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수 없는 소망 [베드로전서 1:3-12]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주셨으며,
-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물려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해 주십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잠시 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단련하셔서, 불로 단련하지만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해 주십니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지금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은 믿음의 목표 곧 여러분의 영혼의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 예언자들은 이 구원을 자세히 살피고 연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받을 은혜를 예언하였습니다.
- 누구에게 또는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그들이 연구할 때에,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에게 닥칠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드러내 주셨습니다.
- 예언자들은 자기들이 섬긴 그 일들이, 자기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임을 계시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들은 하늘로부터 보내주신 성령을 힘입어서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이제 여러분에게 선포한 것입니다. 그 일들은 천사들도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Quo vadis, Domine?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여? Lord, where are you going?"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 베드로전서 서신을 인근 국가에 있는 지체들에게 믿음의 서신으로 보낼 때, 로마 제국은 네로 황제의 학정 시대입니다.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네로를 황제로 보위하기 위해, 남편인 황제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합니다. 네로는 황제가 된 후 어머니의 섭정을 거부하고 그 어머니를 살해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런 험악한 시대에 베드로는 사도로 활동합니다. 베드로 행전에 보면, 로마에 들어가면 체포될 것을 피하여 베드로는 로마로부터 피하려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버린 로마를 위해 내가 다시 십자가에 매달리러 로마로 들어가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환상을 받은 베드로는 로마로 바로 입성합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그는 베드로 성당 터 위에서 순교합니다.
베드로만큼 예수님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3년 6개월 공생애를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도하고 40일간이나 같이한 베드로는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압니다. 이런 베드로도 갈등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어떤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Part 1: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주셨으며,
-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물려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라고 베드로는 시작합니다. 예루살렘 인근 사방에 핍박을 피해 흩어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뜬금없는 말이냐고 당장 반박할 수 있습니다. '현재 상황을 베드로 사도는 제대로 알고 이렇게 서신을 보내는지요?'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연이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우리로 하여금 물려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지금 각지에 흩어져 고난을 받는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썩어지지 않을 생명을 영원히 약속받은 여러분들이야말로 먼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면 정상적인 인지 능력이나 판단력이 사라집니다. 정확하게 지적하면 인지 능력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지만, 생존 본능만 남게 됩니다. 진실, 진리 앞에 이를 알지만 침묵하거나 은폐하거나 이에 동조합니다. 이런 현상은 현 우리 시대도 동일합니다. 특히 법조계에 이런 현상이 만연합니다. 누가 보아도 불법인데 권력의 편에 서거나 권력을 옹호합니다.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권력 편에 줄을 서는 현실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의 한계입니다. 자신을 지키려는 원초적 본능이 먼저 작동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이고 죄성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믿는 자들에 대한 핍박을 피해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어떻게 편지를 보낼까를 고민하였을 것입니다. 고뇌 끝에 그는 사도답게 정공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다름 아닌 산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 즉 천국 기업입니다. 이 기업은 우리를 위해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기업도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늘 우리는 불안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촌, 우리나라, 인근 국가, 주변 환경을 돌아보면 조용한 날이 없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저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3년 6개월 동거 동락한 장본인입니다. 그러나 당시 저는 주님께서 이 땅에 군림할 왕으로 오신 줄로 알고, 저도 한자리 차지하려고 제자들끼리 서로 경쟁한 자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저는 주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잡혀가자 주님을 절대로 모른다고 여종 앞에서 극구 부인한 자입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제가 목도하고 40일간이나 같이 지냈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는 것을 목도한 자입니다. 이후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으로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친히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 강림은 요엘서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실현이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주님의 능력으로 수많은 이적을 체험했습니다. 저는 믿음의 산 증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유산, 산 소망은 외부의 그 어떤 침해도 받지 않고, 내적인 죄로 인해 오염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든든하고 확실한 소망입니까? 저를 보시면 확신할 수 있지 않습니까? 거듭남의 신비, 영원한 유산을 상속받는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네로 황제의 이런 핍박 가운데에서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우리는 산 소망을 소유한 하나님 백성이므로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심정으로 서신을 보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이런 의문이 들 것입니다. 왜 바울은 신약 27권 중 13-14권을,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 1,2,3서, 계시록 등 5권을 남긴 반면 베드로는 수제자라고 하면서도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2권만 남겼을까? 예수님의 12제자 중 마태는 세리 출신으로 마태복음을 남깁니다. 도마도 도마 행전을 남기지만 정경으로 채택되지 않습니다.
