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1-6]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영업을 오래 한 분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좋은 일은 즉시 보고를 하는데, 반대로 좋지 못한 일은 물어 볼 때까지 절대로 보고하지 않는 경향이 아주 강합니다. 왜 그럴까요? 본능적으로 욕을 먹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이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하여지자 어린 여인 아비삭을 아내로 붙여줍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다윗의 위대함과는 전혀 맞지 않는 궁합입니다.

그럼 왜 성경은 이런 내용을 기록할까요? 라고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불신자들도 다윗을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다윗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명암이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흠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시황은 자신이 만리장성을 쌓으면 영구할 줄 알았을 겁니다. 불로초를 찾으라고 많은 사람을 사방으로 보냅니다. 그 당시 불로초를 찾아 우리나라에도 이들이 들어옵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150편중 거의 절반인 73편을 남긴 하나님께서 쓰신 종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영감은 받은 시인은 무엇을 말하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Part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 왕은 여호와는 그 자신의 목자라고 고백합니다. 목자는 양을 치는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양은 시력이 약하여 멀리를 잘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없으면 양은 자신이 풀을 뜯어 먹는 데에만 집중하므로 구덩이에 빠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꼴을 먹는다고 이리가 와도 모르고 먹는 것에만 집중하므로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풀만 찾아 좆아 다니다가 맹수에게 잡혀 먹기도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므로 나는 아무 걱정이 없다 라는 함의가 들어 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 든든한 목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실라와 함께 2차전도 여행 중 복음은 전하다 고발당해 감옥에 투옥됩니다. 감옥에 갇혀 차꼬에 묶여 영어의 신세가 됩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 외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할 때, 옥문이 열리고 지진이 일어나고 그들을 잡아 옥죄던 차꼬가 풀립니다. 우리는 이런 정보를 접할 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일축하기 쉽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한 일이라고, 나와는 무관한 일로 치부하기 쉽습니다.

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그리고 나의 목자이므로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고 하겠습니까?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체험한 증인이기에 그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는 엄마가 전부이듯이 말입니다. 엄마가 모든 것을 채워 주기에 말입니다. 우리 삶도 이런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만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닥친 현실만을 응시할 때, 우리는 답답하고 평강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환난을, 광풍을, 참상을 주시나이까? 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각을 달리 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23편 직전의 시편 22편을 보면 엄청난 고난 중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23편 앞에 이런 22편을 두었을까를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여러분, 시편 23편을 묵상할 때, 시편 22편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는지요? 왜 시편을 편집할 때 이런 배치를 하였을까요?

지금 우리나라가 처함 현실만을 바라볼 때 심령에 평강이 사라집니다. 어떻게 건국한 우리 나라 조국 대한민국인데 나라 기강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이런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예민하게 인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가 옳다, 옳지 않다 문제가 아닙니다. 다가오는 현실은 우리에게 곧 닥칠 현실입니다. 현실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당면한 현실은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복음을 전하다 억울하게 투옥된 바울처럼, 실라처럼, 억울하게 고난을 받다가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된 다윗처럼 여호와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지, 전능하심을 신뢰하므로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하므로 울부짖음으로써 하나님께 역사하시도록 배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울부짖는 자들을 찾으시지 않겠습니까?

Part 2,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렇게 다윗이 고백을 하니 하나님이 다윗에게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1. 하나님이 나를 푸른 목장에 눕히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2. 하나님이 내 영혼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3. 내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골짜기를 지날 때라도 악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4. 주께서 내 적들 앞에서 내게 먹을 상을 베푸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를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의 종들을 먹고 마실만한 초장으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온갖 만행을 자행한 사울 왕도 하나님께서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 예우합니다. 이런 숱한 죽음 고비를 넘기게 하신 하나님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회복시켜주신다고 또한 고백합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먼저 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다윗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윗 자신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깁니다. 이를 죽음의 그림자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마치 사형수가 집행하는 날짜가 그에게 다가올 때처럼 말입니다. 다윗 자신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는데, 의지할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반역한 아들 압살롬으로 인해 권력도 없는데, 손에 잡히는 것도, 아무 막대기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전능하신 막대기로, 지팡이로 그를 지켜 주신다고 고백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할 때, 백성들은 늘 불평하고 불만을 호소하고 반역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옳은 길, 의의 길로 인도하는데 자식은 이에 반발하여 우상을 숭상하는 이방인들과 어울리고 인내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지팡이가 하나님의 권능을 말합니다. 다윗은 이런 지팡이가 자신을 수호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2008년 전후 우리 가정이 경제적으로 파산이 되어 더 떨어질 나락도 없을 때 사무실에서 1년 정도를 기숙하면서 인근 교회에 새벅기도를 나갑니다. 새벽 4시 40분 기상하여 5시에 기도를 하면 기도 반, 눈물 반이 됩니다. 이런 눈물과 울부짖음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하는 지팡이의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투옥되어 뭐라고 울부짖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 선교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 아니십니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모세의 지팡이가 다윗의 지팡이로, 사도 바울이나 현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울부짖는 이런 기도가 그 능력의 지팡이가 될 것입니다. 기도로 울부짖을 때, 우리 자신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 이름을 걸고 기도함으로써 기도가 권능의 지팡이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계속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 앞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친다고 고백합니다. 다윗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원수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다윗에게 이후 그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을 통해 먹을 것을 공급받게 하십니다. 피할 곳이 없어 성막으로 들어가자 굶주린 그에게 제사장만이 먹을 수 진설병을 먹게도 하십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피해, 또 반역한 아들 압살롬을 피해, 정적들을 피해 적국 블레셋으로 도주할 때에게 기름을 부어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온갖 짓을 다 동원에도 다윗이 비록 살해 위협을 피해 도망자 신세로 쫓겨 다니지만, 선왕 사울왕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죽이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손으로부터 도망을 다니는 중에도 그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순종의 자세로 인해, 다윗의 주변에 있는 이들로부터 다윗이야말로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 인정을 받게 합니다. 그를 왕으로 세워주신 것을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신앙은 고백으로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말씀을 우선합니다. 비록 그가 많은 실수를 하지만 하나님 앞에 곧 회개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위대한 만큼 흠도 아주 많은 믿음의 선진입니다. 이런 다윗은 자신의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 인자하심, 사랑이 반드시 그와 함께 하면서 그를 따른다고, 그래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저택에 영원히 산다고 고백합니다.

