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이름 하나하나에 담긴 사랑과 동역 [로마서 16:1-16]

이름 하나하나에 담긴 사랑과 동역 [로마서 16:1-16]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 I commend to you Phoebe our sister, who is a servant of the church in Cenchrea, 2that you may receive her in the Lord in a manner worthy of the saints, and assist her in whatever business she has need of you; for indeed she has been a helper of many and of myself also. 3Greet Priscilla and Aquila, my fellow workers in Christ Jesus, 4who risked their own necks for my life, to whom not only I give thanks, but also all the churches of the Gentiles. 5Likewise greet the church that is in their house. Greet my beloved Epaenetus, who is the firstfruits of Achaia to Christ. 6Greet Mary, who labored much for us. 7Greet Andronicus and Junia, my countrymen and my fellow prisoners, who are of note among the apostles, who also were in Christ before me. 8Greet Amplias, my beloved in the Lord. 9Greet Urbanus, our fellow worker in Christ, and Stachys, my beloved. 10Greet Apelles, approved in Christ. Greet those who are of the household of Aristobulus. 11Greet Herodion, my countryman. Greet those who are of the household of Narcissus who are in the Lord. 12Greet Tryphena and Tryphosa, who have labored in the Lord. Greet the beloved Persis, who labored much in the Lord. 13Greet Rufus, chosen in the Lord, and his mother and mine. 14Greet Asyncritus, Phlegon, Hermas, Patrobas, Hermes, and the brethren who are with them. 15Greet Philologus and Julia, Nereus and his sister, and Olympas, and all the saints who are with them. 16Greet one another with a holy kiss. The churches of Christ greet you.

제 자신을 돌아보면 왜 그렇게 지혜롭게 살지 못했을까 하는 간혹 막심한 후회가 밀려옵니다. 오늘의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시간을 낭비한 과오의 벌, 지혜롭지 못한 처신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어떤 것이 지혜일까요? 어려움이 닥칠 때, 또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환경을 극복하는, 또는 활용하는 마음가짐과 실천이 지혜가 아닐까 돌아보게 합니다. 바울은 꼭 로마에 가고 싶었습니다. 당시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다시스(현 스페인)에 까지 복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 수가 없습니다. 당장은 갈수가 없지만, 로마는 당시 패권국으로 로마에 입성해야 많은 동력자와 선교 후원을 받고 다시스에까지 복음을 전할 것으로 구상한 것입니다. 동시에 세상을 지배하는 중심부 로마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자 하는 멸망이 그를 열정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 중심에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는 동역자들의 헌신 위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짐을 목도하고 실제 체험한 장본인입니다. 그래서 그는 뵈뵈를 비롯한 브리스길라, 아굴라 등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서 그 고마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를 도와준 형제 사랑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로마서의 마지막 장, 16장 1절부터 16절까지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다소 지루하게 나열되어 있습니다. 뵈뵈, 브리스가와 아굴라, 에배네도, 마리아 등의 이름들이 이어집니다. 바울은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안부를 전했을까요? 여기에는 단순한 인사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공동체의 사랑과 동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도 바울의 목회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그 이름 하나하나에 담긴 사랑과 헌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세워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할지 함께 돌아보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1. 사랑의 빚을 진 동역자 (1-2절)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설교의 시작은 ‘뵈뵈’라는 한 여성의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바울은 그녀를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자 “우리 자매”라고 소개하며 로마 교회에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여기서 ‘일꾼’으로 번역된 헬라어 ‘디아코노스’ [διάκονος]는 오늘날 ‘집사’ 혹은 ‘사역자’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뵈뵈는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성도가 아니라, 겐그레아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아 헌신적으로 사역했던 여성입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구체적으로 부탁합니다.

첫째,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뵈뵈)를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손님으로 맞이하는 것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 된 지체로서 진심 어린 사랑과 존중으로 환대하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여성이 혼자 여행하는 것은 더욱 그러합니다. 바울은 로마교회가 뵈뵈에게 안전한 안식처와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당시 로마서 이 편지를 여성인 뵈뵈가 로마에 전달하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 서신은 지금 시대처럼 봉투 하나가 아닌 꽤 무거운 ‘두루마리’로 중량품 정도 되므로 어려운 일입니다.

둘째,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주라”고 말합니다. 이는 뵈뵈가 로마에서 감당해야 할 사역이나 개인적인 필요를 적극적으로 채워주라는 요청입니다. 바울이 이토록 간곡히 부탁하는 이유는 뵈뵈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보호자’로 번역된 ‘프로스타티스’ [προστάτις]는 ‘후원자’, ‘조력자’라는 뜻으로, 법적,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뵈뵈는 자신의 재물과 시간, 영향력을 사용하여 바울을 비롯한 많은 복음 사역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것입니다.

