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가정 [베드로전서 3:1-7]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1 Wives, likewise, be submissive to your own husbands, that even if some do not obey the word, they, without a word, may be won by the conduct of their wives, 2 when they observe your chaste conduct accompanied by fear. 3 Do not let your adornment be merely outward—arranging the hair, wearing gold, or putting on fine apparel— 4 rather let it be the hidden person of the heart, with the incorruptible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s very precious in the sight of God. 5 For in this manner, in former times, the holy women who trusted in God also adorned themselves, being submissive to their own husbands, 6 as Sarah obeyed Abraham, calling him lord, whose daughters you are if you do good and are not afraid with any terror. A Word to Husbands 7 Husbands, likewise, dwell with them with understanding, giving honor to the wife, as to the weaker vessel, and as being heirs together of the grace of life, that your prayers may not be hindered.
해외에 근무할 때, 현지 대기업의 한 총수가 중국 국적자로 인품이 있는 분으로 기억합니다. 이 총수(회장)의 부인도 중국 출신인데 가정에서 부부간의 공용어는 영어로 소통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을 때 뭔가 제가 뭘 잘못 들었나 할 정도였습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어가 아닌 영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중국 국적자들은 해외에 나가면 가정에서는 거의 100% 중국어로 소통합니다. 왜 이 부부는 영어를 공식 채널로 선택했을까요? 우리는 그 사정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특이한 상황이구나 라고 짐작하면서도 뭔가 주는 메시지가 있었다고 아직 그 말이 제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흩어져 나그네로 살아가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로 가정에 대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믿음을 소유한 자들의 남편과 아내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아내의 거룩한 행실과 복음의 능력 (1-6절)
베드로전서는 네로 황제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고난받던 성도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편지입니다. 당시 성도들은 사회로부터 오해와 비방을 받았고, 특히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아내들은 믿지 않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남편의 종교를 따르는 것이 당연시되던 로마 사회에서 아내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가정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베드로는 가정이 단순히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를 넘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작은 교회’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베드로는 먼저 아내들에게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1절) “이와 같이”는 앞 2장에서의 부당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신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라는 의미와 연결됩니다. 당시 로마는 ‘가부장의 권위(Patria Potestas)’가 절대적으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의무인 시대입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가 말하는 ‘순종’은 사회적 통념이나 굴종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질서를 인정하고 사랑으로 남편을 존중하며 섬기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순종입니다.
나아가 베드로는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들에게도 이런 권면을 합니다. 왜 그렇게 권면합니까? 아내의 순종이 가정의 평화를 위한 처세술이기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는 남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의 선교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거룩한 행실은 천 마디의 말보다 훨씬 강력한 복음의 메시지가 되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완고한 남편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베드로는 참된 아름다움은 외적인 치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내면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3-4절).
당시 로마의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는 화려한 머리 모양과 값비싼 장신구로 자신을 과시하는 풍조가 만연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러한 썩어 없어질 것들로 자신을 단장하지 말고, 오직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으로 내면을 가꾸라고 말합니다. “온유함”은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이기적인 태도와 반대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안정한 심령”은 외부의 자극에도 쉽게 동요하지 않는 평온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으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의 핍박과 오해 속에서도 온유함과 평온함을 잃지 않는 아내의 모습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아름다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내면의 아름다움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라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4절).
사도 바울은 여자는 소박하고, 정숙하고, 단정하고, 착한 행실로 조용하라고 권면합니다. 딤전2:9-15입니다.
9. 이와 같이 여자들도 소박하고 정숙하게, 단정한 옷차림으로 자기를 단장하십시오. 머리를 지나치게 꾸미지 말며, 금붙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치장하지 말고,
10.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에게 어울리게, 착한 행실로 치장하기를 바랍니다.
11. 여자는 조용히, 아주 순종하면서 배우십시오.
12.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13. 사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그 다음에 하와가 지음을 받았습니다.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서 죄에 빠진 것입니다.
15. 그러나 여자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면,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사도 바울의 이런 훈계를 들으면 반발심부터 생겨날 수 있습니다, 이는 동시에 무엇을 말해줍니까? 2000년 전 그 시대가 지금과 많이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를 보면 사도 바울만큼 혁신적인 주장을 한 사도가 없습니다. 당시 종은 상전의 노예 상태입니다. 상전은 노예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바울은 상전과 종을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선상에 놓고 권면합니다. 에베소서6: 5-9입니다.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관련 고린도전서 14:34-35로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34.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십시오. 여자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도 말한 대로 여자들은 복종하십시오.
35.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말은 당시 대외적인 일은 남자가 대표를 한다는 풍습을 말합니다. 즉 가정 외에서의 발언은 공식적으로 남자가 대표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성을 무시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 시대 가치관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7-16까지 바울의 권면을 살펴 보겠습니다.
7. 그러나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이니,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습니다.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 때문에 그 머리에 권위의 표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11.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여자의 몸에서 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에게서 생겨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스스로 판단하여 보십시오.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14. 자연 그 자체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남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불명예가 되지만,
15. 여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영광이 되지 않습니까? 긴 머리카락은 그의 머리를 가려 주는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16.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그런 풍습은 우리에게도 없고, 하나님의 교회에도 없습니다.
