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 차기까지 참으라 하시더라 – 요한계시록 6:1-11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헨리 키신저는 1923년생으로 1970년대 미국 국무장관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입니다. 현대사를 돌아보면 키신저만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인물로 드물 것입니다. 1973.1.27 파리 평화협정 체결로 키신저는 북베트남 외교 대표 레득토와 함께 베트남 전쟁을 미군 철수와 함께 끝내는 것으로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합니다. 그러나 이후 미군이 철수하자, 1975.4.30 월남은 야욕을 숨긴 월맹에 의해 패망되어, 월남의 무수한 인명이 보트피플로, 집단학살 등으로 대규모로 살상을 당합니다. 당시 얼마나 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처형을 당하였으면 현재 베트남은 젊은이가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가 됩니다. 이런 저런 연유로 키신저의 정체를 의심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는 스파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간결하면서도 확실하게 증언합니다. 그런데 동일한 그의 기록인 요한계시록에서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 왜 그랬을까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당시 세계를 지배한 로마 제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것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E당시 도미티나우스 황제는 악명 높기로 유명합니다. 도미티아누스 그는 자신을 신으로 선포하고 모든 야간 금지하고 탄압합니다. 당시 믿음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극심한 탄압을 받았겠습니까? 이런 시대에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데에는 지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비유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이 말씀이 계속 반복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나는 알파요 오매가 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작이요 끝이라고 하십니다. 어디에도 이렇게 단정적으로 천지의 주재임을 드러내는 곳은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없습니다.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Part1, 내가 보고 들으니
계시록의 핵심은 대종말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묵시들입니다. 묵시는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명시, 직시와는 상반되는 개념입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애매하고 모호하게 드러내는데 잘 들여다보면 엄청난 비밀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 요한은 본인이 보고 듣는 것을 토대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목도한 요한이 왜 이렇게 본인이 보고 들은 것을 강조할까요? 반드시 언제가 일어날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6개월 공생애 기간에도 직설법 보다는 비유로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직설법으로 다가가면 듣는 자들이 바로 반발하기 때문입니다.
22장으로 구성된 요한계시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선언적 계시적 선포에 해당하는 1:1-8, 둘째, 웅대하고 경이로운 환상으로 전개되는 대종말 본론부인 1:9-22:5, 셋째, 끝맺음으로 압축하는 22:6~22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본론부는 다시 구분하여 살펴보면, 1:9-20의 주님의 명령 부문, ‘이미 있었던 일’이 기록된 2-3장,‘장차 일어날, 이루어질 일’이 기록된 4:1-22:5로 다시 구분하여 볼 수 있습니다. 22장이라는 것이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자음은 총 22개입니다.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고 모음 부호로 연결하여 발성합니다. 즉 자음이 전부로 이는 알파와 오메가로 계시록이 전부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16:2-4
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말씀을 못 알아 듣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눈에 보이는 천기는 분별하면서, 요나의 표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이를 믿지 않느냐? 라고 질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묵시가 요한 계시록의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므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저자 요한이 처한 당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탄압과 현실을 감안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묵시로 은근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고 말씀 중간에 반복하는 것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저들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럼 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들이 믿을 수 없는, 절대로 믿지 않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심해 깊은 바다 속 배속에서 3일이나 보호하셨고, 그를 물고가 배에서 토해 내셨습니다. 이같이 임마누엘 하신 주님도 3일간 무덤 속에 죽은 채로 있다가 3일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 부활하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당시 이런 주님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런 일을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수제자 베드로는 힘주어 그런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변합니다. 이후 베드로는 주님께서 하신 말이 그대로 자신에게 임하자 주님 말씀을 기억하고는 통곡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부활 이후 40일간 제자들과 500여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신 이후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고 승천하신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목도한 사도 요한은 혼자 살아 남아 계시록으로 형제자매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믿음을 가진 지체들에게 주님께서는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라고 묵시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바로 재림하시지 않고, 지금까지도 우리로 하여금 이런 시대를 살아가게 하는지는 우리 영역 밖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500여 형제자매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실 때 질문을 받습니다. 언제 이스라엘을 회복하여 주실까요? 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성부 하나님 권한에 속한다고 하시고는 구름을 타고 올라가십니다.
