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종말을 사는 지혜 [베드로전서 4:7-11]

종말을 사는 지혜 [베드로전서 4:7-11]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7But the end of all things is at hand; therefore be serious and watchful in your prayers. 8And above all things have fervent love for one another, for “love will cover a multitude of sins.” 9Be hospitable to one another without grumbling. 10As each one has received a gift, minister it to one another, as good stewards of the manifold grace of God. 11If anyone speaks, let him speak as the oracles of God. If anyone ministers, let him do it as with the ability which God supplies, that in all things God may be glorified through Jesus Christ, to whom belong the glory and the dominion forever and ever. Amen.

사도 바울만큼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한 사도가 없습니다. 2000여년전 당시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않는 시대임을 감안하면, 그의 3-4차에 걸친 전도 여정은 기적에 가까운 대장정입니다. 현 우리 시대로 비유하면 유럽에 거주하는 목회자가 남미, 아프리카를 1,000회 이상 전도한 것 이상일 수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얼마나 건장한 사람이었을까? 하고 궁금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가시가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가시가 자신에게 너무나 힘들어서 주님께 3번이나 간구합니다. 하나님 그 가시를 꼭 뽑아 주십시오. 저를 꼭 고쳐 주십시오. 고쳐 달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끝내 거절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그 가시가 네게 족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가시가 주는 약함이 너에게 강함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하지만 응답이 없을 때, 응답이 늦어질 때, 하나님께 대들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하나님 그것 하나 들어주지 못하십니까? 정말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러시면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응답하지 않으실 겁니까? 정말 너무 하십니다.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말이라고 하면 대부분 어두운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이처럼 종말, 마지막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막연한 두려움이나 좋지 않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은 단순히 세상의 종말이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하는 신학적 개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임마누엘)으로 이미 시작되었고,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것이 종말의 개념입니다. 우리는 이 종말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베드로전서 4장 7-11의 말씀을 통해 살펴 보겠습니다.

1.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 (7절)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베드로는 아주 단호하고 긴급한 어조로 시작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여기서 ‘마지막’(텔로스, τέλος)은 단순히 시간의 끝을 넘어, 모든 것의 목적과 완성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최종적으로 완성될 그날이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재림의 소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 갑니다. 이 긴박함은 그들을 나태하게 만들지 않았고, 오히려 영적으로 더욱 깨어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러한 종말론적 긴박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는 달력에 종말의 날짜를 표시하고 두려움에 떨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영원한 가치에 우리의 삶을 투자하라는 강력한 촉구입니다. 잠시 있다 사라질 세상의 쾌락이나 명예, 부에 우리의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베드로는 두 가지 구체적인 행동을 명령합니다. [바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정신을 차리라는 것은 분별력을 가지고, 냉철하고 온전한 마음을 품으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때는 영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입니다. 각종 이단 사상과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들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우리를 미혹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세상적 가치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적인 기준 위에 굳게 서서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인지를 명확하게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현재 ‘차별금지법’이라는 그럴싸한 법으로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법이 전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다음으로 ‘근신하라’ 것은 ‘스스로를 통제하고 절제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의 감정과 욕망을 다스리는 영적인 훈련을 말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라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유혹 앞에서 절제하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처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는 것, 즉 영적 분별력과 자기 절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왜 기도가 이토록 중요할까요?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거룩함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오직 기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가 영적인 방향감각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영적 레이더와 같습니다. 세상이 소란하고 마음이 분주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깨어 기도함으로 영적인 분별력과 절제력을 공급받아 마지막 때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2. 뜨겁게 사랑하라 (8-9절)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베드로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라는 최상급을 사용하여, 다른 어떤 명령보다 이 사랑의 명령이 우선됨을 강조합니다. 사랑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고 말씀하셨듯이, 사랑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지침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사랑은 그저 감상적인 느낌이나 막연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는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뜨겁게’로 번역된 헬라어 ‘에크테네’(ἐκτενῆ)는 운동선수가 결승점을 향해 온 힘을 다해 근육을 쭉 뻗는 모습을 묘사하는 용어입니다. 이 사랑은 의지적인 결단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역동적이고 치열한 사랑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상처받고, 포기하고 싶을지라도, 마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선수처럼 의지를 다해 끝까지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뜨거운 사랑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사랑이 죄를 무조건 눈감아주거나 정당화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약점을 들추어내고 비난하며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대신, 그것을 용서하고 품어주며 관계를 회복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완벽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허물 많고 연약한 죄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공동체 안에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상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사랑이 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죄를 덮어주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은 죄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무력화시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을 건설하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베드로는 이 뜨거운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당시 흩어진 나그네와 같았던 성도들에게 ‘대접’, 즉 환대는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입니다. 환대는 시간과 물질, 그리고 감정적인 에너지를 요구하는 수고가 수반됩니다. 그렇기에 하다 보면 지치고, 마음속에 불평과 원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며 ‘원망 없이’, 기쁨과 자발적인 마음으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원망 섞인 대접은 사랑의 본질을 훼손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의무감이나 마지못해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형제자매를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원망 없는 환대가 넘치는 곳, 지치고 상한 영혼들이 찾아와 쉼과 회복을 얻는 따뜻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는 가정에서부터 서로를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의 몸처럼 섬겨야 합니다.

