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겸비(謙卑)로 세워지는 공동체 [베드로전서 5:1-6]

겸비(謙卑)로 세워지는 공동체 [베드로전서 5:1-6]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1The elders who are among you I exhort, I who am a fellow elder and a witness of the sufferings of Christ, and also a partaker of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2Shepherd the flock of God which is among you, serving as overseers, not by compulsion but willingly, not for dishonest gain but eagerly; 3nor as being lords over those entrusted to you, but being examples to the flock; 4and when the Chief Shepherd appears, you will receive the crown of glory that does not fade away. Submit to God, Resist the Devil 5Likewise you younger people, submit yourselves to your elders. Yes, all of you be submissive to one another, and be clothed with humility, for “God resists the proud, But gives grace to the humble.” 6Therefore humble yourselves under the mighty hand of God, that He may exalt you in due time,

30여년전 직장에서 한번은 강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게 됩니다. 당시 이 분은 그 분야 전국적인 Top 수준급 강사로 요즘 말로 1타 강사입니다. 그런데 이 강사가 자신의 직장 동료의 초대를 받아 동료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날 따라 비가 많이 내려 도로가 질퍽한 상태로, 그 동료 집안으로 들어섰고, 자신도 비를 맞아 바지가 젖고 바지에 흙이 뭍은 채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집안에 들어서자 방 안으로 들어가서 주변을 보니 집안이 정리가 안되어 있고, 질서가 없고 지저분해 보입니다. 그러자 본인도 본인 바지에 붙은 흙을 그 방 바닥에 살살 비벼서 털어버렸다는 고백을 합니다. 이 말은 듣는 순간 저는 저런 괘씸한 놈이 있나? 하는 생각이 순간 뇌리를 스쳤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별로 죄책감을 못 느끼는 것 같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늘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통해 리더는, 믿음을 가진 우리들은 어떤 자세로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리더의 자세 (1-4절)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베드로는 교회 공동체의 리더인 장로들에게 먼저 권면의 말을 전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초대교회 당시 장로는 교회의 지도자들입니다. 당시 장로는 지금 교회의 장로와는 다소 다른 개념입니다. 주님 승천하신 후 30년 정도 경과한 시점으로 아직 교회라는 용어가 현재의 우리 시대 교회와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초기 교회이므로 나이 든 남자 연장자로서 말씀을 전하고 권면하고, 조언하는 분들이 장로로 활동하던 시대입니다. 왜 베드로는 교회의 리더인 장로들에게 먼저 바로 서라고 권면할까요? 건강한 공동체는 건강한 리더십 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거의 50년전 제가 공무원을 할 때에는 전과(前科, previous conviction)가 있으면 공무원 임용이 거의 불가할 정도로 엄격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공무원은 국가 공동체를 실제적으로 운영하는 주체들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리더들이 청렴해야 리더십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당시 꽁초를 길거리에 투기하다 발각되면 당시 5000원(현 최소 5만원 이상)의 과태료가 부과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경찰은 치안을 담당하는 파수꾼이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것입니다. 교회가 무슨 국가인가? 하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동체의 운영은 거의 동일합니다. 이는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함께 선 자의 권면 (1절)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베드로는 자신을 '사도'라는 최고의 권위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자신을 낮추어 "함께 장로 된 자"라고 낮춥니다. 그는 권위적인 자세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고민을 나누는 동역자로서 다가갑니다. 그는 자신의 리더십의 근거를 직분이 아닌 '증인이라는 경험'과 '영광이라는 소망'에 둡니다. 한 믿음 안에서 위가 있고 아래가 있고의 개념이 아닙니다.

위정자들이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분들이나, 권면하는 분들의 말이 그 행동에서 그렇지 못하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역으로 ‘당신이나 잘 하라’고 하는 조롱과 면박을 당합니다. 베드로는 주님과 3년 6개월 동거 동락한 믿음의 산 증인입니다. 그런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왜 이런 환난과 시련과 인내해야 함을 역설하게 하실까요? 베드로는 주님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더욱 자신을 낮추어 소개합니다. 베드로는 본인과 함께 장로된 자들에게 라고 소개함으로써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소개합니다. 저는 ‘예수님과 함께 동거 동락한 주님의 수제자 입니다,’가 아닌 여러분 장로들과 함께 장로가 된 한 사람의 장로 동력자일 뿐입니다. 라고 다가갑니다. 당시 베드로는 바울보다 더 인정을 받는 사도였을 것입니다. 이유는 예수님과 3년 6개월 공생에 기간에 동거 동락하였고, 주님의 십자가 수난을 직접 목도한 자이며, 부활하신 주님과 40일 이상 동행한 대 사도입니다. 이럼에도 낮아져 처신하는 이런 것이 베드로의 진정한 리더십 자세입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는 본인의 정체성입니다. 그는 주님의 십자가를 직접 목격한 산 증인입니다. 진정한 리더는 화려한 성공 스토리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본 사람, 그 십자가의 의미를 삶으로 살아낸 사람임을 말합니다. 나그네 성도들의 아픔과 고난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들의 친구로 동거동락하며 품을 수 있는 리더가 참된 증인입니다. 믿음으로 삶에서 어려운 처인데 놓인 자들을 동거동락하며 인도하는 박보영 목사님이 현 우리 시대 이런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둘째,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는 소망입니다. 그는 현재의 고난이 전부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시들지 않는 영광의 관, 그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게 합니다. 리더는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현실의 문제에만 매몰되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게 하고 그 영광을 향해 함께 나아가도록 이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겪는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우리를 더욱 겸허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공동체에 어떤 일이 전개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2000년전 사도 베드로가 주님과 공생애를 가진 후 당하는 고난도 당시 베드로가 감당하듯이, 현 우리 시대, 우리 모두는 성령 하나님과 기도로 교통함으로써, 개인적으로 영적으로 분별력이 있는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2) 목자의 세 가지 자세 (2-3절)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리더는 양 무리를 어떻게 돌보아야 할까요? 베드로는 목자의 세 가지 중요한 지침을 대조하며 설명합니다.

