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신성한 성품으로 [베드로후서 1:1-11]

제목: 신성한 성품으로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본문: 베드로후서 1장 1절 - 11절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1Simon Peter, a bondservant and apostle of Jesus Christ, To those who have obtained like precious faith with us by the righteousness of our God and Savior Jesus Christ: 2Grace and peace be multiplied to you in the knowledge of God and of Jesus our Lord, 3as His divine power has given to us all things that pertain to life and godliness, through the knowledge of Him who called us by glory and virtue, 4by which have been given to us exceedingly great and precious promises, that through these you may be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having escaped the corruption that is in the world through lust. Fruitful Growth in the Faith 5But also for this very reason, giving all diligence, add to your faith virtue, to virtue knowledge, 6to knowledge self-control, to self-control perseverance, to perseverance godliness, 7to godliness brotherly kindness, and to brotherly kindness love. 8For if these things are yours and abound, you will be neither barren nor unfruitful in the knowledge of our Lord Jesus Christ. 9For he who lacks these things is shortsighted, even to blindness, and has forgotten that he was cleansed from his old sins. 10Therefore, brethren, be even more diligent to make your call and election sure, for if you do these things you will never stumble; 11for so an entrance will be supplied to you abundantly into the everlasting kingdom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Peter’s Approaching Death

본문은 사도 베드로의 마지막 편지, 그의 신앙적 유언과도 같은 베드로후서입니다. 이 서신은 임박한 죽음을 앞둔 노사도가 사방에 흩어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전하는 마지막 당부입니다. 그의 간절한 서신에는 당시 이단 및 거짓 교사들의 미혹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고, 성도들이 받은 구원의 감격과 소명을 잊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기를 바라는 애끓는 심정이 담겨 있습니다. 피를 통하는 심정으로 베드로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단순히 죄로부터의 해방,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힘주어 말합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성품,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영광스러운 부르심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험준한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탄탄한 등산화와 강력한 로프, 정상을 향한 지도(map)를 준비하듯,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 여정을 위한 모든 것을 이미 허락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은 무엇인가? 둘째, 그 선물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야 하는가? 셋째, 그 삶의 끝에 우리를 기다리는 영광스러운 소망은 무엇인가?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의 소망을 붙들고, 신성한 성품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1. 보배로운 믿음과 신성한 능력 (1-4절)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본문은 베드로의 자기소개로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1절)

베드로는 자신을 ‘종’(헬라어: 둘로스, δοῦλος)이요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종’이라는 단어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인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노예를 의미합니다. 그는 주님의 위대한 사도로 부름받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의 가장 근본은 그리스도의 종임을 잊지 않습니다. 이 겸손함이야말로 그의 사도직에 진정한 권위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을 향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동일하게’라는 말은 초대교회의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이 함께 있습니다. 배경도, 문화도, 신분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선언합니다. 사도인 자신과 이름 없는 이방인 성도의 믿음이 질적으로 조금도 다르지 않은 ‘동일하게 보배로운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안에서 동일한 한 지체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보배로운 믿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우리의 노력이나 자격 때문이 아닙니다.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처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석과 같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 구원의 시작이요, 모든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이 믿음을 소유한 자들에게 베드로는 축복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2절)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와 평강이 풍성해지는 통로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바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입니다. 여기서 ‘앎’(헬라어: 에피그노시스, epignosis)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인격적이고 경험적인 깊은 사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갈수록, 그분의 성품과 사랑을 체험할수록, 우리 삶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이 강물처럼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선물로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까지도 공급해주십니다. 3절과 4절은 그 사실을 명확히 증언합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3-4절)

놀라운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 즉 신적인 능력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고 경건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 빈곤 상태에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미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받았습니까? 우리를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부르신 이’, 곧 하나님을 ‘앎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신적인 능력과 더불어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성경 전체를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우리를 향한 신실한 사랑의 언약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이 4절 하반절에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정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썩어짐에서 건져내시는 것에서 멈추지 않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만드시기 원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도덕적, 영적 성품, 즉 그분의 사랑, 거룩, 의, 선하심, 자비하심을 우리의 인격과 삶 속에 반영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달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지만 태양 빛을 받아 반사하여 어두운 밤을 비추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하여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존재로 부름받은 것입니다.

