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나그네의 품격 [베드로전서 2:11-18]

나그네의 품격 [베드로전서 2:11-18]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1 Beloved, I beg you as sojourners and pilgrims, abstain from fleshly lusts which war against the soul, 12 having your conduct honorable among the Gentiles, that when they speak against you as evildoers, they may, by your good works which they observe, glorify God in the day of visitation.
Submission to Government 13 Therefore submit yourselves to every ordinance of man for the Lord’s sake, whether to the king as supreme, 14 or to governors, as to those who are sent by him for the punishment of evildoers and for the praise of those who do good. 15 For this is the will of God, that by doing good you may put to silence the ignorance of foolish men 16 as free, yet not using liberty as a cloak for vice, but as bondservants of God. 17 Honor all people. Love the brotherhood. Fear God. Honor the king. 18 Servants, be submissive to your masters with all fear, not only to the good and gentle, but also to the harsh.

1999년 검찰총장과 그룹사 회장 부인, 교회 권사, 집사들이 전국민이 보는 TV 앞에서 옷로비(옷뇌물) 사건으로 공방을 벌입니다. 요지는 당시 질문을 하는 000 국회의원이 성경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믿는 분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전제를 깔고 포문을 엽니다. 고급 옷을 뇌물로 제공하고 반사적으로 어떤 이익을 취한 것이지 않느냐?고 공격합니다. 질문을 받는 교인인 여자 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답변을 못하는 상황이 전국으로 방영됩니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사이가 좋았던 교인들간에 균열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때로는 믿는 자들은 신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는 우리가 늘 깨어 있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사람은 상황이 어려울 때 그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 베드로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영혼을 거스르는 나그네의 투쟁(11)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11 Beloved, I beg you as sojourners and pilgrims, abstain from fleshly lusts which war against the soul,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1절)

사도 베드로는 먼저 그가 사랑하는 자들의 내면을 향해 권면합니다. 그들의 정체성을 "거류민과 나그네"로 규정합니다. 곧바로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나그네로서의 삶의 첫 번째 과제가 바로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영적 전투임을 말해줍니다.

왜 육체의 정욕이 ‘영혼을 거슬러 싸운다’고 표현했을까요? 여기서 ‘육체의 정욕’은 단순히 성적인 유혹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기심, 탐욕, 시기, 분노, 교만, 자만, 우월감, 자랑 등 하나님을 떠나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려는 모든 본성적 욕망을 말합니다. 이러한 욕망들은 우리의 영혼, 즉 하나님과 연결된 우리의 참된 자아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죄성을 지닌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사는 한, 이 싸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고, 더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라고 유혹할 수 있습니다. 주변 환경은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고, 세상의 가치관은 ‘나’의 만족이 우선이고 가장 중요하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여행자가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 불필요한 짐을 내려놓고, 여행 경비를 아껴 쓰듯, 우리도 하늘 본향을 향해 가는 순례자로서 영적인 것을 멀리하는 일에는 절제해야 합니다. ‘제어하라’는 말은 피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고 다스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CONTROL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것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오직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할 때, 십자가의 능력을 붙들 때 이를 제어하고 극복 가능한 싸움입니다. 매일 말씀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기도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육체의 소욕이 고개를 들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간구하는 영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고 있는 우리의 대적은 무엇입니까?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의지가 약합니다.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돌아보아 달라고 울부짖어야 합니다.

2.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12, 15-17)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2, 15)

