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WORD

익숙함의 함정을 넘어 부활의 확신으로

익숙함의 함정을 넘어 부활의 확신으로
본문: 마태복음 13:53~58
2026년 2월 18일(수)

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53 When Jesus had finished these parables, he moved on from there.
54 Coming to his hometown, he began teaching the people in their synagogue, and they were amazed. “Where did this man get this wisdom and these miraculous powers?” they asked.
55 “Isnʼt this the carpenterʼs son? Isnʼt his motherʼs name Mary, and arenʼt his brothers James, Joseph, Simon and Judas?
56 Arenʼt all his sisters with us? Where then did this man get all these things?”
57 And they took offense at him. But Jesus said to them, “A prophet is not without honor except in his own town and in his own home.”
58 And he did not do many miracles there because of their lack of faith.

오늘 본문은 천국의 신비로운 비유들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으로 가셨을 때 겪으신 충격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장 잘 안다고 자부했던 사람들이 가장 신랄하게 주님을 배척한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1."가장 잘 안다"는 착각이 진리를 가립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다 안다"는 생각 때문에 정작 중요한 진실을 놓치곤 합니다. 만연화 되어 있는 공작과 부정의 문제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대중은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나(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않나?” 이런 익숙한 편견이나 무지에 갇혀 명백한 증거를 외면하곤 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고, 보지만 보는 눈이 가려져 별 것 아니라고 단정하는 엄청난 우를 범하지 않는지요?

오늘 본문의 나사렛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고 놀라면서도, 곧바로 자신들의 '익숙한 지식'으로 주님을 가두어버립니다.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형제와 누이들을 우리가 알지 않느냐"며 예수님의 신성(Divinity)를 그분이 입으신 인성(Humanity)의 옷자락 밑에 구겨 넣습니다.

2. 완전한 인성 속에 감추어진 완전한 신성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인성의 옷: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땀 흘려 일하셨고,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이는 주님이 우리의 고통과 일상을 완벽하게 이해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신성의 빛: 그러나 그 인성의 껍질 안에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온전히 보존되고 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의 비극은 예수님의 인성(익숙함)만 보고 그 안의 신성(본질)을 보지 못한 데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적인 상식과 인간적인 계산이라는 '인성의 틀'에만 갇혀 있으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신성한 섭리'를 결코 발견할 수 없습니다.

3. 비웃음을 찬송으로 바꾼 '부활'의 변곡점

오늘 본문 55절에는 예수님의 동생들인 야고보와 유다의 이름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그들은 형인 예수를 '미친 자'로 취급하거나 배척했던 동생들입니다. 그러나 훗날 그들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야고보: "목수의 아들 예수는 내 형이다"라고 말하던 그가, 야고보서 1장 1절에서 자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지도자가 되었고 순교의 제물이 됩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 (야고보서 저자)의 AD 62년경 순교합니다. 요세푸스 (Josephus)의 ‘유대 고대사’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의하면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던 그는 대제사장 안나스(Ananus)와 바리새인들에 의해 성전 꼭대기에서 내던져집니다. 추락 후에도 죽지 않고 무릎을 꿇고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다가, 결국 군중의 몽둥이에 맞아 순교합니다.

유다: 유다서 1장 1절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라고 소개하며,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라고 권면하는 영적 전사가 됩니다.

그들의 믿음이 곤고해지고 격상된 결정적 Point는 바로 '부활의 목도'입니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던 형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증하셨을 때, 그들의 모든 인간적인 편견(옛것)은 깨어지고 영원한 진리(새것)가 그들을 장악한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한 명인 에이브러햄 링컨에 관한 일화입니다. 링컨이 변호사 시절, 한 세련된 정치가가 그의 초라한 행색과 시골뜨기 같은 외모만 보고 그를 무시합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법률을 논하겠느냐"며 비웃었지요. 그러나 링컨이 입을 열어 연설을 시작하고, 그 안에 담긴 공의와 자유의 철학이 쏟아져 나오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외모라는 '인간적 껍데기'에 속아 그 안에 담긴 '국가적 보배'를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훗날 링컨이 노예 해방과 연방의 통합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을 때에야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견을 회개합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목수 복장'만 보느라 그분이 '만왕의 왕'이심을 놓쳤습니다. 링컨 시대의 공화당은 '보수주의'의 뿌리가 되었으며, 당시 노예제를 옹호하거나 타협하려 했던 민주당(Democratic Party)과는 대비됩니다. 링컨 대통령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하나님 아래(Under God) 백성들의 민의가 반영된 성경적인 가치에 기초한 미국을 만들고자 했던 믿음의 정신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능력도 멈춥니다

본문 58절은 무서운 말씀을 전합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시지만, 그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조국 대한민국과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사렛 사람들의 '익숙한 편견'이 아니라, 야고보와 유다가 가졌던 '부활의 확신'입니다.

1. 상식을 넘어선 믿음: 눈앞의 현실(부정과 불법, 국가적 위기)이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부활하신 주님이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2. 관점의 전환: 사람의 수단과 방법(목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성자 하나님)을 기대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익숙한 목수의 아들'로 가두어 두지 마십시오. 모든 불의를 심판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전능하신 성자 하나님으로 영접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 삶과 이 나라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기 시작할 것입니다.

[새벽 기도 제목]

1. 편견의 벽을 깨소서: 내 경험과 지식이라는 좁은 틀에 하나님을 가두지 않게 하시고, 살아계신 주님의 신성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옵소서.
2. 야고보와 유다의 변화가 이 땅에: 예수님을 배척했던 자들이 부활을 통해 변화되었듯, 이 나라의 위정자들과 백성들이 거짓을 버리고 진리의 부활 앞에 무릎 꿇게 하옵소서.
3. 능력이 나타나는 믿음: "믿지 않음으로 능력을 행치 못하셨다"는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도록, 대한민국과 전세계 자유 민주주의의 회복과 확장을 위해 간구함으로써 끝까지 믿음으로 선포하는 파수꾼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