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망령되이 말하지 말지어다 [시편 106편 32-33]

망령되이 말하지 말지어다 시편 106편 32-33

32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33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보면 조봉암 이라는 진보당 당수가 1959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처형을 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국사를 배우면서 의문점은 한국 현대사는 왜 이렇게 설명이 없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언젠가 공안 검사 경력을 가진 정치인이 조봉암이 당시 북한 김일성으로부터 3만달러를 받은 영수증을 눈으로 확인하고 본인도 놀랐다고 고백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판은 매수, 암약, 술수가 판을 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숱한 전쟁 사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반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국은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여 주시는 것이 이스라엘을 지켜주시는 맥락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적국이나 이방인들을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당장은 이해할 수 없지만 말씀을 통해 이를 살펴보겠습니다.

Part 1,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32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그들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출애굽한지 40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시점입니다. 약 40년동안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오셨습니다. 수많은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였고, 이렇게 모세를 원망하는 이 시점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입히시고, 먹이시고, 보호하시지만 당장 마실 물이 떨어지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현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유사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매일 누리는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이 이럴지도 모릅니다. 사형수는 무기형을 받은 죄수가 그렇게 부럽다고 합니다. 앞을 못 보는 분들이 한번 볼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합니다. 사지를 틀어서 겨우 한마디를 내뱉을 수 있는 뇌성마비 분들은 말을 자유롭게 하는 분들이 그렇게 부럽다고 합니다. 우리는 ‘정말 미치겠네’ 이런 말을 쉽게 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됩니다.

므리바 물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39년전 출애굽한지 얼마 안되어 물이 없어 모세가 므리바에서 바위를 지팡이로 치니 물이 쏟아져 나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축들이 충족하게 마시게 됩니다. 그런데 39년간을 광야로 돌아 다니다 보니 이전에 왔던 가데스 인근에 있는 므리바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을 이렇게 인도하셨을까요? 시련을 통해 연단하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근 40년간이나 주야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지켜주셨는데, 이들은 변화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지도자 모세를 시험합니다. 모세는 하나님 종으로서 하나님 시험에 걸려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말씀을 전개하면 이해가 안될 것입니다. 무리는 하나님 예정을 다 알지 못합니다.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자 화가 난 백성들은 모세를 다시 원망합니다. 이에 모세는 뭐라고 하십니까? 민수기 20:2-12입니다.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들은 모세와 아론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하나님 해도 해도 너무 하십니다. 라는 심정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모세의 시중을 드는 참모장 여호수아와 갈렙도 이런 심정이지 않았을까요? 백성들이 말을 잘 듣지 않고 반역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출애굽 40년 역사에 하나님과 동행한 모세에게 이런 가혹한 징계를 내리실까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우상을 섬기지 말고 그 곳 주민들을 다 진멸하라고 수차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엄하게 징계하신다는 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40주야를 시내산 정상에서 두 번이나 독대한 모세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징계하시는데,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과 이방 신을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자비를 베푸시지 않아’ 하는 경고를 미리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이해가 안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 임마누엘하셔서 고향 갈릴리에서 사역하십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극심한 배척을 받습니다. 누가복음 4장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나사렛 회당에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가셔서 성경인 당시두루마리중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찾아 읽으십니다. 눅4:18-19입니다.

18.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못 보는 사람들에게 다시 볼 수 있음을, 억눌린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
19. 주의 은혜의 해(year)를 선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690년 전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바로 예수 자신임을 나사렛 주민들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왜 예수님은 그렇게 선포하십니까? 핍박을 받을 것을 아시면서도 말입니다. 본인이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당사자 본인이기에, 진리이기에 당당하게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감탄하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에 놀랍니다. 그런데 나사렛 백성들은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라고 되묻습니다.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므로 우리가 그를 잘 알고 있는데, 그가 무슨 병을 고친단 말인가 하는 비아냥 조의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로 “틀림없이 너희들은 ‘의사(병 고치는 의사를 말함)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이대며 ‘우리가 소문에 들은 대로 당신이 가버나움에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었다고 하는 모든 일을 여기 당신의 고향에서도 해 보시오’라고 할 것이다.” 예수 너는 아마 여기 나사렛에서는 병자들을 한 사람도 못 고칠 것이다. 너는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너 동생도 우리들이 잘 알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격한 비하성 발언을 쏟아 낼 것이다 라고 예수님은 미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말씀하시는데, 어떤 선지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법이다.”라고 일축하십니다. 왜 그렇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실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만이 선민이라는 대단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메시야는 베들레헴에서만 나온다는 말(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들의 마음을 다 꿰뚫어 보시는 주님께서는 열왕기상 17장 말씀으로 훈계하십니다. 관련 눅4:25-27입니다.

