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1-21...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사역하실 때 많은 공격을 받으셨습니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율법을 어긴 증거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들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으시고, 묵묵히 사역을 이어가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안식일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인간들을 위해 제정하신 축복의 날이지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율법주의적 관습으로 만들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안식일과 관련된 많은 규정(39개)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지키기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이라는 가장 거룩한 규례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일과, 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하신 사건을 통해 참된 안식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걸어가다가, 배고픈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자, 그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은 즉각 제자들을 정죄합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배고픔이 아니라 규칙이었고, 사람보다 율법이 앞선 신앙이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은 없는,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인 신앙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규정에는, 곡식을 자르지 말 것, 타작하지 말 것, 곡식을 까부르지 말 것이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쭉정이는 버리고 알곡을 빼냈습니다. 손으로 비벼 껍질은 바람에 날려버리고, 알곡을 먹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제자들은, 밀 이삭을 잘라먹는 행동을 통해 이미 세 가지의 안식일 규정을 어긴 셈입니다. 그러나 정작 율법은 사람이 밭에 들어가 손으로 이삭을 따 먹는 행위를 금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구를 사용하여 추수하는 것을 금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한 행동을 보고 예수님께 고발하자, 예수님은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다윗도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배고플 때,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함께한 자들과 진설병을 먹었습니다. 진설병은 안식일마다 준비하는 12개의 떡으로, 제사장들만 먹도록 율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함께한 자들이 배고픔을 호소하자, 제사장은 다윗과 함께한 자들에게 진설병을 먹을 수 있도록 내어줍니다. 이 일로 하나님은 다윗을 책망하지도, 제사장을 책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배고픈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요,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성전에 들어갈 때 제사장에게 여러 가지 율법을 주신 이유는,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죽임당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경건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자비와 긍휼의 사랑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인간들을 위해 제정하신 축복의 날로, 백성들이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조항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안식일의 의미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당신을 가리켜 “성전보다 더 크신 이”라고 선언하면서, 덧붙여 말씀하시길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결정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이는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의 조항보다, 당신과 인격적으로 만날 때, 비로소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억누르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기 위해 주어진 은혜의 선물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허물과 죄로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얽매여 살아가는 어리석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면서, 단지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도 바리새인들과 다를바 없는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신앙인인 셈입니다. 만약 이러한 오해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나중에 교회에 나오는 것조차 짐처럼 여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집에서 편하게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국 영적 무감각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맞이하는 우리는 그날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마음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승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대적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회당에서도 이어집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있는 손 마른 사람을 통해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찾고자 한 것입니다. 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을 보며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은지’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그 질문은 신앙적 고민이 아니라,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악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라고 되묻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안식일이 자비와 긍휼에 기초한 제도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선을 행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악입니다. 그들은 병든 사람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찾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은 일임을 증명하기 위해,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으시고, 손 마른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율법의 진정한 목적은, 사람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가축의 생명은 구하면서, 그보다 더 귀중한 사람의 고통은 외면하는 바리새인들의 이중성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런 이중성은 우리도 자주 범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는데, 우리는 자주 종교적 형식에 얽매여 안식일의 근본정신을 놓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하신 일은, 결국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안식일을 범한 예수님을 죽일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주객이 전도된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을 행하는 것도, 사람을 구하는 것도 아닌, 오직 율법과 전통을 형식적으로, 종교적으로 지키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제사가 아닌 인애를, 번제가 아닌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원하십니다(호6;6). 우리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선을 행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는 모든 행위가,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종교적 형식에 얽매인 사람의 마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적대감만 쌓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병든 몸과 영혼을 치유받으려면,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치유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와 같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꺼져가는 심지 같은 연약하고 곤고한 자를 자비와 긍휼로, 돌보아 주십니다. 상한 갈대는 이미 부러질 듯한 존재이고, 꺼져가는 등불은 거의 쓸모없어 보이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연약한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실패한 자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믿음을 다시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은 강한 자를 선택하지만, 예수님은 남아있는 희망을 선택하십니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아무 쓸모가 없는 상한 갈대요, 기름을 부어도 타지 않는 ‘꺼져가는 심지’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꺾이고 다 타버린 것 같은 소망없는 우리 인생 가운데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새롭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가 최후 승리를 얻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안식일의 ‘쉼’은 모든 행위의 중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익을 위한 노동은 금지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제나 나눔과 섬김은 허릭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담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은 알지 못한채, 안식일에 금지된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을 교훈하시면서, 안식일의 진정한 정신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안식일은 연약한 이들이 위로받고, 치유받는 축제일이자, 생명을 살리는 선한 일을 하는 날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소리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스며드는 방식으로 확장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은 배고픈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육체와 영혼을 모두 치료하셔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바리새인과 같이 안식일을 단지 율법 규범으로만 여기는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안식일에 행하신 자비와 긍휼을 우리 안에서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자비와 긍휼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나눔으로써, 안식일의 정신을 바르게 계승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의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이웃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기준인가요? 아니면 이웃을 살리는 긍휼의 기준인가요? 내가 신앙의 근본정신을 잊고 있다면, 무엇을 회복해야 할까요? 사역의 본질인 생명을 살리는 일과 영혼의 회복을 등한시하면서 사역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주변에 손 마른 사람처럼 삶에 지친 사람이 있다면, 어떤 구체적인 도움이나 위로의 말을 건넬수 있을까요?
오늘도 샬롬 ~~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At that time Jesus went through the grainfields on the Sabbath. His disciples were hungry and began to pick some heads of grain and eat them.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When the Pharisees saw this, they said to him, “Look! Your disciples are doing what is unlawful on the Sabbath.”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He answered, “Havenʼt you read what David did when he and his companions were hungry?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He entered the house of God, and he and his companions ate the consecrated bread—which was not lawful for them to do, but only for the priests.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Or havenʼt you read in the Law that the priests on Sabbath duty in the temple desecrate the Sabbath and yet are innocent?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I tell you that something greater than the temple is here.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If you had known what these words mean,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you would not have condemned the innocent.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For the Son of Man is Lord of the Sabbath.”
9.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Going on from that place, he went into their synagogue,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and a man with a shriveled hand was there. Looking for a reason to bring charges against Jesus, they asked him, “Is it lawful to heal on the Sabbath?”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He said to them, “If any of you has a sheep and it falls into a pit on the Sabbath, will you not take hold of it and lift it out?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How much more valuable is a person than a sheep! Therefore it is lawful to do good on the Sabbath.”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Then he said to the man, “Stretch out your hand.” So he stretched it out and it was completely restored, just as sound as the other.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But the Pharisees went out and plotted how they might kill Jesus.
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Aware of this, Jesus withdrew from that place. A large crowd followed him, and he healed all who were ill.
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He warned them not to tell others about him.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This was to fulfill what was spoken through the prophet Isaiah:
18.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Here is my servant whom I have chosen, the one I love, in whom I delight; I will put my Spirit on him, and he will proclaim justice to the nations.
19.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He will not quarrel or cry out; no one will hear his voice in the streets.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A bruised reed he will not break, and a smoldering wick he will not snuff out, till he has brought justice through to victory.
21.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In his name the nations will put their h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