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믿음의 터 (The Certain Foundation of Our Faith)
베드로후서 1장 12-21절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12For this reason I will not be negligent to remind you always of these things, though you know and are established in the present truth. 13Yes, I think it is right, as long as I am in this tent, to stir you up by reminding you, 14knowing that shortly I must put off my tent, just as our Lord Jesus Christ showed me. 15Moreover I will be careful to ensure that you always have a reminder of these things after my decease.The Trustworthy Prophetic Word 16For we did not follow cunningly devised fables when we made known to you the power and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but were eyewitnesses of His majesty. 17For He received from God the Father honor and glory when such a voice came to Him from the Excellent Glory: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18And we heard this voice which came from heaven when we were with Him on the holy mountain. 19And so we have the prophetic word confirmed, which you do well to heed as a light that shines in a dark place, until the day dawns and the morning star rises in your hearts; 20knowing this first, that no prophecy of Scripture is of any private interpretation, 21for prophecy never came by the will of man, but holy men of God spoke as they were moved by the Holy Spirit.
2001년 방영된 상도(商道, business ethics, business morality)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절정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임상옥’이 당시 대방으로 그 업계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당시 대방은 현 우리 시대에 대입하면 그룹사 회장(대방=회장) 정도의 타이틀로 볼 수 있습니다. 임상옥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임상옥이 묻습니다. 자넨 장사(business, commerce, trade, deal)는 뭘 남긴다고 생각하는가? 찾아오는 사람들은 다 상인들로 요즘 시대로 비유하면, 총판사장, 대리점사장 들입니다. 이에 그들이 대답을 잘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이 뭔지 잘 모르고 살아갈 지도 모릅니다. 믿음도 동일합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당장 기도에 응답이 없어도 주님을 신뢰하면서 나아가야 합니까?
나눌 베드로후서 1장의 말씀은, 바로 이 ‘본질'의 중요성에 대한 한 노사도의 간절한 외침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제 자신의 죽음, 즉 "장막을 벗어날 날"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과도 같은 이 편지에서, 사도 베드로는 새로운 진리를 가르치기보다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다시 한번 remind 합니다. 그 진리의 터 위에 굳건히 서기를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베드로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성도들의 마음에 새기려 했던 우리 믿음의 확실한 근거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리 위에 우리의 삶을 굳건히 세우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본질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성스러운 기억의 의무'**를 가졌습니다. 둘째, 우리의 믿음은 '**생생한 목격자의 증언 위’**에 서 있습니다. 셋째, 우리에게는 어둠을 밝히는 '더 확실한 등불', 바로 성경이 있습니다.
1. 성스러운 기억의 의무 (12-15절)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는 12절에서 매우 중요한 전제를 말합니다. 바로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진리를 전혀 모른다고 책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이미 복음을 듣고 믿음 위에 서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아는 것을 왜 자꾸만 다시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이는 마치 부모가 독립하는 자녀에게 "밥 잘 챙겨 먹어라", "차 조심해라", "나쁜 사람 조심해라" 와 같이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말을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나 중요하고 사랑하기에 잊지 말고 삶의 순간순간에 기억하며 살아가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육신을 '장막'에 비유하며,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성도들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며 옳은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생각나게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잊었던 정보를 떠올리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이는 진리가 우리의 삶과 인격에 깊이 뿌리내려, 우리의 모든 생각과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 되게 하는 영적인 훈련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떠난 후에도, 즉 그의 육체적 부재 속에서도 성도들이 언제나 이 진리를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사도의 정신입니다.
이런 준엄한 '기억'의 명령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끊임없이 명하셨습니다.
신명기 6장 12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또한 사도 바울 역시 고린도 교회에 복음의 핵심을 다시 상기시키며 이렇게 말합니다.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수년 전, 전 세계를 감동시켰던 다큐멘터리 영화 '내 사랑'에는 노부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함께한 아내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매일 아침 아내가 가장 좋아했던 추억의 장소, 함께 불렀던 노래, 행복했던 순간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두 사람의 사랑의 역사를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비록 아내의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남편의 끊임없는 노력은 두 사람의 사랑이 현재진행형임을 확인시켜 주는 감동적인 의식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와 세상의 염려라는 치매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를 잊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아와 설교를 듣고, 성도들과 교제하며 우리를 구원하신 그 놀라운 진리를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끊임없이 '생각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은혜를 지키고 믿음 위에 굳건히 서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오늘, 십자가의 은혜를 얼마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십니까?