계시록의 제4-18장 사이의 말세의 대환난은 일곱 인(Sealing, 봉함), 일곱 나팔(trumpets),일곱 대접(bowls) 등의 3대(大) 7중(重) 재앙과 7년 대환난이라는 관점에서 점증적으로 심판의 강도가 올라가는 방향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나팔-대접 순으로 인(sealing)보다는 나팔(trumpet)이 나팔보다는 대접(bowl) 심판의 강도가 강합니다. 인(sealing)은 비밀을, 나팔(trumpet)은 비상벨(bell)로, 대접(bowl)은 쏟아놓을 심판으로, 묵시로서 보여주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운동선수들의 체력을 증강하는 방법으로 첫 주는 100m 10바퀴,둘째 주는 300m 10바퀴, 마지막 주에는 600m 10바퀴를 단계적으로 책정하여 줌으로써 점진적으로 강도를 올려 적응하라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은 전반적으로 제4-18장 전체가 ‘3大 7重 재앙’이고 그 사이인 제12-14장에 ‘7년 대환난’ 기간 중의 교회의 고난과 보존을 보여주는 기사(이적과 기적)들이 중간 계시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고, 18장 역시 바벨론 멸망과 관계된 중간 계시입니다. 바벨론은 타락한 그 시대를 상징하는 비유적 대표적 단어(용어)입니다. 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타락상으로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사상과 이념, 거짓과 모략, 자유를 표방한 오용, 악용, 물질만능주의 등을 함축한 단어가 ‘바벨론’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22장의 계시록 중 6장 이하 18장에 이르는 3대 7중 재앙은 계시록의 본론 부에 해당하면서도 가장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부분입니다. 계시록은 난해하고 해석이 다를 수 있으므로 많은 분들이 잘 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여 보면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은 아주 명료하게 기록한 반면 계시록은 묵시로 은근히 표시 나지 않게 왜 드러내는지를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이 불법이 난무하는 우리시대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내용이 시작되는 본 절에서 요한은 ‘내가 보매’라는 어구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환상 경험이 앞장에 이어 계속 지속됨과 동시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다른 환상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잘 드러냅니다.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그가 본 환상에 따르면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셨다고 증언합니다. ‘떼시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봉인된 책의 첫 번째 인(seal)을 떼셨다는 묵시적 증언입니다. 첫번째 비밀을 풀어주셨다는 말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오른손 위에 있던 책의 일곱 봉인을 떼실 권한이 그에게만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그 책을 펴기에 합당한 존재로 인정되셨던 것이란 말입니다. 예수님만이 인류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권한을 부여 받은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으로 계시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곱 인 가운데 처음 네 개의 인을 뗄 때는 동일하게 네 생물의 ‘오라’는 외침이 있었던 것으로 원인을 강조합니다(1.3,5,7절), 이는 일곱 인은 ‘처음 네 개의 인’과 ‘다음 세 개의 인’으로 구별하게 합니다. 처음 네 개에 해당하는 인의 개봉이 네 생물에 의해 이것이 상징하고 있는 바와 연관성을 지닙니다. 네 생물은 계4:6에서 보듯이 모든 피조물 전체를 상징합니다.
