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나그네에게 은혜와 평강 [베드로전서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표준새번역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베드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서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2.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미리 아심을 따라 여러분을 택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주셨으므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었으며, 그의 피로 정결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화가 가득하기를 빕니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악명이 아주 높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현시대를 돌아보더라도 국가 체제가 전체주의로 바뀔 때 무고한 인명들이 무수히 희생을 당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사도로 있던 그 시대는 로마 제국이 당대 세계 패권을 장악한 시대입니다. 로마 황제들은 믿는 자들을 심히 핍박합니다. 당시 성지라고 하는 예루살렘에 핍박이 가해집니다. 사도 바울도 한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로 최고의 악명을 떨친 악동 출신입니다. 믿는 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인근 국가인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흩어져 나그네 신세가 됩니다. 신약에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하는 사람은 바울과 베드로 둘뿐입니다. 바울, 베드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알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Part 1, 우리는 누구인가?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베드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서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자신이 누구인지, 어떠한 사람인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난 어디서 온 것인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는 마치 광야에 홀로 서 있는 나그네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보아도, 현시대를 돌아보아도, 이 불의한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나의 믿음이, 나의 기도에 하나님은 언제 응답하실 것인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의 가치관과 충돌하며, 고민하며, 분투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악한 무리들을 방치하여 두시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왜 아픈 우리 지체는 우리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계속 침묵하시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은 우리가 살아가지만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라는 믿음을 가진 우리는 모두 천국 시민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전서 1, 2절은 바로 이런 ‘나그네’들을 위해 쓰인 편지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나그네로 소개한 뒤, 편지의 수신인들에게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1절)라고 부릅니다. 우리 모두 나그네라는 말입니다. 이 나그네들은 로마 제국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초기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들은 나그네 신세가 되어 낯선 곳으로 흩어져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공동체로부터 박해를 받아 본국을 떠나 소외당하며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들의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하늘의 법도를 따르려고 할 때, 수많은 유혹과 번민이 동반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가 됩니다. 베드로는 이 나그네 된 성도들에게 절망이나 체념이 아닌, 놀라운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그 핵심이 바로 오늘 본문 2절에 담겨 있고, 그 열매가 “은혜와 평강”입니다.
말씀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평가하든 주님 안에서 우리의 진짜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 정체성을 가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은혜와 평강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Part 2, 나그네인 우리
2.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미리 아심을 따라 여러분을 택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주셨으므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었으며, 그의 피로 정결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화가 가득하기를 빕니다.
베드로는 원래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평범한 어부로 촌놈 출신입니다. 다혈질로 실수도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베드로는 자신만은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합니다. 다른 제자들에게 자신은 죽어서라도 주님을 버리지 않는다고 자신만만해합니다. 하지만, 결국 어린 여종 앞에서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나는 주님을 본 적도 없고 같이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극구 부인한 그는 이런 예언을 미리 하신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고는 통곡합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는 불신자들도 웬만하면 아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을 배신한 악동으로 베드로는 만인에게 알려집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담대하게 소개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오순절에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약속하신 성령 충만함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사람을 두려워하던 베드로는 수천 명의 군중 앞에서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설교자로 변화됩니다(행전 2장).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향해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하니 그대로 일어섭니다. 한때 조용기 목사님이 이런 기적을 많이 체험하게 합니다. 베드로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의 통로가 됩니다(행전 3장).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앞에서도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외칩니다. 복음의 핵심을 선포하는 순교적 사명을 감당합니다(행전 4장).
이를 본인 스스로 체험한 베드로는 공생애 기간에도 주님과 동행하면서 직접 목도한 것이지만,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이 현실로 나타나자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체험은 믿는 자들을 견고하게 합니다.
이 편지를 쓰는 베드로야말로, 체험으로써 실패한 제자에서 위대한 사도로 변화됩니다. 은혜의 산증인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편지를 받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자기 자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강변합니다. “여러분, 저를 보십시오. 저 또한 실패하고 흩어진 나그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붙드시고, 성령으로 저를 채우시니, 저는 이제 사명을 감당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비록 세상 속에서 나그네처럼 힘들고 외롭게 살아갈지라도, 여러분은 그냥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위대한 목적을 위해 부르신 존귀한 자들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우리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이 당장 없더라도, 기도에도 계속 응답이 오지 않더라도, 우리의 정체성은 세상 지위, 세상 소유, 혹은 우리의 연약한 모습에 의해 결정되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핍박을 피해 고향을 버리고 인근 국가로 피신해 나그네로 살아갈 때, 세상이 그를 향해 비웃을 때에도, 베드로는 성령 충만함으로써 주님과 하나 되어 사도가 된 것처럼,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를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그네의 삶 속에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경주를 고집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만남으로 인해 한동안 절망과 시련을 경험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제자들 앞에서도, 예수님이 사도 요한을 편애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실 때에 그는 자신은 어떻게 될지를 주님께 여쭤봅니다. “저는요?” 하고 묻습니다. 이런 그는 자신의 의지로 나아갈 때 절망과 좌절을 통해 삼위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사도가 됩니다. 사도는 자신이 삶의 주체가 아닙니다. 주님이 그 삶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성부 하나님께서 미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이므로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세 전에,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시작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라는 말입니다. ‘미리 아심(Foreknowledge)’은 단순히 하나님이 미래를 내다보시고 ‘아, 저 사람이 나를 믿겠구나’ 하고 아셨다는 수동적인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안다(to know)’는 사랑과 의지를 담은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원 전부터 우리를 사랑으로 아시고, 그분의 주권적인 기쁨과 의지 안에서 우리를 자녀로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첫째,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감정이나 불완전한 우리의 노력에 있지 않고,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선택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때로 넘어지고 실패하여 ‘나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어’라고 느낄 때조차, 하나님의 선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영원한 선택이 바로 나그네 된 우리 인생의 가장 튼튼한 기준이 됩니다.