2. 생생한 목격자의 증언 (16-18절)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베드로는 우리가 왜 이 진리를 굳게 믿고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첫 번째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 복음이 누군가 지어낸 '교묘히 만든 이야기', 즉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 초대교회 주변에는 영지주의를 비롯한 많은 이단들이 그럴듯한 신화와 철학으로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을 역사적 사실이 아닌 영적인 상징이나 이야기로 끊임없이 격하하려 합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베드로는 자신의 주장이 상상이나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닌, 직접 보고 들은 '목격자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가장 생생한 증거는 바로 '변화산 사건'입니다. (마17:1-13/막9:2-13/눅9:28-36)
베드로는 야고보, 요한과 함께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는 것을 직접 목격합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크신 위엄", 하늘의 영광으로 빛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음성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온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보증하신 사건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자신의 경험이 환상이나 꿈이 아닌, 거룩한 산 위에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임을 증언합니다.
사도들의 증언이 '목격'에 근거한다는 것은 신약성경 전체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사도행전 1장 21-22절에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는 기준은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배신자 유다를 대신한 12번째 사도 맛디아가 그런 사도입니다.
사도 요한 역시 그의 서신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요한일서 1장 1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역사적 인물인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믿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분들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역사적 기록과 사료, 그리고 그것을 연구한 학자들의 증언을 통해 그분들의 존재와 업적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은 어떻습니까? 베드로와 사도들은 자신들의 증언 때문에 온갖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결국에는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 사람이 자신이 꾸며낸 거짓말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의 순교는 그들의 증언이 얼마나 확고한 진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막연한 신념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 실제로 오셔서,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물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 위에 세워진 역사적 신앙입니다. 이런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세상의 어떤 회의론과 비판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3. 더 확실한 등불, 성경 (19-21절)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는 변화산에서의 그 황홀하고 영광스러운 체험, 즉 자신의 목격담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놀랍게도 그것은 바로 '예언',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어떻게 사적인 체험보다 기록된 말씀이 더 확실할 수 있을까요?
이는 개인의 체험은 주관적일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되거나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잘못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객관적이고 영원하며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죄와 거짓,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어두운 곳과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이 진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영적 어둠 속에서, 성경은 우리 발 앞을 비추어 넘어지지 않게 하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보여주는 유일한 등불입니다. 우리는 이 등불의 빛을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여기서 '샛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분의 재림의 날 혹은 성령의 조명을 통해 그리스도의 진리가 우리 마음을 온전히 장악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오직 성경 말씀을 길의 안내자로 삼아야 합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이 등불, 즉 성경을 대하는 매우 중요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첫째, 성경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다(20절). 성경은 개인의 생각이나 주관적인 경험에 따라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성경 전체의 문맥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교회의 신앙고백 안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수많은 이단들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을 막는 방어벽이 됩니다.
둘째,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다(21절). 성경은 인간 저자들의 생각이나 지혜의 산물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 즉 성령께 붙들린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입니다. 비록 인간의 손으로 기록되었지만, 그 원천과 권위는 하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신적 권위, '영감(Inspiration)'입니다.