(1)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라
섬기는 자 목자의 직분은 억지로 떠맡는 무거운 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수행하는 모든 일을 마지못해 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기쁨으로 섬길 때, 그 섬김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 공동체에 생명을 불어 넣습니다. 말이 쉽지 기쁨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주님으로 인해 본인에게 먼저 감사가 넘쳐나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시간, 기도할 수 있는 환경, 건강, 물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감사함이 본인에게 얼마나 있는지가 믿음의 척도가 될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숙면을 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루 일을 마감할 때, 하루를 돌아보고 무사히 잠자리에 들 때 감사해야 합니다. 늘 일상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가 넘칠 때 자원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습니다.

(2) 더러운 이득을 위하지 말고 기꺼이 하라
리더십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명예, 권력, 재물과 같은 세상적인 이득을 탐하는 순간, 목자는 양을 잡아먹는 늑대로 변질됩니다. 참된 목자는 계산하지 않습니다. 양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능, 심지어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줄 준비가 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1)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첫 걸음은 자신의 이기적 본능, 부족함, 연약함을 인정하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저를 돌아보면 저로 인해 양심적으로 조금도 상대방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상대는 어떤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 지는 현실입니다.

(3) 주장하는 자세를 버리고 본이 되라
가장 중요한 지침입니다. 리더는 위에 군림하며 지시하고 통제하는 '주인'이 아닙니다. 앞에서 먼저 걸어가며 삶으로 길을 보여주는 '본(example)'이 되어야 합니다. 말만 앞서는 리더가 리더가 아닙니다. 삶이 따르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의 본, 기도의 본, 사랑의 본, 용서의 본을 보일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 13:15)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역시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우선해야 합니다. 힘든 일, 하기 싫은 일, 내키지 않는 일, 언젠가는 부딪힐 일을 먼저, 순서대로 함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3) 시들지 않는 영광의 관 (4절)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이렇게 참된 목자의 길을 걸어간 리더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바로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보장받은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영광은 잠시 피었다가 시드는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자장(Chief Shepherd) 되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주님께서 친히 씌워주실 영광의 관은 영원히 시들지 않습니다. 우리의 섬김과 헌신에 대한 최종적인 보상은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묵묵히, 그리고 기꺼이 섬김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영광의 관을 위해 성령 하나님과 기도로 교통함으로써 우리는 구해야 합니다. 심령에 평강이 깃들 때까지 간절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2. 공동체를 세우는 겸손 (5절)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이어서 사도 베드로의 권면은 장로들을 넘어 공동체 전체로 확장됩니다. 건강한 리더십이 세워졌다면, 이제는 건강한 공동체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 핵심 역시 '겸손'입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1) 질서 속의 순종
먼저 베드로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젊은 자들'은 단순히 나이가 어린 사람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모든 사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건강한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이는 맹목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의 연륜과 경륜을 존중하며 기꺼이 그들의 리더십에 협력하는 겸손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교만을 내려놓고, 공동체의 하나 됨과 질서를 위해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자신 부인, 자기 십자가를 늘 가슴에 조각해야 합니다.

2) 모두가 담아야 할 겸손
베드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훨씬 더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겸손은 젊은이들만의 의무가 아닙니다. 장로들도 젊은이들에게, 남자도 여자에게, 부자도 가난한 자에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서로에게 겸손해야 합니다.

'허리를 동이라'는 표현은 당시 종들이 주인을 섬기기 위해 수건으로 허리를 동여매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위해 허리에 수건을 두르신 바로 그 모습입니다(요 13:4). 겸손은 단순히 마음속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나의 권리, 나의 자존심, 나의 주장을 내세우기 전에, 먼저 상대방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빌 2:3) 섬김의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교만은 스스로의 힘으로 서려는 태도이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대적하신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반면, 겸손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깨어진 마음에, 그 낮아진 심령에 하늘의 은혜를 폭포수처럼 부어주십니다.