네 생물에 의해 도입되고 있는 네 개의 인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이 피조 세계 전체와 관련되어 집행된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뿐만 아니라 심판까지 포함하며, 심판의 대상에는 피조물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말입니다. ‘와서 보라’라는 그 말 하는 주체가 네 생물 중에 하나이고, 그 객체가 요한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모든 피조물들이 와서 보고 들어라 는 함의가 되는 것입니다. 보고 들음으로써 기죽지 말고 힘을 내라는 것입니다. 낙담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네 생물 가운데 우레와 같은 ‘오라’는 소리에 등장한 것은 흰 말입니다. 네 생물에 의해 도입되고 있는 네 가지 인의 환상에는 네 마리의 말이 등장합니다. 이는 선지자 스가랴 1:8, 6:2,3 관련된 말씀입니다
1:8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6;2.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6:3.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스가랴의 환상 가운데 네 말의 환상은 열방(인근 불신 국가)에 대한 심판을 상징합니다. 반면 네 병거의 환상은 바벨론(악)의 멸망을 상징합니다. 이와 같이 스가랴의 환상에 등장하는 네 마리의 말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듯이, 본장에 언급된 네 마리의 말 역시 죄악과 반역으로 점철된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를 상징합니다. 흰색은 승리와 관련된 상징입니다. (계6:11, 2:17, 3:4,5,18, 19:11) 면류관을 받은 것은 개선 용사임을 암시합니다. 면류관을 받았다는 사실은 승리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임을 말해 줍니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흰 말을 탄 이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함은 흰 말을 탄 이가 계속하여 승전하고 있는 정복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해 줍니다. 여기에서 흰 말은 좋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그 반대 이미지입니다.
흰 말 탄 이가 정복자의 이미지를 나타낸다면 요한은 이와 같은 이미지를 어디서 빌어 온 것이며 그것을 통해 의도하고 있는 바는 무엇일까요? 활을 가지고 흰 말을 탄 자가 1세기 당시 유일하게 말을 타며 활을 사용했던 파르티아인들(Parthians)을 지칭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당시 로마 제국의 동부 전선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자신의 측근 근위대의 술책에 의해 결국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네로가 사실은 죽은 것이 아니라 파르티아(Parthia)에 피신해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습니다.
로마 전역을 더욱 공포에 몰아넣었던 것은 그가 강력한 파르티아 군대를 이끌고 곧 로마를 침공하리라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여기서 이와 같은 당시 소문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 셈이됩니다. 그럴 경우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표현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호전적인 정복자 파르티아 군대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요한이 당시의 소문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로마 제국의 직접적 멸망을 예언하기 위함이 아니라 죄범한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심각성’을 고취시키고 그 ‘위용’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둘째 생물이 1절과 같이 말 탄 이를 불러내는 장면으로 둘째 인은 두 번째 그 봉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오른손 위에 놓여 있던 인봉된 바로 그 책을 의미합니다. 둘째 생물로 그 두 번째 생물’로 계4:6에 언급된 바로 그 네 생물 중 하나를 지칭합니다. 계 4:7에 언급된 네 생물의 순서를 감안할 때 첫 번째 언급된 생물이 사자의 형상을 한 생물이었다면 본문에 언급된 두 번째 생물은 송아지의 형상을 한 생물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일곱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인을 떼시자 붉은 말이 등장합니다. 이는 흰 말과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흰 말과 그를 탄 이의 환상은 사라지고 붉은 말과 그를 탄 자의 환상이 시작됩니다. 그가 탄 말의 불같은 색깔은 피와 피홀림을 의미합니다. 붉은 색은 ‘용’ 을 지칭하기 위해 두 차례 더 언급됩니다(계17:3, 18:12,16).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는 표현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파괴적인 전쟁을 상징합니다.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일곱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 번째 인을 떼실 때 요한이 들은 것과 본 것을 묘사합니다.그가 들은 것은 첫째 인과 둘째 인을 뗄 때와 마찬 가지로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세째 생물은 사람 얼굴 같은 형상을 한 생물일 것입니다. 요한이 본 것은 검은 말과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진 모습인데, 검은 말과 그 말을 탄 자는 가장 보편적으로 ‘기근’을 상징합니다. ‘기근’과 관련된 상징이란 점은 6절 곧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라는 다음 절의 언급을 감안할 경우 명백해 집니다.
