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14-26...믿음이 생명을 살리는 비결입니다.
금식은 경건의 상징이었고, 슬픔과 회개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율법에서는 대속죄일에 금식할 것을 명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는 날로 정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날과, 내려온 날을 기념하여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금식하셨고,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이처럼 금식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경건의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 역시 금식을 종교의식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여 행하던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왜 예수님과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질문합니다. 이들의 질문에는 ‘왜 경건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왜 전통을 지키지 않습니까?“ 라고 힐난하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기는커녕, 슬퍼하지도 않았고, 먹고 마시며, 잔치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당시에 선각자였고, 그 시대 누구보다도 메시아에 대해 잘 아는 축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춰 있는 듯합니다. 그들은 스승이 주님이 오심을 증거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은, 기쁨이고 즐거운 잔치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세 가지 상황을 들어 대답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가 혼인집 신랑 이야기입니다. 혼인집의 손님들은 신랑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습니다. 신랑이 옆에 있기 때문에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금식이나 자신을 괴롭게 하려는 고행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메시아로 보내신 이유는, 죄와 사망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죄로 인해 에덴에서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함께 교제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신랑이라고 지칭하십니다. 구약에서 신랑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신랑이신 예수님이 곁에 계시기 때문에 슬퍼하고 애통할 때가 아니라,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에서는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주님이 들어가 그들과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며, 즐거워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교제하시고 식사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지 결코 슬픈 소식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임마누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신앙은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관계의 기쁨입니다.
율법과 전통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본질을 담지 못할 때, 율법과 전통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 위한 형식적이고 외식적이며, 종교적인 행위로 전락하고 맙니다. 우리는 이러한 형식적이고 종교적이며 위선적인 신앙을 경계해야 합니다. 신앙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임마누엘 주님과의 사귐입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 오면, 그때는 금식하고 슬퍼할 때입니다. 신랑을 빼앗기는 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그들 곁에 계시지 않을 때입니다. 그때 제자들은 금식할 것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생베조각과 낡은 옷 비유입니다. 새 천을 낡은 옷에 붙이면 낡은 옷이 찢어집니다. 새 천이 수축하면서 낡은 옷감을 잡아당겨 찢어지는 것입니다. 새포도주와 낡은 가죽부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새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으면, 새포도주가 발효되면서 낡은 가죽부대가 팽창하기 때문에, 낡은 가죽부대는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새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서 생베조각과 새포도주는 복음을 의미하고, 낡은 옷과 낡은 가죽부대는 율법과 전통을 의미합니다. 낡은 옷과 낡은 가죽부대와 같은 율법의 전통과 형식에 지나치게 얽매이다 보면, 주님이 주시는 새포도주와 같은 복음의 능력과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는 형식적인 경건의 모양을 내려놓고, 주님의 임재 가운데 있을 때, 신앙은 의무가 아닌 잔치와 같은 기쁨의 축제가 될수 있음을 말합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심으로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의 종교적인 예식과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성취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에 만족한 나머지, 예수님이 주시는 새 포도주와 같은 복음의 기쁨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유대교의 전통에 담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옛 언약은 새 언약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할뿐, 새 언약으로 오신 예수님이 최종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구약의 율법과 유대 전통을 따랐지만, 예수님은 율법을 성취하러 오신 분이기에, 율법과 전통의 틀에 갇힐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형식적, 종교적 관습이 아닌, 우리의 존재와 삶의 방식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능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인 형식이 아닌, 믿음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살아계신 예수님과의 교제를 막고, 전통과 율법의 형식에 마음을 빼앗기고 치우친다면, 새포도주와 같은 기쁨은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복음의 진정한 능력을 맛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할 구속주가 되셔서 새 시대를 여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금식에 관해 이야기하실 때, 한 관리가 찾아옵니다. 그는 예수님께 자기 딸이 방금 죽었으니, 예수님이 오셔서 손을 얹으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께 나아왔던 관리는 회당장 야이로입니다(막 5:22). 예수님은 회딩장 야이로를 따라 길을 나섭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기존 유대 사회가 배척하던 예수님께 나아와 도움을 구했습니다. 회당장이라면 예수님에 관한 오해가 여느 유대인보다 극심했을 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그에게는 예수님이 죽은 딸을 살리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살려 달라는 상식 밖의 요청을, 믿음으로 예수님께 담대하고도 간절하게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여신 새 시대는 믿음이 핵심인 시대입니다.