당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요즘 시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용과 고역이 소모되는 시대입니다. 원래 구약은 전부 양피지에 기록합니다. 얼마나 많은 양들이 죽어가야 했겠습니까? 그리고 양피지로 제작하고 문자를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손질이 필요했겠습니까? 베드로 시대에는 파피루스라는 재료에 성경을 기록합니다. 수많은 비용이 소요됩니다. 딱딱한 나무 같은 것에 기록을 하고 책을 접어야 하므로 많은 손이 들어가야 합니다. 바울은 이런 비용을 Tent maker로 자체 충당하고, 요한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재정적 지원이 가능하고, 마태는 세리 출신이라 모아둔 자금이 일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반면 가난한 어부 출신 베드로는 가정을 가진 가장으로 무일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보는 성경을 별생각 없이 볼 수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로움, 풍요함에 성경이 주는 생명의 말씀인 이 성경 말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특정 종교 국가나 북한은 성경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나라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것에 감사부터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3:7-8). 거듭남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듯, 성령으로 말미암는 신비한 역사입니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유산은 육적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적인 실체입니다. 거듭남을 통해 우리는 육신의 소욕을 넘어선 새로운 영적 존재로 태어나, 보이지 않는 영원한 유산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를 소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성령으로 난 자는 영적인 실체를 깨닫고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믿음을 가진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변을 볼 때,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 없이도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어떤 생각 가운데 살아가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믿는 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못할까?'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우리 믿음이 값없이 받은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믿음을 경시하기 쉽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감사함보다도 마지못해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에는 우리는 기도보다는 불평이나 원망이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새벽에 차를 몰고 주행하면서 주여 삼(3)창을 목청이 터져라 ‘주여’를 불러봅니다. 그리고 목청껏 기도합니다. 그럼 당장 기도한 것이 응답이 옵니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새벽 7시 이전에 사무실에 도착하면 오전 8시까지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다시 주여 삼창을 목청껏 외칩니다. 당장 응답이 없더라도 우리 공동체를 위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선교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사업장을 위해, 성령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 나의 미래, 나의 비전, 가족의 비전, 자녀의 비전을 위해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이런 것이 믿음의 하나입니다. 베드로가 로마에 입성하려고 하다가 주님께 환상 가운데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그가 나아갈 길을 구하듯이 말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해 주십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잠시 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단련하셔서, 불로 단련하지만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해 주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자신의 체험을 수신자들에게 전합니다. 수신자들이 현재 겪는 시련, 슬픔, 고난을 당하더라도 기뻐하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불로 단련하셔서 금보다 더 귀하게 연단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해 주십니다.”라고 확신 가운데 격려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베드로는 체험으로 인한 확신, 기도의 응답, 성령 하나님의 미리 알려주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때로는 불 같은 시련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시련은 우리를 낙심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순금처럼 더욱 견고하고 확실한 것임을 입증하기 위함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눈으로 그 실체를 보지 못하면서도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써, 보지 못하는 구원을 마치 보는 것처럼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20:29). 또한 에베소서 6:24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신실성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뢰를 말합니다. 시련 속에서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신뢰할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빛을 발하며 주님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돌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놀라운 구원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1:10-12은 "이 구원에 대하여는 선지자들이 자세히 상고하고 연구하여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후에 있을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되었으니, 성령을 힘입어 하늘로부터 보낸 자들로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구약에서 약속하신 드러난 것으로 조금도 의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하고 귀한 것은 공짜로 주십니다. 물과 공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가 매 순간 아무런 가치 없이 여기는 것들이 생명의 필수 요소인 것처럼, 생명의 말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환상을 통해 메시아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단7:16), 그 의미를 알기 위해 간절히 구하고 찾았습니다(단9:2-3). 이사야 53장 역시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선지자들의 상고와 연구는 그들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실 메시아와 그분을 통해 이루어질 구원에 대해 부지런히 살피고 상고했지만, 그 구원의 온전한 실체는 오늘날 이 서신의 수신자들인 우리, 곧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임이 계시되었습니다. 우리는 선지자들이 간절히 바라보았고, 심지어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했던 놀라운 구원 안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베드로는 이렇게 강조할까요?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아, 바로 그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반복함으로써 역설하는 것입니다.
