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홍수에서 건져내시는 손길 (The Hand that Rescues from the Flood of Lies)
베드로후서 2장 1-10절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But there were also false prophets among the people, even as there will be false teachers among you, who will secretly bring in destructive heresies, even denying the Lord who bought them, and bring on themselves swift destruction. 2And many will follow their destructive ways, because of whom the way of truth will be blasphemed. 3By covetousness they will exploit you with deceptive words; for a long time their judgment has not been idle, and their destruction does not slumber. Doom of False Teachers 4For if God did not spare the angels who sinned, but cast them down to hell and delivered them into chains of darkness, to be reserved for judgment; 5and did not spare the ancient world, but saved Noah, one of eight people, a preacher of righteousness, bringing in the flood on the world of the ungodly; 6and turning the cities of Sodom and Gomorrah into ashes, condemned them to destruction, making them an example to those who afterward would live ungodly; 7and delivered righteous Lot, who was oppressed by the filthy conduct of the wicked 8(for that righteous man, dwelling among them, tormented his righteous soul from day to day by seeing and hearing their lawless deeds)— 9then the Lord knows how to deliver the godly out of temptations and to reserve the unjust under punishment for the day of judgment, 10and especially those who walk according to the flesh in the lust of uncleanness and despise authority. They are presumptuous, self-willed. They are not afraid to speak evil of dignitaries,
현 우리 시대는 유투브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방송국이 힘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유투브가 시각, 청각 미디어를 장악한 정보의 홍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유투브를 보면 수많은 정보, 기사, 전문가 의견, 상품, 상술 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보거나 보더라도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가짜를 분별하기 위해 확인하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려 애를 씁니다. 잘못된 정보, '거짓'은 우리의 시간과 돈, 안전, 안보, 건강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영혼과 영원한 생명에 관한 문제는 어떻겠습니까? 세상의 그 어떤 거짓 정보보다도 훨씬 치명적인 것이 영적인 진리를 왜곡하는 거짓 가르침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베드로후서 2장의 말씀은, 바로 이 영적 분별의 중요성에 대한 사도 베드로의 간절하고도 단호한 경고입니다.
우리가 1장에서 우리 믿음이 '목격자의 증언'과 '더 확실한 말씀'이라는 굳건한 터 위에 서 있음을 확인했다면, 오늘 2장에서 베드로는 그 굳건한 터를 무너뜨리려는 위험한 세력이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교회 안에'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는 양의 탈을 쓰고 성도들 가운데 들어온 거짓 선생들의 실체를 폭로하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경고와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무서운 심판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건져내시고 보호하시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거짓의 홍수가 범람하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영적 분별력은 무엇이며, 우리가 의지해야 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무엇인지 깊이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강권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를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거짓의 해부도'를 통해 거짓 선생들의 실체를 분별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역사의 판결문'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폭풍 속의 약속'을 통해 신실한 구원의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1. 거짓 선생의 실체 (1-3절)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bought)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오늘 본문은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베드로가 3년 6개월 동안 만난 주님은 구약에서 이미 약속된 메시야라는 것이 입증이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악이 만연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분별력을 지니고 이 땅을 살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목도한 베드로는 산 증인입니다. 그래서 이단이나, 거짓말 하는 자, 속이는 자, 교회를 파괴하고자 몰래 침투하는 자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고자 경고의 메시지를 힘을 다해 전달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공동체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사도의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단이나, 불의 앞에 공동체 보호를 위해 항쟁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먼저 거짓 선생들의 특징을 마치 외과 의사가 병의 원인을 정밀하게 분석하듯, 날카롭게 해부하여 보여줍니다.
첫째, 그들은 '내부자'입니다. 1절은 "너희 중에" 거짓 선생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밖에서 교회를 공격하는 명백한 이단이 아니라, 교회 안에 성도라는 이름으로, 심지어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고 활동합니다. 그래서 더욱 분별하기 어렵고 위험합니다.
둘째, 그들의 방법은 '은밀함'입니다.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라고 했습니다. 대놓고 "예수는 구원자가 아니다"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기존의 진리에 교묘하게 거짓을 섞습니다. 성경 공부 모임, 문화 강좌, 봉사 활동 등 아주 선한 모습으로 접근하여 조금씩 진리를 변질시키는 독을 주입합니다.