성경의 권위와 역할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시편 119편 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는 고백은 베드로의 비유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초등학교 때 밤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산길로 귀가하는 친구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차가 다니는 도로를 걸어가는 우리들이 그렇게 부럽다고 말입니다. 산길로 귀가하는 친구들은 불빛 하나 없이 감각적으로 본능적으로 집을 향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실제 도로로 귀가하는 우리들도 밤엔 차량 통행이 없어 불빛이 없으므로 그렇게 무서웠습니다. 지금 북한의 밤이 그렇습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정확한 해도와 나침반, 그리고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입니다. 만약 선장이 자신의 감이나 경험만을 믿고 해도와 나침반을 무시한 채 항해한다면, 그 배는 암초에 부딪히거나 길을 잃고 표류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경험 많은 선장이라 할지라도,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도구를 의지해야만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성경은 바로 그 해도와 나침반과 등대의 역할을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네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네가 느끼는 대로 살아라", “세상 지식을 네 판단 기준으로 삼아라”고 속삭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의 감정과 생각은 파도처럼 변덕스럽고 안개처럼 불확실합니다. 오직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가 따라야 할 절대적인 기준이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항구로 인도하는 유일하고 확실한 빛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무엇을 의지하십니까? 자신의 철학이나 지식이 나침반입니까, 영원히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침반이며 등불입니까?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관한 진리는 어떠하겠습니까? 세상의 그 어떤 약속이나 기념일보다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이 진리 역시, 우리가 의도적으로 되새기고 기억하지 않으면 일상의 분주함과 세상의 거짓된 가르침 속에서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베드로후서 1장의 말씀은, 바로 이 '본질'의 중요성에 대한 한 노사도의 간절한 외침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제 자신의 죽음, 즉 "장막을 벗어날 날"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과도 같은 이 편지에서, 그는 새로운 진리를 가르치기보다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하고, 그 진리의 터 위에 굳건히 서기를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베드로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성도들의 마음에 새기려 했던 우리 믿음의 확실한 근거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그 진리 위에 우리의 삶을 굳건히 세우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사도 베드로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간절한 권면을 듣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성도들이 다른 무엇도 아닌 '이미 받은 진리'를 굳게 붙들고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그 진리는 결코 사람이 지어낸 신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접 목격한 사도들의 생생한 증언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어떤 개인적인 체험보다도 '더 확실한'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있습니다. 이 성경은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일한 등불이요, 빛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처럼 '목격자들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두 개의 강력하고 흔들리지 않는 기둥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흔들고, 수많은 의심과 회의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확실한 터 위에 굳건히 서서 요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이를 우리 마음에 새기며 결단해야 합니다.
첫째, 십자가의 복음을 날마다 '기억'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의도적으로 묵상하고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우리 믿음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임을 확신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 위에 세워진 이성적인 믿음입니다.
셋째, 인생의 모든 순간에 성경을 '더 확실한 등불'로 삼고 그 빛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내 생각과 감정이 아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최종 권위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샛별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과 삶에 온전히 떠올라, 그 영광의 빛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확실한 진리의 터 위에서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임상옥은 자신을 찾아온 장사꾼(총판사장, 대리점장)들에게 장사(business, commerce, trade, deal)가 뭐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일반적으로 이럴 경우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답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 장사가 아닙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임상옥은 장사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답변 합니다.
우리 믿음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남기는 것이 우리 믿음입니까? 구원과 영생입니다. 구원과 영생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견줄 수 없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그 본질이 명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공로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써 죄가 사하여지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아야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다 사함을 받았기에 그렇습니다. 우리 공로가 하나도 없다면, 공로가 조금도 아니라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성화되려고 노력해도 부족하므로 죄와 허물에 노출됩니다. 그 때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님이 우리 참 주인이 되어서 통치하여 달라고 눈물로 간구해야 합니다.
임상옥이 사람을 잘 남길 때 그 사람들이 사람의 귀중함을 알아주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중간의 허리가 되어서 그 상단을 융성하게 하듯이 말입니다. 성경 말씀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릴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주신 성경 전체가 주는 말씀을 온전히 영접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라는 지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으로 간절히 구하면서 마지막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 날에 심판 주로 오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죽음을 앞둔 사도 베드로의 간절한 마음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받은 이 복음의 진리가 얼마나 확실하고 영광스러운 터 위에 서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능력을 기억하게 하시고, 세상의 헛된 이야기에 미혹되지 않게 하옵소서.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증언한 역사적 진리 위에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세우게 하옵소서. 어두운 세상 속에서 방황할 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유일한 등불로 삼아 그 빛을 따라 걷게 하시고, 사사로이 말씀을 해석하는 교만에서 우리를 지켜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샛별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온전히 떠오르는 그날까지, 이 확실한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