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깨어 믿음을 지키라 [디모데후서 4:9-18]

깨어 믿음을 지키라

디모데후서 4:9-18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9Be diligent to come to me quickly; 10for Demas has forsaken me, having loved this present world, and has departed for Thessalonica—Crescens for Galatia, Titus for Dalmatia. 11Only Luke is with me. Get Mark and bring him with you, for he is useful to me for ministry. 12And Tychicus I have sent to Ephesus. 13Bring the cloak that I left with Carpus at Troas when you come—and the books, especially the parchments. 14Alexander the coppersmith did me much harm. May the Lord repay him according to his works. 15You also must beware of him, for he has greatly resisted our words. 16At my first defense no one stood with me, but all forsook me. May it not be charged against them. The Lord Is Faithful 7But the Lord stood with me and strengthened me, so that the message might be preached fully through me, and that all the Gentiles might hear. Also I was delivered out of the mouth of the lion. 18And the Lord will deliver me from every evil work and preserve me for His heavenly kingdom. To Him be glory forever and ever. Amen!

요한이가 일본 자회사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차주에 출국합니다. 환경이 다른 해외에서 집안의 미래를 책임질 아들이 일본으로 진출합니다. 심경이 착잡하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일본은 세계적인 강국이면서 아시아의 최선진국으로 염려와 기대가 공존합니다. 해외 진출이 우리 가정에 현실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는 하나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는 복음이 전파된 지 오래되었지만, 일본은 여전히 세상적 유혹과 영적인 도전이 만만치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때 이미 일본에는 복음이 전파되었고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 장군 중에는 고니시 유키나가(예수회 소속)라는 천주교 신자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오늘 말씀을 붙잡고 더욱 깨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써, 우리 가정이 일본에서 정착하고 우리들의 길을 개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이 비즈니스와 복음으로 전세계에 진출하므로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비전을 품고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떠나는 사람들과 남는 사람들(9-12절)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9절부터 12절까지를 보면, 바울 주변의 사람들이 물결처럼 밀려나고, 각자 제 갈 길을 찾아 떠나는 모습이 나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딤후 4:9-11a)

데마가 바울을 버리고 떠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 세상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10절). 데마는 한때 바울과 함께 복음 사역에 동참했던 동역자였으나,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을 보며 현실적인 유익과 미래의 안정보다 세상의 안락을 선택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니 모든 사람들은 이런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 모두 하루를 돌아보면 자신이 행한 일이 선택의 하루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렇게 경고합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 4:4) 특히 현 우리 시대가 가치관이 무너진 시대로 전락했습니다. 재판 법정에서도 자신이 살기 위해 위증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이 세상이 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입니다. 양심이 마비된 첨단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은 피폐할 대로 무너진 시대를 우리는 살아갑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1차로 석방된 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합니다. 석방은 되었지만 완전 자유로운 몸은 아닙니다. 당대 최강국 로마로부터의 핍박의 강도를 잘 알고는 아들 같은 디모데를 자신에게 오라고 합니다. 자신이 하늘 나라로 떠나기 전에 디모데에게 당부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에게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아가라고, 그것이 바울의 곁에 끝까지 남아있었던 누가처럼, 영원히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디모데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만난 귀한 동역자로 바울에게 큰 힘이 된 아들 같은 일꾼입니다.

바울은 떠난 사람들을 언급한 후,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부탁합니다(11절). 이 마가는 과거 1차 선교여행 중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가 버립니다. 이후 바울에게 심한 책망을 듣고(행 15:37-39) 바나바와 갈라서게 만든 아들뻘 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마가는 다시 주님께, 그리고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으로 회복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는 바울이 로마감옥에 1차로 투옥될 때 동역자로 같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을 연결해주는 징검다리가 마가입니다. 이런 마가를 베드로는 자신의 아들이라고 베드로전서 5:13에서 부릅니다. 이런 마가가 사도 바울에게도 매우 유익합니다. 왜 그럴까요? 마가는 복음서를 기록할 정도로 예수님의 사역에 정통한 사도급의 제자로 성령 충만한 아들 뻘되는 동력자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는 사도 배드로, 사도 바울로부터 실로 사랑을 받는 동역자입니다.