셋째, 그들의 핵심 메시지는 '주님에 대한 부인'입니다.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한다"는 것은,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할지 모르나, 삶의 방식과 가르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자 되심과 절대적인 주권을 부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하거나, 자신들의 교주를 신격화하거나, 혹은 십자가의 대속이 아닌 인간의 노력이나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넷째, 그들의 동기는 '탐심'입니다. 3절은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의 최종 목적은 성도들의 영혼 구원이 아니라, 자신의 부와 명예, 그리고 성적인 욕망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헌금을 강요하고, 듣기 좋은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며,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착취합니다.
이러한 경고는 신약성경 곳곳에서 반복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15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사도행전 20장 29-30절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이 말씀은 2천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첫째로, 신천지, 000의 교회, JMS 등을 비롯한 이단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생생하게 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가만히" 침투하여 성경공부를 미끼로 접근하고, 점진적으로 자신들의 교리를 주입하여 결국에는 교주를 재림 예수로 믿게 만듭니다. 이는 명백히 "자기들을 사신 [자신의 피로 사신(BOUGHT)]주 주를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성도들이 물질적, 정신적 착취를 당하는 것은 그들의 동기가 '탐심'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둘째로, '번영 신학'의 위험성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부자가 된다는 메시지는 달콤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믿음을 부와 성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가르침은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자기 부인, 거룩한 삶의 의무는 이야기하지 않고 오직 축복과 긍정의 힘만을 강조하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닌 '돈'을 섬기게 만들 위험이 큽니다.
진리의 길은 때로 좁고 외롭습니다. 그러나 거짓의 길은 넓고 화려하여 많은 사람이 따릅니다(2절). 그 결과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부 타락한 거짓 목회자들과 이단들의 모습을 보고 기독교 전체를 비난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고 대적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지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으로부터 비방받지 않게 하기 위한 거룩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2. 변치 않는 하나님의 심판 (4-8절)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 중 하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심판하지 않으신다" 혹은 "심판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이니 지금은 마음껏 즐겨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러한 거짓말에 대해, 역사를 증인으로 소환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확실하고 준엄한지를 논증합니다. 그는 세 가지의 역사적 판결문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판결문: 타락한 천사들 (4절). 심판의 대상은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범죄한 천사들조차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으시고, 심판의 날까지 지옥의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이 얼마나 절대적인 기준인지를 보여줍니다. 그 어떤 피조물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판결문: 노아 시대의 홍수 (5절).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찼을 때,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개인을 넘어 온 세상에 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셨습니다."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판결문: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6-8절). 극심한 성적 타락과 무법함이 가득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은 불로 심판하여 "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이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example)"이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역사는 반복되며,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변치 않으신다는 경고입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면 비극을 반복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매일 소돔과 고모라를 능가하는 음란과 폭력을 접합니다. 동성애를 비롯한 성경이 명백히 죄라고 말하는 것들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오히려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죄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며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판결문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잠들지 않으시며(3절), 그분의 심판은 결코 지체되지 않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의 폼페이가 화산재에 묻힌 유적을 보며 우리는 그들의 갑작스러운 멸망을 봅니다. 수많은 거대 제국들이 도덕적 타락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들은, 죄악이 만연한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등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징조를 보며 두려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3. 신실한 하나님의 구원 (9-10절)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베드로가 앞서 세 가지 무서운 심판의 역사를 언급한 궁극적인 이유는, 성도들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위대한 원리, 즉 구원의 소망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9절 말씀은 이 단락의 결론이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위로와 약속입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홍수 속에서 노아를 위해 방주를 예비하셨고, 불타는 소돔성에서 천사들을 보내 롯의 손을 잡아 이끌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당신의 자녀를 건져내셔야 하는지를 '아시는(know how to)' 분입니다.
