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염려 넘어 영광의 삶 [베드로전서 5:7-11]

**염려 넘어 영광의 삶 [**베드로전서 5:7-11]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7casting all your care upon Him, for He cares for you. 8Be sober, be vigilant; because your adversary the devil walks about like a roaring lion, seeking whom he may devour. 9Resist him, steadfast in the faith, knowing that the same sufferings are experienced by your brotherhood in the world. 10But may the God of all grace, who called us to His eternal glory by Christ Jesus, after you have suffered a while, perfect, establish, strengthen, and settle you. 11To Him be the glory and the dominion forever and ever. Amen.

지난 주 9월 1일 월요일, 새벽에 출근하여 대금 2750만원을 결제 받지 못한 고객사에 대한 소송 자료를 검토하는 중에, 2017년 11월 27일 우리 회사에 당도한 이해할 수 없는 문서를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회사가 동의를 한 것이 전혀 없는데, 공증까지 받은 서류라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법을 전공한 동료 분에게 자문을 구하게 됩니다. 법학을 전공한 동료 분 이야기는 반드시 확인서를 채권 양수인으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중으로 수수료를 지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문제가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되니, 그러잖아도 불황으로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할 것인가로 고민이 깊어 가는데, 심령에 평강이 사라집니다. 한 주간을 이 문제로 고민하는 가운데, 염려가운데 보내게 됩니다. 우리는 법 지식이나 상식이 풍부하건 그렇지 않건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현 우리 시대를 다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세상 일을 다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00여년전 나그네로 사방에 흩어져 고난 가운데, 염려 가운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라고 사도 베드로가 권면하였는데,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현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말씀을 통해 각자의 내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 (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7절)

이는 너무나도 유명한 말씀으로 늘 불안과 염려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여기서 ‘맡기라’는 헬라어 원어 ‘에피립토(ἐπιρρίπτω)’는 ‘내던져 버리다’라는 아주 강력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때, 그 짐을 누군가에게 완전히 던져서 넘겨버리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염려를 조금만 덜어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다’, ‘모든’ 염려를 남김없이 주님께 던져버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이렇게 베드로는 주문할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염려합니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책임지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해’,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내야 해’라는 생각이 우리를 염려의 늪으로 더 깊이 빠뜨립니다. 특히 제 성격이 그런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염려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의 표현일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며,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물며 그의 자녀들을 돌보시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하고, 경계하고, 방어하더라도 우리 한계를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신실한 믿음의 여인, 코리 텐 붐 여사(1892-1983)가 있습니다. 그녀는 네덜란드(화란)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코리 부모님이 성경으로 자녀들을 양육합니다. 코리는 2차대전 당시 자기 집에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가족들이 점령군 나치군이 설치한 포로 수용소에 감금됩니다. 당시 코리 가족은 자신의 집을 방문한 목사님에게 유대인들을 숨겨 달라고 부탁하지만 거절을 당합니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말살하기 위해 이런 폭압적 정책을 쓴 것입니다. 그러나 코리는 수용소의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전합니다. 그녀는 감옥에서 죽을 운명이었지만 행정착오로 석방됩니다. 훗날 그녀는 전 세계를 다니며 간증 집회를 했는데, 한번은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염려와 두려움을 이겨내셨습니까?"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릴 적 저는 아버지와 함께 기차 여행을 자주 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기차를 타려고 하면, 아버지는 항상 제게서 가방을 받아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차가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다시 제게 돌려주셨죠.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염려의 짐을 들어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짐을 하나님께 맡겼다가, 슬그머니 다시 가져와 제 어깨에 짊어지고 끙끙 앓을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는 말로는, 기도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만, 내면에 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해 하는 자아 의식이 발동합니다. 이 자아 의식은 비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 정상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새롭게 가슴에 조각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염려를 맡기라고 하시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에게 심리적인 평안을 주시기 위함만이 아닙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가 염려를 맡겨야 하는 이유는,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돌보심'은 수동적인 관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보살핌을 의미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의 모든 필요를 세심하게 살피고 채워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전체를 책임지고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염려의 짐을 내려놓고 주님께 온전히 던져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돌보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을 짓누르고 있는 염려의 목록을 마음 속으로 적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남김없이 맡기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2. 근신하여 깨어 마귀를 대적하라 (8-9절)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8-9절)

염려를 주님께 맡겼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곧바로 우리에게 영적인 경각심을 일깨워줍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이것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강력한 권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입니다.

