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EXT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열왕기하 6:31-7:2]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열왕기하 6:31-7:2

  1.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32. 그 때에 엘리사가 그의 집에 앉아 있고 장로들이 그와 함께 앉아 있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33. 무리와 말을 할 때에 그 사자가 그에게 이르니라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1.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2.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어린 시절 제가 자란 동네는 씨족 사회로 장유유서, 인륜이라는 질서가 그 공동체를 유지하는 한 축이었습니다. 한번은 아들이 아버지를 학대한 일이 일어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물리적으로 폭행한 것입니다. 들어보니 그렇게 큰 폭행도 아니지만, 아들이 어떻게 나이든 연로한 아버지에게 그렇게 불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내 어르신들이 동회를 소집하여 폭행한 그 아들을 포승 줄로 묶고는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매를 때리는 것입니다. 일명 동네매라는 징벌입니다, 요즘 이렇게 동네매를 때리면 집단 폭행으로 입건, 형사 처벌될 겁니다. 그 당시에는 동네매라는 것이 그 공동체를 유지하는 하나의 기준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시대를 살펴보면서 우리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준은 뭔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시대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Part 1, 문 안에 들이지 말라

이렇게 살벌한 때가 언제일까요? 왕하 6.28-30을 보겠습니다.

  1. 또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2.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3.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그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얼마나 먹을 것이 없으면 여인들이 자기 자녀를 잡아 먹겠습니까? 인근 국가인 아람의 장기간 침공으로 북 이스라엘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진 때입니다. 북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 성이 아람군대에 포위되어 더 이상 물자를 성 밖으로부터 공급을 받지 못한 시간이 오래 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이는 문자 그대로 참상입니다.

이때 마침 북 이스라엘 왕이 그 여인들의 옆을 지나치자 아낙들이 왕에게 읍소합니다. 왕이 아무런 힘이 없으므로 자기 옷을 찢어 굵은 베옷을 보여줍니다.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극도의 슬픔과 비통함을 드러내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여 왕이 대노하고 동시에 비통한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그럼 왜 북 이스라엘은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엘리사가 사역하는 당시 북 이스라엘 왕은 여호람 왕입니다.

여호람은 아합왕의 아들입니다. 아합왕은 북 이스라엘 19명의 왕중 7대 왕으로 가장 악독한 왕입니다. 그 아버지 오므리 왕도 악독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그 애비 오므리는 이방여인으로 시돈 출신인 이세벨을 며느리로 맞이합니다. 시돈은 상업 중심지로 물질이 풍부한 지역입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이스라엘 자손이 물질이 우선이 되는 타락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이 때부터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임을 부정하고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을 섬깁니다.

이때 북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보내어 주신 선지자가 엘리야 입니다. 엘리야는 끊임없이 아합 왕의 섬기는 우상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예언하게 하시므로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에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아합 왕에게 경고합니다. 아합 왕은 이런 경고를 날리는 엘리야를 죽이려고 발악합니다. 왜 그렇게 발악합니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당시 북 이스라엘은 초식이 자라지 못하므로 양떼도 다 죽고, 농사도 하나도 수확할 수 없게 됩니다. 당장 모두가 목이 말라 타 죽게 됩니다.

이런 예언을 하는 엘리야는 홀로 싸웁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 줍니까? 진리를 외치는 자는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대한민국 00000계와 일부 흡사하지 않습니까? 이런 현상은 우연이 아닙니다. 죄악이 만연하고 타락이 누적된 결과입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갈멜산에서 대결합니다. 1대 850 대결에서 엘리야는 단판승합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을 몰살시키자 하나님께서는 비를 내려 주십니다. 이런 엘리야를 뒤이은 선지자가 엘리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어둡고 타락한 시대에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어 북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때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방신을 섬기지 못하게 하시지 왜 그러실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후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징계와 용서와 인내와 사랑으로 자기 백성을 삼으시는 것입니다. 집 나간 탕자 비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오늘날도 탕자를 찾아 돌아오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람은 북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삼고자 자주 침공합니다. 이는 마치 중국이 고구려, 고려, 조선을 속국으로 삼고자 자주 침략한 것처럼 인근국가인 아람이 북 이스라엘을 침략합니다.

  1.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에서 왕은 여호람 왕을 말합니다. 북 이스라엘은 아람의 침공으로 늘 시달리다가 앗수르에 의해 BC722 멸망을 당합니다.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이는 극언 정도가 아니라 이성을 상실한 망언입니다. 그럼 왜 여호람 왕은 이런 엘리사에게 극한 저주를 할까요? 엘리사 네 이 놈아 아람 장군 나아만을 살려주고, 포로 잡은 아람 군대를 돌려주었기 때문이지 않나? 네가 살려준 아람군대가 다시 힘을 모아 우리를 침공한 것은 다 네 같은 반역자 때문 아니냐? 하고 저주하는 것입니다.