둘째,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선택은, 이제 역사 속에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됩니다. ‘거룩하게 하심(Sanctification)’은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죄와 허물로부터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인치십니다. 이것은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죄를 멀리하고 의를 행하도록 우리를 빚어가십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었듯이, 우리 또한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거룩한 삶을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심령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기도로 우리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그네 길을 걸으며 세상의 유혹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 거룩함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이는 우리의 기도로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성부 하나님의 선택과 성령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은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그의 피 뿌림을 받기 위해’ 선택됩니다. ‘피 뿌림’은 구약의 제사 의식을 떠올립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맺을 때, 모세는 제물의 피를 제단과 백성에게 뿌립니다(출애굽기 24:8). 이는 피를 통해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 안으로 들어갔음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은 바로 이 언약의 피입니다. 그분의 피가 우리에게 뿌려짐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가 씻음 받고,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피 뿌림’의 은혜를 입은 자는 자연스럽게 ‘순종’의 삶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순종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반응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계획하여 선택하셨고,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구원의 길을 여셨으며, 성령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우리 각자에게 적용하시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처럼 완전하고 빈틈없는 삼위 하나님의 합작품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나그네 인생의 고단함 속에서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의 반석 위에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해 준 베드로는, 이제 그 정체성을 가진 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고의 복을 선포합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이것은 단순한 의례적인 인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두 가지 선물이며, 베드로의 간절한 기도이자 축복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와 선물입니다. 베드로 자신이 바로 이 은혜의 사람입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죄인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찾아오셔서 책망 대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사명을 회복해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나그네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수없이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힘, 우리의 허물을 덮고도 남는 하나님의 사랑,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평강은 세상이 말하는 평안과 다릅니다. 세상의 평안은 문제가 없는 상태, 환경이 고요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내면의 고요함과 온전함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도 배 안에서 주무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평강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위협을 당했을 때에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에서 오는 평강이 그들을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May be multiplied)”라고 합니다. 한두 번 경험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샘솟듯 솟아나 강물처럼 넘쳐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나그네 인생이 아무리 척박하고 힘들지라도,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있다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우리 영혼을 만족시키고 우리를 굳건하게 세우는 힘이 바로 이 은혜와 평강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존재가 아닌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버려진 나그네, 외로운 나그네가 아닙니다.
1. 우리는 실패를 딛고 일어선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대한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2. 우리의 구원은 영원 전부터 우리를 아시고 선택하신 성부 하나님,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성자 예수님의 완벽한 합작품입니다.
3. 이 놀라운 정체성을 가진 우리는, 날마다 더욱 풍성해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공급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그네 된 저와 여러분의 진짜 모습이며, 우리가 붙들어야 할 영원한 소망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흔들고, 때로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에 넘어질지라도, 우리의 시선을 1장 2절의 말씀으로 돌려야 합니다. 창세 전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과, 지금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과,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궁핍한 나그네의 삶이 우리 삶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향을 향한 소망을 품고 기쁨으로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이 어떠하더라도 우리의 남은 모든 나그네의 여정 가운데,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가 우리 삶과 가정에 강물처럼 넘쳐나야 합니다. 우리의 본향은 주님 계시는 하늘나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나그네 삶 가운데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신실하신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대명사였습니다. 악명 높은 자입니다.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다혈질로 실수가 많고 배우지 못한 갈릴리 촌놈 출신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님을 배반한 자들입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죄인이지만 회개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주님의 사도라고 자신들을 불렀다는 점입니다. 사도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그 소명을 감당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사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사도로 부르십니다. 우리 자신만을 바라보면 우리는 사도로 설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죄인을 변화시켜 사도의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령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은혜와 평강이 우리를 지배하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외롭고 지친 나그네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창세 전부터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선택함을 받은 지체임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 생명을 얻은 존귀한 자녀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실패했던 베드로를 일으켜 위대한 사도로 사용하셨던 주님, 연약한 우리도 붙들어 주시옵소서. 나그네 인생길에서 만나는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신뢰하게 하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은혜와 평강으로 우리의 심령을 가득 채워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남은 생애가 불평과 원망이 아닌, 감사와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여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