2. 신성한 성품을 향한 성장 (5-9절)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처럼 놀라운 선물, 즉 보배로운 믿음과 신적인 능력, 그리고 위대한 약속을 주셨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5절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하며 우리의 마땅한 응답을 촉구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5-7절)

여기서 ‘더욱 힘써’(헬라어: 스푸데, σπουδή)라는 말은 열심, 열정, 부지런함을 다하라는 강력한 권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최선을 다해 반응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필립보서 2장 12-13절은 이 관계를 잘 설명합니다.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힘써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힘써야 할 영적 성장의 단계를 ‘신앙의 사다리’ 또는 ‘성품의 계단’처럼 제시합니다. 이 8가지 덕목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1. 믿음 (Faith): 모든 것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가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2. 덕 (Virtue/Goodness): 믿음은 생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덕’은 도덕적인 탁월함과 용기 있는 실천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삶의 선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3. 지식 (Knowledge): 선한 행동은 무지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지식’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영적 통찰력과 지혜를 의미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아야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4. 절제 (Self-control): 아는 것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절제는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죄된 본성은 끊임없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5. 인내 (Perseverance): 절제는 단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인내’는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견디는 힘입니다. 신앙의 경주는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습니다.
6. 경건 (Godliness): 인내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의식하게 됩니다. ‘경건’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임재를 인식하며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7. 형제 우애 (Brotherly Kindness): 경건한 삶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형제 우애’(헬라어: 필라델피아, φιλαδελφία)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향한 따뜻하고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8. 사랑 (Love): 마지막으로 모든 덕의 완성은 ‘사랑’(헬라어: 아가페, ἀγάπη)입니다. 이것은 형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이 모든 덕목들을 하나로 묶는 띠와 같습니다. (골로새서 3:13-14) 13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베드로는 이러한 성품의 성장이 우리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8절과 9절에서 역설합니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8-9절)