이는 요한3서 1장 5-8절의 말씀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사도 요한 역시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고 후원하는 것이 곧 “진리와 함께 일하는 자”가 되는 길이라고 강조합니다. 뵈뵈는 바로 이 말씀처럼, 복음 전파의 최전선에 서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충성된 후원과 섬김으로 바울과 함께 진리를 위해 일하는 동역자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이름도 빛도 없이 묵묵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뵈뵈’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성도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는 분들, 교회 곳곳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섬기는 손길들이 바로 현대의 뵈뵈입니다.

몇 년 전, 아프리카 오지에서 의료 선교를 하시는 한 선교사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물자, 계속되는 질병의 위협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의 한 후원자로부터 소포 하나를 받습니다. 그 안에는 정성껏 만든 밑반찬과 함께 짧은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습니다. “선교사님, 멀리서나마 기도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작은 정성이 선교사님의 사역에 작은 위로와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교사님은 그 편지를 읽고 펑펑 우셨다고 합니다. 자신을 기억하고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새 힘을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편지와 선물을 보낸 그 성도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섬김과 격려가 절망의 끝에 서 있던 한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하나님의 사역을 계속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뵈뵈’가 되어줄 때, 서로를 영접하고 필요를 채워줄 때,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굳건하게 세워져 갑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진심이 있다고 말입니다.

2. 생명의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 (3-5a)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바울의 문안 인사는 브리스가(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로 이어집니다. 바울은 이들을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부르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냅니다. 이들은 사도행전 18장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스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고린도에 와 있던 이들 부부는 천막 만드는 일을 합니다. 그들은 같은 직업을 가진 바울을 만나 함께 일하며 동역합니다.

이들의 동역은 단순히 함께 일하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바울은 그들이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다”고 증언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바울을 지켜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요한복음 15장 13절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친구이자 동역자인 바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사랑과 동역에 대해 바울은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하며, 그들의 수고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모든 교회를 위한 것이었음을 밝힙니다.

또한 바울은 “저(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고 덧붙입니다. 이들 부부는 가는 곳마다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예배와 교제의 장소, 즉, 가정 교회로 내어드립니다. 고린도에서, 에베소에서, 그리고 다시 돌아온 로마에서도 그들의 집은 복음의 전초기지요, 성도들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게 합니다. 자신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을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 헌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가정’은 점점 더 개인화되고 폐쇄적인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내 집’이라는 소유의 개념이 강해지면서, 이웃에게 문을 열고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문화가 자리 잡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집은 복음을 나누고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기사를 보게 됩니다. 한 청년 부부가 신혼 집을 얻어 이사를 합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어렵게 구한 작은 빌라였지만, 부부는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동네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고 삶을 나누는 ‘오픈 하우스’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서너 명으로 시작했던 모임이 입소문을 타면서 열 명이 넘는 청년들이 모이는 공동체가 됩니다. 그곳에서 청년들은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신앙의 고민을 나누며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어떤 청년은 그 모임을 통해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일도 일어납니다.

그 청년 부부의 집은 현대판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공간을 나눔으로써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작은 교회를 세워나갑니다. 이처럼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일터가 복음을 위한 거점이 될 때, 우리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은 생명을 살리는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를 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3. 이름 없는 이들의 위대한 헌신 (5b-16절)
5b.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5절 하반부부터 16절까지, 바울은 무려 26명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문안 인사를 전합니다. 에배네도, 마리아, 안드로니고, 유니아, 암블리아, 우르바노 등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이름들입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어쩌면 로마 교회의 평범한 성도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들의 수고와 헌신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당시 바울은 로마를 몹시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형편이 여의치 못하여 고린도에 머물면서 로마 사정을, 로마교회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를 가기 전에 쓴 서신입니다. 이 서신을 전달하는 책임자가 뵈뵈 여 집사입니다. 당시 서신은 요즘처럼 편지가 아닙니다. 두루마리로 꽤 부피와 중량이 나가는 요즘으로 보면 큰 배낭 이상이 되는 부담되는 귀중품 같은 것입니다.

에배네도: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 그의 존재 자체가 아시아 선교의 소중한 결실임을 기억해줍니다.