내면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삶은 필연적으로 외적인 열매, 즉 ‘선한 행실’로 드러나게 됩니다. 베드로는 이 선한 행실이 나그네 된 그리스도인의 가장 강력한 사명이자 무기라고 강조합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자랑을 아무리 해 보아야 듣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침묵하고 있어도 언젠가 그 침묵한 자의 선행이 드러나면 그 사람은 빛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불의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미디어라는 거대한 괴물에 농락을 당하면서 살아가지 모릅니다. 특히 자신의 철학이나 가치관이 없는 분들은 세상적인 가치관에 함몰되어 진리가 뭔지를 모르고 여론에 휩쓸려 분별력을 상실한 상태로 방황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서신을 사방에 보낼 때, 그 당시의 환경은 지금과 판이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상이나 생각을 해 봅니까? 지금 우리 시대는 이메일로 편지를 씁니다. 이를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서신을 받은 나그네 성도들이 모여서 한 사람이 읽음으로써 공유하고, 또 공유하고 또는 필사해서 전달해야 합니다. 편지를 읽는다고 먹을 것이나, 입을 옷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갈급한 나그네 성도들에게 이 서신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겠습니까?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이런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 사회 속에서 많은 오해와 비방에 시달렸습니다. 그들은 황제 숭배 거부로 ‘반역자’로, 그들만의 애찬식(성찬)을 오해하여 ‘인육을 먹는 자들’로,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부른다는 이유로 ‘근친상간을 하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당합니다. 이렇게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변증은 말이 아닌 삶, 즉 ‘선한 행실’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인을 향해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댑니다. 우리의 작은 실수나 잘못은 쉽게 부풀려져 믿는 자들 전체에 대한 비난의 근거가 되게 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편견과 비방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바로 우리의 선한 삶 그 자체입니다.

현 우리 시대 일반인들은 천주교에 대해서는 대부분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개신교에 대해서는 아주 나쁜 이미지를 품고 있습니다. 구제만 하더라도 총 구제액의 90% 이상을 개신교에서 실제로 집행하고 지원합니다. 그런데 평판은 왜 이렇게 반대로 각박할까요? 물론 여론 형성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일반인들은 개신교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더 큰 원인일 것입니다. 목회자는 보다 더 청렴해야 하고, 도덕적이어야 하는데 목회자들이 자신의 자녀를 선진국에 유학 보내고, 좋은 차를 몰고, 생활도 상류급이라는 것도 한 요인일 것입니다. 성도들의 헌금으로 생활하는데 대한 엄격한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점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힘들게 생활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목회자들 모두는 이런 비판을 더라도 이를 감내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명이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각자 삶에서 더욱 정직하고 성실할 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 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손해를 감수할 때, 세상은 우리를 조롱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꾸준하고 진실된 선한 행실은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이 가진 편견과 오해의 벽을 허물게 될 것입니다. 이 때 아픔도 동반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우리 삶은 나그네 삶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시는 날에”, 즉 주님께서 다시 오시거나 각 사람의 인생이 끝나는 날에, 그들은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16절과 17절에서 구체적인 지침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은 자들입니다(16절). 그러나 그 자유는 죄를 짓기 위한 방종의 도구가 아니라, 기쁨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어 섬기기 위한 자유입니다. 그 자유로 우리는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17절)는 명령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런 명령은 그리스도인의 균형 잡힌 관계성을 보여줍니다. 모든 사람을 향한 보편적인 존중,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의 특별한 사랑,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경외, 그리고 사회 질서를 위한 권위에 대한 합당한 존중, 이것이 바로 세상 속에서 빛나는 우리 나그네들의 품격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3.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 (13-14, 18)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3-14절, 18절)

베드로는 나그네의 삶에서 가장 도전적일 수 있는 부분, 바로 사회적 질서와 권위에 대한 순종을 다룹니다. 특히 13절의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는 말씀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순종의 동기입니다. 우리는 왜 순종해야 합니까? 왕이 훌륭해서입니까? 총독이 정의롭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순종은 권위자 자체를 향한 맹목적인 굴복이 아니라, 그 권위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인간의 제도’를 세우셨음을 인정하고, 그분의 주권 아래 자신을 두는 행위인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국가나 권위자가 하나님의 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을 명령할 때까지 무조건 따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고 외치며 신앙의 양심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회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섬기고 복음의 문을 열기 위한 중요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이 순종의 원리는 18절에서 가장 혹독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당시 사회의 최하층이었던 ‘사환’, 즉 노예들을 향해 “선하고 관용하는 주인뿐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베드로가 노예 제도를 옹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는 노예라는 부당하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3:1-5입니다.