25. 그러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과부들이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 있었다. 그때 3년 반 동안 하늘 문이 닫혀 온 땅에 극심한 기근이 들었다.
26.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과부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엘리야를 보내지 않으시고 오직 시돈에 있는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 보내셨다.
27. 또 많은 나병 환자들이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시리아 사람 나아만 외에는 깨끗함을 받지 못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주민들 이들의 마음을 다 간파하시고, 그들이 존경하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므로 나사렛 주민들을 잠잠하게 만드십니다. 북 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에 우상을 섬기고 이방신을 이스라엘에 가져온 아합 왕가를 멸망하시기로 결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가를 멸망하시기 이전에 회개할 기간으로 3년 반을 주십니다. 성경에서 3년 6개월, 즉 1,260일은 환난 기간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환난 기간 동안에도 아합왕은 전혀 회개하지 않고 이런 경고를 날리는 엘리야를 죽이려고만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엘리랴를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시돈의 과부에게로 피신하게 하여 그 혹독한 가뭄을 이기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엘리사 시대에 나병 환자들이 이스라엘도 그렇게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적국인 아람에 있는 나아만 장군에게만 나병이 깨끗하게 나음을 받게 하셨다는 말씀으로 나사렛 주민들을 직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렇게 나사렛 주민들을 질책하십니까? 허상을 벗어라는 말입니다. 선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선민으로 인정하고 역사하셔서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사르밧(사렙다) 과부는 자신과 그 아들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으려고 작정한 것인데, 엘리야갸 그 여인에게 떡과 물을 달라고 하자, 자신들도 먹고 죽고 싶어도 떡이 없다고 완강히 거절하다가 엘리야의 청을 들어 줍니다. 엘리야가 당대 선지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엘리야를 처음에는 극구 반대하다 엘리야의 강권함에 마지못해 도와 줍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3년 6개월 환난기간 동안 먹고, 마시는데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공급하여 보호하여 주십니다. 현실적으로 먹거리가 없어 죽을 정도로,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가난한 사르밧 과부이지만, 엘리야의 강권함에 압도를 당하여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아람의 적장 나아만 장군도 비록 적국이지만 선지자 엘리사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한 결과 나아만 장군의 고질병인 나병이 깨끗하게 고침을 받습니다. 이같이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하나만 구원하시기 위해 임마누엘하신 것이 아님을 전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쓰신 한 나라일 뿐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은 나사렛 주민들은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관련 눅4:28-29입니다.

28. 회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습니다.
29. 그들은 일어나서 예수를 마을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마을이 세워진 산벼랑으로 끌고 가서 그 아래로 밀쳐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관련 역대하 25:12 말씀입니다.

12. 유다 자손이 또 만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

벼랑 아래로 밀어 죽이는 것은 당시 유대인의 형벌로 예수님을 반역자로 몰아 죽이려는 악을 자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나사렛 백성들은 왜 그랬을까요? 이 자가 입은 살아서 우리가 선민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자랑하고 있어? 하고는 이 자가 죽을 줄도 모르고? 하면서 자신들이 하는 불법 행위를 하고는 만행을 자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그럴까요? 유대인들은 이사야 선지자를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사야 53장의 주님이 고난 당하는 말씀은 건너 뛰어서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 우리 시대 오늘날에도 유대인들 일부는 기도만 하지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이 웅덩이에 빠지면 안식일에도 건져냄이 당연한 것으로 말씀하시는데 이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Part 2,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33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지도자 모세는 어떤 사람입니까? 민수기 12:1-3입니다.