검은 색이 기근과 관계된다는 사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천칭(balance)과 같이 막대에 한 쌍의 접시를 매달고 무게를 재는 기구를 나타내는 ‘저울’ 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분배를 하기 위한 도구인 저울은 먹을 음식이 귀하다는 측면에서 ‘기근’을 상징합니다. 625 동란 세대인 우리가 자랄 때, 밥 한 알도 흘리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을 받듯이 말입니다.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요한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또 듣습니다. 요한은 소리의 출처를 불분명하게 묘사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모호함이나 신비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계 4:6에서 밝힌 대로 네 생물이 온 우주 삼라만상을 포괄하는 모든 피조물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듯하는 음성 6절 하반절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 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는 소리를 ‘기근의 공포에 대한 모든 피조물의 탄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데나리온’은 요한 당시 로마의 화폐로‘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임금에 해당합니다(마20:2). 통상 밀은 보리보다 세 배나 더 비쌌습니다. 그것은 밀이 보리보다 더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보리는 기근 시에 다른 곡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쌌기 때문에 심한 기근에는 보리가 거의 주식처럼 이용됩니다. 곡식이 이처럼 비싼 가격으로 팔리게 되는 것은 곧 극심한 기근 상태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는 감람유와 포도주는 밀과 보리와 같이 요한 당시 사람들의 생활 필수품입니다. 그런데 당시 기근으로 밀이나 보리가 품귀 현상을 나타낼 때 사람들은 종종 감람나무와 포도나무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밀이나 보리를 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한 음성 이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명령합니다. 감람유와 포도주가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명령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감람유와 포도주가 당시 서민들에게 생필품이라는 말입니다. A.D. 92년에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곡식을 기경하는 것을 선호해 포도원의 절반을 철거하도록 명령하는 칙령을 반포합니다.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여기서 인을 떼시는 주체는 십가가에서 죽으심으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합니다. 넷째 생물은 계 4:7의 묘사를 감안하건대 독수리의 형상을 한 생물로 추정합니다. 우주 삼라만상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상징하는 네 생물 가운데 마지막 넷째 생물이 ‘오라’는 음성으로 청황색 말과 그 탄 자를 불러냄으로써 피조세계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계속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일곱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넷째 인을 떼실 때 요한이 본 것은 청황색 말과 그 말을 탄 자입니다. 여기서 청황색 말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죽음’과 ‘공포’의 이미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앞에서 언급된 각각의 세 마리의 말을 탄 자에 대한 언급과 달리 본문에서는 청황색 말을 탄 자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에 따르면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언급된 사망은 그 자체를 의인화한 것입니다.
시 49:14에서도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 라’고 사망을 의인화시켜 묘사합니다. 사망은 ‘사망한 자들이 모인 장소’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음부(하데스)’와 밀접한 관련을 지닙니다. 의인화되어 표현되는데,이 역시 이사야 14:9에서 동일한 용법으로 사용됩니다. 거기서는 ‘아래의 음부가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옴(coming)을 영접하되’라고 언급합니다.
흰 말을 탄 자가 면류관을 ‘받은 것과 붉은 말을 탄 자가 ‘허락을 받은 것과 병행합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주권하에 권세를 하사받은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받은 권세 역시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제한된 심판 관념’은 ‘땅 사분 일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된 것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땅 사분 일’은 면적의 의미가 아니라 질적인 정도의 의미로 말세의 대재앙이 시작되었으나. 전면적인 심판이 행하여지지 않고 제한적인 심판만 행하여짐을 나타냅니다. ‘큰 칼을 받았으나 직접적 도륙을 제한당한 붉은 말을 탄자’ (4절)나 ‘감람유와 포도주를 해치 말라고 명령받은 검은 말을 탄 자’ (6절)는 모두 동일하게 제한된 권세를 지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제한된 심판 관념’은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이 죄인들의 멸망이 아니라 회개에 있음을 암시적으로 나타냅니다.