'우는 사자'라는 표현은 매우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굶주림에 지쳐 포효하며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맹수의 모습입니다. 사자는 주로 약하고, 병들고, 무리에서 이탈한 동물을 공격 목표로 삼습니다. 마찬가지로 마귀는 영적으로 지쳐있고, 공동체에서 멀어져 홀로 고립된 성도, 의심과 불평에 사로잡힌 성도를 공격하여 넘어뜨리려 합니다. 마귀의 주된 공격 무기는 바로 ‘염려’와 ‘두려움’입니다. 염려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돌보심을 의심하게 만들고, 두려움에 빠져 믿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다큐멘터리에서 알래스카 불곰이 연어를 사냥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수많은 연어 떼를 향해 곰은 무작정 달려들지 않습니다. 물살이 세고 깊은 곳에서 힘차게 헤엄치는 연어는 잘 건드리지 않습니다. 대신, 곰은 물살이 약한 가장자리에 머물며 지쳐서 뒤처지거나, 상처 입은 연어가 나타나기를 끈기 있게 기다립니다. 그리고 가장 약해 보이는 순간, 지체 없이 달려들어 낚아챕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힘차게 전진할 때는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낙심하고, 염려에 빠져 영적인 활력을 잃고 홀로 뒤처질 때, 마귀는 바로 그 순간을 노려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적 싸움에서 우리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9절 말씀은 그 비결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바로 '굳건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막연한 긍정의 힘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뿌리내린 믿음,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선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오직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40일간 금식기도로 예수님이 마귀를 물리친 사건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성자 하나님이 예수님께서도 마귀를 물리치시기에는 마귀 세력도 만만치 않음을 동시에 시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 때, 마귀의 모든 거짓과 속임수를 이겨낼 수 있기 위해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가 늘 우리는 공격하는 세력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 세력이 만만치 않음을 또한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이 금식으로 40일간 기도를 하신 것처럼, 한계를 뛰어넘는 예수님을 붙들고 그와 접붙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는 우리가 이 싸움을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격려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나만 특별히 더 힘든 고난을 겪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동일한 영적 싸움을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큰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대한 영적 군대의 일원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며 함께 믿음의 방패를 들고 나아갈 때, 우리는 마귀의 어떤 불화살도 막아내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라 (10-11절)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10-11절)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우리의 시선을 현재의 고난과 싸움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과 영원한 영광으로 옮겨줍니다. 이 구절은 고난의 터널을 지나는 우리들에게 큰 소망과 확신을 주는 말씀입니다.

먼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선포합니다. 그분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어떤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값없이 부어주시는 은혜의 근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또한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연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부르심의 결과이며, 그 최종 목적지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이 위대한 약속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현재 겪는 고난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본문은 그것을 "잠깐 고난을 당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다가올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이 땅에서의 고난은 지극히 짧고 가벼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우리가 느끼기에는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일지라도,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 속에서는 한 점에 불과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 '잠깐의 고난'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빚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10절 하반절은 고난을 통과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변화시키실 것인지에 대한 네 가지 약속을 제시합니다. 너희를 1.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2. 굳건하게 하시며 3. 강하게 하시며 4.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καταρτίσει/카타르티세이):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찢어진 그물을 수리하거나, 탈골된 뼈를 제자리에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의 깨어지고 망가진 부분을 친히 고치시고 회복시켜, 원래 창조하신 목적대로 온전하게 기능하도록 만드십니다. 고난을 우리 더욱 강하게 합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이에 대응하게 합니다.

