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WORD

너희 믿음대로 되라

마태복음 9;27-38...너희 믿음대로 되라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으로 질병에서 치유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집을 떠나 길을 가실 때, 맹인 두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 지르며 예수님을 쫓아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야만 자신들의 질병을 치유받을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을 따라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두 맹인이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이”이라고 불렀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불렀다는 것은,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영의 눈으로는 예수님을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 왕, 메시아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오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며, ‘눈먼 자의 눈을 밝히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사11;1, 29;18, 42;7).

정작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아로 오신 것을 몰랐습니다. 아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는 두 맹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왕이심을 믿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열쇠입니다. 예수님은 능력을 베풀기 이전에 이러한 믿음을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그 믿음을 통해 능력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두 맹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공부를 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리가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두 맹인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이심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산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짧은 지식과, 사람들이 전해주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입술로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두 맹인처럼 이런 단순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지만, 주님이 행하시는 생생한 기적의 체험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이성적 판단과 분별력을 앞세운 나머지, 단순한 믿음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때는, 우리의 불완전한 이성과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앞세웠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그분의 말씀을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 예수님의 능력과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응답은 우리가 가진 믿음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두 맹인의 외침을 듣고도 마태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자 두 맹인은 집안에까지 따라 들어오며 자신들을 치료해줄 것을 간청합니다. 두 맹인의 신앙고백을 듣고, 믿음을 확인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내가 능히 이 일을 할줄을 믿느냐”고 질문하십니다. 그러자 두 맹인은 한치의 밍설임도 없이 “주여 그러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맹인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치유의 능력은 주님께 있지만, 그 능력이 흘러가는 통로는 믿음입니다. 아무리 종교지식이 풍부해도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영적 눈이 뜨인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눈이 멀어 방향을 잃고 방황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눈을 뜨게 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분께 믿음으로 나아갈 때, 진리의 빛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기적적인 응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우리의 시각으로 결정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씀을 통해 배우고, 알아가야 합니다. 그분을 아는 만큼 우리의 기도는 더 풍성해지고, 우리가 받는 응답도 더 다양해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육신의 눈이 아닌 영의 눈입니다. 영의 눈이 열려야 주님을 알아보고, 겸손히 그분 앞에 나아가 그분의 긍휼을 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디를 가든지 항상 주변에는 병든 자들이 따라다녔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귀신들려 말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치유를 경험하고 다시 말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사탄의 권세를 제어하시고 통치하시며, 이기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치르는 악한 영과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온전한 치유자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놀랍게 여기지만, 오히려 반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안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기적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만 보았습니다. 귀신들려 말못하는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말못하던 자가 다시 말할수 있게 되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의 영안은 철저히 닫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바로 눈앞에서 기적을 목격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핵심은 믿음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육신의 눈으로 보지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깨어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영적으로 철저히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이끌어야 했지만, 그들은 영적 맹인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종교 지도자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영적으로 예민하고 간절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만 천국이 허락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으시고,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사람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당신의 사역에 집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제자로 살아가는 삶도 이러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이나 취향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시선과 마음을 기준으로 삼아 사역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귀신들려 말못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처럼, 영혼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나아오는 무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모든 질병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들이 마치 ‘목자없는 양’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중심의 귀족이었고, 바리새인들은, 평신도 출신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백성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율법에 대한 지식으로,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만 지울 뿐이었습니다. 참된 일꾼, 참된 영적 지도자는 예수님처럼 긍휼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동안 행하신 3대 사역은,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치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대한 바른 ‘가르침’은 거짓된 교훈을 분별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인류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질병의 치유’는 사탄의 권세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가시적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이 세 가지 사역은 교회에 위임되었습니다. 이 사역을 감당하려면 성도(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의 악한 궤계를 파악하고,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대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많지만, 참된 사역자는 부족합니다. 사역자는 많지만, 주님의 일꾼은 부족합니다. 사역은 목회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모든 성도가 한마음이 되어 섬겨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 싶다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알곡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종교 행위만 있고, 믿음이 없는 가라지 성도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사람은 방법과 제도를 찾지만,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의인 한 사람을 찾습니다. 세상의 많은 방법이 중요한게 아니라, 한 사람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중요합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십시요. 우리의 믿음과 선한 삶을 통해 주님은 일하시고, 추수하기를 원하십니다.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님을 나는 어떤 관점으로 보나요? 내가 긍휼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이들은 누구인가요?

오늘도 샬롬 ~~

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As Jesus went on from there, two blind men followed him, calling out, “Have mercy on us, Son of David!”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When he had gone indoors, the blind men came to him, and he asked them, “Do you believe that I am able to do this?” “Yes, Lord,” they replied.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Then he touched their eyes and said, “According to your faith let it be done to you”;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and their sight was restored. Jesus warned them sternly, “See that no one knows about this.”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But they went out and spread the news about him all over that region.

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While they were going out, a man who was demon-possessed and could not talk was brought to Jesus.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적이 없다 하되
And when the demon was driven out, the man who had been mute spoke. The crowd was amazed and said, “Nothing like this has ever been seen in Israel.”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But the Pharisees said, “It is by the prince of demons that he drives out demons.”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Jesus went through all the towns and villages,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proclaiming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and healing every disease and sickness.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When he saw the crowds,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harassed and helpless,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Then he said to his disciples, “The harvest is plentiful but the workers are few.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Ask the Lord of the harvest, therefore, to send out workers into his harvest fie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