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말씀으로 거듭난 삶 [베드로전서 1:22-2:3]

말씀으로 거듭난 삶 [베드로전서 1:22-2:3]

22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으로써, 영혼을 정결하게 해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23 여러분은 거듭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가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2. 갓난 아기와 같이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3.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22 Since you have purified your souls in obeying the truth through the Spirit in sincere love of the brethren, love one another fervently with a pure heart, 23 having been born again, not of corruptible seed but incorruptible, through the word of God which lives and abides forever, 24 because “All flesh is as grass, And all the glory of man as the flower of the grass. The grass withers, And its flower falls away, 25 But the word of the Lord endures forever.” Now this is the word which by the gospel was preached to you.

1 Therefore, laying aside all malice, all deceit, hypocrisy, envy, and all evil speaking, 2 as newborn babes, desire the pure milk of the word, that you may grow thereby, 3 if indeed you have tasted that the Lord is gracious.

한번은 모 기업체 대표와 저녁 식사를 하게 됩니다. 이 분이 식사를 하면서 말을 할 때마다 ‘진짜라니까’를 연발합니다. 말하는 본인도 본인이 내뱉는 말이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는 느낌을 받는지 ‘진짜라니까’로 계속 강조합니다. 진실은 많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어린 젖먹이 아이에게는 엄마가 전부이듯이 말입니다. 간혹 어릴 때, 동네 주변을 보면 엄마를 폭행하는 아버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부엌이나 은밀한 곳에 아이를 꼭 품고 숨어서 소리 없이 아이를 안고 품어주면서 웁니다. 사도 베드로가 서신을 보낼 때, 현재 당시 로마, 마게도냐(현재 그리이스), 아시아(현재 튀르기예)에 핍박을 피해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수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들에게는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진짜 우리를 구원해 주실까?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본 사도들의 말을 믿고 주님만을 의지하면서 박해를 피해 사방에 흩어진 그리스도인 나그네들입니다. 얼마나 그들이 힘들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 베드로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Part 1, 썩지 않을 씨로 거듭난 자의 진솔한 사랑

22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으로써, 영혼을 정결하게 해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23 여러분은 거듭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가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치 미국이라는 선진국에서 자유 민주주의 시민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를 그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듯이 말입니다. 주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사건입니다.

이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소아시아와 인근에 흩어져 나그네와 같이 살아가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나그네들은 믿음 때문에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베드로는 그들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그 정체성에 합당한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들에 있지 않고, 오직 그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21절).

왜 사도 베드로가 당대 패권국가인 로마 식민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나그네 신세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낼까요? 비록 그들이 당장은 악독한 황제 치하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산 소망을 가진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은 구별된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거룩한 백성임에도 실상은 거룩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시 상황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인권 탄압을 당하면 예나 지금이나 당하는 사람들은 약자로 엄청난 피해를 당합니다. 밀고하라고 그러면 당신은 살려줄 테니, 황제가 신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하나님 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불어라(폭로하라)’고 얼마나 많은 협박을 당하겠습니까? 이를 잘 아는 베드로는 나그네 된 성도들이 부활의 주님과 하나된 참 생명을 부여 받은 거룩한 자임을 상기시켜 힘을 주는 것입니다.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믿음의 지체들을 배반하지 말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이 땅이 본향이 아님을 다시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백성답게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형제들을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는 2천년전의 성도들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가치관이 혼재하고, 풀과 같이 시들고 꽃과 같이 떨어지는 세상의 영광을 좇으라는 유혹이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우리의 삶의 방식은 어떠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살아있는 말씀으로 거듭난 자’의 삶이 무엇인지 깨닫고 새롭게 결단하는 은혜가 임하였으면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거듭난 자의 삶의 가장 첫 번째이며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형제 사랑’을 강조합니다. 2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으로써, 영혼을 정결하게 해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우리의 영혼이 정결하게 된 것은 ‘진리에 복종함’ 으로써 가능해졌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진리’는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곧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진리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을 때,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정결하게 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단순히 개인적인 경건과 성결에만 머물게 하시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 목적은 바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

‘꾸밈없는 사랑’이란 헬라어로 ‘필라델피아’(φιλαδελφία), 즉 ‘형제 사랑’을 의미하며, 위선이나 가식이 없는 진실된 사랑을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끌림이나 이해타산적인 관계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뜨겁게’라는 말은 ‘있는 힘을 다하여’, ‘열렬히’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결승선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가듯이,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사랑이 가능할까요? 인간적인 노력이나 결심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조건에 따라 달리 반응하며, 상처받으면 미움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모든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감정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이 순수한 사랑으로 승화가 가능한 이유를 23절에서 설명합니다. “여러분은 거듭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가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우리의 ‘거듭남’에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거듭나기 이전의 그 사람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거듭나기 이전의 본성은 죽었다는 말입니다. 거듭나기 이전의 본성은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썩을 씨’로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썩을 씨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의 본성이며, 그 결과는 죽음과 부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어 죽은 영혼을 살리며, 영원불변하기에 그 말씀으로 태어난 우리의 새 생명 또한 영원합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 영적인 가족, 한 형제자매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새로운 관계, 새로운 정체성이 우리가 서로를 뜨겁게 사랑해야 할 이유이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이 됩니다.