2000년전 로마 제국 당시 풍습은 헬라 문화의 남자 자유인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습니다. 머리에 뭔가를 쓰는 남자들은 다 노예입니다. 여인들의 경우에는 1. 전쟁 포로, 2. 간음한 여인, 3. 여자 노예인 경우에만 머리를 깍는 풍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여인이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경우를 말합니다. 자유가 있다고 하도더라고 사회 풍습이나 미덕은 지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서신을 보면 사역 후반기로 가면서 가정에 대한 주관이 많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혼자 사는 것보다 가정을 이루는 것이 믿음이 본이 되는 가정임을 강조합니다.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베드로는 구약의 인물 사라를 순종의 모본으로 제시합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으로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6절).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고 부르며 존중했고, 그의 말을 신뢰하며 순종했습니다. 사라의 순종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에 기반한 것입니다. 비록 남편의 결정이 두려운 결과를 초래할 것처럼 보일 때에도, 사라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주실 것을 믿었기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두번이나 자기 여동생이라고 속입니다. 한번은 가나안에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은 식량을 구하려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아브라함은 애굽 왕이 사라가 너무 아름다움으로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라를 자기 아내이지만 여동생이라고 속여 소개합니다.(창12:13-20) 또 한번은 가데스와 술 사이에 거주하면서 그랄 왕이 사라를 데려가므로 아브라함은 자신이 죽을 것을 두려워하여 아내 사라를 아내가 아니라 여동생이라고 소개합니다.(창20:1-18) 아브라함은 결정적인 순간에 본인이 생명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이처럼 거짓말을 합니다. 당시 사라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을 존경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믿음의 아내들에게 사라의 딸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볼 때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남편의 말을 존중하여 주라는 메시지입니다. 이후 그런 위험한 사건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선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을 복의 씨(근원)로 크게 사용하실 약속을 하신 것이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베드로의 권면입니다. 이는 혈통적인 후손이 되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라와 같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선을 행하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라는 뜻입니다. 남편을 변화시키려는 인간적인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하고 정결한 행실을 통해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보일 때, 가정은 구원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남편의 지혜로운 사랑, 기도의 비밀 (7절)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이제 베드로는 남편들에게 권면합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7절). 베드로의 이 권면은 당시 로마 사회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엎는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로마 사회에서 아내는 남편의 소유물처럼 여겨졌고, 남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남편들에게 아내를 ‘지식을 따라’ 대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아내를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그녀의 감정과 필요를 깊이 헤아리며 동거하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깨어지기 쉬운 귀한 그릇처럼, 더욱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며 보호하고 아껴주라는 의미입니다. 육체적으로는 더 연약할 수 있으나, 그 연약함이 남편의 지배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사랑과 배려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는 아내를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이는 부부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동반자이며, 하나님 나라를 함께 상속받을 동등한 존재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가정의 머리로서 권위를 갖는 것은 아내를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고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고 섬기기 위함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우열의 관계가 아닌, 서로를 보완하고 돕는 동역자의 관계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남편들이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7절). 아내를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 남편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가정에서의 불화와 불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며 가정을 화평하게 할 때, 기도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연약한 아내로 비유하시면서 하나님이 남편이라는 비유로 안아주시는 것입니다. 성막에 하나님이 신랑으로 친히 거하시면서 아내 되는 인간들을 만나주시고 성막의 교제를 통해, 즉, 말씀을 통해, 성령 하나님을 통해 기도로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마18:19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너희 중의 두 사람은 가장 작은 공동체를 말합니다. 이것은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물론 가정이 아니라도 교회의 가장 작은 공동체 시작은 2인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우리의 개성, 개인의 가치관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가정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가정이 교회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이 가장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교제와 소통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신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아내와 남편에게 각각 주시는 권면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어떻게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등대가 되고,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소망의 닻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가정을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의 모습을 함께 세워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이 시대에서도 무지막지한 한 남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내가 직장을 다니면서도 시간이 되면 집에 들어와 남편 밥상을 차려주고 직장으로 돌아가라는 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가정이 하나 될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하나입니다. 주님 안에서 서로를 돌아보며 약한 부분을 보듬어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배려하고 기도하는 자녀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과 기도로 하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 만난 그 기업 총수 가정의 부부가 왜 영어로 소통을 했겠습니까? 한 분은 북경어, 한 분은 상해어로 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중국어이지만 실제는 두 지역 말이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부부가 서로 배려한 것이 가정에서는 영어로 소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라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한 통로가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기도하므로, 가정이 하나되므로 이를 맛보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 베드로와 바울은 당시 권세자 들을 최선을 다해 섬기라고 할까요? 그리고 아내는, 여자는 외부적 활동에서 순응하고 잠잠 하라고 할까요?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이 이 땅이 아닌 하늘 나라 시민권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것, 작은 것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 생명을 주관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 전도와 구원에 목적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최근 불황으로 제 심령이 심란합니다. 오른쪽 시력이 좋지 않아 실명할까 하는 염려도 동시에 밀려 옵니다. 아직 안정이 안된 가정 형편을 돌아보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러면서 책을 쓸까? 하는 기대도 해 봅니다. 기도에 응답이 늦는 것도 저를 힘들게 합니다. 이런 때에 가정에 대한 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돌아보게 됩니다. 가장으로서 어떠해야 하는지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로서 마음이 심란하지만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특히 최근 불거지는 경영 환경과 분위기는 저를 지치고 힘들게 합니다. 특히 어제는 많이 힘 들었습니다. 직원들은 제가 쉬지 않고 늘 일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환경이 이럴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가정이 하나되어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맛보는 은혜를 바라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가정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으로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지혜롭게 사랑하며 귀히 여기는 상호 존중과 사랑의 관계입니다. 가정은 단순히 세상의 풍파를 견뎌내는 피난처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증거하는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부부가 하나되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불의한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가정, 교회, 공동체인 국가를 위해 우리 소망이 현실이 되도록 두 사람이 또는 두세 사람이, 그 이상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함으로써 하나님 은혜를 맛보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