검과 짐승에 해당하는 의미는 땅 사분 의 일을 상기된 네 가지 수단과 방법으로써 도륙할 것임을 잘 드러냅니다. 사망과 음부가 취한 네 가지 살육 방식은 겔 14:21과 관련됩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역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여기서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을 끌어와 사용함으로써 이 심판이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드러냅니다.
Part 2,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첫째 인에서 넷째 인까지 떼어지고 그에 따른 재앙이 각각 선포된 데 이어, 하나님의 오른손 위에 놓여 있는 봉인된 책의 일곱 인을 떼시고 그 책을 펼치시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다섯 번째 인이 떼어집니다. 그리고 네 생물 각각의 ‘오라’는 소리에 의해 도입되며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말 탄 자들이 등장하여 재앙을 선포하였던 첫 번째부터 네 번째 인 환상과 달리 다섯 번째 인이 떼어진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는 새로운 환상이 나타납니다.
요한은 자신에게 적용한 바 있는 동일한 문구를 순교자들에게 적용 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만 고백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분의 삶과 죽음을 고스란히 체험하고 본받는 자들 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한은 환상 가운데 그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 있는 것을 본다. 요한이 순교자들의 영혼을 보았다는 것은 그가 성령에 감동된 상태에서 영혼의 실존을 분명하게 인식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 때문에 무참히 살해당한 이들이 하늘의 제단 밑에서 이제 더 이상 대적에 의해 위협받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안전을 누 리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였으나 결국 그 죽음은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 됩니다.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들로, 이들의 배후 세력이 용, 사단, 그리 고 짐승으로 점차적으로 드러납니다. 이들은 요한의 시대를 감안하건대 음녀 바벨론으로 상징되는 로마입니다. 명백히 하나님의 심판은 사단과 그 추종자들을 향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거하는 자들에 대한 순교자들의 심판 요청은 로마의 파멸을 요청하는 것과 같다. 순교자들은 개인적 원한에 대한 보복의 차원에서 심판을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가 승리하고 그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해 줄 것과 울러 하나님의 정의를 촉구한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순교자들에게 횐 두루마기를 주십니다. 횐 옷’은 순교자들의 승리를 뜻합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의 능력이 어린양의 죽음을 통해 드러나듯 순교자들의 승리 역시 그들의 죽음을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순교자들에게 승리의 흰 옷을 입혀주실뿐 아니라 잠시 동안 쉬라고 명령 하십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는 언급 속에서 발견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
하나님의 공의로운 종말론적인 심판을 호소하는 순교자들이 기다려야만 하는 인내의 기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은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입니다. 순교자의 수가 다 차기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 때문에 죽음에 처하게 될 모든 이들 또 다른 순교자들’을 총칭하는 이중적 표현입니다. 순교자들 이후 정확히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할지 그 정확한 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무익한 일입니다. 오히려 더욱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정확히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죽느냐가 아니라 영원히 준동할 것으로 보이는 악의 세력도 끝이 있으며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종말이 도래할 때 그 세력이 멸망한다 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 눈으로만, 우리 생각으로만 보거나 판단하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무리 탁월하고, 지혜롭고, 넘사벽의 수준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만유 위에서 만유를 통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임마누엘하신 분이 예수님임을 다시 우리 심령에 조각해야 합니다. 사람이 지혜롭다고 아무리 책략이나 술수를 부려도, 언젠가는 그 비밀이나 기밀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상, 학문, 철학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최고 정점으로 두고 하나님의 우릴 향한 사랑을 최 정상에 두고 모든 것은 바라보고 매진해야 합니다. 특히 시련이나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묵상하고, 질문하면서 말씀 위에서 그 방향을 조정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생각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 손길을 바라보므로 세상 풍파를 능히 감당하여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바벨론 같이 타락한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이 시대를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살아감으로써 신랑으로 오실 주님을 준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보이는 것 이외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엄청난 역사를 바라보고 힘을 얻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