마1:1에 저자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역사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압축합니다. 그만큼 다윗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종입니다.

이런 다윗이 23편 앞 편인 시편 22편에서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이렇게 호소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수난 받는 모습과 거의 흡사합니다. 관련 구절을 발췌하여 다시 보겠습니다.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다윗은 어떻게 이런 고백을 주님 임마누엘 하시기 1,000년 전에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 하나님과 교통할 때, 이런 선지자적 혜안을 주시는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엘리사가 적국인 아람 왕이 할 일을 미리 아는 것처럼, 뿐만 아니라 엘리사가 일어날 일들은 미리 알고 예언하면 그대로 실현되는 것을 지난 주 말씀에서 우리는 목도하게 됩니다. 북 이스라엘은 적국인 아람 침공으로부터 사마리아 성이 봉쇄되어 백성들이 굶어 죽어갑니다. 그래서 비둘기 똥도 돈을 주어 사먹고, 여인들이 먹을 것이 없으므로 자신의 자식을 잡아먹을 정도로 참상이 벌어집니다. 다 이런 것들이 북 이스라엘 아합 왕과, 그 자식 왕들이 바알과 아세라 목상 같은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로 비유하자면 하나님 백성이 이상한 종교나 이단에 빠지는 것, 수용할 수 없는 비 정상적인 가치관에 빠지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이 때 엘리사가 이렇게 굶은 죽어가는 날 바로 그 다음 날 밀가루와 보리를 반 공짜 가격으로 매매할 것이라고 하자 왕을 호위하는 한 장관이 하늘이 무너져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반박합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그 장관에게 반복하여 경고합니다. 너는 반드시 그 일을 목도하게 될 것이지만, 너는 그것을 먹지는 못하고 밟혀 죽을 것이라고 반복하여 경고합니다. 그러자 그 장관은 다시 하늘이 무너져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변합니다. 관련 왕하 7:19-20입니다.

  1. 그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보시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다 한들 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었습니다.

20. 그런데 이 일이 정말 그 장관에게 일어났습니다. 그가 성문 길에서 사람들에게 밟혀 죽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지도 않았는데, 그런 부정적인 말을 선지자 엘리사 앞에서 한 그 장관은 백성들 발에 밟혀 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굶주린 백성들이 반 공짜인 보리와 밀가루를 점하려고, 굶주린 수많은 백성들이 수없이 성 안으로 쇄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이 때 그 장관 혼자서 이것이 아닌데 하고 백성들을 막으려고 성문 입구에서 엉거주춤하였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밀려오는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그 장관 말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 역사를 부정하는 시각에서는 맞아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상식대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님을 말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우리들은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다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시각으로만 보면 하나님 역사하심을 볼 수 없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미리 일을 아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엘리사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의 스승인 엘리야에게 수많은 능력을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셨습니다. 이런 엘리야보다 보다 엘리사는 더 많은 갑절의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엘리야는 혼자서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다 진멸하는 압승을 거둡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날 악한 아합 왕의 아내 악녀 이세벨이 반드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겁박하자, 엘리야는 겁을 먹고 광야로 도망을 갑니다. 도망을 간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고 다독거려 주시지만, 엘리사 눈에는 이것이 마음에 걸린 것입니다. 물론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엘리사가 스승인 엘리야보다 갑절의 능력을 원했는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인 욕심을 많이 부려야 합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인 동시에 흠과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잘못을 알면 하나님께 참회합니다. 늘 눈물이 침상을 적실 정도로 회개한 다윗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입니다. 그가 나이 들어 기력이 없어지자 아비삭을 아내로 붙여 줍니다, 아마 다윗 왕의 신하들이 다윗 왕이 회복하기를 바라는 심령에서 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편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들인 우리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고백, 찬양, 비통, 영광과 기도입니다. 단, 성령의 감동함을 받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신 은혜, 감사, 영광, 감동, 고통, 비통함 등을 찬양하거나 읍소하거나, 영광을 올려드리는 곡조입니다. 이런 고백이 충만한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일도, 아픔도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 우리 삶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 호흡입니다. 긍정적 기도는 그 삶을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므로 큰 변화를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질책에 목적이 있지는 않으십니다. 우리가 변화되어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받으면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적극 교통해야 합니다. 이것이 시편이 주는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릴 질책하시는데 목적이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구할 것은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다 알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욕심만은 하나님께 달라고 간구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시대가 심히 악합니다. 우리 조국 선진국 대한민국이 어떻게 이렇게 망가지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어려움에도 부정적 시각보다는 만사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진리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기도로 간절히 울부짖음으로써 평강이 우릴 지배하는 한 주간 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