그럼 왜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살려주었을까요? 나아만 장군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나병환자입니다. 장군이 나병환자이니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래서 시종일관 나아만 장군은 낫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나아만의 고통을 그 여종이 듣고 나아만 장군 부인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 부인이 남편인 나아만 장군에게 알려줍니다. 뭐라고 말입니까? 당신이 적국인 북 이스라엘에 가서 엘리사 라는 선지자를 만나면 나을 수 있다고 전해 줍니다. 그 여종은 아람 군대가 북 이스라엘을 침공하어 잡아간 이스라엘의 어린 딸이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여 엘리사를 만나려고 북 이스라엘로 왔지만 엘리사는 나가서 장군은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나를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는가 하고 극노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엘리사는 이에 사람을 보내 나벙이 나으려고 하거든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그러면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합니다. 이에 나아만은 살기가 화가 나 돌아가면서 말합니다. “내 생각에는 엘리사 네가 직접 내게 나아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상처 위에 손을 흔들어 내 나병을 고칠 줄 알았다. 다메섹에 있는 아마나 강과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의 강물인 요단강보다 낫지 않느냐? 내가 거기서 씻고 깨끗해질 수 없었겠느냐?” 그러고는 화가 나서 돌아서 버립니다. 나아만의 말이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요단 강 말고도 우리 나라에도 좋은 강이 얼마든지 있다. 그기서 목욕하면 되지 뭘 기대하고 너한테 왔겠니? 네 놈이 뭘 좀 고친다고 거만을 피우는데 이럴 수가 있어? 이렇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의 종들이 그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나아만 장군님 만약 엘리사가 당신께 엄청난 일을 하라고 했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물며 그가 당신께 ‘몸을 씻어 깨끗하게 돼라’고 말하는데 못할 까닭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엘리사가 말한 대로 내려가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푹 담갔습니다. 그러자 그의 피부가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회복돼 깨끗해졌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선물을 주려고 하지만 엘리사는 하나도 전혀 받지 않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엘리사 당신께서 받지 않으시겠다니 당신의 종인 제가 명세합니다. 엘리사 당신의 종인 제가 여호와 외에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나 다른 제사를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명세합니다. 여호와께서 오직 이 한 가지 일에 있어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아람왕이 림몬의 신전에 들어가 숭배하고 내 팔에 기대면 나도 림몬의 신전에 절을 하는데 내가 림몬의 신전에서 절을 하더라도 여호와께서 이 일 때문에 벌하지 마시고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엘리사가 ‘평안히 가시오’라고 인사합니다.

이후 엘리사는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침공한 아람 군대를 불병거로 한방에 격퇴하고 돌려 보내지만 아람 군대를 죽이지 않습니다. 아람이 변화되어 북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사랑으로 아람이 변화 받기를 바란 것입니다. 이런 엘리사에게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게 하시고, 아픈 자는 낫게 하시고, 예수님 오셔서 시대에 행하던 오병이어 유사한 능력으로 많은 이들을 먹이게 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언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엘리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북 이스라엘이 침공을 당하게 하는 것은 북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때문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에 바알신을 섬깁니다.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절하고 섬깁니다. 왜 이들은 바알신을 섬길까요? 비를 가져다 주는 풍요의 신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세라 목상은 왜 섬길까요? 사람처럼 목상은 바로 인근에 두고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전은 예루살렘 한 곳에만 있습니다. 멀리서 예루살렘까지 가려고 하니 불편합니다. 일년에 3대명절 세 번은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 드려야 하는데 멀어서 귀찮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우상이 그 자지를 대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풍요라는 것에, 편리라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물론 편리, 풍요는 우리가 바라는 것이 정당합니다. 하나님이 그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귀찮지만, 멀고 힘이 들지만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년에 세번은 절기를 드리도록 예루살렘 성전으로 규제하셨을까요? 이런 규범이 없으면 사사기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제 소견에 옮은대로 자행자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사기 이전에는 이런 것을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1. 그 때에 엘리사가 그의 집에 앉아 있고 장로들이 그와 함께 앉아 있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살인한 자의 아들’은 아합 왕의 아들인 여호람 왕을 말합니다. 엘리사는 여호람 왕이 자신의 목을 베려고 사람을 보낸 것을 미리 압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리 장로들에게 말합니다. 장로는 당시 나이든 남자로 여론을 형성하는 주류 층입니다. 문을 닫고 대비하라고 하자마자 왕이 모낸 자들이 들이 닥칩니다. 그의 주인은 역시 여호람 왕을 말합니다. 여호람 왕은 엘리사를 죽이라고 했지만, 그를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가 보낸 병사들을 뒤따라 오면서 변명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변명이란 “엘리사를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악한 왕이 엘리사 선지자를 죽이려고 하지만 이를 사전에 방어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1. 무리와 말을 할 때에 그 사자가 그에게 이르니라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선지자 엘리사가 아직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여호람 왕이 보낸 사람들이 엘리사에게로 내려옵니다. 여호람 왕의 말은 “이 재앙이 분명히 여호와께로부터 왔으므로 왜 내가 여호와를 더 기다려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북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로 인해 아람의 침공을 받게 되는데 여호람 왕은 깨닫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귀를 닫기 때문입니다. 분수를 모르고 극노한 여호람 왕은 엘리사 반드시 죽인다고 막말을 쏟아 낸 것입니다.