Part 2: 성령을 힘입어서
-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지금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은 믿음의 목표 곧 여러분의 영혼의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 예언자들은 이 구원을 자세히 살피고 연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받을 은혜를 예언하였습니다.
- 누구에게 또는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그들이 연구할 때에,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에게 닥칠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드러내 주셨습니다.
- 예언자들은 자기들이 섬긴 그 일들이, 자기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임을 계시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들은 하늘로부터 보내주신 성령을 힘입어서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이제 여러분에게 선포한 것입니다. 그 일들은 천사들도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유산을 약속하셨을 뿐 아니라, 그 유산을 확실히 소유하도록 도우시는 분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7-14입니다.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셨고, 사도행전 2장 33절은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 열매 맺도록 도우십니다. 요한복음 15:2에서 예수님은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깨끗하게 하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며 참된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이며,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영원 무궁토록 시들지 않는 견고한 자태를 유지하는 기업, 곧 하늘의 유산을 상속받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유산은 어떤 외부적인 침해도, 내적인 죄로 인한 오염도 없는 완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뢰에 기반합니다. 시련은 이 믿음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귀한 기회가 됩니다. 선지자들이 간절히 상고했고, 천사들조차 살펴보기를 원했던 이 놀라운 구원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이 구원을 완성해 가십니다.
이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우리는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유한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유산을 바라보며, 삶의 시련 속에서도 인내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예비하신 영원한 영광을 향해 우리는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이 소망이 우리의 삶의 진정한 위로와 힘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기업도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는 늘 불안정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유산은 외부의 그 어떤 침해도 받지 않고, 내적인 죄로 인해 오염되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든든하고 확실한 소망입니까? 공짜로, 대가 없이 받았다고 그 가치를 모르는 우를 범하는 우매한 우리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네로 황제(AD 37-68)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권력욕에 노예가 된 사람입니다. 이 세상 권력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본 여인입니다. 당시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망각증이 심각해 본처인 아내 메살리나를 처형합니다.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다리를 저는 유약한 자로 51세에 황제가 됩니다. 그는 열등감 때문인지 매일 재판을 열고 흥미로 사형 선고를 내렸다고 합니다. 참 믿기지도 않을 일이지만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자신이 처형한 아내가 '왜 모임에 늦느냐?'고 물을 정도로 망각증 중증 상태입니다. 이를 간파한 네로 황제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아들 네로를 위해 삼촌인 당시 황제 클라우디우스에게 재혼하여 권력의 품으로 들어갑니다. 이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그리고 그 황제를 독살합니다. 이후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섭정을 합니다. 이에 아들 네로는 섭정하는 어머니를 살해합니다. 이런 시대가 바울과 베드로가 사도로 활동하던 당시 상황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상황에서 핍박을 피해 흩어진 나그네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을까요?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 시대와 지금 비교하면 우리 형편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인지 아닌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황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유롭게 예배하고 말씀을 묵상함에 아무런 감사가 없는지 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 물을 달라고 할 때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세상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대체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믿음으로써 영생을 우리는 공짜로 받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귀한 것을 공짜로 주시는 분입니다. 단, 주님을 믿기만 하면 말입니다. 공짜가 진짜가 되도록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므로 평강이 우리를 지배하는 한 주간 되시기를 권면합니다. 주님을 붙들고 모든 것을 들고 나아가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를 고쳐 달라고, 지체를 고쳐 달라고, 무너진 법치를 정상으로 고쳐 달라고 말입니다. 간구함으로써, 매달림으로써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