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 [베드로전서 2:4-10]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 [베드로전서 2:4-10].

  1.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2.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3.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4.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5.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6.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7.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4 Coming to Him as to a living stone, rejected indeed by men, but chosen by God and precious, 5 you also, as living stones, are being built up a spiritual house, a holy priesthood, to offer up spiritual sacrifices acceptable to God through Jesus Christ. 6 Therefore it is also contained in the Scripture,“Behold, I lay in Zion A chief cornerstone, elect, precious, And he who believes on Him will by no means be put to shame.” 7 Therefore, to you who believe, He is precious; but to those who are disobedient, “The stone which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hief cornerstone,” 8 and “A stone of stumbling And a rock of offense.” They stumble, being disobedient to the word, to which they also were appointed. 9 But you are a chosen generation,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His own special people, that you may proclaim the praises of Him who called you out of darkness into His marvelous light; 10 who once were not a people but are now the people of God, who had not obtained mercy but now have obtained mercy.

빌라도는 예수님을 사형 언도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한 역사적 인물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유대지방 총독으로 가이사랴에 관저를 둔 그 권세는 실로 막강한 것입니다. 빌라도 보고서는 외경(정경 아님)으로 성경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그 보고서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처음 만난 본인의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 정도로 위축을 당했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그 당당함, 위엄 앞에 엄청난 물줄기가 강을 형성하면서 흘러가는듯한 위엄에 빌라도는 압도를 당했다고 합니다. 감히 말을 못할 정도로 숨이 막힌 것 같다고 술회합니다. 간혹 우리는 형세는 왜소하고 초라한 데, 그가 행하는 말이나 행동이나 풍기는 것에서 그 사람의 위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 화려하고 뭔가 가진 것처럼 행동하지만 얕은 속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정한 힘은, 품위는,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베드로전서 2:4-10 말씀을 통해 우리가 누구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우리에게 어떤 위로와 사명을 주시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Part1, 보배로운 산 돌, 예수 그리스도

  1.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 4. Coming to Him as to a living stone, rejected indeed by men, but chosen by God and precious

4절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임마누엘 하셨을 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 바리새인, 권세 잡은 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버림받으십니다. 마치 건축자들이 쓸모가 전혀 없다고 여겨 버린 돌처럼 취급을 당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버려진 돌을 택하시고 보배로운 돌로 삼으셨습니다. 왜 일까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약속하신 메시야, 즉, 기름부음 받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입니다.

‘산 돌’(living stone)이라는 표현은 엄청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돌은 생명이 없지만, 예수님은 살아있는 돌이십니다. 돌은 영원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우리는 반석(rock) 이라고도 부릅니다, 반석이라는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또한 ‘모퉁잇돌(corner stone)’은 건물의 기초가 되는 가장 중요한 돌을 의미합니다. 건물이 이 모퉁잇돌 위에 굳건히 세워지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과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굳건히 세워지는 것입니다. 돌이지만 살아 있는 돌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변치 않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예수님을 알지 못하거나 배척합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배움과 정보,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많은 분들이 목적 없이 살아갈지 모릅니다. 정작 본인은 왜 살아가는지 그 방향이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합리적으로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수많은 인간들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지금 그들이 누리는 권력, 부가 영원할 것처럼 착각 가운데 살아갑니다.

세상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시고 높이신 가장 귀한 분으로 약속대로 때가 되어 이 땅에 임마누엘 하신 분입니다. 공생애를 통해 본인께서 친히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고, 고난 받으신 후 죽으시고. 제자들과 수많은 형제, 자매들에게 부활하사 이를 보여주시고, 승천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을 믿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산 증인입니다. 증인인 사도 베드로는 나그네로 사방에 흩어져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이를 서신으로 알리는 것입니다

Part2, 신령한 집과 거룩한 제사장

  1.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5절 말씀은 아주 중요한 사명을 부여합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라고 엄청난 사명을 줍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또한 살아있는 돌이 됩니다. 이는 우리 인생에게 엄청난 사건이며 우리가 스스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돌들 하나하나가 모여 신령한 집을 이루게 됩니다. 여기서 신령한 집은 바로 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우리 믿음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보 역할을 하며 희생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완전한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이제는 모든 믿는 자가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짐승의 피를 드리는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중보자인 제사장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면 됩니다. 이 신령한 제사는 무엇일까요? 이는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우리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 무엇을 말할까요?

우리의 꿈, 목표, 비전, 미래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 우선으로, 하나님을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릴 지으셨습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지요? 우린 원망할 수 있습니다. 기도에 응답이 없더라도 하나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미미한 우리 생각을 넘어 역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영접해야 합니다.

