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11-18...권리를 포기함으로 얻는 영광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농부가 씨를 뿌리면 열매를 거두고, 목자가 양을 치면 젖을 먹고, 군인이 나라를 위해 싸우면 급료를 받습니다. 복음 사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 사역자가 복음 전하는 일로 생활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들이 바친 십일조로 레위인들이 생활하면서 성전에서 섬기게 하셨고, 레위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로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이 생활하며 제단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성전과 제사를 위해 헌신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 역시 고린도교회에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개척했고,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사역했기에 고린도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은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복음에 장애가 있을까 염려하여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기꺼이 포기했고 자비량으로 사역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의 생계를 교회가 배려하고 책임져야 함을 말합니다. 이는 목회자만이 아니라 성도들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목회자가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사역에 전념할 때, 그를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 사역자들과 함께 협력함으로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복음 사역자를 공동체가 돌보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말씀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존중하고, 그의 생계를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 사역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신 공동체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행위를 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선택이든 복음이 막히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면서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낮에는 천막을 만들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밤에는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바쁜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이 복음 전하는 동기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돈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비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이 조금이라도 오해받지 않도록 스스로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진짜 신앙의 성숙은 “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내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섬기셨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속에서 “내가 이 정도는 받아야 해”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 내가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 사역이 지속적으로 성취되도록 책임 있게 세워져야 하고, 성도는 그 일을 남의 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성도가 각 지체가 되어 마디가 서로 연결되어 지어져 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복음 전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사명이었습니다. 바울에게 복음전하는 일은 자랑이 아니라 부득불 해야만 하는 일, 즉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자랑은 ‘값없이 복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 전하는 사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요, 자신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에 불과하다고 인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기쁨은 “값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기쁨으로 값없이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더 큰 상급인 하나님 나라를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복음을 위한 가장 큰 상급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땅에서 받은 상급이 적을수록 하나님 나라에서 받은 상급과 칭찬은 더욱 클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도 바울처럼 복음 전도자로 세워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셔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누구보다 자유와 권리를 누릴수 있었지만, 바울은 그것을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주안에서 얻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이미 상을 받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계산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로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바울은 권리가 없어서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내려놓은 것입니다. 그런 바울을 하나님은 마음껏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복음의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같이 겸손히 헌신하는 사람을 통해 그분의 일을 이루십니다.
복음은 단지 전해야 할 메시지가 아닙니다. 복음이 삶이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뿐 아니라 모든 성도는 복음으로 먹고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아무리 화려하고 매력적이어도, 성도의 생존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담긴 복음이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울처럼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복음이 삶이 되는 사람, 내 권리보다 복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내 유익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사람, 값없이 은혜를 받았으니 값없이 사랑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진정한 영광은 십자가에 있고, 내 것을 포기하는데 있습니다.
*복음이 막히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인가요? 내 삶에서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상 주실 만한 일은 무엇일까요? 나는 복음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공동체를 책임있게 섬기고 있나요? 나는 주님이 세우신 공급과 섬김의 질서를 존중하며 감사로 참여하나요?
오늘도 샬롬 ~~
11. If we have sown spiritual seed among you, is it too much if we reap a material harvest from you?
12. If others have this right of support from you, shouldnʼt we have it all the more? But we did not use this right. On the contrary, we put up with anything rather than hinder the gospel of Christ.
13. Donʼt you know that those who serve in the temple get their food from the temple, and that those who serve at the altar share in what is offered on the altar?
14. In the same way, the Lord has commanded that those who preach the gospel should receive their living from the gospel.
15. But I have not used any of these rights. And I am not writing this in the hope that you will do such things for me, for I would rather die than allow anyone to deprive me of this boast.
16. For when I preach the gospel, I cannot boast, since I am compelled to preach. Woe to me if I do not preach the gospel!
17. If I preach voluntarily, I have a reward; if not voluntarily, I am simply discharging the trust committed to me.
18. What then is my reward? Just this: that in preaching the gospel I may offer it free of charge, and so not make full use of my rights as a preacher of the gos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