24-25절은 이사야 40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도 베드로는 이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관련 이사야 40:6-9절 말씀입니다.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세상의 모든 것은 일시적입니다. 젊음, 아름다움, 권력, 재물, 명예 등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영광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들풀의 꽃과 같습니다. 화려하게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붙들고 의지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선포된 복음입니다. 이 말씀을 언제나 심령에 조각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감정에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빨리 이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관계를 어디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변하고 썩어질 세상의 기준입니까, 아니면 영원하고 썩지 않을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우리가 썩지 않을 씨,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께 거듭난 한 가족임을 기억할 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꾸밈없고 뜨거운 사랑으로 서로를 품고 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Part 2, 새 생명에 합당한 삶의 자세

1.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났다는 것은 새로운 신분을 얻었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삶의 방식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베드로는 2:1에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하며, 거듭난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서 말한 1장의 내용, 즉 우리가 영원한 말씀으로 거듭나 서로 사랑해야 할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버리라’는 말은 더러운 옷을 벗어 던지는 것과 같은 단호하고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벗어 버려야 할 더러운 옷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모든 악의’ 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려는 악한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둘째는 ‘모든 기만’입니다. 이것은 교활한 속임수나 간계로 다른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행동입니다. 셋째는 ‘위선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태도, 연극배우처럼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경건한 척, 사랑하는 척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시기’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고 끌어내리려는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온갖 비방하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등 뒤에서 험담하고, 거짓된 말로 명예를 훼손하는 모든 말들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들이 간혹 들 수 있습니다. 이 죄악들은 특별한 사람들만 짓는 것이 아니라,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관계 속에서 너무나도 흔하게 나타나는 모습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이 죄악들을 특별히 언급하며 버리라고 명령했을까요? 그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꾸밈없고 뜨거운 사랑’을 정면으로 파괴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악의와 기만, 위선과 시기와 비방이 가득한 곳에서는 결코 참된 사랑의 교제가 자라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은 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분열시키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썩지 않을 씨로 거듭났다면, 이제는 썩을 씨에서 나온 이와 같은 옛 사람의 더러운 옷들을 과감하게 벗어 던져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내 안의 죄성을 못 박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옛 습관을 버릴 힘을 주실 때, 우리는 비로소 새 생명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을 비추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내 안에 아직 벗어 버리지 못한 악의와 기만, 위선과 시기, 비방의 더러운 옷은 무엇입니까?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내려 놓고,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기로 결단하는 은혜가 있기를 비랍니다.

Part 3, 구원에 이르는 신령한 젖

2. 갓난 아기와 같이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3.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는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 이제 베드로는 거듭난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2절과 3절입니다. “갓난 아기와 같이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갓난 아기’에 비유합니다. 갓난 아기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엄마의 젖을 찾고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온 힘을 다해 울며 엄마 젖을 찾습니다. 그 젖을 먹어야만 살 수 있고,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기서 ‘순수하고 신령한 젖’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우리를 거듭나게 했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태어나게 할뿐만 아니라, 우리를 자라게 하는 영양분입니다. 갓난 아기가 젖을 먹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듯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먹지 않으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떠한 환경에서 살아가더라도 이런 마음이 우리의 기본이고 철칙이 되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이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까? 그 목적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입니다. 여기서 ‘구원에 이르도록’ 이라는 말은,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원의 완성을 향한 ‘성장’과 ‘성숙’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단번에 이미 구원을 받은 몸입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그네로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는 과정, 즉 ‘성화’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같이 나그네로 살아가는 지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성화의 과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젖을 떼고 나면 밥을 먹음으로써 장성한 성인이 되듯이 말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삶의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신령한 젖, 말씀을 사모할 수 있을까요? 그 동기는 3절에 나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의 극치가 무엇입니까? 성자 하나님이면서도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고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말입니다. 저들이 하는 짓을 몰라서 그렇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마 당시 베드로가 로마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한 것처럼 믿는 자들이 서로 고발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우리 모두는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식어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 보는 시간이 없지는 않습니까? 일상에 빠져 정작 귀중한 것을 놓치고 살지는 않습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 놀라운 사랑,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그 크신 은혜를 늘 묵상해야 합니다. 그 첫사랑의 감격이 회복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갓난 아기와 같이 순수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시간에 마음을 쏟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날마다 자라나고,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해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들지 않으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 저를 도와 주소서 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하나님 사랑과 관련하여 베드로전서 4:7-10, 요한복음 5:12-13, 요한1서 3:16-18을 살펴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7-10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8.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9. 불평하지 말고,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10. 모두 자기가 받은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요한복음 5:12-13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1서 3:16-18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2000년전 거의 동 시대를 살아간 사도들의 말씀으로 진정한 사랑이 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1:22-2:3까지의 말씀을 통해, 거듭난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관련 말씀을 살펴 보았습니다.