3. 때를 기다리는 겸손 (6)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우리의 겸손이 향해야 할 궁극적인 대상을 가르쳐줍니다. 우리의 겸손은 단지 사람들 앞에서만 필요한 자세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근본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라는 이 말씀을 무시로 우리 심령에 조각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과 보호하심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나그네 성도들에게 이 표현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지금 겪는 핍박과 환난이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보일지라도, 그 모든 상황 위에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있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 손 아래에서 겸손하다는 것은, 내 인생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내 뜻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잠잠히 엎드리는 것입니다. 고난을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이시요, 이 고난을 끝내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2)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히 엎드려 기다리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은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때가 되면(in due time)'입니다. 그 때는 내가 정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가장 완벽하고 선한 때입니다. 우리는 늘 조급할 수 있습니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고, 당장 인정받고, 몸도 낫고, 사업이 잘되고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의 것과 다릅니다.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냅니다. 아무런 죄 없는 청년 요셉이 감옥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다윗은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후에도 10년 넘게 사울에게 쫓기는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찾아오지만,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히 연단의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다윗 그들을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로 높이셨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주님을 기다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우리를 더욱 정금같이 만드시고, 마침내 우리를 들어 사용하시며 영원한 영광의 자리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지고, 주님 안에서 스스로 낮아지는 자는 주님께서 친히 높여주실 것입니다. 우린 이런 말을 들을 때 아픔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는, 우리 가정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쓴 뿌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하나님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불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베드로를 통해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영접해야 합니다. 아픔이 있지만 기도로 성령 하나님과 모든 것을 펼쳐 놓고 교통해야 합니다.

본문의 저자인 사도 베드로는 극심한 박해와 고난 속에 흩어져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보냅니다. 그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난 속에서 믿음을 지켜야 했고, 흔들리는 공동체를 바로 세워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베드로가 제시하는 해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의 방식과는 정반대인 바로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유를 다스리심을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한계를 인정하고 매사에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유부단으로 빠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리더인 장로들로부터 시작하여 젊은이들과 모든 성도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전체가 '겸손'이라는 옷을 입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겸손이야말로 우리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있게 하고,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우리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전서 5장 1절에서 6절 말씀을 통해 영광스러운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핵심 원리가 바로 '겸손'임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리더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영광의 참여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억지가 아닌 자원함으로, 더러운 이득이 아닌 기꺼이, 군림하는 자세가 아닌 삶의 본을 보임으로 양 무리를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목자장이신 주님께서 시들지 않는 영광의 관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며, 무엇보다 서로를 향해 겸손의 허리띠를 동여매야 합니다. 나이와 직분과 성별을 넘어 서로를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섬길 때, 교만할 때 막혔던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삶의 모든 순간, 특히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내 힘으로 아등바등 높아지려 애쓰는 삶을 멈추고, 잠잠히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기다릴 때, 마침내 우리를 높이시고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리더는 겸손으로 섬기고, 우리들은 겸손으로 순종하며, 모두가 서로를 겸손으로 섬기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강물처럼 우리 심령에 넘쳐야 합니다.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 모두가 시들지 않는 영광의 관을 받아쓰고 주님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현 우리 시대에는 신약 성경 27권중 절반인 13-14권을 기록한 바울의 사역이나 권세가 훨씬 대단한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믿음을 가진 공동체에서 통하는 논리이지만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3:1에 바울의 고백을 보면 “우리가 **다시 자천(스스로 추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그 시대 사도의 추천서가 얼마나 위력이 있었는지를 말해 줍니다. 2000년 베드로가 활동할 당시, 베드로는 대 사도로 그 명성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를 전혀 드러내지 않습니다. 박보영 목사는 원래 직업이 의사입니다. 그는 39세에 주님을 영접합니다.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체들을 돕는데 올인합니다. 모두 다 이렇게 변화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한때 얼마나 자신만만한 사람입니까? 바울은 훨씬 그 이상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족치는데 일생을 건 사람이 아닙니까? 우린 모두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우린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만이 드러나도록 처신해야 합니다.

30년전 제가 재직한 직장에 들러서 강의를 한 Top level 강사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뻔한 그런 고백을 왜 많은 이들이 교육을 받는 자리에서 공개했을까요?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공동체는 그기에 있는 사람들이 가꾸어가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마치 길에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는데 아무도 단속하지 않으니, 그 길이 쓰레기 무더기가 되듯이 말입니다. 이같이 우리 공동체도 대비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폐허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를, 자기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양심으로, 최선을 다해 정말 아끼는 마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목도하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무 유기입니다. 우리 믿음도 동일합니다. 성령 하나님과 기도로 교통하지 않으면 옳지 못한 영의 침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 밭이 쓰레기 무더기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방치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에 대한 유기입니다. 우리는 바로 가고 있는지 늘 겸손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동시에 단호해야 합니다. 악은 버려야 합니다. 우린 연약한 존재입니다. 부자, 권력자, 권세자, 빈자 어느 누구나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내면에 겸손을 방해하는 요소는 없는지 겸허하게 늘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의 국가적으로, 신앙적으로 시련의 때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지구촌과 우리 공동체를 볼 때,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현 우리 시대를 바라볼 때,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므로 더욱 깨어 기도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주간 성령 하나님과 교통하므로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평강이 우리들을 지켜주시도록 간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겸손과 겸허로 무장하여 이 시대를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