예수님이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길에, 혈루증 앓는 한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다가와 겉옷 가에 살짝 손을 댑니다. 그녀는 12년이나 병을 앓으며, 여러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혈루증은 치유되지 않았고, 가지고 있던 돈은 다 허비했습니다. 이제 소망이 없었습니다. 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율법 규정에 따라 부정한 자로 여겨져, 사회에서 고립과 소외되는 마음의 상처까지 짊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그녀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받을 것이라는 담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을 만지는 순간, 지금까지 12년 동안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던 혈루의 근원이 마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을 만졌지만, 예수님은 그녀의 질병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프고 고통스런, 상처난 마음을 만지시고, 위로하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녀의 믿음이 지금까지 자신을 붙들고 괴롭히던 절망의 끈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절망이 희망과 소망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그녀의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통받았던 여인은, 사람들에게 부정한 자라고 따돌림당하고 멸시받던 존재였기에, 공개적으로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어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었습니다. 이들은 대조적인 모습으로 예수님을 찾았지만, 결국 믿음으로 모두 구원받았습니다. 우리 역시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찾든,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이 알아봐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를 따라 그의 집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그의 딸이 죽은 이후였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회당장의 딸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회당장의 집은 울며 통곡하는 소리로 시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시니 죽었던 소녀가 살아났습니다. 거기 모인 자들은 나름대로 유족을 위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또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생명을 주러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틀에 갇힌 이들의 한계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이나 연속으로 부정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과 접촉했고, 죽었던 시신을 만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피흘리는 여인과 접촉해도, 시신에 손을 대도, 예수님은 부정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거룩함이 그들에게 전달되어 병든 자가 치유받고,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성취하러 오셨기에, 형식적인 율법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중요했고, 예수님은 오직 그들의 믿음만 보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여신 새 시대는, 믿음으로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맛볼 수 있는 기쁨의 시대입니다. 죽어가던 육신도, 메마른 마음도, 희미해진 소망도, 주님을 만나면 회복됩니다.
믿음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그리고 믿음에 대한 보상은, 당신이 믿은대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과 회당장 야이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보상으로 병이 치료되고, 죽은 딸이 살아나는 영광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새 언약으로 오신 예수님, 새 시대를 여신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신앙이 그저 형식에 머문다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생명력있는 관계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의 잔치가 시작된 구원이 시대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 모습인가요? 혹시 신앙생활을 형식적인 의무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요? 풀리지 않는 문제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면, 그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그러니 오늘도 복음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서는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안에서 내가 온전한 기쁨을 누리도록 내가 내려놓아야 할 형식적 경건이나 관습은 무엇인가요? 약한 육신, 아픈 마음 등 나에게 치유가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늘도 샬롬 ~~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Then Johnʼs disciples came and asked him, “How is it that we and the Pharisees fast often, but your disciples do not fast?”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Jesus answered, “How can the guests of the bridegroom mourn while he is with them? The time will come when the bridegroom will be taken from them; then they will fast.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No one sews a patch of unshrunk cloth on an old garment, for the patch will pull away from the garment, making the tear worse.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Neither do people pour new wine into old wineskins. If they do, the skins will burst; the wine will run out and the wineskins will be ruined. No, they pour new wine into new wineskins, and both are preserved.”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While he was saying this, a synagogue leader came and knelt before him and said, “My daughter has just died. But come and put your hand on her, and she will live.”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Jesus got up and went with him, and so did his disciples.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Just then a woman who had been subject to bleeding for twelve years came up behind him and touched the edge of his cloak.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She said to herself, “If I only touch his cloak, I will be healed.”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Jesus turned and saw her. “Take heart, daughter,” he said, “your faith has healed you.” And the woman was healed at that moment.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When Jesus entered the synagogue leaderʼs house and saw the noisy crowd and people playing pipes,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he said, “Go away. The girl is not dead but asleep.” But they laughed at him.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After the crowd had been put outside, he went in and took the girl by the hand, and she got up.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News of this spread through all that reg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