1.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치안관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두려움이 됩니다. 권세를 가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4. 통치자는 여러분 각자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각자가 나쁜 일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나쁜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5. 그러므로 진노를 두려워해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생각해서라도 복종해야 합니다.

주인이 선하든 악하든, 나의 반응은 세상의 방식과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당한 대우에 똑같이 악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며 인내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모습이 억울하게 고난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추행 때문에 미움을 받았다”라고 합니다. 물론 일부에 해당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행동이 조신해야 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 15:11)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 줍니다.
왜 바울과 베드로는 자신들을 사도라고 부릅니까?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을 받아 이를 대신 행하는 사람입니다. 당시 성도들은 핍박을 피해 아시아(현 튀르기예), 마게도냐(그리이스), 로마 등에 흩어진 나그네들입니다. 이들은 당하는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님 대신에 황제를 신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당시 노예는 자유가 없습니다. 노예는 주인이 마음대로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그런 노예 성도들에게 바울과 베드로는 그들이 안전하게 신앙을 견지하도록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권력자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범사에 모범이 되고, 상전들에게, 관리들에게 최선을 다해 섬기라고 지침을 내려 준 것입니다.

당시 권력자들에게, 상전들에게 무모건 복종하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정성을 다해 그들에게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그 순종을 통해 주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란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주님이 비둘기처럼 순수하고 뱀처럼 지혜롭게 처신하라고 하겠습니까? 세상이 너무 악하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약600년전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예루살렘이 어떻게 파멸을 당하는지 보여주심으로써, 유다 백성들이 당할 고통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살륙이 임할 것을 보여주시지만 당시 유다 백성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을 말씀으로, 행동으로 손수 섬기는 것을 보여주게 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기이한 행동들이 넘쳐 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의 아내를 먼저 데려 가십니다. 에스겔로 하여금 제사장겸 선지자로서 이 아픔을 먼저 감내하게 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당할 고통을 에스겔을 통해 아내를 먼저 데려가심으로써 힘을 다해 참고 섬기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입니다. 당시 에스겔에게는 얼마나 상심이 컸겠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까다로운 주인’은 누구입니까? 부당한 권력, 직속 상사, 위정자들, 논문 심사 교수, 또는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일 수 있습니다.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방식대로 맞서 싸우고 원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를 위하여 잠잠히 나의 자리를 지키며 선으로 악을 이기고 있습니까? 우리의 순종과 인내로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말씀을 통해 이 땅을 살아가는 ‘나그네’ 된 우리의 삶의 지침을 받았습니다.

첫째, 내면에서 벌어지는 영적 싸움에서 성령을 의지하여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거룩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둘째, 우리의 삶은 세상 속에서 빛나는 ‘선한 행실’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이 비방을 막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주를 위하여’ 이 땅의 질서에 순종하는 성숙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심지어 부당하고 까다로운 권위 아래서도 그리스도를 닮은 온유와 인내로 반응해야 합니다.

이것이 나그네의 품격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6:33에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섬기며 변화시키는 삶,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기에 오히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이 땅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로서, 오직 하늘 본향을 소망하며 거룩하고 선한 삶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순례의 여정이 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를 "거류민과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이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 아님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낯선 곳을 여행하거나, 외국에서 살아보면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고, 때로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 앞에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들을 이방인으로 바라보고, 그 행동 하나하나를 그가 출생한 나라와 공동체를 대표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되고, 더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교인 한 사람이 처신을 잘 못하면 교회가 욕을 먹고,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기는커녕 반대로 역효과로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바로 그와 같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늘에 시민권을 둔 자들로서, 이 땅을 잠시 살아가는 나그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의 방식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하며,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가 속한 하늘나라, 곧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이 세상을 향한 빛나는 증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빌립보서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기 보다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주님께 간구함으로써 하늘 나라 시민권자로서 주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자매를 위해 혼신을 다해 기도하고, 우리 공동체를 위해 울부짖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직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겸손한 태도로 이 시대를 거슬려 지혜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시대만을 바라보면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써, 힘차게 전진하며 새 힘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