Part 2,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1.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왕하 6: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하니

이는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 포위되어 굶어 죽어가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간혹 “먹고 죽고 싶어도 없어서 목 먹는다”라는 속어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비둘기 똥은 상대적으로 덜 매스꺼운 모양입니다. 얼마나 먹을 것이 없으면 똥을 식량으로 매매할 정도가 되었을까요? 앗수르 왕 산헤립 부하 랍사게가 남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 성을 포위한 후 히스기야 왕에게 퍼붓는 협박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마실 것이 없어서 너희가 너희 오줌을 마시고 하는 장면 말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이 당하는 참상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하루 밤새 이런 기적이 일어 납니다. 기적이란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게 됩니다. 거의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말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 전에는 자식들을 잡아먹는 사마리아 성 안에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2.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란 여호람 왕을 시중드는 전차장관을 말합니다. 당시 전차는 달리면서 요즘처럼 길이 고르지 못하므로 좌우 상하로 많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왕의 흔들림을 잡아주는 전차 장관이 필수인 시대입니다. 그 당시 길이란 것이 얼마나 울퉁불퉁하겠습니까? 현 우리 시대로 비교하면 수상이나 대통령이 순방하면, 그 국가 정상의 신변을 지키는 경호실장 같은 자리에 비유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왕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자리가 전차장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장관이 왕의 행실을 닮아 선지자 엘리사의 예언을 하늘이 무너져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합니다. 그 왕에 그 신하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일도 하루 밤새에 일어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내일 이맘때쯤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2스아가 1세겔에, 고운 밀가루 1스아가 1세겔에 팔릴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보시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다 한들 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이 정말 그 장관에게 일어났습니다. 그가 성문 길에서 사람들에게 밟혀 죽었습니다. 먹을 것이 넘쳐나자, 밀려오는 백성들에게 그 장관은 밟혀 죽습니다.

하루 전날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신의 자식을 잡아먹고, 똥을 먹고 하는 입장에서 하루 지나 반 공짜로 사서 먹을 수 있는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런 예언을 믿지 않고 하나님과 그 선지자를 거역한 자는 백성들에게 밟혀 죽는 참상을 당하게 합니다. 참선지자는 하나님 계시만을 미리 말씀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어떻게 이런 일어 나는지 아주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루 밤새에 말입니다. 하나님이시므로 그렇게 역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문 앞에 나병환자들이 4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일반 백성들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면 이들은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굶어 죽을 바에야 하고 나병환자들은 아람 군대 내부로 밤에 들어갑니다. 먹을 것을 달라고 할 목적으로 용감하게 진입한 것입니다. 굶어 죽으나, 구걸하다 죽어나, 어차피 죽을 몸 아닌가 하고 아람군대 진영으로 진입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발소리를 아람 군대로 하여금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고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혼비백산한 아람군대들은 수많은 양식과 병기를 두고 요단을 건너 아람으로 황급히 도망하게 만듭니다.

하나님 역사는 믿음으로 보아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을 체험한 선지자입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미래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아람이나 앗수르는 야만족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민족들입니다. 거슬려 올라가면 전부 노아의 후손으로 다 한민족에서 나온 것입니다. 구별하는 기준은 여호와 하나님 신앙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우리들 모두 동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지체인지 아닌지가 기준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키는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어릴 때 한 부락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준이 동네매란 것이라면,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 백성이라는 믿음이,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바로 서 있는 자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국회에서 대법관 8명을 청문회에 소환 했습니다. 이는 헌정 사상 유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 나라 자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은 누구인지? 우리는 하나님 백성인데 이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은 어떤 것들인지? 우리 공동체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세력은 어떤 것들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정체성을 위협하는 죄악은? 불신은? 없는지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를 위협하는 불손한 세력은 어떤 것인지 분별하는 분별력은 어떤 것인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백성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하지 않을 때 답답함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그럼에도 더욱 하나님께 우리 나라 국정에 간섭하시도록, 우리 삶에 개입하시도록, 우리 간구에 응답하시도록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시간을 정하여 간구하므로 성령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