3.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라 (10-11절)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단순히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께 받은 것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모든 성도가 예외 없이 “은사를 받은” 존재라고 선언합니다. 은사(카리스마, χάρισμα)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이나 자격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영적인 구경꾼이나 방관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목회자나 특별한 직분자만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각자 고유한 은사를 받은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우리는 이 은사의 ‘소유주’가 아니라 ‘선한 청지기’라는 사실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잠시 맡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언젠가는 주인 앞에서 자신이 맡은 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결산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 재능, 물질, 직분 등 모든 은사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즉 ‘서로 봉사하는’ 데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의 유익이나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과 지체들을 세우는 데 사용될 때, 그 은사는 가장 빛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혜’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교회가 다양한 은사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와 같음을 말합니다. 어떤 은사가 더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은 없습니다. 가르치는 은사, 섬기는 은사, 위로하는 은사, 재정으로 돕는 은사 등 모든 은사가 소중합니다. 서로를 섬길 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건강하게 세워져 갑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베드로는 이 수많은 은사를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바로 ‘말하는 것’과 ‘봉사하는 것’입니다.

먼저,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가르침, 예언, 권면 등 말로 하는 모든 사역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기준은 매우 높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즉 하나님의 대언자처럼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나 경험, 철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하여 그분의 권위와 능력으로 말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며, 기도함으로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말합니다. 환대, 구제, 구체적인 섬김 등 행동으로 나타나는 모든 사역을 포함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의 열심과 힘으로 봉사하려다 쉽게 지치고 탈진하며, 때로는 교만해지기도 합니다. 선한 청지기는 자신의 능력이 아닌,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지치지 않으며, 모든 결과 앞에서 겸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봉사가 진정한 열매를 맺기 원한다면, 매 순간 나의 힘이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은혜로 감당함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삶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어야 합니다.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명령, 1. 깨어 기도하고, 2. 뜨겁게 사랑하며, 3. 선한 청지기로서 봉사하는 이 모든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베드로는 그 모든 것이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최종 목표이자 방향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나의 만족이나 행복, 혹은 교회의 성장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범사)을 통해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내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하는 모습을 통해,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고 섬기는 모습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하다고 말씀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결코 이런 삶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을 때, 그리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능력이시며, 우리의 부족한 섬김과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하는 유일한 통로이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송영으로 마무리합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의 삶이 바로 이 찬양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모든 영광과 능력은 영원토록 하나님 아버지의 것입니다!”라고 외치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 때 우리는 가장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비싼 옷을 입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그래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얼마나 헌신적으로, 정중하게, 힘을 다해, 신중하게, 열정적으로, 강렬하게, 그러면서도 온유하게 대할 때,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이는 쉽지 않습니다.

지난 8/20, 오전 9시 30분경 미리 준비한 신청서를 가지고 강남구청에 새로 입사한 분의 해당 관공서에 등록을 위해(필수) 경력증명서를 제출합니다. 경력증명서 상의 직무 경력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므로 경력증명서를 인증할 수 없다고, 다시 발급하여 달라고 합니다. 제가 하는 appeal은 이해하지만 법 규정 해석상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또 다른 것도 전임자와 다르게 요구합니다. 우리 홈페이지 구성까지 다르게 해야 하는 것까지 지적하면서 요구합니다. 전임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일관성이 있어야 제가 제대로 일을 할 것 아니에요? 하고 제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심히 불편하였지만 자제하고 돌아와서, 해당 본인에게 경력증명서를 다시 구체적으로 경력 직무를 추가로 비고 란에 넣어서 발급하여 달라고 사정하여, 다시 받아 이메일로 해당구청에 제출하면서 부연 설명을 좀 길게 하게 됩니다. 이 경력자 근무 부서가 NPL4팀입니다. NPL(Non-Performing Loan)은 금융기관에서 대출한 자산이 부실화되어 정상적인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부실채권을 말합니다. NPL 4팀은 NPL 하면 자산관리 하시는 분들은 다 안다는 뜻입니다. 마치 영업1팀, 영업2팀 같은 개념입니다. NPL는 마치 CEO하면 [Chief Executive Officer 대부분 통용되듯이 NPL은 자산관리 하는 분들은 CEO같이 친근한 용어입니다.