30년전 당시 어린 마가는 바울을 따라 1차 전도 여정을 수행합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이 마가도 전도 여행을 해 보니 감당이 안되어 전도 여정 중에 도망을 가버린 것입니다. 당시 해외 전도 여행이란 것이 실제는 미지의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험난한 여정입니다. 모든 환경이 다르고 익숙하지 않으므로 몹시 불편하고, 아파도 자신을 돌볼 사람도 안 보이고, 전하는 복음은 영접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데 되레 핍박을 당하므로 여행이 아니라 고행입니다. 실로 집을 나가보면 자신의 집이 얼마나 편안한 곳인지를 알게 됩니다. 타지에서의 생활은 의외로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바울에게 아주 유익한 존재로 회복이 됩니다. 성령 하나님이 마가를 바울의 동역자로 다시 세워주신 것입니다. 선교는 홀로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이 마가에게도 당부의 말씀을 전하고자 그를 부른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마가, 누가는 바울의 최 측근 동역자들입니다. 그런데 마가, 누가는 예수님의 11제자(가룟 유다 제외) 중 하나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이들은 복음을 기록하였을까요? 11제자들을 통해 직접 들은 것입니다. 특히 마가는 베드로의 아들 같은 자로 베드로후서에 묘사되어 나옵니다. 바울은 베드로, 마가로부터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심을 그 사역을 듣고 확신을 더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 본인도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직접 대면하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원하십니까? 그 주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될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최대 동역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당대 지식인 의사인 누가는 11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거듭나 성자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영접합니다. 거듭난 후 일생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으로 바울을 보좌합니다. 이런 누가는 늘 바울 곁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저자 누가만큼 바울을 동역한 지체는 없을 것입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두 동력자를 선교의 기둥으로 삼고 바울은 당시 세계선교를 감당한 것입니다. 그는 확신에 차서 선교를 감당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두기고를 로마에서 에베소로 보냅니다. 에베소를 섬길 일꾼으로 디모데 대신에 신실한 두기고를 파송합니다. 두기고는 신실한 바울의 동역자로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침침한 지하 감옥에서 보낼 때 같이 동역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동시에 가장 마음이 잘 통하는 동역자로 보입니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로마의 항구인 오스티아(Ostia)나 푸테올리(Puteoli)에서 에베소까지 거리는 대략 약 1,420km(약 767해리)정도로 추정됩니다.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신의주를 지나 북경으로 가는 거리 정도 될 것입니다. 실로 엄청난 여정입니다. 당시 상호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고 소통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지만, 믿음의 한 지체로서 사도 바울과 함께 동역하는 지체들이 어느 정도 한 몸이 되어 있었는지를 우리는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고난 속에서 진정한 동역자를 하나 하나 불러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사역을 쉬지 않고 수행합니다. 그들은 현재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진정한 가족 같은 공동체를 맛보는 중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기고를 서신에 이렇게 간단하게 물품을 교환하듯이 언급할 정도로 그에게 친밀한 동역자임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교제로 신뢰가 구축된 관계가 아니면 할 수가 없는 명령이나 권면입니다. 주 안에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이 땅에서의 미리 보는 천국입니다.

2. 고난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 (13-16절)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지친 몸을 이끌고 디모데에게 겉옷과 가죽 종이에 쓴 책을 부탁합니다(13절). 그리고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에게 당한 해악을 말하며(14-15절), 더 나아가 처음 변명할 때 모두가 자기를 버리고 떠났던 고독했던 순간을 회고합니다(16절).

바울이 감옥에서 추위를 막을 겉옷과 함께 가죽 종이에 쓴 책(성경 사본 혹은 귀한 문서)을 간절히 요청한 것은, 그의 육신의 고통과 동시에 영적인 갈급함을 보여줍니다. 겉옷과 책은 바울에게 육신적인 보호와 영적인 양식을 상징합니다. 지하 감옥에서 추위를 보호해줄 겉옷을, 동시에 일반 두루마리가 아닌 양피지로 된 성경책을 가져 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힘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4:4)