2. 굳건하게 하시며 (στηρίξει/스테릭세이): 흔들리는 것을 단단히 지지하고 받쳐준다는 의미입니다. 고난의 폭풍우 속에서 흔들렸던 우리의 믿음을 반석 위에 굳게 세워주십니다. 1736년 모라비안 성도들은 대서양의 폭풍우 속에서도 뱃머리가 부서지는 환난 속에서도 조금도 요동치 않고 기도하면서 찬송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당시 그 여객선에 동승한 존 웨슬리가 이를 목도하고 충격을 받아 회심하게 됩니다.

3. 강하게 하시며 (σθενώσει/스테노세이): 약한 자에게 힘과 능력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시험들을 통과하며,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영적 근력을 갖게 됩니다. 유약한 겁쟁이 기드온을 하나님이 친히 용사로 세우듯이 말입니다

4.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θεμελιώσει/데밀리오세이): 건물의 기초를 놓는다는 의미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더욱 깊고 튼튼하게 다져져서, 어떤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집을 세우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권력자들이 버린 돌이지만 모퉁이 돌이 되어 반석이 되듯이, 성자 하나님인 주님을 보호자로 신뢰하는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훌륭한 대장장이는 쇠를 불에 달구었다가 망치로 두드리고, 다시 물에 담그는 과정을 반복하며 명검을 만들어냅니다. 쇠의 입장에서는 뜨거운 불과 차가운 물, 그리고 아픈 망치질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왜 나만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장장이의 목적은 쇠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쓸모없는 쇳덩어리를 불순물이 제거된 단단하고 예리한 칼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시는 고난이라는 풀무불과 망치질은 우리를 파괴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 속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우리를 더욱 순결하고 강인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그릇으로 빚어 가시기 위함입니다. 의인 욥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고백했던 것처럼, 고난의 과정을 믿음으로 통과한 성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영적 성숙과 견고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은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존재하시는 분입니다(11절). 하나님의 능력은 결코 쇠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오늘의 고난을 넉넉히 이기고 소망 가운데 인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쓴 편지의 일부분입니다. 이 편지가 쓰여질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박해와 고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오해받고, 부당하게 비난 받았으며,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마치 거친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배처럼, 그들의 삶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염려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 역시 삶의 여러 문제 앞에서 염려하고,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건강의 문제, 재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 수많은 삶의 무게가 우리를 짓누를 때가 많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우리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불안을 겪었고, 여전히 그 여파 속에서 많은 이들이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는 송두리째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반 기독교적 분위기, 분별력을 상실한 언론, 미국과의 관세(TARRIF)문제, 대한민국의 정체성 문제 등은 우리를 심히 불안하게 합니다. 이러한 때에 베드로 사도가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전하는 권면의 말씀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위로와 능력으로 다가옵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서 11절 말씀을 통해,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세밀하고도 강력한 메시지를 듣습니다.

첫째, 우리의 모든 염려를 남김없이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는 우리를 책임지시고 돌보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영적으로 깨어 근신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궤계를 굳건한 믿음과 말씀으로 대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잠깐의 고난 너머에 있는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를 온전하고 굳건하며 강하고 견고하게 세우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처럼 거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강력한 지침을 제공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짓누르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며, 마침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세상의 염려에 함몰되는 인생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우리를 부르신 영원한 영광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한 주간 회사 법률적인 일로 평강이 없이 힘들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염려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더라도 제 지식이나 역량을 넘어 역사하시는 손길이 있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 가정을 돌아볼 때, 우리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아직까지 우리 자매는, 아내는 육신의 고통으로, 저는 염려로, 아들은 일본으로 등 많은 문제로 염려가 안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우선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2000여전 이 땅에 임마누엘 하신 것이 역사적 사실이고, 이를 목도한 사도 산 증인 베드로의 고백이고 이를 근거로 하신 권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현실 앞에 무기력해질 수 있습니다. 현실만을 주시할 때 하나님 말씀이 심령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힘으로, 우리 시각으로, 우리 의지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 이 땅에 임마누엘 하셔서 수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이를 심령에 온전히 조각하고, 기도하고 성령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써 만사를 주님께 맡기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강권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만이 주시는 평강이 우리를 지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