여기서 '시험(temptation/trial)'은 거짓 선생들의 미혹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부도덕한 사회 환경 전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롯처럼, 날마다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의로운 심령이 상하는(distressed)" 고통을 겪습니다(8절). 세상의 죄악과 교회의 타락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무너져 내립니다. '과연 이 세상에 희망이 있는가?'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가?' 하는 영적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바로 그때,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 고통을 아시고, 우리를 이 모든 시험에서 건져내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코로나19 펜데믹 시절, 온 세상이 혼란과 두려움에 빠졌을 때,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이단들은 더욱 기승을 부렸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고립되고 신앙의 시험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온라인 예배와 소그룹 모임 등 새로운 방식으로 그 백성을 먹이시고 돌보십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이웃을 섬긴 성도들을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십니다. 이는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피할 길을 내시고 건져주시는 손길과도 같았습니다.
또한, 공산주의나 이슬람 극단주의의 혹독한 핍박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지하교회 성도들의 이야기는, 이 약속이 얼마나 실제적인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생명의 위협을 받지만, 그 어떤 시험도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삶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살아 역사하사,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모든 시험 가운데서 능히 건져주고 계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매우 현실적이고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세상과 교회는, 거짓과 진리가 치열하게 싸우는 영적 전쟁터입니다. 거짓 선생들은 교묘한 말과 탐심으로 우리를 미혹하고,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의 길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를 구별해야 합니다. 모든 가르침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 기준에 비추어보고, 그들의 삶의 열매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달콤한 말에 현혹되지 말고, 십자가의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며, 반드시 다가올 미래입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지 말고,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구원의 소망'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의로운 심령이 상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지치고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홍수 속에서 방주를 예비하신 하나님, 불타는 성에서 롯의 손을 붙드신 하나님께서, 오늘 이 거짓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의 손을 붙들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모든 시험에서 건져내실 줄 아십니다. 이 확실한 구원의 약속을 믿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진리를 분별하고 거룩함을 지키며, 우리를 건져내시는 신실하신 주님만을 의지하며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짓과 음란이 가득한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 속에서, 베드로의 말씀을 통해 영적 분별력을 다시 보게 됩니다. 잘못된 정보, '거짓'은 우리의 시간, 돈, 건강, 우리의 영혼과 영원한 생명에 관한 문제에 까지 연결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거짓 정보보다도 치명적인 것이 바로 영적인 거짓, 진리를 왜곡하는 가르침입니다. 1장에서 우리 믿음이 '목격자의 증언'과 '더 확실한 말씀'이라는 굳건한 터 위에 서 있음을 확인했다면, 오늘 2장에서 베드로는 그 굳건한 터를 무너뜨리려는 위험한 세력이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교회 안에'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는 양의 탈을 쓰고 성도들 가운데 들어온 거짓 선생들의 실체를 폭로하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단지 경고와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무서운 심판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건져내시고 보호하시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거짓의 홍수가 범람하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영적 분별력은 무엇이며, 우리가 의지해야 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무엇인지 깊이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는 현재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개신교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주창한 사제(천주교) 출신입니다. 당시 루터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엄청난 살해 핍박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양심의 가책과 고백을 받아 기존 악들과 용감하게 맞서 싸웁니다. 루터는 한때 그가 교수로 재직한 비텐부르크 대학의 성으로 돌아가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됩니다. 그의 체포를 지시한 인물은 루터를 제거할 목적으로 체포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루터를 지지하는 프레드릭 현제(영주)가 루터를 체포하여 안전하게 발트부르크 성에서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게 합니다. 루터는 이 안전한 발트부르크 성에서 3개월만에 라틴어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합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을 성공하는 결정적 촉매가 됩니다. 당시 루터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발트부르크 성은 안전하지만 내주는 강한 성이시다(Our God is mighty fortress.) 루터는 눈에 보이는 성보다 주님의 임재가 훨씬 더 강한 성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더 의지하면서 살아갑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아님 주변의 환경입니까? 세상은 PC주의로 ‘차별금지법’이라는 요상한 법으로 신앙을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유린하고 있습니다. 침묵하는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신앙을 분명히 함으로써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처럼 싸워야 합니다. 강한 성이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므로 싸우고 외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 양의 옷을 입은 이리를 분별하게 하시고, 달콤한 거짓에 속지 않고 오직 기록된 말씀의 진리 위에 우리 모두 굳게 서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 우리의 마음을 깨워주시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기억하며 날마다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모든 시험에서 건지시는 주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굳게 붙들게 하옵소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무시로 or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