이메일에는 없었지만 CFO하면 재무총괄임원인데 그 용어 자체가 CFO가 어떤 일을 어떤 경력인지를 표현하는데, 다 열거하라고 하면 이것이 통용이 되겠습니까? 대통령 경력증명서는 100 페이지도 넘을 것이다.” 그리고 경력증명서는 1매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할 말은 많지만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였습니다. 전과 달리 왜 이렇게 막힌 분들이 많아질까 하고 말입니다. 제 심기가 아직도 많이 불편합니다. 경영 환경은 저를 힘들게 합니다. 이런 일을 겪더라도 저는 온유하게 대응했어야 합니다. 이것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말씀을 통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이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받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종말을 두려워하며 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삶입니다.

첫째,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의 혼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거룩함을 지키는 영적인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용서의 사랑, 원망 없이 서로를 대접하는 구체적인 사랑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세상에 증명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각양의 은사를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힘으로 섬김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야 합니다.

이 모든 삶의 최종 목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품고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매일의 삶이 마지막 때를 지혜롭게 살아내는 주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시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618-1648 유럽에서는 30년 전쟁이 일어납니다. 30년 전쟁을 종교 전쟁이라고도 합니다.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 간의 전쟁입니다.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종교 전쟁이 일어 났을까요?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하는 믿음 간에 말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100년이나 지나서 말입니다. 전쟁 요인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개신교, Protestant 입장에서는 로마 카톨릭의 문제가 훤히 보입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은 기득권을 놓고 싶지 않으므로 이런 것들이 쌍방간에 충돌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것을 간과하기 때문일까요? 여러 가지로 복합적으로 나열할 수 있지만, 당시 그들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을 잊고 살아간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당시 30년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인권이 유린을 당합니다. 북 유럽 스웨덴부터 남유럽 스페인까지 전 유럽이 전쟁에 돌입합니다. 세계대전 못지 않는 유럽 전체의 대 전쟁입니다. 30년 간 전 유럽이 피 흘리면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결론은 30년 전 상태의 영토로 돌아간 것이 종전 결론입니다. 쌍방간에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습니다. 희생만 엄청나게 발생한 것입니다.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지체들임을 먼저 고백하고 이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30년 전쟁을 주도한 이들이 예수님 오신 이후로 종말이라는 개념을 쌍방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 주 요인이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Protestant(개신교) 입장에서는 로마 카톨릭은 정상적인 교리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rotestant 측의 대응도 그것이 최선이었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사도 바울은 간절히 세 번 기도함으로써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어떤 질환을 앓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신약의 다른 구절을 보면 서신 글자를 크게 쓴 것으로 보아, 그리고 바울의 대필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도 바울이 안질(눈병)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이런 질환을 가진 바울이 Tent Maker로서 육체적인 노동을 감당하면서 그 많은 사역을 지속한 것입니다. 그는 전도여행을 하면서 매도 수없이 맞습니다. 유대인 동족으로부터 배교자(배신자)라는 살해 위협도 숱하게 겪습니다. 죽음의 고비도 숱하게 넘깁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낮아진 상태에서 엄청난 능력을 부여 받습니다. [고후12:9. 나(바울)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예수 그리스도)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늘 돌아보므로 더욱 더 주님을 의지하여 엄청난 사역을 수행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약한 부분을 하나님께 다 들고 나아가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약한 부분을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 울부짖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점이 매우 부족합니다.“, “이 신체 부위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하기 싫은 일은 자주 미룹니다.”, “작심하지만 실천력이 부족합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연약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돌아보면 너무나 연약하므로 고백하고 기도할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 자신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조국을 위해, 가정을 위해, 사업을 위해, 자신을 위해 기도할 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연약함을 인정하므로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 약함이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녹슨 철도 마치 용광로에서 연단을 받은 후 무쇠가 되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말의 때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심취되지 말아야 합니다. 근신하며 깨어 기도하며, 지체들끼리 순수하게 깊이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진심으로 섬기고, 응대하므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한 은사들을 선한 청지기로서 선하게 순수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우리들,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