이러한 성품들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우리는 주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역동적이고 생산적으로 변합니다. 반대로 이런 성품의 성장이 없는 사람은 영적인 ‘맹인’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는 ‘멀리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신앙인입니다. 당장 눈앞의 세상적인 것들에만 집착할 뿐,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약속을 보지 못합니다. 더 비참한 것은, 자신이 과거에 어떤 죄인이었으며, 그리스도의 피로 얼마나 큰 용서를 받았는지를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상실한 채, 무기력하고 방향 잃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1475년~1564년)의 걸작 ‘다비드상’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한 성당 마당에 수십 년간 버려져 있던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를 가지고 이 위대한 작품을 조각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쓸모없는 돌덩이라고 생각했지만, 미켈란젤로의 눈에는 그 안에 잠자고 있는 완벽한 다비드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그에게 어떻게 그토록 생생하고 완벽한 다비드상을 조각할 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다비드를 조각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돌 안에 갇혀 있던 다비드를 해방시켰을 뿐입니다. 나는 다비드가 아닌 모든 부분을 쪼아냈을 뿐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신앙 성장에 깊은 통찰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실 때, 현재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조각가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걸작품으로 빚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신기한 능력’과 ‘보배로운 약속’이라는 최고의 조각 도구를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역할은 조각가이신 하나님의 손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힘써’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아닌 불필요한 부분들, 즉 베드로가 말한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들’을 쪼아내야 합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는 것은 거친 돌의 모서리를 깎아내는 정질과 같습니다. 지식을 더하는 것은 섬세한 조각을 위한 설계도를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절제와 인내는 수없이 망치를 두드리고 끌을 대는 반복적인 과정입니다. 경건과 형제 우애, 그리고 사랑을 더해감으로써,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불필요한 부분이 깎여나가고, 마침내 우리 안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형상, 신성한 성품이 아름답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은 때로 아프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조각가의 손길을 신뢰하며 순종할 때, 우리는 마침내 세상이 감탄하는 하나님의 걸작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3. 영원한 나라로의 넉넉한 입성 (10-11절)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렇다면 이 힘겨운 영적 성장의 여정, 그 끝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베드로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소망으로 우리의 최종 목표를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10-11절)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불안정하니 노력해서 지키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우리의 삶의 열매를 통해 주관적으로 확증하고 증명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앞서 말한 성품의 계단을 부지런히 올라갈 때, 우리의 삶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녀라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자는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반석 위에 굳건히 세워져 영적인 안정감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11절에서 베드로는 이 모든 신앙 여정의 클라이맥스를 선언합니다.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여기서 ‘넉넉히 들어감’(richly supplied entrance)이라는 표현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것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을 위해 도시의 모든 시민이 나와 환호하며 맞이하는 개선 행진과 같은 이미지입니다. 겨우 턱걸이로, 불 가운데서 구원받는 것처럼 부끄럽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모든 천군 천사, 그리고 먼저 간 성도들의 뜨거운 환영과 박수갈채를 받으며 영광스럽게 입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삶을 살기 위해 ‘더욱 힘썼던’ 모든 수고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인정이며 보상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는 확신에 찬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의 간절한 권면을 통해 우리 신앙의 여정을 총체적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으며, 우리를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부르시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부르심 앞에 우리는 마땅히 ‘더욱 힘써’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나는 아닌데, 안 아직 아니냐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원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믿음을 가진 우리는 선택 받은 하나님 자녀임을 기억하고 이를 세상 어느 것보다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 기본이고 믿음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화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고쳐지지 않는 습관도, 병폐도, 단점도, 부족함도 인정하고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으니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고쳐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 위에 덕을, 지식을, 절제를, 인내를, 경건을, 형제 우애를, 그리고 사랑을 끊임없이 더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성장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영적 맹인이 되는 것을 피하고, 열매 맺는 풍성한 신앙인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믿음의 경주 끝에,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영원한 나라’의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 나라에 겨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개선장군처럼 ‘넉넉히’, 풍성하고 영광스럽게 입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혹시 구원의 감격을 잊은 채, 멀리 보지 못하는 영적 근시안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의 성장을 멈추고 게으름과 무기력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위대한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믿음에 작은 ‘덕’ 하나를 더하기 위해 힘쓰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대리석에서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쪼아내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드러내는 거룩한 작업을 계속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환한 조명 아래서 빛나는 메달, 관중의 뜨거운 환호, 그리고 선수의 눈에 맺힌 감격의 눈물, 우리는 그 영광스러운 결과만을 보며 감탄하지만, 그 한 순간을 위해 선수가 바친 수년, 혹은 수십 년의 시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영광의 순간 뒤에는 남들이 잠든 새벽을 깨우며 흘렸던 땀방울이 있고, 먹고 싶은 것을 참아내며 식단을 조절했던 ‘절제’가 있습니다. 부상과 슬럼프의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인내’가 있으며, 오직 푯대를 향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더욱 힘쓰는’ 열정과 헌신이 있습니다.

올림픽 선수는 코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훈련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용기 있는 ‘덕’을 발휘하여 훈련에 임합니다. 더 나은 성과를 위해 과학적인 훈련 방법과 전략을 배우는 ‘지식’을 쌓고, 최고의 기량을 위해 자신을 통제하는 ‘절제’를 배우며,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디는 ‘인내’를 통해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베드로가 우리에게 권면하는 신앙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순히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활동만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나라의 시상대를 향해 달려가는 올림픽 선수와 같은 열정과 헌신을 요구하는 장거리 경주 같은 것입니다.

