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WORD

이이가 누구시길래?

마태복음 8;23-34...이이가 누구시길래?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걸어가면서 누구나 다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고난이나 환난이 닥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은 사고와 질병에 대항하기 위해 ‘보험’이라는 상품에 가입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일상에서도 우리에게는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찾아오고, 때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 가운데 연단이 찾아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지만, 이 세상은 아직 어둠의 영이 공중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구원받았지만, 아직 우리의 전인적인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자들은 무리가 아니라, 제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제 예수님과 제자들은 자신들을 에워싸는 많은 무리를 떠나, 배를 타고 건너편 ‘가다라’ 지방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자연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오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큰 풍랑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올랐는데도 풍랑을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질문을 할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 라고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는 믿음의 여정일지라도 ’풍랑‘이라는 시련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에도 세상의 풍파와 환난이 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일이 잘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과 다르지 않게, 성도의 삶에도 장애물과 고난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큰 풍랑이 일자 두려움에 빠져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태연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어부였고, 바다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지만, 생각지도 않은 큰 폭풍에 당황하고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그들의 경험과 능력도 거친 풍랑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그들을 지켜준 것은, 경험이 아니라 예수님이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자, 예수님은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시고 잠잠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의 항해에서 우리가 가진 경험이나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요,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제자들은 거친 풍랑에 두려워하여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치지만, 제자들의 외침에 예수님의 반응은 의외입니다. 놀라고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을 다독이는게 아니라, 믿음이 작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제자들이 무서워하는 이유는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배 안에 ’함께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폭풍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무신다고 해서 우리의 상황을 모르시거나 무관심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오해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 이토록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주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주무시는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으시는 분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만, 아직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명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지만, 아직 예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요, 통치자이심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거친 풍랑에 마음을 빼앗기고, 두려움에 떤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직 자신의 존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친 풍랑을 통해 제자들에게 자신이 자연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알게 하십니다.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시고 잠잠하게 하신 예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주님이 창조하셨기에 주님이 다스릴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꾸짖음에 바다와 바람이 잔잔해지자, 모두 놀라서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고 놀란 것입니다. 제자들은 거친 풍랑이라는 환난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달았습니다. 환난을 통해 주님을 만난 성도는, 확신을 가지고 더욱 담대한 믿음으로 설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환난을 싫어하지만,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에게는 환난이 때로는 더 큰 유익을 가져다주는 위장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환난을 당해도 믿음으로 담대하게 그 문제를 대처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어쩔 수 없는 현실적 두려움이 따라옵니다. 예상하지 못한 풍랑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삶’이라는 배가 가라앉을 듯 흔들릴 때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나요?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볼 때, 외적 상황과 상관없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삶의 폭풍속에서 만나는 갖가지 문제는, 주님께는 그저 한 마디로 꾸짖으시면 해결될 작은 문제이며,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면, 사실상 큰 위협이 되지 않는 것들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일상에서 당하는 고난이나 환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계시기에, 결코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기에, 주님이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과의 동행입니다. 그분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사탄의 권세를 이기신 분입니다.

바다에서 풍랑으로 고초를 겪은 제자들이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피하는 귀신들린 두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들은 귀신에 사로잡힌 자들로 사나워서, 아무도 그 길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어서, 마을에서 격리된 채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곳이요,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인생이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무서워하여 피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일부러 그곳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귀신들린 것도, 그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피해를 입히며, 두려움을 준 것도, 그들이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그들을 만나기 위해, 부정한 자리, 절망의 자리, 버림받은 지리로 찾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의 겉모습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든지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억압에서 자유케 되며,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버림받은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자로 변화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을 꼭 만나야 합니다.

귀신들린 자들이 무덤 사이에서 나오며 예수님을 보자 즉시 반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아직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오셨나이까?”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라도, 어둠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합니다.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비방하지만, 귀신들은 예수님의 권위 앞에 두려워 떨며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어떤 악도 주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입술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 주님과 상관이 없다면, 우리의 고백도 귀신의 고백과 다르지 않습니다. 귀신들린 두 사람이 살고 있던 곳은, 무덤사이인 죽음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지만, 그 삶이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면, 그 삶은 사탄이 지배하는 영적 죽음의 삶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입니다.

귀신들린 두 사람도 자신들을 돼지떼로 들어가기를 요청합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시자 귀신에 사로잡힌 돼지떼는 바다로 뛰어가 몰살당합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괴롭히며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귀신이 사라졌지만, 오히려 예수님에게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재산상의 손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리석고 우둔한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안개처럼 사라지고 없어질 세상의 것에 목숨을 겁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공기 중에 있는 산소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면 우리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이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소중할 때가 있습니다. 귀신들은 결국 몰살당하여 쫓겨나지만, 사람들은 이를 보고도 주님을 오히려 배척합니다. 이는 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으나, 아직 가다라 지역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하지만 사탄은 이미 그 통치권을 잃고 내쫓겼으며, 지금은 온 세상을 예수님이 정복하며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통치를 세상 가운데 선포해야 합니다.

믿음이 작다고 책망받았지만 그럼에도 폭풍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예수님을 찾았던 제자들과, 귀신들인 사람이 온전하게 된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거부한 가다라 사람들이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영접할지, 아니면 예수님을 떠나보낼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예수님은 거친 폭풍을 잠잠케 하시는 분이며, 인생의 가장 깊은 어둠과 절망에서 자유케 하시는 분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에 바람이 불고 있습니까?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문제가 있나요? 배에서 주무시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 인생의 통치자이시며, 주권자이십니다. 인생에서 뜻하지 않게 거친 비바람을 만나거나,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구원하셔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오늘도 그분을 신뢰함으로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나의 인생의 배에서 끝까지 저와 함께 동행해 주십시요”라고 말이죠.

*지금 나에게 찾아온 풍랑은 어떤 것이며, 그 풍랑속에서 나는 마음은 어떤가요? 내 삶에서 주님의 은혜로 회복되고 다시 새롭게 정비되어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요? 인생의 폭풍 앞에서 나는 예수님이 ‘나의 주’가 되심을 인정하나요? 나의 삶을 억눌렀던 깊은 어둠에서 구원을 경험하셨나요? 예수님이 내 삶이 깊이 개입하실 때, 두려움 대신 믿음으로 반능할 수 있나요?

오늘도 샬롬 ~~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Then he got into the boat and his disciples followed him.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Suddenly a furious storm came up on the lake, so that the waves swept over the boat. But Jesus was sleeping.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The disciples went and woke him, saying, “Lord, save us! Weʼre going to drown!”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He replied, “You of little faith, why are you so afraid?” Then he got up and rebuked the winds and the waves, and it was completely calm.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The men were amazed and asked, “What kind of man is this? Even the winds and the waves obey him!”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When he arrived at the other side in the region of the Gadarenes, two demon-possessed men coming from the tombs met him. They were so violent that no one could pass that way.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What do you want with us, Son of God?” they shouted. “Have you come here to torture us before the appointed time?”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Some distance from them a large herd of pigs was feeding.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The demons begged Jesus, “If you drive us out, send us into the herd of pigs.”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He said to them, “Go!” So they came out and went into the pigs, and the whole herd rushed down the steep bank into the lake and died in the water.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Those tending the pigs ran off, went into the town and reported all this, including what had happened to the demon-possessed men.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Then the whole town went out to meet Jesus. And when they saw him, they pleaded with him to leave their region.