마리아: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여인. 그녀의 이름 앞에는 묵묵한 섬김과 헌신이 함께 기록됩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자요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바울과 같은 유대인이었고, 복음을 위해 함께 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었으며, 사도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신앙의 선배입니다. 특히 ‘유니아’는 여성의 이름으로, 당시 여성이 사역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문화 속에서도 귀하게 쓰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아벨레: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자”. 그의 신앙과 인격이 공동체 안에서 얼마나 신뢰를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루포와 그의 어머니: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루포는 마가복음 15: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에 언급된,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로 추정합니다. 아버지의 예기치 않은 만남이 온 가족의 구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를 “곧 내 어머니”라고 부르며, 육신의 혈연을 넘어선 영적인 가족 공동체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신분이나 직업, 구체적인 사역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그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린도전서 12장 21-27절의 ‘몸의 비유’를 생각나게 합니다.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교회는 위대한 사도 바울 한 사람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뵈뵈의 후원,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목숨을 건 동역, 그리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수많은 마리아와 아벨레, 루포와 같은 평범한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이 모여 교회를 형성합니다. 눈에 띄는 손과 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작은 지체들이 있기에 몸이 건강하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화려한 건물과 수많은 프로그램은 있지만, 초대교회가 가졌던 따뜻한 사랑의 교제와 역동적인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오랫동안 ‘스타 목회자’나 ‘유명한 사역자’에게만 의존해왔는지 모릅니다. 진정한 교회의 힘은 이름 없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실한 신앙과 삶의 헌신에서 나옵니다.

16절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바울은 긴 문안 인사를 마치며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권면합니다. 당시 ‘입맞춤’은 존경과 사랑, 친밀함의 표현입니다. 바울은 여기에 ‘거룩하게’라는 말을 덧붙여, 세상적인 방식이 아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와 허물을 용서받은 형제자매로서 순결하고 진실한 사랑을 나누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전하며, 로마 교회가 결코 홀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보편적 교회(Universal Church)의 한 지체임을 일깨워 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곳에는 직분이나 성별, 신분의 차별 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받은 은사대로 섬기는 아름다운 동역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그들의 헌신을 격려했고, 그들 역시 바울의 사역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2천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어떤 교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까? 한국 교회 공동체 안에는 수많은 ‘뵈뵈’와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리고 이름 없는 ‘마리아’들이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그들의 수고와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며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를 위해 묵묵히 기도해주시는 ‘나의 뵈뵈’는 누구입니까?
나의 신앙 여정에 큰 힘이 되어주는 ‘나의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누구입니까?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이름 없이 수고하는 ‘마리아’와 ‘버시’는 누구입니까?

우리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이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섬긴 분들은 없는지? 그 동역에 감사 하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함께 세워가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정상인 목자(목사)님이 종종 기억납니다. 처음 말씀을 배울 때, 늘 성경 공부를 하고 나면 은혜가 물밀듯이 밀려오게 한, 믿음 초기 시절의 저를 늘 정성으로 섬긴 그 열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정상인 선교사님은 중남미 도미니카공화국에서 8년 정도 선교하시다가, 미국으로 들어와 뉴저지에 살 때, 2001년 제가 회사 출장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사랑의 교제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뉴저지 시내 그의 아파트에서 서로가 반갑게 뜨겁게 마주한 것입니다. 당시 만감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지지교회 우리 자매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아직 하나님의 완전한 응답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 해도 해도 너무 하시지 않습니까? 하는 울분이 터져 나옵니다. 지지교회는 아직 법인 인가를 받지 못한 공동체로 작은 지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작지만 우리 나름대로 힘을 다해, 정성을 모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써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유례가 없는 현 불황에 우리 가정은 일본으로 자회사 법인이 진출하게 됩니다. 많은 부담이 밀려옵니다. 확실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지만 일본으로 진출하는 지지교회 지체들 위에 하나님의 적극적인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가정을 일본, 미국, 그리고 전세계에 진출하는데 원대하게 쓰임 받을 비전을 바라봅니다.

연약한 우리 자매를 위해 더욱 울부짖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자신에게처럼 따뜻한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말로 힘이 되고 상처가 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선교사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가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의 헌신을,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을, 주님의 선교 사역을 위해, 지지교회는 작지만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동남아, 환태평양, 남미에 진출해있는 선교사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위에 믿지 않는 친척들을 위해 하나 하나 호명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 시간을 드려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현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까? 현실만을 바라보면 이 나라가, 우리 공동체가 이렇게 망가질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하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불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믿음의 공동체를 허락하셔서 간섭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기도로, 열정으로 더욱 치열하게 도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기도를 열납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더욱 간절하게, 보다 섬세하게, 보다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환경이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로마서 16장의 말씀을 통해 초대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동역과 헌신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름 하나하나에 담긴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우리도 뵈뵈처럼 다른 이들의 필요를 채우는 보호자가 되게 하시고,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복음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동역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는 수많은 지체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공동체로 굳게 세워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