선수에게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영광스러운 목표가 있습니다. 선수가 목표를 위해 자신을 단련시키듯, 우리도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해’ 신성한 성품으로 우리 자신을 단련시켜야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1508년 바티칸 사도 궁전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위촉 받고 허리가 꺾이는 듯한 고통에도 4년 만에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비둘기의 허리처럼 허리가 굽혀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위대한 작품이나 조각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이같이 우리 믿음도 인내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금메달은 시간이 지나면 녹슬고 그 영광도 곧 잊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의의 면류관은 영원히 빛나는 것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이나 고대, 중세, 현대 걸작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어떠한 자세로 신앙의 경주에 임하고 있습니까? 관중석에 앉아 구경하는 사람처럼은 아닙니까, 아니면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땀 흘려 달리는 선수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영광의 푯대를 향해 ‘더욱 힘써’ 달려 나가는 신실한 주님의 선수가 되고자 하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임마누엘 하시기 약 600년전, 다니엘은 10대 중반 나이에 조국 유다가 멸망함으로 바벨론에 1차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왕족이었던 그가 10대에 적국 바벨론에 끌려간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은 다니엘 그가 보기에 숭배할 나라가 전혀 아닙니다. 그렇다고 힘없는 다니엘이 바벨론 왕국을 상대로 물리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형편은 더더욱 못됩니다. 이에 다니엘은 하루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께 세 번 기도합니다. 바벨론 대신들이 이렇게 기도하는 다니엘을 제거하고자 왕의 금령(DECREE)를 날인 받아 “바벨론 왕이 아닌 것”에 즉, 다른 신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고 해도, 다니엘은 하루 3번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에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아주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특별한 환상으로 그를 탁월하게 높여 주십니다. 바벨론의 술사나 책사들 중 어느 누구도 바벨론 왕의 꿈을 해몽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벨사살 왕의 환상을 풀어 주지를 못합니다. 그럴 때마다 다니엘만이 꿈이나 환상을 해몽이나 해독하게 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바벨론의 3위 통치자 직위에까지 높여 줍니다. 그리고 엄청난 환상을 미리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 오실 날까지의 환상을 미리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하나님께 시간을 정하여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고 돌보시고 미래 일어날 일을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얼마나 진지하게 드리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저는 한 주를 돌아볼 때, 염려 속에서 보냈습니다. 생전 처음 겪는 문서 감정소를 찾아가고, 사본 공정까지 받으려고 법인인감증명서를 발급받고, 보다 사건을 확실하고 마무리하고자 할 수 있는 한 힘을 다한 것입니다. 한편 돌아보면 제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힘들어집니다. 부산의 고객사 미결제 건은 아직 답변이 없어, 법적 소송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결제 금액이 2,750만원이니되니 단위가 큽니다. 10대 소년인 다니엘은 본인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일까요? 우리 삶이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 역사하심을 치열하게 체험하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감사할 수 없는 조건에서도 감사함으로 치열하게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그런데 왜 제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십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우리 불만도, 아픔도, 슬픔도, 비애도, 고통도, 탄식도 하나님께 다 털어 놓아야 합니다. 시편에는 이런 기도가 넘쳐납니다. 시편의 이런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속상하면 속 상한다고, 응답이 늦으면 왜 응답이 늦으시냐고? 은혜를 받으면 감사하다고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장소와 시간을 정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미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우리를 죄의 썩어질 것에서 건져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녀로 불러주신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더욱 힘써 우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그리고 마침내 사랑을 더하는 성장의 여정을 계속하게 하옵소서. 오늘의 어려움을 인내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힘써 싸워나가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위대한 일을 시작하신 주님께서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온전히 이루실 줄 믿습니다. 당장 기도 응답이 없더라도 실망하지 않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고백하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므로 기도의 응답을 맛보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