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의 누나이고 형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선택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주권입니다. 그런데 이런 누나과 형이 모세를 비난합니다. 그것도 지난 일이고 지금은 250여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는 지도자 모세를 이 어려운 시기에 말입니다. 이런 비난으로 누나 미리암은 벌을 받아 하나님께서 미리암에게 나병을 벌로 내리십니다. 나병은 공동체에서 추방되는 병입니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 미리암을 고쳐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응하시고 미리암의 나병을 고쳐주십니다. 단 7일간은 공동체로부터 격리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온유한 모세도 입술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물이 없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자 모세는 폭발한 것입니다. 이 반역하는 무리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하고는 반석을 향해 지팡이를 두번 탁, 탁 하고 칩니다. 처음 므리바 물 기적시에는 지팡이를 한번만 친 것인데 이번에는 두 번 칩니다. 물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인데 ‘내가’ 하므로 자신이 물을 공급하는 자처럼 무례를 범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모세의 경솔함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렇게 두면 안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벌을 내리십니다. 모세 네가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직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을 용서할 수 없는 분입니다. 본보기로 모세를 징계하십니다. 모세는 성막을 만들 때 하나님께서 이미 천국 모형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격이 매우 강한 직설적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바울이 가장 어려울 때, 도와준 유일한 동역자가 바나바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 잡아가기로 악명이 높은 바울은 그 주변에 아무도 다가가지 않습니다. 바울 그가 가장 어려울 때 이를 도와준 유일한 사람이 바나바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시 바나바의 조카 마가의 합류 문제로 격렬한 언쟁 끝에 서로 결별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일련의 사역이 좋은 결과로 나중에 드러나지만 누구던지 완벽할 수 없음을 말해 줍니다. 이후 바울은 바나바 조카 마가와 좋은 관계성을 회복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 줍니까? 한 성령 안에서 서로 화해하고 서로 동역자로 인정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각종, 각색 병자를 고시시고 하나님 말씀을 회당에서 가르치는데 무리들이 듣고 놀랍니다. 그런데 나사렛 지역 주민들은 예수님이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폄하합니다. 갈릴리에서 무엇이 어떤 인물이 나올 수 있는가 하고 아예 무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하시기 전에 이런 상황을 예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시기 전에 성령으로 충만해,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 그곳에서 40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시고 성령에 이끌리어 까지는 이해하는데, 무슨 마귀에게 시험을 당할까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 예수님께서는 1. 마귀에게 배고픔 문제, 2. 하나님께만 경배 문제, 3. 하나님의 아들이면 의심 문제 등에 대해 시험을 받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해 줍니까?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우리 모두는 어떤 상황에서도 겸손하며 주위를 배려해야 함을 말해 줍니다.

대한민국 건국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진보당 조봉암에 대한 평가는 다양합니다. 그에 대한 명암이 극도로 나누입니다. 이는 우리의 행동이나 특히 언행이 신중해야 함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현존하는 우리 시대를 살아가면서 시련, 고난, 불황, 불의 앞에 좌절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매우 심란할 수 있습니다. 겸손하지 못함으로 인해, 말 실수로 인해 낙담할 수 있습니다. 늘 말씀으로 우리를 무장시켜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연약함을 인정하므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겸손함과 동시에 나약함을 극복할 지혜와 열정과 실천할 수 있는 의지와 열정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를 위해, 사업장을 위해, 가족을 위해, 선교를 위해,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연약함을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 고쳐 달라고 간구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겸손하게 인도해 달라고, 언사에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를 받도록 부단히 도전하는 우리들이 되게 해 달라고 울부짖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우리 공동체를 위해, 한국 교회를 위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나의 할 일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공동체에 역사하시도록, 하나님 공의가 이 지구촌에 충만하도록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