첫째, 우리는 썩지 않을 씨,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지체이기에, 마음을 다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참 사랑이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랑은 참고 인내하며 배려하는 것입니다. 때론 내키지 않고 힘들어도 싫은 말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늘이 들어갈 때 통증이 있지만 피가 나와야 피가 통할 때는 이를 감수해야 합니다.

둘째, 새 생명에 합당하게, 사랑을 파괴하는 모든 악의와 기만, 위선과 시기, 비방의 더러운 옷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 말은 상식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별 상황을 다 겪게 됩니다. 우리들은 이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저 같은 경우는 상식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대하면 대체적으로 분노합니다. 분노하면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부족한 인생들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도록 성령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본 자로서, 구원을 받은 자로서, 성장하기 위해 갓난 아기와 같이 순수하게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은 일용할 양식을 기본으로 생활화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새기므로 성령 하나님과 하나되는 은혜가 기쁨으로 심령에 임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는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영적으로 자라날수록, 우리는 더욱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릴 수 있고, 진실하게 뜨겁게 지체를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의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세상은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주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풀과 같고 우리의 영광은 꽃과 같아서 곧 시들고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살아 역사하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가십니다. 이 영원한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사야 40:26,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군대처럼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베드로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수제자로 공생애 기간 가장 가까이에서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자입니다. 그는 주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무엇이든 먼저 대답했고, 무엇이든 남보다 먼저 행했던 자입니다. 그는 세상 영광을 바랐던 자였습니다.
그러한 베드로가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으로 세상의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에 대해서, 그리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천상의 별까지도 다 주관하시는 분임을 교훈하는 것을 보면, 베드로 그에게 엄청난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그의 전인격이 변화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그로 하여금 능력을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으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날마다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선민입니다. 초점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영원한 영혼의 생명을 주려고 지금 우리 앞에 이렇게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쓰여진 목적입니다.

최근 불황으로 회사가 유동성 위기를 당하면서 저에게 감당하기 힘든 갈등이 밀려옵니다. 불황이라도 실상은 당장은 유동성 위기를 맞을 일이 없어야 하는데, 이미 몇 분이 가정 형편을 이유로 차용을 너무 많이 한 것이 주 요인입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이점이 가장 힘든 고충 중의 하나입니다. 때론 거금을 상환하지 않고 도망갑니다 그리고 적반하장으로 저를 공격합니다. 특히 최근 시항이 어려워지므로 많은 분들이 저에게 몰려와 차용을 하려고 합니다. 회사 운영 자금이 고갈이 나 더 이상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데에도 막무가내입니다. 찾아 오는 분들은 이 사정을 다 모를 것입니다. 거절하면 다시 찾아 옵니다. 거절하면 안색이 변합니다. 그 사정을 들어보면 당사자 본인은 죽을 것 같은 형편입니다. 그런데 제 하고는 너무 다릅니다. 제 같으면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 저는 마음이 심히 불편합니다. 마치 엄마가 줄 젖은 하나인데 젖을 빨려고 하는 아이들은 줄여 지어 달려드는 느낌입니다. 저에게 이런 갈등이 동시에 상존합니다. 저들도 얼마나 어려우면 이럴까 하는 고통 말입니다. 이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뭔지 돌아보게 합니다.

진실은 말을 반복하여 강조한다고 입증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그 자체가 옮음에 기초해야 합니다. 진실이나 진리는 그 자체가 힘입니다. 옮음과 바름은 공의 (Righteousness)에 기초해야 합니다. 현 우리 시대를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하나님의 정의(Justice), 공의(Righteousness)는 과연 있는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갈등 말입니다. 이런 갈등 보다 상위 개념의 사랑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희생의 사랑이지 않을까 돌아보게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당시 나그네로 흩어져 핍박과 살해 위협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남으로 인해 영원한 새 생명을 덧입은 거룩한 지체임을 다시 한번 부각합니다. 엄마가 고통 당하는 자녀를 품어 주듯이 그리스도의 품으로 나그네 된 그리스도인을 눈물로 감싸주고 안아주는 사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들을 주님 품 안으로 안아 주고 보듬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부족한 자임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함으로써,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이 뭔지 돌아보는 우리들,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들이 되도록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울부짖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