저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많습니다.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얼마나 갈급하게, 애절하게 기도하는데 왜 응답이 없습니까? 왜 이렇게 늦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저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 너무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러시는데 무슨 전도가 됩니까?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이건 정말 아니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만을 토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야 합니다. 000 목사님의 간증에 9년째 다리가 회복되지 않는 여자 집사님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여자 집사님의 자녀들이 “어머니 이제는 그만 하세요. 한번 짧아진 다리는 길어지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다리와 다친 다리의 차이가 6cm인데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제 10년째입니다. 그만 두세요.” 이렇게 종용하지만 그 어머니는 000 목사님과 함께 계속 기도합니다. 한번은 기도하고 있는데, 10년째 한쪽 짧았던 다리가 길어져서 정상적으로 걷게 됩니다.

000목사님이 기도 현장에서 외칩니다. 여자 집사님께 걸어가 보라고 말입니다.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던 그 집사님은 그 현장에서 당당하게 잘 걷습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잘 걷습니다. 우린 이런 경험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저에게는 이렇게 장기간 애절하게 기도한 적이 있는가? 하는 점 아닐까요? 동시에 만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응답에 관계없이 인정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형편을 더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잘되고 그렇지 않고 보다 훨씬 우선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조건에서도 주님은 우릴 기억하고 우리 간절한 기도를 듣고 계시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우릴 지배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 12: 1입니다. 섬짓한 말씀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제사장적인 사명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모든 순종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신령한 제사입니다.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일어나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식사하고, 교제하고, 나누고, 사업하고, 우리가 무엇을 하던 하나님 말씀에 합당한지? 우리 마음이 하나님 기준인지, 하나님 말씀이 우선인지 아닌지 살펴보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거룩하게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거룩은 구별을 말합니다. 구별은 분리됨을 말합니다, 기존 악습에서 선한 모습으로, 결핍에서 충족으로, 악한 행위에서 선한 행위로, 이기적에서 이타적으로 분리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게으른 자는 부지런함으로, 연약함에서 강건함으로, 안일함에서 치밀함으로, 나태함에서 성실함으로, 시간을 잘 지킴으로써, 무시로 기도함으로써, 결론적으로 자신을 전적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을 먼저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화해와 중보의 역할을 감당하는 제사장적인 사명을 가진 자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막상 가슴에 이런 말이나 교훈이 잘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천하기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미래는 우리 생각대로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제사장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면 얼마나 기도할 것이 많겠습니까? 주변을 살펴보시면 기도할 것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1.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2.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7절과 8절은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두 가지 다른 운명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가장 귀한 보배가 됩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기초가 되시며,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참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분이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됩니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은 넘어지고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마치 건축자들이 모퉁잇돌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버렸다가 결국 그 돌 때문에 건물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거나 무너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들은 결국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극구 부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은 구원받도록 정하시고 어떤 이들은 멸망하도록 정하셨다는 예정론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라 구원과 심판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그분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은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Part3. 왕 같은 제사장

  1.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9절과 10절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장 강력하게 선언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과 사명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택하신 족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특별히 선택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이는 출애굽기 19:6, 이사야 61:6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1.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2.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구약 시대에는 왕과 제사장의 역할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왕의 권세와 제사장의 사명을 동시에 부여 받습니다. 이는 우리가 영적으로 다스리는 자들이며, 동시에 하나님께 예배하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보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들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실로 대단한 권세입니다.
셋째, 우리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개개인의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거룩한 공동체, 교회를 이룹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과 구별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넷째, 우리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값을 치르고 사셨으므로,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으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갈 책임이 있습니다.
이 모든 영광스러운 정체성은 왜 우리에게 주어졌을까요? 그 목적은 바로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와 사망의 어둠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시고 놀라운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와 빛을 세상에 증거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 즉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로우심과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어야 합니다.

  1.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10절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극적인 변화를 대조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는 본래 하나님과 상관없는 이방인이었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그분의 무한한 긍휼을 넘치도록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변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4-10절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존귀하고 특별한 존재인지를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돌로서 교회를 이루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세상의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이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둘째, 우리 공동체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개별적인 살아있는 돌들이지만, 함께 모여 신령한 집을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함께 신앙 안에서 성장해 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셋째,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삶에서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우리가 있는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의 언행과 심사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통로가 되도록 투쟁해야 합니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시다.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보여주고, 그들도 이 기이한 빛 가운데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섬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고난받는 나그네 성도들에게 쓰여진 서신입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로마 제국의 박해 아래에서 엄청난 수난과 핍박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 사람의 인품과 향취는 물질이나 세상적 신분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신분인지를 제대로 알고 주님과 하나될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 묻어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무시로 기도하며,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며 말씀을 심령에 조각하고 새겨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과 하나될 때 우리는 모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영광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목표도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방향을 잡을 때 우리가 어는 곳으로 진출하던 우릴 통해 하나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하나될 때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하나될 때 우리는 진정한 왕 같은 제사장이 됩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응답이 왔을 때 이를 확인하는 방법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신 특별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있는 돌로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영광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무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동시에 시간을 정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맛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