요한이가 일본에 도착하면, 현지 생활과 새로운 비지니스 등을 하느라 몹시 바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양식인 말씀 읽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을 겉옷과 책처럼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는 것이야말로 타지에서 믿는 자들을 지켜줄 최고의 방패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실 때 그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그 필요를 채우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알렉산더에게 심한 해를 입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동역자들에게 버림받는 외로움을 경험합니다(16절).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향해 원망 대신 용서를 간구합니다.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6절 하반절)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자신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로 인해 늘 마음 고생을 많이 합니다. 한 기자가 그를 모함하는 정적들을 왜 가만히 두느냐고 묻자, 링컨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그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소멸시키지 않았습니까?" 라고 반문합니다. 바울의 용서는 링컨의 지혜를 넘어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배신과 상처 속에서도 용서를 선택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위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형편이 딱하고 어려울 때 대여해준 거금을 떼어먹고 도망간 이후 적반하장으로 돌변한 사람을 괘심이 여기다가 이제는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얼마나 어려우면 양심조차 마비될까? 하고 말입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실망할 지도 모릅니다. 그때, 알렉산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주께 맡기고(14절), 우리는 힘들고 아프게 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바울처럼 용서의 기도로 임하는 마음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 믿음을 지키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악한 세력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현재 전세계를 보시면 이 지구촌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세력들이 얼마나 많은지 직감할 수 있습니다. PC주의가 만연한 타락한 시대임을 잊지 않고 깨어 분별력을 가지고 적극 대응해야 합니다.

3. 홀로 서는 믿음, 함께 하시는 주님 (17-18절)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의 고독은 극에 달했지만, 그는 이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고 확신합니다. 바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이다(17절).

모두가 떠난 그 순간, 바울은 주님의 임재를 가장 깊이 경험합니다.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힘을 주신 목적은 두 가지 입니다. 첫째,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과(복음 증거), 둘째, 바울이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보호하심). (17절)

이사야는 홀로 고독하게 걸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약속합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걸어갈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2)

우리는 가장 외롭고 힘들 때, 주님께서는 가장 가까이 우리 곁에 서서 힘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이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은 것처럼, 로마 지하 감옥에서도 바울은 1차 석방이 됩니다. 마치 다니엘(단6장)이 사자 굴에 던져졌을 때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처럼 바울이 석방이 된 사건을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모든 악한 환경에서 우릴 건져내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는 세상의 어떤 동역자보다 더 강력한 힘이 됨을 붙들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의 여정을 이 영광스러운 확신으로 마무리합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후 4:18)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1628-1688)은 영국 침례교 목회자로 당시 국교인 성공회에 대항하며 신앙을 지키려다 12년간 감옥에 갇힙니다. 하지만 그는 감옥이야말로 주님의 임재를 가장 깊이 만나는 곳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캄캄한 감옥 속에서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불후의 명작을 써 냅니다. 세상은 그를 가두었지만, 주님은 그를 천국 소망으로 가득 채우신 것입니다. 가장 어두울 때가 동이 터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우리 자매에게도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을 것입니다. 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이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를 위해 바울처럼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이 우리 심령을 지배하도록 말입니다.

바울의 마지막 고백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모든 일에서 건져내시고 결국 그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도록 우리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복음을 소유한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르고 이 땅을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마치 재벌 댁에 태어난 자녀가 그 재산이 얼만인지도 모르듯이 말입니다. 당연히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그 때를, 그 환경을 우리는 감사로, 감사함으로 돌아보는 안목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바탕 위에서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일본을 거처 미국 그리고 전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가정으로 삼으시는 비전을 바라봅니다. 끝까지 충성하며, 바울, 누가, 마가, 두기고, 디모데처럼 쓰임 받는 비전을 바라봅니다. 매사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무시로 기도로 응답하고, 우리 자신들을 점검해 보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심령에 임하도록 간구하며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계획과 꿈을 품고 전세계를 향해 진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깨어 있으라. 주님은 늘 우리 곁에 계신다.”를 우리 심령에 새기고 기도로 도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들고 나아가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우리는 간구해야 합니다. 응답이 늦더라도, 때로는 당장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도 실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 우리 공동체에, 지구촌에, 일본에도 하나님의 공의, 사랑이 충만한 계절이 임하도록 기도로 도전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