죄가 사하여 지는 것이 대속의 피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우리 죄가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 우릴 위해, 우리 보다 앞선 믿음의 선진들을 위해 피 흘려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왜 그러실까요? 이것이 하나님 뜻이기 때문입니다. 창3:15에서 이미 약속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모든 제사의 궁극적인 대상이 바로 자기 눈 앞의 예수님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매번 반복되어야 하는 불완전한 그림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실 참 실체이시며 완전한 희생 제물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신 성자이신 완전한 분이 제물로 드려졌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모든 지체들은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하시는 분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운행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 이전에 왔던 아브라함, 다윗, 다니엘 등
그들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19세기 영국 제임스 브룩(James Brooke. 1803-1868)이 보르네오섬에서 행정관으로 사역할 때, 한 마을 추장이 깊은 고민에 빠져 그를 찾아옵니다. 추장의 아들이 다른 마을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그 죄는 전통에 따라 반드시 피의 대가로 갚아져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추장은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벌을 내릴 수 없었고, 그렇다고 마을의 법을 어길 수도 없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파송된 브룩 행정관은 기독교 신자로 그 추장에게 성경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추장님, 당신의 아들이 죄를 지었을 때, 당신이 그를 대신해 죽음의 벌을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추장은 깜짝 놀라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죄는 죄를 지은 사람이 응당 그 죄를 갚아야지요."라고 말합니다.

그때 브룩 행정관은 요한복음 1:29 말씀을 들려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이제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될 수 있습니다."

이 추장은 그때서야 비로소 대속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아들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죄의 짐을 스스로 짊어지신,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이요 공의의 성취인 것입니다.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29각색. 오늘날 예수께서 나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나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우리 모두는 이런 고백을 해 보아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 선재하신 성자 (30-31)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납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가리켜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단지 시간적으로 먼저 존재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의 선재성(Pre-existence), 즉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신성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은 이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것임을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 고백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과 같은 피조된 인간이 아니라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심을 명확히 합니다. 어린 양의 대속의 효력은 예수님이 영원한 성자 하나님 이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인간의 죄를 영원히 대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성령 세례를 주시는 구원자 (32-33)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세례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을 알게 된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예수님과는 모계(세례 요한 어머니와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종 4촌)로 6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는 그분이 메시아임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만 확신하게 됩니다.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명확한 징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위에 머무는 것(32절)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성령의 임재를 직접 목격하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라는 선언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희망이었던 새 언약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의 은혜가 우리 각자 심령에 늘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 오시기 약 600년전 에스겔 36:25-28, 선지자 에스겔은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 영(성령)’을 주사 그들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1.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물 세례와 성령 세례에서, 세례 요한의 물 세례는 회개와 죄 용서를 위한 준비 단계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 세례는 회개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내주(內住)**시키셔서 그들을 완전히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시며, 새 힘으로 살게 하시는 구원의 완성입니다. 성령 세례는 우리가 단지 죄를 용서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힘입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고, 부활하신 후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구원을 우리 안에서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장 29-33절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 주님,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주시는 능력의 근원이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세례 요한의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 (31절). 그는 자신이 쇠하고 예수님이 흥하는 것을 기뻐합니다(요 3:30).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리 삶이 당장 세례 요한처럼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먼저 주님을 영접한 자로서 주변에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저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 삶을 주관하시도록 기도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우리 삶이 어떤 환경에 놓이더라도 우리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1. 어린 양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시선이 언제나 세상의 자랑이나 나의 의가 아닌,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되어야 합니다.

2.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지체들은 모두 성령의 역사하심을 덧입은 자녀들입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잘못된 습관과 죄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난 대속의 어린 양을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처럼,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염려와 짐을 내려놓고, 우리 대신 모든 죄를 짊어지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세상 속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증언하는 참된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던, 어떤 일을 하던, 우리 행동을 통해, 우리 일을 통해, 우리의 성공을 통해, 하나님 영광이 만방에 드러나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녀다운 삶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약 600년 전에 활동한 선지자 에스겔은 어떻게 미리 새 영이신 성령을 받았을까요?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자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찾아 오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에게도 예수님은 성령의 바람을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왜 그렇게 역사하십니까? 당시 유대(이스라엘) 공회원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반드시 꼭 주님을 만나 주님 정체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는 공회원이고 바리새인으로 주변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밤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를 안 주님은 그에게 성령 세례의 비밀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일기를 기록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실감합니다. 이렇게 전산환경이 발달하고, 필기구가 갖추어진 이 시대에도 일지를 기록한다는 것은 특별한 각오나 애정이 없으면 마음뿐이지 실행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에스겔은 당시 필기구도, 기록할 용지도 없는 그런 환경에서 자신이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선교 일기를 기록합니다. 이런 에스겔을 하나님께서는 인자(人子, 벤아담)야, ‘사람의 아들아’,라고 불러 주시고 친히 교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미래 일을 미리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말입니다. 예수님 오실 때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외칩니다. 예수님의 오시는 길을 미리 안내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우리 현실에서 이렇게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우리 행동을 통해,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도록 애쓰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선지자 에스겔이나 세례 요한처럼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우리의 마음을 다해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예수님을 증거하고 알려야 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들고 나아가 눈물로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릴 지배하도록 간구하고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성령 하나님이 우릴 지배하도록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 죄를 대속하신 어린 양 예수님, 저희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삶이 주님을 증언, 증거하는 것이 되게 하시고, 이 땅을 살아가면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참된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를 주님의 증인으로 크고 원대하게 사용하여 주옵소서. 일본, 미국, 전세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원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